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나 신문을 잘 보지 않는다. 특히 드라마도 거의 보질 않는다. 이유는 너무 거친 말이 아무런 통제 없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대사는 말 할 나위도 없거니와 국가간의 발언에도 외교적이지 않은 거친 표현(특히 어디라고는 지칭하지 않겠다), 또 사회 지도층의 무심코 내뱉는 말은 모든 이들의 몸에 상처가 되고, 다시 그 것이 재생산 되어버리고 있다. 버스를 타고 한강을 보니 철새들이 강물 위에 가득 자리를 잡았다. “저 새들은 오히려 편하지 않을까? 이런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말이다.”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그리고 이 주제를 와인으로 가지고 오면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와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사람들 마다 여러 가지 표현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와인 초심가의 경우에는 말이 쏙 들어가기는 하지만 주로 겸손의 표현이 주를 이룬다.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여기서 나는 이 향이 맞는가요?”, “너무 맛있습니다. 전에는 이런 세계가 있는지 몰랐어요.” 등 여러 가지 표현이 등장한다. 그러다가 점차 와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다. 내가 지금까지 와인을 즐기면서 들었던 표현들을 몇 가지 정도로 정리하면 이 정도 아닐까 싶다.“이 정도 와인을 드셔보셨으면 그랑크뤼 정도는 드셔보셔야 합니다.”, “올드 빈티지를 드셔보셨나요?”, “이 와인 누가 만든 와인입니다.”, “유명한 와인인데, 가격은 좀 나가지요. 한 번 마셔볼 가치가 있습니다.” 물론 이 표현들 중에서는 내가 종종 쓰는 표현도 있다. 어쩌면 이 정도는 약간의 애교로 보아줄 자극성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도를 넘어가게 되면 좋지 않은 표현들이 등장하게 된다. 간략하게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그 쓰레기 같은 빈티지는 취급도 하면 안됩니다. 빨리 마셔줘야 합니다.”, “그 싸구려 와인 가지고 오셨나요?”, “이 와인도 안마셔보고 그 와인 이야기 하는 것 잘못된 것 아닌가요?”, “이 와인이랑은 급이 맞지 않는데요.” 등등 겉으로 정중해 보이는 듯하지만 이면에는 그 와인에 대한 비하, 그리고 와인을 가지고 온 사람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이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표현의 출발점은 나는 만화책에서 어느 정도 기인했다는 생각이 든다.
“신의 물방울” 혹은 “소믈리에르”와 같은 와인 만화를 보면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와인에 대해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마음의 상처를 지닌 이들이 표현하는 내용들은 아주 거칠다. 극적인 긴장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표현은 필요하겠지만 그런 표현을 볼 때 마다 마음이 불편한 것은 내가 보기에는 모두 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와인인데 그런 표현들이 새롭게 접하는 이들에게 자칫 나쁜 관점을 심어주고 나쁜 표현을 쓰는 방법을 강요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어서다. 물론 내가 남을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내 관점을 이야기 하자면 세상에 와인을 좋게 표현하는 것이 90%면 나쁜 표현이 10%라 생각된다. 아로마 키트를 보아도 곰팡이, 축축한 마분지, 세제 냄새와 같은 상한 와인의 조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좋은 향이다. 커피, 초컬릿, 바닐라, 바나나, 자몽, 망고, 장미, 블루베리, 블랙베리, 호두, 아몬드, 신선한 허브 등등 좋은 표현으로 가득 차 있다.
이 모든 좋은 표현들이 간혹 한 두 문장 혹은 한 두 언급에 의해서 갑자기 나쁘게 돌변하게 되거나 받아들이는 이의 마음에 상처로 남는다. 나는 말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도구라 생각한다. 그런 것 보면 나는 지금 세상이 좀 더 좋은 말을 선하게 쓰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시기라 생각한다. 세상이든 와인이든 말이다. 좋은 표현을 찾고 그 것을 쓰는 데에도 우리의 일상과 시간은 부족하다고 본다. 간혹 와인을 빠르게 배우거나 와인 자체의 평가만을 목적으로 공부를 하는 이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기계적이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냉철하게 판단한다. 물론 평가가 정확하고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도 부합하기 때문에 그들의 지식과 실력에 대해서는 무어라 말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무엇을 보완해야 할까? 나는 제언하건대 어떻게 하면 나쁜 표현을 줄여볼까 하는데 고민을 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최근 나는 작은 결정을 내렸는데 지금까지 구매해오던 “신의 물방울”을 39권에서 마무리 하고 더는 이 만화책을 사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소믈리에르”는 21권으로 완결되었다. 이유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만화에서 등장하는 표현들이 어쩌면 와인이라는 개념을 떠나가기 시작하고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변모하여 누군가가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대신 해주는 것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무릇 세상만사 변하는 것이 이치이기는 하지만, 그 본질적인 측면의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하면 헤어질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지금이 헤어질 시기인가보다. 이 만화가 지향하는 길이 있을 터이니, 그 것에 무엇이라 이야기 할 것은 아니리라. 그리고 그 출발점은 “말”에 있었음은 자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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