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애호가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경우라면 와인을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와인을 함께 모여 마시는 와인 모임을 나간 적이 있을 것이다. 정작 와인 모임에 불려 나갈 때에는 좋았는데 만약 내가 장소 선정, 와인 기획까지 해야 하는 경우가 온다면 꽤 곤혹스럽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은 제한된 예산을 어떻게 쪼개서 써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며, 사람들은 어떻게 구성하고, 식당은 어떻게 선정하고 와인 리스트는 어떻게 사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의 생각으로 아마도 와인 모임에 조금이라도 나간 애호가라면 이런 기획 때문에 한 번 정도는 고민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무엇을 우선시해서 고려해야 하며 어떤 식으로 모임을 기획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본다. 단 커뮤니티의 정기모임 기획은 보다 많은 기획 고려요소가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큰 와인 모임 기획이 아닌 소규모 인원이 자생적으로 만드는 와인 모임에 국한하여 이야기 한다.
와인 모임을 주관하는데 있어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첫째도 장소요 둘째도 장소고 셋째도 장소다. 그 만큼 장소는 와인 모임의 성패를 결정하는데 절대적이다. 혹자는 와인리스트가 가장 중요한 것 아니냐며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때는 회비로 와인을 구매하는지, 아니면 각자 한 병씩 가지고 오는지에 따라 유동적이며, 좋은 와인이 있다 하더라도 개인적인 관계들에 따라서 참석자의 참석 여부가 변동되기 때문에 장소가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식당 선정의 1번 기준은 예산이다. 예산이 중요한 이유는 대부분 와인 모임의 경우 비용을 나누어서 지불하기 때문이다. 미리 예산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을 경우 넉넉한 참석자는 큰 부담이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부담감을 느끼게 되고, 모임이 한 번 두 번 진행될수록 그 참석자는 불만을 가지거나 큰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 당연히 모임의 운영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된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만약 와인을 각자 가지고 모이는 경우에는 위의 우선순위보다 먼저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음식과 와인의 궁합(마리아주)다. 회비에서 와인 가격이 빠지므로 콜키지와 식대가 회비를 차지하게 된다. 당연히 와인을 가지고 오는 이들은 내 와인을 어떤 음식과 맞추어보게 될 것인지, 혹은 그 날의 메뉴가 무엇인지를 먼저 살피고 자신이 가지고 나갈 와인을 선정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주관자가 와인과 어떤 조합을 맞추어볼지를 먼저 고민하고, 식당에 미리 문의해서 양해를 구해두는 것이 좋다. 그런 뒤, 참석자들에게 식당과 회비를 공지하여 진행하는 것이 좋다. 와인과 잘 맞고 예산이 합리적이면 장소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예산이다. 와인 모임의 예산은 대개 식대와 부대비용(콜키지 등)으로 나눌 수 있지만 만약 회비 내에서 와인을 구매해야 한다면 예산 산정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선 와인구매 예산을 포함하는 경우로 간략하게 살펴보겠다. 필자의 경험으로 예산 내에서 와인을 구매해야 한다면 대개 와인비용과 식대의 비율은 6:4정도가 적절하다. 만약 4인 기준 1인 회비를 5만원으로 본다면 식대는 8만원, 와인 비용은 12만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 와인의 구성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남자 넷이 모이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라 보며, 여성 1인 혹은 2인이 있을 경우에는 약 3병이 적절하다. 그렇다면 와인 구성은 어떻게 해야 할까? 예산과 함께 참석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므로 가장 고민을 많이 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와인리스트는 특히 구매해야 하는 경우에 고민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다. 앞서 살펴본 1인당 5만원 예산 기준 4인 모임을 예로 들어보겠다. 3병 와인에 12만원 예산인 경우 저렴한 화이트를 2만원 수준으로 배정하고, 레드와인 1병을 4만원 수준, 그리고 고급와인(레드 혹은 화이트) 한 병에6만원 수준으로 배정하는 것이 좋다. 만약 탐이 나는 와인이 있다면 레드와인의 예산을 3만원이나 2만원까지 내려도 좋다. 왜냐하면 보르도 그랑크뤼 혹은 크뤼 부르주아급이나 부르고뉴 피노 누아르의 빌라쥐급은 아무리 저렴해도 6~7만원을 훌쩍 넘어버리기 때문이다. 만약 인원수가 많거나 와인 기획을 좀 집중적으로 하고 싶다면 수입사들의 패키지형 기획도 관심 가져볼만 하다. 얼마전 모 수입사에서 기획하여 제공한 “찾아가는 와인 교육”도 좋은 사례가 된다. 이벤트로 제공되었으나 앞으로 기획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저렴한 비용으로 많은 이들이 좋은 시음기회를 가질 수 있으므로 고려할 만 하다.
이러한 모든 기획이 다 귀찮거나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수입사의 시음회를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수입사들이 와인의 홍보 기획 일환으로 개최할 뿐만 아니라 와인메이커나 오너들이 직접 찾아와 설명하기 때문에 와인 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대개 1인당 비용이 6~7만 원 이상 나가지만 좋은 식당에서 정찬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가격 이상의 만족도를 가져갈 수 있다. 간혹 여럿이서 신청할 경우 할인이 되는 행사들도 있으니 와인을 배우고 싶으나 주머니가 가벼운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찾아보면 좋다. 와인21의 와인 시음회 소식란에는 다양한 수입사들의 시음회 행사가 소개되고 있으니 유심히 살펴보는 것도 좋다.
와인 모임이란 와인에 대한 지식을 늘리면서도 지인들과 친목을 도모하기에 좋은 방법이다. 새로운 사람들과 인맥을 쌓고 사교성을 키우는 데에도 제격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 주변을 보면 와인 모임이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느낌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늘어날수록 불가피하게 불미스러운 일들도 많이 일어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하며 이를 피하기 위해 필자가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와인 모임이라는 것은 불가피하게 식당에서 열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식당의 사전 양해를 구해야 하고, 그 식당에서는 불가피하게 더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손님으로써 권리를 과도하게 요구할 경우 업주의 입장에서는 많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늘 우리 모임에 웃으면서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하라는 말만 믿고 정말로 마음대로 하면 알게 모르게 진상고객으로 낙인찍힐 확률이 매우 높다. 어느 경우든 업주는 수익을 전제로 하고 사업을 하는 것이며 그 사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웃음과 친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무조건 나만 저렴한 예산을 들어 나의 이익만을 과도하게 추구하거나 상대편에게 강요한다면 그 관계는 오래 갈 수 없다. 사려 깊은 배려심과 업주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와인 모임을 기획한다면 언제나 환영받고 유쾌한 와인 모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