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알프레드 히치콕이 감각적으로 그린 ‘부르고뉴 포마르’

타인에 의해 원치 않는 오명이 씌워져 내 의지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 억울해서 숨이 턱 차오르고 어안이 벙벙할 일이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오명>은 반역자의 딸이라는 오명을 쓴 여인이 등장하는 스릴러물이다. 여기서 잉그리드 버그만이 연기한 주인공 앨리샤는 자신을 영원한 범죄자이자 도망자로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반역자인 아버지로 인해 평생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갈 운명이 짐 지워진 그녀, 앨리샤에겐 다가오는 사랑조차 의심이고 불신이다. 애국심이라는 미명 아래 아버지의 죄를 보상하길 바라는 사람들의 눈총이 트라우마인 그녀에게 그 따가운 쐐기를 뿌리 뽑을 기회가 다가온다.

 

주홍글씨처럼 달라붙은 반역자의 딸이란 오명
첫 만남은 계획적이었다. 앨리샤를 미행하던 데블린이 그녀가 주최한 파티에 고의적으로 참석한 것이다.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일까진 계획에 없었겠지만 말이다. “날 보고 싱글거리는 남자는 딱 질색”이니 130킬로로 질주해 “당신 얼굴에서 그 미소를 없애버리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이 아가씨. 앨리샤의 매력을 데블린은 거부할 수가 없다. 점입가경으로, 당돌한 그녀의 마음에도 데블린이 들어온 상태. 둘은 서로에 대한 이끌림을 거부하지 않지만 솔직하게 그 마음을 드러내지도 못한다.

 

사실 데블린의 정체는, 앨리샤의 말을 빌리자면 ‘엉큼한 박쥐 같은 미국 경찰’이다. 독일 간첩을 소탕할 임무를 띠고, 그녀를 스파이로 섭외하기 위해 겨냥했다. 앨리샤는 미국에 반역을 저지른 독일 간첩인 아버지를 둔 어두운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신분을 저주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던 그녀에게 데블린의 제안은 솔깃했다. 어찌 보면 오명을 씻어내고 마음의 오물을 덜어낼 수도 있다. 데블린은 엎질러진 과거에 얽매인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자신과 손잡고 나랏일을 도모하며 오명을 씻어보자며 그녀를 스파이로 꼬신다. 그렇게,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두 사람의 첩보작전이 시작된다.

 

부르고뉴 포마르 와인병이 우라늄 폭탄이었어!
앨리샤에게 주어진 임무는 독일 과학자와 위장결혼 후, 파나마운하 폭파와 관련한 테러 단서를 캐내는 것이다. 그러던 중, 데블린은 우연한 기회에 지하 와인 창고에 잠입해 부르고뉴 포마르 1940(Bourgogne Pommard 1940) 와인병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 실수로 깬 와인병 안에 나치가 원자폭탄을 만드는 데 사용할 우라늄이 담겨있는 것을 발견하며 사건의 단초를 포착한다. 와중에 앨리샤가 스파이란 사실이 드러나고 데블린의 신분 또한 들통날 것이 뻔해진 상황에서 앨리샤는 그에게 암묵적인 안녕을 고한다. 앨리샤를 떠나보낼 수 없던 데블린은 갑작스러운 그녀의 부재에 불안을 감지하고는 독일 과학자의 집에 몰래 침입해 상황을 역전시키고 앨리샤를 지켜낸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에는 그가 고안한 극적 장치인 ‘맥거핀’이 등장한다. 맥거핀이란 속임수, 미끼라는 뜻으로 극의 초반부에 중요한 것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져버리는 일종의 ‘헛다리 짚기’ 장치를 말한다. <오명>에는 포마르 와인병이 하나의 맥거핀으로 등장한다. 영화 사이사이에 중요한 단서가 될 것처럼 와인병이 클로즈업되곤 하는데 이는, 단순히 관객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맥거핀이 아니다. 이야기의 실마리가 되면서도 환기를 북돋아주고, 이야기 중심의 꼭짓점을 조여주어 감칠맛을 더한다.

 

그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와인광, 알프레드 히치콕
두말하면 입 아픈, 서스펜스 장르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와인광이었다. 보르도 메독의 무통 로칠드(Mouton-Rothschild), 생떼밀리옹의 슈발 블랑(Cheval Blanc)과 부르고뉴의 몽라셰(Montrachet) 같은 최고급 와인을 즐겨 마셨으며, 넓디 넓은 와인셀러를 보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정성으로 부르고뉴 와인에 공헌한 사람에게 부여되는 ‘타스트뱅’ 기사 작위를 받은 이력도 있다. 그의 영화 <싸이코>에서 범인이 어머니의 시신을 숨긴 장소 또한, <오명>처럼 지하 와인 창고가 매개 되는 것만 봐도 와인에 대한 애정이 미루어 짐작된다. 히치콕의 감각으로 버무려진 와인과 영화의 그럴듯한 조우가 이채롭다. 히치콕 감독의 걸작들을 다시 한 번 정주행 해볼까 싶다. 영화 안에 숨어 있을 와인들이 벌써부터 구미를 당긴다.
 
 
*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오명>에 나오는 와인

부르고뉴 포마르 1940(Bourgogne Pommard 1940): 프랑스 내륙 부르고뉴 꼬뜨 드 본에 위치한 유명한 와인산지로, 화이트 와인을 전혀 생산치 않고 레드 와인만을 만든다. 석회암이 많은 포마르의 와인은 남성적이면서 강건하고 활달한 캐릭터를 가졌다. 그랑 크뤼 와인은 없지만, 장기숙성이 가능한 와인들을 생산해오고 있다.

프로필이미지서연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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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13.12.23 17:21수정 2013.12.31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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