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와인의 적색편이

하늘을 바라보면 수많은 별들이 떠 있다. 지금 가만히 생각 해 보자. “내가 별을 바라본 적이 언제였는가?”하면서 말이다. 나는 2009년 당시 프랑스 남부 지공다스(Gigondas) 마을에서 저녁 식사 후 내려오던 길에 바라본 하늘을 잊을 수 없다. 하늘은 옅고 깊으며 심연과 같은 짙은 남색을 띠고 있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우주는 새카만 암흑일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은 수많은 빛이 엷게 그 장막을 치며 그저 검은 색은 아닌 것이었다. 그 장막 사이로 부드럽게 펼쳐진 은하수, 눈을 똬리며 그 곳을 응시하면 응시할수록 내 눈에 쏟아져 들어오는 그 엄청난 빛의 향연은 나의 마음을 자극하고 자극하여 그 곳에 어슴푸레한 구름을 만들어내며 나의 깊은 감성을 건드렸다.

 

2009년 당시 프랑스 지공다스에서 촬영한 별.


오죽했으면 3년이 지난 지금에도 나에게 있어 이때의 짧은 경험이 지금 마치 어제 일어난 일인 양, 내 기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까? 여기서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엉뚱하게도 간혹 글에서 “안드로메다 은하는 지구에서부터 250만 광년 떨어져 있으며” 하는 글을 보게 되는데 어떻게 우리는 그 별의 거리를 알 수 있는가 하는 점이며, 우주가 계속 팽창하고 있다는데 어떻게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가 그저 밤하늘에 펼쳐져 보이는 은하수는 그저 별일뿐이며, 그 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할 때 어떤 이는 이것이 다르다 생각했다.


흔히 우리가 천동설 지동설 이야기를 할 때 많이 듣는 프톨레마이오스는 서기 83년에 태어난 사람이다. 즉 2천 년 전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늘이 고정된 것 같은데 이상하게 어떤 별은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것 같으니, 프톨레마이오스는 이것이 다른 무엇인가라 생각했고, 당연히 하늘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생각했다. 이 생각은 중세 교회의 세계관을 설명하는데 맞아떨어졌으며,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기 이전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이때가 15~16세기다. 즉, 하늘이 도는 것이 아니라 땅이 돈다고 파악하는데 무려 1500년이 걸린 셈이다.


그러나 당시에도 하늘에 부옇게 보이는 것들은 그냥 우리 하늘의 일부분이고 은하수의 일부분이라 생각했으며, 이는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1900년대 초반까지도 이어져 왔다. 에드윈 허블은 표준촛대방법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여 안드로메다 성운의 거리를 측정하였으며 무려 250만 광년이라는 거리가 나왔던 것이다. 표준촛대방법은 같은 밝기의 자동차 전조등도 멀리 있으면 어둡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원리를 하늘에 적용한 것이다. 단숨에 우주의 크기가 은하수 범위에서 은하라는 개념으로 커진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허블은 나아가 우주의 팽창 속도를 계산하여 우주의 나이를 알아보려 했다.


그렇다면 팽창하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여기에 사용되는 것이 적색편이(red shift)라는 것이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어떤 자동차라 경적을 울리며 내게 다가올 때 나는 소리와 지나간 뒤에 나는 소리는 다르다. 영화에서 자동차라 휙 하고 지나간 뒤에는 빛의 잔영이 남는다. 이는 앞에서 다가올 때에는 파장이 짧아지기 때문이고, 지나고 난 뒤에는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에 파장이 길어지기 때문인데, 이 원리를 이용하면 별이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는지 가까워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점이다. 파장이 길어진다는 것은 점차 붉은 색이 되어간다는 뜻이기 때문에(무지개의 빨주노초파남보에서 빨강이 먼저 나오는 것은 파장이 가장 길기 때문이다) 별의 밝기가 붉은 색으로 가게 되면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Nasa untra deep field 이미지. 화살표 위치에 붉은 점은 매우 오래된 별을 뜻한다.


원래 붉은 별은 지구에서 관찰이 매우 어렵다.(이런 별들을 적색왜성이라 부른다.) 워낙에 어둡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구에서 관찰되는 붉은색별은 엄청나게 먼 곳에 있는 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보다 더 파장이 낮은 빛은 어떻게 관측할까? 그래서 인간은 우주공간에 적외선 망원경(스핏처, Spitzer)을 쏘아 올렸고, 그 보다 낮은 파장은 지구에서 전파망원경이라는 접시안테나를 하늘로 올려 관찰하고 있다. 즉,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을 잡아내는 것이다.


이처럼 긴 이야기를 천체물리학으로 가는 이유는 와인의 적색 편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레드 와인에 있어 처음에는 푸른 느낌이 들 정도로 보랏빛을 띠고 있는 와인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붉은색을 띠다가 그 이후는 갈색, 호박색을 띠게 된다. 이것은 시간이 흐름으로써 내부의 색이 화학적 변화에 의해서 변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나 시간의 흐름, 즉 시간의 방향성으로 인해 이 와인이 만들어진 시점의 와인과 우리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거리가 멀어진 상태의 물질을 바라보려면 그 와인의 색은 점차 변하게 된다. 파장이 변한다고 볼 수 있다. 와인은 이 색상이 적색편이에 맞도록 붉은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그 보다 더 오래 되면 와인은 사실상 시음시기를 넘기게 되므로 마실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와인이 잘 숙성되었을 때, 우리의 미각은 보이지 않는 빛, 아로마라는 화학물질의 확산도 있으나, 혀에서 점차 내 몸을 전파로 타고 흐르는 피니시에 의해 그 감흥을 받아들인다.


우리의 주변에서 숙성되어가는 와인은 시간의 관점에서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올드 빈티지 와인은 구하기 어렵다. 마치 오래된 별을 지구에서 관측이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올드 빈티지 와인은 가격이 비싸고, 멀리 있는 별을 관측하기 위해 인간은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올드 빈티지의 와인일수록 피니시에서 깊은 풍미를 전달한다. 영 빈티지의 와인이 뜨겁고 빨리 타는 베텔기우스(Betelgeuse) 같은 느낌이라면 올드 빈티지의 와인은 먼 곳에서 희미하게 보내주는 붉은 별의 마지막과 같은 잔영을 준다.


우리가 올드 빈티지의 와인을 찾아다니거나, 혹은 숙성이 잘 되어 시음적기의 와인을 찾는 이유는 이 마지막의 파장을 관측하기 위한, 탐구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호기심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닐까? 멀고 먼 우주를 돌고 돌아오니, 지금 내 손 앞에 한 잔의 와인이 그윽한 아로마를 서서히 드러내며 나에게 다가온다. 우주가 내 손 안에 있고, 내 마음이 내 손 안에 있으며, 내 영혼이 그 것들과 함께 하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내가 무슨 와인을 언제 열어서 마시든 그 시점이 시음적기다. 그러나 오래된 와인이 주는 풍미는 젊은 와인이 주는 와인과는 전혀 다른 관점을 선사한다. 내가 어느 정도 와인 애호가가 된 분들에게는 간혹 오래된 와인을 한 번 경험해보라 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사족이지만 미국에서 있었던 쿠르니완의 사건은 이런 마음을 이용한 나쁜 범죄라 할 수 있겠다. 오래된 와인에는 그만한 존중을, 그리고 그 와인을 돈벌이로 생각하는 나쁜 이들이 없어야 하겠다. 와인을 있는 그대로,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마음을 길러야 겠다.

 

프로필이미지정휘웅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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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12.08.03 08:33수정 2012.08.1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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