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싱가포르·인도 등 ''새로운 미각'' 인기
"한국 음식 문화 역수출 기회로"
“얼마 전 점심 시간에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광화문에 있는 회사 사무실로 찾아왔어요. 가족끼리는 패스트푸드점에 주로 갔었는데 그날은 직장동료들과 가봤던 태국 음식점에 데리고 갔죠. 태국 음식을 난생 처음 맛본 아내는 ‘이색적’이라며 무척 좋아하더군요.”
회사원 이민호(44)씨는 그 뒤로 가족들과 외식할 때면 이색적인 음식점을 찾아다니게 됐다. 지금까지 베트남 국수집을 비롯해 태국 음식점, 브라질 음식점 등을 ‘순례’했다. 이씨는 “앞으로도 신문이나 잡지에 난 제3세계 음식점을 주로 찾아다닐 것”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정금주(30)씨 역시 몇 년 전부터 동남아 요리에 심취해서 새로운 식당이 발견되면 메모해 두었다가 꼭 찾아간다. 정씨는 “쌀국수는 밀가루 음식이 아니기 때문에 소화가 잘 된다”며 “서양식은 먹고 나면 느끼한데 동남아식은 독특한 고수 향 덕분인지 개운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대’의 한국인들은 20세기 후반부터 유난히 세계적인 유행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가속도가 붙었는데 음식 문화도 예외가 아니다. 88올림픽 이후 한국에 상륙한 패스트푸드 체인점 트렌드로부터 시작하여 패밀리 레스토랑 트렌드, 파스타의 대중화를 낳은 이탈리안 트렌드, 인도식·베트남식 등의 이국 음식 열풍을 자아낸 ‘에스닉 트렌드’ 등 신문, 잡지, 방송에서 분출해내는 외식업 트렌드의 물결은 쉴새없이 일렁이고 있다.
진짜 이탈리아식 피자도 ‘눈길’
한국식으로 변형이 되어버린 일본 음식과 중국 음식은 더이상 외국 음식 문화 속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우리에겐 익숙해져 버렸고 1970년대부터 호텔을 중심으로 양식이란 단어가 생겨난 이후 서양식 음식을 섞어내는 식당들 또한 ‘세계의 맛’ 범주에 들어가긴 힘들다.
본격적인 세계의 맛은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 등장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확고한 자리매김을 한 것은 단연 이탈리아식이다. 사실 이탈리아식이라 하기에는 파스타라고 하는 메뉴에 너무 치중해 있긴 하지만 말이다.
파스타가 한창 유행을 타고 있을 때 이탈리아식 피자는 더디게나마 한국 땅에 발을 붙이려 애썼고 지금은 꽤 많은 이탈리아식 피자 전문 식당들이 들어섰다. 반죽이 두껍고 토핑이 유난히 많으며 양도 푸짐한 미국식 피자가 호락호락하게 이탈리아식 피자에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지만 ‘웰빙’ 트렌드에 맞게 양보다 질을 더 꼼꼼하게 따지는 요즘의 미식가들에겐 조금씩 이탈리아식 피자가 인기를 끌고 있다.
파스타 식당 다음으로 인기를 끌어 세력을 확대하고 있는 식당은 바로 인도 식당이다. 일단 외국인 거주 지역인 서울 이태원을 중심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 인도 식당이 생겼고 1990년대 후반부터는 서울 강남에 인도 음식 열풍이 불기 시작해 이제는 친숙함을 느낄 수 있게 됐다.
다음은 동남아식 음식으로 태국식과 베트남식이 그 주를 이룬다. 한국인에게 인기 관광지인 태국의 음식은 깊은 향과 발랄한 맛을 동시에 지녀 여성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는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보편화된 메뉴들을 맛볼 수 있으나 현지에서보다 가격이 높은 점이 흠이라면 흠이다.
베트남 음식은 사실 쌀국수 전문점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정도로 다양한 음식들을 파는 곳은 거의 없다. 1990년대 후반 한국에 상륙했을 당시 미국의 쌀국수 체인점을 통해 알려져서인지 베트남의 정통 맛보다는 저렴한 가격대의 한국인 기호에 잘 맞는 쌀국수가 재빨리 자리잡았다.
터키·인도네시아 식당도 ‘속속’
다음으로는 2002년 월드컵의 붐을 타고 늘어난 터키 식당이다. 터키는 한국과 오랜 우호국이었던 까닭에 거부 반응 없이 자리매김했다. 오스만 투르크 왕조 때부터 발달해 온 터키의 식문화는 전세계의 여러 나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아직 한국에선 그들의 위대한 업적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4~5곳의 터키 식당이 한국에 들어와 그들의 요리를 즐기며 음식 역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또 최근엔 비슷한 식문화를 지닌 바로 옆 나라 그리스의 식당들도 속속 생겨 유럽 음식 문화의 기본이 되는 두 나라의 음식을 비교하기도 좋고 색다른 요리들도 맛볼 수 있게 됐다.
한편 프랑스 음식 하면 대부분 자신과는 유리된 ‘오트 퀴진(고급 요리)’을 생각하게 된다. 인테리어가 훌륭한 식당에서 최상의 서비스를 받으며 고가의 고급 음식을 즐기는 것만이 프랑스 음식 문화라 여기는데 사실상 프랑스 요리는 테라스에 앉아 즐기는 카페 문화나 서민풍의 음식을 보다 저렴하게 경험할 수 있는 가정식 요리들이 주를 이룬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호텔과 몇몇 유명 식당에서 오트 퀴진을 제공했는데 근래에는 판도가 바뀌었다.
르 코르동 블루 숙명 아카데미의 마크 샬로팽 수석 주방장은 “프랑스 요리는 전세계 요리를 집약해 놓은 것이라 고급스러운 음식부터 서민적인 음식까지 모두를 아우른다”면서 “한국 음식과 유사한 것도 많이 있다. 특히 파전, 돼지족발 등은 서로 비슷하다”고 말했다.
한국을 찾은 외국 관광객들이나 외국인 거주자들 사이에선 어떤 식당이 더 정통에 가까운지를 논할 정도로 관심의 대상이며 그래서인지 이태원을 중심으로 세계의 맛을 발견할 수 있는 식당들이 생겨나고 있다. 해외 거주 경험이 많은 한국인일수록 그 곳에서 즐겼던 음식들을 그리워하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강남권에 굳이 트렌드가 형성되지 않았더라도 각 나라의 맛과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식당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이런 외식 문화가 활성화되려면 식재료 수입의 자율화와 제대로 된 조리 방법의 전수 그리고 좀더 저렴한 음식 가격이 책정되어야 한다. 세계의 맛을 한국에 끌어들이는 것은 문화적인 침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음식 문화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는 음식이 국력을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다. 미국 패스트푸드, 프랑스의 와인, 독일의 맥주, 이탈리아의 스파게티ㆍ피자, 일본의 스시, 중국 요리 등은 전세계에 퍼져 약소국들의 식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혹은 퓨전 푸드라는 형식으로 각 나라에 스며든 것이다. 이 중 패스트푸드의 급속한 전파는 한국 내에서도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전통음식과의 갈등을 유발시킨다.
음식을 둘러싼 국제 사회의 이해관계는 일종의 전쟁과도 같다. 실제로 와인이나 차(茶) 때문에 국가간 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고전적인 전쟁의 궁극적인 목적이 식량 확보에 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와인21’의 최성순 사장은 “처음에는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3강’ 와인만 들어오더니 이제는 칠레, 호주, 캐나다 등 다양한 와인이 들어와 ‘춘추전국시대’를 열고 있다”면서 “와인은 자체 경쟁뿐만 아니라 소주, 맥주, 위스키와도 각축전을 벌이는 위치가 됐다”고 말했다.
음식 문화는 국력의 척도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음식은 한 국가의 거대 산업을 이룬다. 생산, 운송, 저장, 판매, 서비스 등을 통해 GNP에 기여하고 새 고용을 창출해낸다. 이런 음식은 환경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또 음식 문화는 테이블 비즈니스, 글로벌 에티켓 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테이블 매너, 대화 나누기, 미식 등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등장했다. 하지만 한국의 식당 문화는 위생, 청결, 서비스 면에서 개선돼야 할 점이 많다. 다른 손님이 먹다 남긴 반찬을 다시 주기도 하고, 한창 밥을 먹고 있는데 “이 손님 다 먹었어요”라며 고함을 지르는 종업원도 있다.
음식평론가 주용씨는 “사회적으로 이들을 제대로 교육하고 훈련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데 신경을 써야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밝혔다.
Copyrights © 와인21닷컴 & 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