2) 오스트리아 와인 여행기 2
다뉴브 강을 따라 흐르는 와인
수도 빈에서 북서쪽으로 가면 니더외스트라이히(Niederösterreich) 혹은 영어식으로 Lower Austria 로 부름) 라는 꽤 큰 와인 산지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약 30,500 헥타르의 면적을 가지고 있는 이 지역은 매우 광범위하며 또한 꽤 훌륭한 와인들이 생산되고 있으며 전체 오스트리아의 와인 생산량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다뉴브 강을 따라 포도원이 형성된 이 지역은 전반적으로 서늘한 기후를 보여주며 세부 지역별 기후가 달라지기도 한다. 강을 따라 혹은 가파른 산중턱에 테라스형식으로 포도원이 형성되어 포도나무들은 태양을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지역은 리슬링과 그뤼너벨트리너가 집중적으로 생산되고 있으며 와인 스타일에 있어서의 다양성과 우수한 품질들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해발 449미터의 괴트바이그(Göttweig)산 꼭데기에 위치하고 있는 괴트바이그 수도원은 900년이 넘는 와인 전통을 가지고 있다. 26헥타의 꽤 큰 포도밭이 와카우(Wachau)와 크램스(Krems)지역에 있으며 이들 지역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밭 중의 하나이다. 괴트바이그 수도원은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박물관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수도승들이 살고 있는 살아있는 수도원 이기도 하다. 바로크 양식의 웅장한 건축은 충분히 수도원의 위엄을 보여주고도 남을 정도다. 이 수도원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유산(World Heritage)중의 하나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특별한 와인시음을 가졌다.
다뉴브 강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포도원에서 생산된 와인들 중 그뤼너벨트리너와 리슬링 품종으로 만든 와인만을 집중적으로 시음하는 자리였다. 다뉴브강을 따라 형성된 세부적인 산지들은 크렘스탈(Kremstal), 캄탈(Kamptal), 트라이젠탈(Traisental) 과 같은 DAC에 해당하는 와인산지들이다.
(참고 - DAC 란 : Districtus Austriae Controllatus 란 의미의 DAC는 프랑스의 AOC 혹은 이탈리아의 DOC 와 유사한데 오스트리아에서 2002년부터 규정된 원산지 별 품질 규정에 따른 와인 법규로 고급 와인으로 인정되는 지역에 부여하며 오스트리아 에는 총 16개의 DAC 지역이 있다).
리슬링의 경우 복숭아, 사과, 레몬, 라임, 살구, 꿀, 미네랄, 허브와 같은 향기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완벽한 발란스를 보여준다. 매우 적절한 산미와 단미 그리고 바디감은 우아하다. 그뤼너벨트리너의 경우 레몬과 라임과 같은 기분 좋은 향기와 함께 과실적인 산미와 단미 그리고 신선한 청량감은 테이스팅 중에도 목구멍으로 넘기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 없어 마셔버리고 마는 경우가 많았던 와인이다. 이 와인을 이야기 하라면 오스트리아의 경쾌하면서도 우아한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 같다. 이 지역의 그뤼너 벨트리너는 가끔씩 와인의 무게 감이 느껴질 때도 있으며 알싸한 맛의 스파이시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오스트리아 와인 모더니즘(Modernism)
전날 괴트바이그 수도원을 소개하였던 수도승의 위엄스러우면서도 온화한 미소가 한동안 머릿속을 지우지 못한 채 아침을 맞이했다. 우리가 방문하는 곳은 와인 박물관 “로이지움(Loisium)” 이었다.
매우 오래된 와인저장고, 전통방식의 와인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예전에 사용되었던 연장들을 보여줄 것이라 상상하면서 도착하니 한쪽은 포도밭이 펼쳐져 있고 또 한쪽은 세련된 현대식 건물이 서 있었다. “여기가 뮤지움? 에이 미술관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로이지움에 들어섰다. 그 안은 와인을 즐기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은 카페가 있었고 와인을 판매하는 샵이 보였다.
약 20대 정도 되어 보이는 귀여운 아가씨가 자신을 소개한다. 로이지움은 자신의 집안에서 운영한단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와인 셀러는 900년이 넘었다고 한다. 프랑스나 독일과 같은 와인 저장고를 상상하면서 들어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하로 들어선 내부는 화려한 불빛이 분수처럼 펼쳐지고 있었으며 그곳에서는 아름답기도 하고 화려하기도 한 음악들이 현란하게 조명과 함께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테이블 위에 손을 올리면 음악과 함께 조명이 켜지는 것이었다. 그 옆 테이블에는 아기 발바닥이 튀어나온 듯한 조각이 솟아 있었다.
“이 발바닥을 간지럽히면 아이의 웃음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라고 가이드는 이야기 한다. 정말로 발바닥을 긁으니 아이의 귀여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 발상은 스파클링 와인을 마셨을 때 느낌을 표현한 작품이죠” 라고 설명한다.
음악과 와인이 하나로
„Baroque meet Jazz“. 즉 바로크와 재즈가 만난다는 테마아래 우리는 글로리에테(Gloriette)로 안내되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저녁 만찬이었다. 쉔브룬 궁전의 정원이라 이야기해야 하나? 글로리에테는 1775년 전사자를 기념하기 위해 설립된 건축물로 그 웅장함과 멋진 건축물에 매료 당하는 느낌이다. 말 그대로 글로리에테는 작은 영광처럼 그렇게 당당하게 서 있었다. 꽤 높은 언덕에 세워진 이 건축물에서 큰 연못이 보이고 그 아래로 쉔브룬 궁전이 한눈에 보인다. 유럽 전역을 뒤 흔들었던 합스부르크(Habsbrug)왕가의 찬란한 역사적인 화려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궁전이다. 그리고 그 뒤로는 비엔나의 도시가 펼쳐진다.
이미 행사장에는 현악 4중주 악단이 하이든의 경쾌하고 우아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고 여러가지의 스파클링 와인이 든 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웨이터는 나에게 마시고 싶은 스파클링 와인을 물어본다. 이날도 90여가지가 넘는 오스트리아 와인들이 테이스팅 노트를 위한 책자와 함께 다양한 와인을 맛볼 수 있도록 배려 하였다. “또 와인을 테이스팅 한다구?” 참석한 일행들은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미 우리는 300가지가 넘는 와인들을 지칠 만큼 테이스팅 하거나 마셔왔기 때문이다. 저녁 만찬에서 이러한 와인들을 모두 맛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흥겨운 분위기에 난 몇 가지 호기심이 발동하는 와인들을 선택하여 맛보기 보다는 마셔버렸다.
분위기는 무르익어, 경쾌한 클래식은 하이든, 모짜르트의 음악으로 이어지다가 나중에는 요한슈트라우스의 왈츠가 연주되었다. 왈츠의 경쾌한 음률에 따라 사람들은 하나 둘씩 짝을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재즈의 매혹적인 공연과 더불어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행사의 거의 막바지에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려는 사람들을 붙잡는 예사롭지 않은 피아노 선율에 무언가 하고 가 보았더니 와인협회 대표인 클링겔씨가 직접 피아노를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내 귀에도 익숙한 클래식에서 팝에 이르기까지… 그의 뛰어난 연주 실력에 놀랐고 이윽고 분위기는 더욱 뜨겁게 달구어 졌다. 모두가 그의 반주에 노래를 불렀고 모두가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 클래식의 우아함과 유쾌한 사람들이 모두 어우러진 분위기는 오스트리아의 경쾌하면서도 향기로운 와인으로 느껴졌다. 확실히 그랬다. 이것이 오스트리아 와인이 상징하는 그 무엇이었다. 오스트리아는 전세계인에게 이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오스트리아는 오랜 역사를 통한 문화와 예술이 풍부한 나라로만 인식하고 있다. 수도 비엔나는 역사적인 유서가 깊은 도시로 고딕식 탑의 교회나 바로크, 로코코 풍의 화려한 궁전이나 건물들과 최고의 건축물들이 있으며 모짜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하이든, 왈츠의 황제로 알려진 요한스트라우스는 모두가 이곳 출신이거나 활동했던 음악가들이었다. 세계적으로 가장 비싸게 판매되고 흠모를 받고 있는 그림의 화가 클림트도 바로 비엔나 출신이다. 오스트리아인들은 부자이든 서민이든 상관없이 어릴 때부터 교양과 예절에 잘 길들여져 있었고 악기 하나 정도는 다룰 수 있도록 키워졌기에 엄격한 규율 속에서도 예술적인 여유로움이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 속에는 와인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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