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다이닝

지상 최고 소고기의 아르헨티나 식문화

얼마 전 아르헨티나 트라피체 수석 와인메이커인 다니엘 피를 인터뷰 한 적이 있다. 우습지만 추가 질문으로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먹는 유일한 채소가 와인이라는 말이 사실인 지 물었다. 그는 함박 웃음을 지으며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한 해 인당 60kg의 소고기를 소비하지만 감자와 토마토 등의 야채도 섭취한다고 말했다. 어려서 교과서에서나 본 끝없이 이어지는 초원 팜파(Pampas)와 그 위를 거니는 소와 양떼들을 생각하며 안데스 산맥을 넘어 아르헨티나에 도착했다. 지상 최고의 소고기, 과연 그 맛은 어떨까!

 


<아르헨티나 멘도사 시티를 상징하는 일루미나티>

 

아르헨티나 멘도사에 도착하여 카페와 음식점들을 돌아보니 아르헨티나의 요리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웠다. 다양한 민족, 민족의 출신 지역에 따라, 그리고 아르헨티나 지역 산물에 맞춰 변형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전세계의 다양한 음식을 모두 맛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아르헨티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문화 중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영향이 매우 커서 탁월한 품질의 빵, 커피, 그리고 피자, 파스타 등을 맛볼 수 있었다. 일요일의 레스토랑은 가족 단위 혹은 작은 모임으로 북적이었는데 이들에게 있어 식사는 가족간의 정 혹은 우정을 돈독히 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걸 여행자의 눈으로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아침식사로 즐기는 크로와상 닮은 메디아 루나>

 

아르헨티나의 아침 식사는 우유를 넣은 커피에 꿀을 바른 반달 빵인 메디아 루나(Media Luna)로 간단하다. 메디아 루나는 프랑스의 크로와상과 유사하나 크기가 작고 크로와상 보다 곁과 기름기가 적은 대신 묵직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 간혹 과일 주스를 곁들이기도 한다.

 


<푸타네스카 소스 파스타와 패티가 3장이나 든 아르헨티나 버거>

 

점심은 고기 혹은 밀가루 요리를 즐기는데, 패스트 푸드, 파스타 혹은 피자가 주메뉴이다. 거리엔 다국적 패스트 푸드점과 로컬 패스트 푸드점이 눈에 많이 띈다. 일행은 보데가 이 카바스 데 와이너트(Bodega y Cavas de Weinert)에서 드디어 말로만 듣던 아르헨티나 팜파 소고기의 영혼과 만났다. 아르헨티나 국토 면적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팜파는 말 그대로 “풀의 대양”으로 고기와 곡물을 제공한다. 바람을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광활한 충적토 대지가 펼쳐져 있을뿐이다. 그와 수평을 이루며 미끄러지는 구름의 그림자, 정지 화면처럼 보이는 소와 양떼들이 풀을 뜯고 있다. 아르헨티나 소고기는 이런 천혜의 환경과 오랜 기간 치밀하게 이뤄진 품종 개량으로 세계 최고의 소고기라는 명성을 얻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실온에 방치한 소고기를 덩어리로 구워 즐기는데 굵은 소금을 마지막에 흩뿌리는 게 양념의 전부다. 고기를 주문할 때는 원하는 상태보다 한 단계 더 진행된 상태를 말하는 게 한국인 입맛에는 적당하다. 마치 겹으로 쌓인 듯 보이는 두툼한 고기는 칼을 데면 그냥 썰릴 정도로 부드럽다. 육즙이 풍부하고 진하며 감칠맛이 탁월하다. 고기와 육즙, 거기에 녹아 드는 소금 맛이 함께하면 이미 꽉 찬 입 안이 터질 듯 풍미가 가득 차오른다. “지상 최고의 소고기”, 그 말은 참 맞는 말이다!

 


<검지 2마디가 넘는 두께의 소고기 스테이크>

 

아르헨티나의 저녁 시간은 보통 9시에서 10시 사이로 매우 늦게 시작되며, 사람들과 와인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정이 넘도록 이어지는 일이 많다. 이는 저녁 10시 30분 정도 식사를 마치고 나올 무렵 레스토랑 밖으로 줄을 선 사람들을 보고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다. 아르헨티나 레스토랑에서는 아주 어린 아이들을 제외하곤 예외 없이 와인을 주문했다. 갓 데이트를 시작한 젊은 커플도, 수 십 년을 함께한 노부부도 식사와 함께하는 와인 한 병쯤은 당연해 보였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에 무례하지만 다른 테이블로 향한 눈길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근무하는 나이 지긋한 웨이터들과 그들이 지닌 전문성에 깊은 존경의 마음이 생겼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직원들이 레스토랑 지분의 일부를 갖는다. 이 때문인지 이들은 단순히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는 사람이 아니라 손님을 대접하는 호스트로서 사람들을 반기고 아꼈다. 메뉴에 대한 먹음직스런 설명, 선택한 음식에 맞는 와인 추천, 음식이 나올 때 마다 온 몸으로 전해지는 정성에 이미 배부름이 느껴질 정도였다.

 


<라 마르끼지아나 레스토랑 저녁 풍경>

 

일행이 찾은 곳은 아르헨티나 멘도사 맛집으로 알려진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 마르끼지아나(La Marchigiana)이다. 1948년 이탈리아 이민자가 설립하여 대대로 운영되고 있으며 음식뿐만 아니라 탁월한 와인리스트로도 국내외 모두 명성이 자자하다. 입구는 이곳을 다녀간 셀레브러티들의 사진과 사인들로 장식되어 있다. 지하에는 와인 행사를 개최할 수 있는 시음 공간과 셀러가 준비되어있다. 주중, 주말, 점심, 저녁 언제나 붐비는 진정 아르헨티나 맛 집 이었다. 식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끌어내는 이탈리아 음식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깔라마리와 무따렐라 치즈 튀김>

 

전채로 즐긴 신선하고 바삭한 깔라마리와 무따렐라 치즈 튀김

 


<리코타 치즈와 시금치로 속을 채운 칸넬로니>

 

티오 호아킨(Tio Joaquin) 소스와 칠면조를 곁들인 판조티(Panzotti)
리코타와 시금치로 속을 채운 칸넬로니(Canelloni)

 

아르헨티나 전통 바비큐인 아사도(Asado)를 전문으로 하는 에스탄시아 라 플로렌시아(Estancia La Florencia). 나무를 태워 굽는 열린 오븐인 파리아(Parrilla)에 소고기를 비롯한 각종 고기와 소시지 등의 구워 파는 곳이다. 인당 1만원 정도이면 불 맛 제대로 살린 아르헨티나 소고기를 배불리 즐길 수 있다.

 


<빠리야에 굽고 있는 아사도>

 

아르헨티나 디저트의 세계도 칠레와는 다른 남미의 강렬한 단 맛을 보여주었다. 이탈리아 문화의 영향으로 카페가 많이 발달했는데 하바나 카페(Havana Café)가 발 길을 붙들었다. 하바나 카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본점을 둔 체인 커피 전문점이다. 이곳은 커피와 함께 초콜렛 과자, 그리고 탄산수가 제공되는데 쓴 커피와 함께한 달콤한 초콜렛 과자, 이어 탄산수를 함께하면 더욱 강렬하고 긴 여운을 뇌리에 남길 수 있다. 커피 외에도 이 집의 대표 디저트로 카라멜층이 든 초콜렛 과자인 알파호르(Alfajor), 레몬 크림이 든 버터 쿠키인 갈레티타(Galletita)를 맛보았다.  좀 더 진한 초코파이 그리고 롯데 샌드와 그 맛이 비슷하다.

 


<디저트인 알파호르와 갈레티타>

 

웬만한 디저트 메뉴에 곁들어지는 달콤한 갈색 소스인 둘체 데 레체(Dulce de Leche)도 별미다. 농축된 우유를 장시간 가열하여 카라멜화를 시킨 것으로 밀크 잼으로도 불린다. 진하고 고소하며 많이 달지 않아 쉽게 멈추기 어렵다.

 


<둘체 데 레체를 곁들인 푸딩>

 

시내에 자리한 라 카바냐(La Cabaña)는 아르헨티나 전통 수제 초콜렛 전문점이다. 나무결 모양을 한 화이트 혹은 밀크 초콜렛, 초콜렛을 씌운 건포도, 견과류가 듬뿍 든 누가 등 디저트 천국이 펼쳐진다. 초콜렛과 함께 아르헨티나 대표 음료인 마테를 즐기는 찻잔도 판매하고 있는데 “은(Argentum)”의 나라답게 은세공의 마테 잔도 눈에 띄였다.

 


<다양한 마테잔>

 

주말에는 거의 모든 상점, 음식점, 바가 문을 닫아 생각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없어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아르헨티나는 소규모 브루어리에서 만드는 에일 맥주로도 유명한데 그 경험을 놓쳐 또한 아쉽다. 아르헨티나의 식문화는 준비와 세팅, 그리고 즐김에 있어 생활 속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그 수준 또한 매우 높다. 오픈 된 넓은 공간과 그걸 꽉 채운 손님들, 테이블 마다 놓인 와인들, 빠른 테이블 회전, 전문적이고 노련한 서비스 모두 부럽고 또 부러웠다. 디저트는 사올 수 있었지만 가져올 수 없는 지상 최고의 아르헨티나 소고기, 그 맛을 또 언제 볼 수 있을까!

 


<라 마르끼지아나에서 만난 노련하고 전문적이며 따뜻한 웨이터>

<사진> 김용희 소믈리에 제공

프로필이미지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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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13.09.06 13:35수정 2013.09.12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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