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그랑사쏘와 영화 말레피센트, 내가 만난 잠자는 숲속의 미녀들

그랑사쏘 몬테풀치아노 다부르쪼(이하 그랑사쏘)에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라는 별칭이 붙어있다. "왜?" 내가 묻자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라벨을 툭툭 쳤다. "여기 그려진 게 산맥이거든. 근데 묘하게 누워 잠든 여자의 모습 같단 말이지." 고개를 옆으로 눕혀 라벨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봉긋하게 솟은 가슴, 작은 얼굴, 마주 잡은 작은 손까지. 흠, 그럴싸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 5월에도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만난 적이 있다. 영화 <말레피센트>에서 말이다. 영화 <말레피센트>는 개봉 전부터 주목을 받았던 영화다. 디즈니 원작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디즈니가 스스로가 각색했는데, 그 주인공이 공주가 아니라 우리에게는 단지 마녀로 알려진 '말레피센트'였기 때문이다. 물론 주연이었던 안젤리나 졸리의 훌륭한 비주얼과 연기도 기대치에 한몫을 했다. 
 
[영화 말레피센트 포스터]
 
영화는 이제껏 우리가 생각지 못한 마녀 말레피센트의 이야기. 그러니까 그녀가 왜 사악한 마녀가 되었는지. 그리고 왜 갓 태어난 어여쁜 공주에게 "영원히 깊은 잠에 빠지라"는 저주를 걸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차근히 설명해 나아간다. 타고난 악녀처럼 보이는 그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 있자면 오히려 인간의 탐욕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의외의 것이 돋보이는데, 그것은 엘르 패닝이 분한 오로라 공주다. 갓 태어난 공주에게 말레피센트는 "16번째 생일날이 저물기 전에 물레 바늘에 손가락을 찔려 죽음과 같은 잠에 빠질 것"이라는 저주를 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주는 천진난만하고 사랑스럽게 자란다. 처음에는 미움으로 그녀를 지켜보던 말레피센트까지도 점점 그녀의 사랑스러움에 동화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저주는, 설사 저주를 건 사람이라 해도 주워 담지 못한다. 
 
[엘르 패닝이 연기한 사랑스런 오로라 공주]
 
사실 깊은 잠에 빠진 미녀란 이미지엔 어딘가 아련한 게 있다. 우선 아름답다는 게 첫째 이유. 잠이라는 상황에 고립되어 있다는 것이 둘째 이유다. 게다가 그녀는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고 혼자서 깨어나지도 못한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도움이.
 
어쩌면 그랑사쏘 뿐만 아니라 모든 와인이 깊은 잠에 빠진 미녀일지도 모른다. 그녀를 원하는 누군가(말하자면 와인을 오픈하는 우리가) 코르크를 열어줬을 때 비로소 그 향과 맛을 보여줄 수 있으니 말이다. 선명한 보랏빛이 비치는 붉은 색의 그랑사쏘 또한 긴 잠에서 깨어난 미녀처럼 자신의 매력을 한껏 뽐냈다. 체리나 앵두 같은 붉은 베리와 블랙 베리의 향이 선명했고, 그 사이로 쟈스민 같은 보랏빛 꽃향이 스며들었다. 시간이 지나자 초콜릿과 잘 익은 자두의 농밀한 향기도 풍겼다. 적절하게 느껴지는 탄닌감은 직관적으로 다가왔으며 신선한 산도감이 어떤 음식이든 끌어들일 것 같았다.
 
[파네세, 그랑사쏘 2013 Farnese, Gran Sasso 2013]
 
영화 <말레피센트>의 결말은 우리가 흔히 아는 동화의 마지막과 조금 다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영화가 그랑사쏘와 더욱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라도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바로 그런 와인이란 의미에서 말이다.
 

프로필이미지전아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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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14.11.19 20:46수정 2014.11.2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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