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보르도 와인 기행을 하신 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 와인으로 샤토 팔머를 꼽았다. 경험해 보지 않았으니 공감할 수 없었지만 샤토 팔머의 와인을 맛볼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보르도 3등급 와인으로 검은 바탕에 화려한 금빛 레이블을 지닌 샤토 팔머 와인은 각종 와인 서적에서나 만나는 말 그대로 “그림의 와인”이었다.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2011년 6월 3일 WSA포도플라자에서 디렉터인 Mr. Bernard de Laage(버나드 라쥬)가 직접 소개하는 샤토 팔머 및 세컨 와인인 알테 에고 버티컬 테이스팅에 참가했다. 샤토 팔머는 1995, 1998, 2000 빈티지, 세컨 와인인 알테 에고는 2005, 2007 빈티지가 준비되었다.

샤토 팔머의 기원은 Gascq Estate이다. 1814년 부대를 이끌고 보르도에 와있던 찰스 팔머Charles Palmer장군이 젊은 미망인인 Marie Brunet de Ferriere로부터 이 와이너리를 사들이면서 Chateau de Gascq의 와인은 단기간에 시장에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당시 찰스 팔머는 10만 프랑에 이 샤토를 사들인 후 대대적인 식재와 더불어 많은 투자와 확장을 펼쳐 총 163ha의 대지를 확보하고 그 중 82ha에 포도를 심고, 이쌍Issan, 깡뜨낙Cantenac과 마고Margaux에 건물을 세운다.

군사적 업적과 더불어 사회적, 정치적 야망이 컸던 팔머 장군은 런던에 위치한 사교클럽에 자신의 와인을 선보이며 와이너리의 명성을 쌓았고 당시 클럽의 이름은 Palmer’s Claret로 불릴 정도였다. 지나친 투자로 재정적 어려움에 시달린 팔머 장군은 파산 위기에 몰려 샤토 팔머를 떠나게 된다. 하지만 그가 세운 샤토 팔머의 명성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그의 이름은 지금까지 샤토 팔머에 남았다.

1853년 은행가인 Pereire형제는 41만3천 프랑에 샤토를 사들인다. 샤토 팔머를 구입한 뒤 바로 2년 뒤에 정립된 1855등급 체계에 전략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던 샤토 팔머는 그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3등급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 Pereire형제는 샤토 팔머 대지에 걸 맞는 양조장을 새로 건립하고 1870년까지 177ha로 확장하였으며 그 중 109ha에 포도를 심었다. 하지만 19세기말 불어 닥친 경제 침체와 필록세라로 인해 어려움에 빠진 Pereire형제는 샤토 팔머를 팔게 된다.

1938년 Sichel, Ginestet, Miailhe, Mahler-Besse가문이 연합한 Societe Civile de Chateau Palmer로 소유권이 이전되었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1961년부터 1977년까지 팔머는 마고 지역에서 최고의 와인을 생산하다 1978년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한 샤토 마고 Chateau Margaux에게 1위 자리를 내어주었다. 하지만 1990년 후반부터 시행된 대대적인 셀러 정비와 세컨 와인 도입으로 다시 위대한 와인의 자리를 되찾았다.
200년 동안 비록 3세대에 걸친 변화를 겪긴 했지만 지속적인 가족 경영을 이어온 팔머는 브랜드를 확립하고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1930년대부터는 와인 스타일과 팔머 와인 철학유지에 힘써 마고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샤토로도 자리매김했다. 보르도 남부 특히 마고는 섬세함, 우아함, 피네스를 지닌 와인이 생산된다. 샤토 디쌍Chateau d’Issan과 로장 세글라Chateau Rauzan-Segla 중간에 위치한 팔머는 피레네 산맥에서 가론느강이 실어온 자갈로 구성되어있다. 높은 비율로 메를로를 블렌딩하여 마고 스타일과 더불어 벨벳 같은 부드러운 느낌과 좋은 구조, 농후함과 유연함을 지닌 와인이 된다. 유난히 긴 침용 추출 기간과 마지막 단계에서 시행되는 블렌딩, 여과과정을 시행하지 않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와인을 만든다.

1995년 샤토 팔머는 팔머에 적용되는 품질기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면서 세컨 와인인 알테 에고를 만들게 된다. 수확 직전 포도 열매를 맛보아 아로마의 힘, 농축감, 구조, 탄닌, 탄닌의 구조, 탄닌의 집중도에 따라 블록 별로 팔머용과 알테 에고를 결정한다. 그 후 양조 과정은 동일하지만 새 오크 통을 사용 비율과 기간을 달리하여 팔머와 알테 에고를 생산한다. 팔머는 19~20개월, 50~60% 새 오크 통을 사용하지만 알테 에고는 17개월, 30~40% 새 오크 통에서 숙성된다. 알테 에고는 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메를로 비중이 전반적으로 높은 편이라 부드럽게 즐길 수 있게 양조되며 세컨 와인이지만 장기 숙성 잠재력을 지녀 1998, 1999 빈티지를 지금도 좋은 모습으로 즐길 수 있다.

알테 에고 Alter Ego de Palmer 2007
어두운 보라색이 감도는 루비빛 와인으로 균형 잡힌 곱고 부드러운 감초, 스모크, 카시스, 바닐라, 검붉은 과실향을 느낄 수 있다. 입에서는 좋은 산미와 적당하고 부드러운 탄닌이 느껴지며 여운 또한 길다. 지금 즐겨도 좋지만 숙성해도 좋을 와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토피, 쵸콜렛, 모카향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와 큰 즐거움을 준다.
알테 에고 Alter Ego de Palmer 2005
보통 세기의 빈티지로 표현하는 2005는 실상 드라마틱한 빈티지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설명이 있었다. 건조한 기후 때문에 폴리페놀과 안토시아닌, 당분이 농축되어 관대하면서도 힘찬 와인이 되었다.
감초, 복합적인 스파이스, 달큰한 느낌이 두드러져서 자칫 론 와인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숙성에 따른 복합적인 향과 더불어 매우 작 익은 검은 과실, 높은 알코올에 기원한 단내, 블랙커런트, 커피, 모카, 쵸콜렛 풍미가 매우 농축되었고 이와 균형을 이루는 산미를 지녔다. 긴 시간 모든 풍미를 머금은 채 계속 진화해온 와인이다. 지금보다는 조금 더 기다리면 좋을 와인이다.

샤토 팔머 2000 Chateau Palmer 2000- 품위 있는 와인의 전형
2000빈티지는 보르도에서 세련되고 복합적인 빈티지로 정평이 나있다. 농축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깊이와 우아함을 주어 더욱 좋은 와인이 되었다.
검은 과실과 토양의 느낌, 숲 속 향, 시가박스, 삼나무 풍미에 잘 익은 열매와 약간의 꽃 향이 우아하고 섬세하게 담겨있다. 11년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믿기 어려울 정도의 신선함을 가졌다.
농축감과 섬세함 바로 그 둘 사이의 접점이 만난 와인이다.
샤토 팔머 1998 Chateau Palmer 1998 - 금발의 미녀
아름다운 여름을 보낸 뒤 수확기 중간에 3일간 심한 비가 내려 좋은 빈티지로 여겨지지 않는다. 메를로는 그나마 일찍 수확을 했지만 카베르네 쇼비뇽은 수확 중이어서 피해가 컸다. 따라서 1998 빈티지의 경우에는 메를로를 주 품종으로 하는 우안의 와인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10~12년이 지난 샤토 팔머 1998은 닫힌 느낌을 주던 카베르네 쇼비뇽의 모습이 가죽, 시가, 민트, 숲 속 향으로 충분히 진화하면서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샤토 팔머 1995 Chateau Palmer 1995 – 진지한 갈색머리 여자
1995 빈티지는 뛰어난 메를로가 생산되었다. 2000 빈티지와 같은 복합성을 지님과 동시에 2000보다 더 폭발적으로 풍미를 전한다. 구조와 산미를 지녔지만 탄닌은 모두 부드럽게 변했다. 버섯, 숲 속 향, 말린 무화과와 살구 향을 지닌 순한 와인이다.

버티컬 테이스팅을 진행한 샤토 팔머 디렉터인 Mr. Bernard de Laage(버나드 라쥬)는 세미나를 정리하며 우리에게 묻는다.
“What is your palate?”
시음에 좋은 시기와 나쁜 시기는 없다. 인생에서 그 정점이 한 번 일수도 여러 번 일수도 있듯이 와인이 젊었을 때나 오래 되었을 때에도 와인은 우리에게 큰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사실 15년이 된 샤토 팔머 1995는 그 인생의 시작점에 서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본인의 취향에 따라 결정하고 즐긴다면 빈티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가지 더!
샤토 팔머 히스토리칼 19th 세기 와인 Chateau Palmer Historical XIXth Century Wine
네고시앙을 겸했던 샤토 팔머는 농축되지 않은 클라레Claret 스타일의 와인에 색을 진하게 하고자 론 계곡 에르미타쥬에서 시라를 사다 블렌딩하였다. 신선하고 보르도 스타일과 큰 차이가 없어 블렌딩에 많이 사용되었고 따라서 보르도-에르미타쥬Bordeaux- Hermitage라고 불렸다. 시간이 지나 우연히 다시 맛본 보르도-에르미티쥬를 재현하여 3개의 빈티지만 만든 와인이 바로 히스토리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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