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향수(perfume)

나에게 있어서 첫 감동을 주었던 향수는 불가리 뿌르 팜므(Bvlgari pour Femme)다. 때는 아마도 90년대 후반, 결혼 전이었던 것 같다. 대학원 옆 연구실의 한 미대 출신 후배가 있었는데 늘 이 향수를 뿌리고 다녔다. 길을 지나가다가도 이 향수의 냄새가 슬쩍 스쳐 가면 많은 길 가는 이들 속에서도 고개를 뒤로 돌려 본다. 나에게 있어 이 향수는 마치 건축학 개론과 같은 오마주를 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지금 내가 가장 즐겨 쓰는 향수는 존 바바토스 아티잔(John Barbatos Artisan)이다. 기묘하리만치 동물적인 아로마가 흘러나오면서도 신선하고 밝으며 과도하지 않은 은은함이 있어서 즐겨 뿌린다. 그러나 나를 아는 이들이라면 내가 와인 시음행사장이나 디너에서 향수를 뿌리고 나타나는 것은 한 번도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것은 내가 와인 시음 행사장에 갈 때에는 향수를 뿌리지 않는 것이 기본적인 에티켓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종종 우리는 와인 시음회장에 가면 향수를 잔뜩 뿌리고 오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와인 애호가들은 이런다. “아니 어떻게 와인 시음을 하는데 향수를 뿌리고 올 수 있나요? 예의도 없어라.”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물론 처음 와인을 접할 때 나도 이런 시각을 일정 부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오랜 기간 와인을 마시면서 내린 결론은 ‘과민한 반응’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조금 구분을 지어서 이야기 해 보자. 만약 내가 와인을 평가해야 하는 자리, 그리고 여러 와인들을 비교하여 시음해야 하는 자리, 그리고 관능시험장(마치 독서실 같은)에 갈 때에는 향수는 금물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하나 더하고 싶은 것이 담배도 더하고 싶다. 향수만큼이나 강한 향을 내뿜는 것이 담배 냄새다. 심지어는 근처에 있는 이의 몸에서 나는 담배 체취는 옆 사람의 잔에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렇다면 편하게 친구들과 만나서 와인을 한 잔하는데 누군가가 향수를 뿌리고 온 사람이 있다고 생각 해 보자. 이 경우에 그 사람에게 핀잔을 주거나 눈치를 준다면 이는 오히려 눈치를 준 사람이 곰곰이 생각 해 보아야 하는 문제다. “과연 이 자리는 와인 시음하는 장소인가, 서로간의 교감을 나누기 위한 장소인가”하고 말이다. 와인이 먼저인지, 사람이 먼저인지는 나의 오랜 언급을 통해 밝혔지만 무엇이 먼저라 할 것 없다. 그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늘 체득한다. 살아있는 와인은 사람과 교감을 한다고. 나는 여기서 그 교감이란 그 사람의 체취가 와인에 반영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체취는 잔속에 들어가 와인의 아로마와 기묘한 하모니를 만들어 낸다. 만약 어떤 사람이 향수를 뿌리고 왔다면 그 사람이 맡는 아로마는 그 향수와 더해져서 또 다른 향연을 만들어 낼 것이다. 만약 궁금하다면 옆 사람들과 좋은 와인을 마시면서 서로의 잔속에서 피어오르는 아로마를 비교 해 보자.


어떤 한 요소가 완벽하게 배제되어야 하는 경우는 공정한 평가를 할 때이다. 공정한 평가란 특정 요소가 전체적인 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배제하는 것이다. 향수는 와인의 매우 중요한 평가 요소인 향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평가할 때에는 금기시 된다. 다만 나의 개인적 견해로는 담배도 좀 포함되었으면 한다. 와인 시음 행사장 가면 밖에 나갔다가 담배를 태우고 들어온 이의 온 몸에는 담배 향수가 가득 찬다. 물론 내 시음을 방해한다.


그러나 그 이외의 경우라면, 어떤 경우든 남의 향수는 존중받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누가 향수를 뿌리고 나타난다 한들 그 것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와인 평가를 하는 장소가 아니라면. 아울러 나는 와인 평가장이 아니라면 주변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에 동의 한다. 나는 담배를 태우지 않지만. 만약 평가하는 장소라면 그 사람과 먼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렇게 해서 나는 내 와인 시음을 보호받을 수 있다. 어찌 되었든지 간에 그 향수가 내 와인에 나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은 당연한 것 아니던가? 굳이 그 것 하나로 얼굴을 붉힐 이유도, 마음이 불콰하거나 마음속에 담아두어 사람 사이의 관계가 나빠질 어떤 이유도 아닐 것 아닌가? 와인 시음도, 자리에 대한 형식도, 모두 다 내 마음에 솟아나는가 보다. 지금 옆에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살짝 코를 들이대어 냄새를 맡아보자. 땀 냄새 조차 섹시하지 않을까? 나 같으면 그럴 것 같은데 말이다.

프로필이미지정휘웅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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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13.05.27 14:54수정 2013.05.29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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