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루시옹으로의 초대(1) – 프랑스 루시옹 와인 개괄

프랑스의 가장 남쪽, 스페인과의 접경 지역에 피레네-조리앙탈(Pyrénées-Orientales)이라는 주(州)가 있다. 주청사 소재지는 페르피냥(Perpignan).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에게 많은 영감을 준 곳으로 알려진 페르피냥 역이 있는 바로 그 도시다. 스페인 까딸루냐(Catalunya)지방과는 지척에 있어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2시간만 달리면 바르셀로나에 도착할 정도다. 당연하게도 프랑스와 까딸루냐 문화가 교차하면서 그 영향이 언어와 음식, 건축 등 생활 곳곳에 스며 있다. (이 지역의 IGP 와인 중에도 ‘Côtes Catalanes’이라는 용어를 볼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이미 2천8백 년 전에 이 곳에 포도밭을 조성했으며 로마인들은 그 포도밭을 확장하고 발전시켰다. 현재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다른 이름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는 이곳, 바로 루시옹(Roussillon)이다.

 

지난 11월 루시옹와인협회(Conseil Interprofessionnel des Vins du Roussillon, CIVR)의 초청으로 4박 5일 간 루시옹을 방문해 지역 별 포도밭과 생산자들을 돌아보고 와인을 시음하는 기회를 가졌다. 현대적 시설과 양조 기술을 도입하여 새롭게 변모 중인 대규모 생산 조합은 물론, 자신들의 와인과 함께 지방색이 묻어나는 가정식 요리를 준비해 우리를 맞이한 개별 생산자들 또한 인상적이었다. 특히 일곱 명으로 구성된 이번 방문단만을 위해 여러 생산자들이 모여 세 차례나 미니 엑스포(Mini Expo)를 열어 준 것은 대단히 감동적이었다. 루시옹 생산자들의 한국 와인 시장에 대한 관심과 열의를 느낄 수 있었던 귀중한 경험이었다.

 

이미 늦가을로 접어든 한국의 날씨와는 달리 루시옹은 아직도 낮에는 제법 강렬한 햇살과 따뜻한 기온으로 지중해의 온화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풍경은 온통 포도밭. 한국에서 국도나 고속도로를 지날 때 흔히 보이는 논처럼, 루시옹에서는 완만한 구릉지나 산비탈, 해안가 등을 가릴 것 없이 거의 모든 곳에서 포도밭이 보였다. 대부분 경사지에 위치한 포도밭에는 거친 자갈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 척박한 땅에서 강렬한 햇살을 받으며 자란 포도로 만든 루시옹 와인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제부터 세 편에 걸친 글을 통해 천천히 소개하려 한다.

 

 

 

루시옹의 떼루아

 

 

어쩌면 한국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루시옹이라는 이름만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것이 어색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랑그독과 묶여 ‘랑그독-루시옹(Languedoc-Roussillon)’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시옹은 그들의 문화적 토대만큼이나 랑그독과는 구별되는 물리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서쪽의 피레네(Pyrénées) 산맥을 비롯하여 북쪽의 코르비에르(Corbières)산맥, 남쪽의 알베르(Albères) 산악지대 등이 루시옹을 둘러싸 원형극장과 같은 지세를 형성하고 있으며 동쪽은 지중해와 맞닿아 있다. 산악지대에서 지중해로 빠져나가는 아글리(Agly), 테트(Têt), 테크(Tech) 등 세 개의 강줄기는 계곡과 평지를 형성하며 다채로운 지형과 복합적인 토양을 선사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화강암, 석회암, 편마암, 점판암, 편암 등 다양한 지질에서 부서져 나온 자갈들이 점토나 모래질 토양과 뒤섞여 다양한 떼루아를 만들어 낸다. 특히 루시옹의 떼루아를 특징짓는 것은 ‘점토·석회암, 편암질로 구성된 자갈’ 토양이다. 80% 정도의 포도밭이 이렇게 산악지대 경사면의 자갈밭에 조성되어 있다.

 

기후 또한 루시옹의 떼루아를 완성하는 중요한 조건이다.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의 루시옹은 연간 5-600mm 정도의 적은 강수량이 봄·가을에 집중되어 프랑스에서 가장 건조한 지대로 손꼽힌다. 연간 2,500시간을 넘어서는 일조량은 8월 중순에도 무르익은 포도를 수확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햇볕을 제공하며, 경사면을 타고 불어오는 강한 바람 또한 병충해를 막아 주는 자연의 선물이다. 그러나 한여름 작렬하는 햇살에 극도로 적은 강수량은 척박한 토양에 심어진 포도나무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로 작용하기도 한다. 때문에 평균 와인 생산량은 겨우 헥타아르(ha) 당 30.4헥토리터(hl). 일반적인 프랑스 AOC/AOP 와인 생산량이 60hl/ha라는 것을 고려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척박한 땅에 깊이 뿌리를 박은 포도나무는 토양 깊은 곳의 수분과 영양소를 흡수하고, 적은 산출량을 통해 그 정기를 응축함으로써 포도가 나고 자란 지역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루시옹의 포도밭(위: 바뉼스, 아래: 모리)

 

 

 

루시옹의 AOC/AOP

 

떼루아의 토대 위에서 생산되는 루시옹의 AOC/AOP 와인들은 드라이 와인 9종과 뱅 뒤 나튀렐(Vin Doux Naturel, VDN)로 불리는 주정강화 와인(fortified wine) 5종을 포함해 도합 14종이다. 드라이 와인은 프랑스 와인 전체 생산량의 2% 수준의 낮은 점유율에 머물러 있지만, 개별 AOC/AOP는 고유한 지역적 특성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어 품질 향상을 기대할 만 하다. 일례로 1996년과 1997년엔 코트 뒤 루시옹 빌라주(Côtes du Roussillon Villages)에 두 개의 개별 마을 명칭이 추가로 지정되었으며, 2003년에는 코트 뒤 루시옹 빌라주에 포함되지 않았던 일부 마을들이 코트 뒤 루시옹 레자스프르(Côtes du Roussillon Les Aspres) AOC/AOP로 지정되었다. 또한 2011년에는 주정강화에만 국한되던 모리(Maury) 지역의 통제 명칭을 드라이 와인에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Maury Sec). 앞으로도 마을과 크뤼(Cru)들의 개별적인 떼루아를 드러내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한편 코트 베르메이유(Côte Vermeille) 와 코트 까딸란 등 두 개의 IGP 와인들을 통해 다양한 시도 또한 이루어지고 있다. VDN의 경우 프랑스 전체 생산량의 80%를 차지하고 있어 그 규모나 품질 등 모든 면에서 프랑스를 대표한다. 주정강화 와인은 다음 편에서 바뉼스(Banyuls)를 중심으로 조금 더 자세히 소개할 예정이다.

 

 

드라이 와인(9종)

 

1.코트 뒤 루시옹(화이트, 로제, 레드): 118개 마을 가장 넓은 면적에서 허용된 다양한 품종 중 최소 2가지 이상을 블렌딩한다. 일반적으로 쉽게 마실 수 있는 가벼운 스타일의 와인이 생산된다.

  - 허용된 레드 품종: 카리냥(Carignan), 그르나슈(Grenache), 시라(Syrah), 무르베드르(Mourvèdre).

  - 허용된 화이트 품종: 그르나슈 블랑(Grenache Blanc), 마카뵈(Macabeu), 루산(Roussanne),
    마르산(Marsanne), 베르멘티노(Vermentino),말부아지 뒤 루시옹(Malvoisie du Roussillon)

 

2.코드 뒤 루시옹 레자스프르(레드): 아스프르(Aspres)와 알베르 지역의 37개 마을에서 생산된 시라, 무르베드르, 그르나슈, 카리냥 중 세 품종 이상을 블렌딩한다.

 

3.코트 뒤 루시옹 빌라주(레드): 북부의 지정된 32개 마을에서 생산된 그르나슈, 시라, 무르베드르, 카리냥, 라이도네 펠뤼(Lladoner Pelut) 중 최소 2가지 이상을 블렌딩한다. 비교적 묵직하고 일정 기간 이상의 숙성 잠재력이 있다.

 

4.코트 뒤 루시옹 빌라주 ‘카라마니’(Côte du Roussillon Villages ‘Caramany’, 레드)

5.코트 뒤 루시옹 빌라주 ‘라투르 드 프랑스’(Côte du Roussillon Villages ‘Latour de France’, 레드)

6.코트 드 루시옹 빌라주 ‘레스케르드’(Côte du Roussillon Villages ‘Lesquerde’, 레드)

7.코트 뒤 루시옹 빌라주 ‘토타벨’(Côtes du Roussillon Villages ‘Tautavel’, 레드)

   * 카라마니와 레스케르드에는 까리냥을 블렌딩하지 않는다.

 

8.모리 섹(Maury Sec, 레드): 모리 아펠라시옹에서 나오는 드라이 와인으로 그르나슈(주품종), 카리냥, 시라 중 두 종 이상을 블렌딩한다. 풍미가 강렬하고 타닌감이 좋다.

 

9.콜리우르(Collioure, 레드, 화이트, 로제): 원래는 바뉠스 지역 등에서 자가 소비용으로 생산하던 와인으로 허용된 품종 중 최소 2가지 이상을 블렌딩한다.

  - 레드 품종: 그르나슈(60% 이상), 시라, 무르베드르, 카리냥, 생소

  - 화이트 품종: 그르나슈 블랑과 그르나슈 그리(Grenache Gris)를 최소 70% 이상,

     투르바(Tourbat, 말부아지 뒤 루시옹), 마카뵈, 마르산, 루산, 베르멘티노

 

 

주정강화 와인(5종)

10.리브잘트(Rivesaltes): 루시옹의 86개 마을과 함께 랑그독의 9개 마을에서도 생산된다. 생산 면적으로 볼 때 VDN 중 가장 중요한 와인으로 볼 수 있다. 그르나슈 누아/그리/블랑, 마카뵈와 함께 말부아지 뒤 루시옹도 쓰이며 리브잘트 앙브레(Rivesaltes Ambrés) 와인에는 뮈스카(Muscat)가 20%까지 배합되기도 한다.

  * 컬러, 산화, 숙성 기간 등에 의한 분류: 그르나(Grenat), 로제(Rosé), 튈레(Tuilés), 앙브레(Ambrés),

    오르다주(Hors d’Age), 랑시오(Rancio)

 

11.모리(Maury):  화이트 와인도 있으나 레드 와인이 주를 이루며 그르나슈를 75% 이상 블렌딩한다.

  - 화이트 품종: 그르나슈 블랑, 그르나슈 그리, 마카뵈, 말부아지 뒤 루시옹,

     뮈스카 달렉상드리(Muscat d’Alexandrie), 뮈스카 아 프티 그랭(Muscat à petits)

  - 레드 품종: 그르나슈, 카리냥, 시라

  * 컬러, 산화, 숙성 기간 등에 의한 분류: 블랑, 그르나, 튈레, 앙브레, 오르다주, 랑시오

 

12.바뉼스(Balnyuls): 병, 배럴, 또는 큰 유리병 등을 이용하여 숙성한다. 그르나슈가 50% 이상 포함되어야 한다.

  - 화이트 품종: 그르나슈 블랑, 그르나슈 그리, 마카뵈, 말부아지 뒤 루시옹, 뮈스카 달렉상드리, 뮈스카 아 프티그랭

  - 레드 품종: 그르나슈(50% 이상), 카리냥, 시라, 생소(Cinsault)

  * 컬러, 산화, 숙성 기간 등에 의한 분류: 블랑, 리마주(Rimage), 로제, 튈레, 앙브레, 오르다주, 랑시오

 

13.바뉼스 그랑 크뤼(Banyuls Grand Gru): 목재 통에서 최소 30개월 이상 숙성해야 하는 등 일반 바뉼스에 비해 생산조건이 더욱 엄격하다. 그르나슈가 75% 이상 블렌딩되어야 한다.

 

14.뮈스카 드 리브잘트(Muscat de Rivesaltes): 뮈스카 달렉상드리와 뮈스카 아 프티 그랭 두 가지 품종으로 양조되며 수확후 2월 1일까지 숙성해야 한다. 세련된 꽃 향과 감귤 및 살구 등 달콤한 과일 향이 두드러진다. 예외적으로 크리스마스 뮈스카(Muscat de Noël)는 수확한 해 11월 셋 째 주 목요일부터 출시한다.

 

 

지중해 지역답게 평화롭고 여유로운 분위기의 루시옹. 오래된 건물들의 빛 바랜 황토색 벽에 붙어 있는 전통적인 도자기 빗물받이 홈통이 정겨움을 더한다. 이런 현지의 분위기와 지역적 특징들을 그대로 담은 듯한 루시옹의 와인들. 들여다 볼수록 매력적인 와인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본격적으로 다채로운 루시옹 와인들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2편에서 계속)

 

자료제공: <지도출처> 루시옹와인협회 홈페이지

프로필이미지김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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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15.01.07 07:52수정 2015.02.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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