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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쥬 가스통 오샤르 별세, 와인 업계 추모 물결 이어져

레바논의 샤토 무사르(Château Musar)의 오너이자 첫번째 디캔터 지 선정 '올해의 인물(Decanter Man of the Year)'로 지목되었던 세르쥬 가스통 오샤르(Serge Gaston Hochar)가 지난주 가족들과 휴가 중 향년 75세로 돌연 별세함에 따라 와인 업계 전역에서 추모의 물결이 일고 있다.
 
[세르쥬 가스통 오샤르 사진출처_vinofil.no]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레바논 와인을 세계에 알렸으며 레바논 내 젊은 와인 제조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고 칭송받는 세르쥬 오샤르의 죽음을 애도하려 지난 며칠간 전 세계 각지에서 추모사가 잇따랐다.
 
세르쥬 오샤르는 1939년 11월 20일에 태어나 원래는 토목 기사를 목표로 공부했으나, 곧 와인을 "내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말할 정도로 와인 분야에서 직업적 소명과 삶의 이유를 느끼게 되었다.
 
1959년에 세르쥬 오샤르는 부친 가스통 오샤르가 제조한 샤토 무사르 1956년 빈티지 와인을 병입하면서 처음으로 빈티지 와인 제작에 정식으로 참여했다. 부친 가스통 오샤르는 모국 레바논이 고대에 누렸던 와인 산업의 전성기를 되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1930년대에 샤토 무사르를 설립했다.
 
세르쥬 오샤르는 보르도에서 에밀 페이노(Emile Peynaud)와 와인 양조학을 수학한 뒤에 레바논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와인 제조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와인 제조 시에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와인에 뚜렷한 개성을 입혔는데, 이 덕에 세르쥬 오샤르 표 와인은 이후 와인 비평가와 와인 애호가들에게 칭송받게 되었다.
 
샤토 무사르 설립 초기에는 생산된 와인 전량이 레바논 내에서만 소비되었으므로, 1972년 레바논 내전이 발발하자 샤토 무사르는 소비 시장 전체를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자 세르쥬 오샤르는 새로운 와인 소비 시장을 개척할 필요성을 느껴 세계 각지에 샤토 무사르 와인을 소개해 새로운 소비층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세계 곳곳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이 여행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도 계속되었다.
 
마이클 브로드벤트(Michael Broadbent)는 다음과 같이 고인을 회상했다. "세계 어디서든 와인 행사가 있다 하면 거의 다 참석했죠. 와인 업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정말 많이 돌아다녔으니까요."
 
1979년에 영국에서 열린 '브리스톨 와인 페어(Bristol Wine Fair)'에서 마이클 브로드벤트는 세르쥬 오샤르가 제조한 샤토 무샤르 1967년 빈티지에 ‘디스커버리 오브 더 페어(Discovery of the Fair)'로 선정되고 1등 상까지 받는 영예를 안겼으며 이후 디캔터 지에 이 와인에 대해서 기고하기까지 했다. 마이클 브로드벤트는 이를 계기로 고인과 오랫동안 깊은 우정을 쌓게 되었다며 추억에 잠겨 회고했다.
 
"가장 절친한 친구였어요. 머리 위로 포탄이 휙휙 날아다니는 와중에도 그렇게 훌륭한 와인을 만들었으니, 진정한 영웅이었죠. 성품이 너그러워 모두에게 사랑받았으니 인간적으로도 정말 좋은 사람이었고, 와인 제조자로서도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났죠. 와인 업계 위인으로 손꼽혀 마땅한 사람입니다. 모두가 그리워할 거예요."
 
마이클 브로드벤트의 아들 바르톨로뮤 브로드벤트(Bartholomew Broadbent)는 샤토 무사르 대표 자격으로 여러 나라를 방문한 바 있다. 그는 세르쥬 오샤르를 "아버지나 다름없는 분"이라고 말하며 세계를 돌며 더 많은 것을 보고자 했던 고인의 열정을 회고했다. 
 
"제가 샤토 무사르 1967년 와인병을 하나 보관하고 있는데, 그게 바로 샤토 무사르 와인 애호가 한 분이 2000년 새해가 밝기 전날에 남극에 가져가서 드신 와인이에요. 다 드시고 빙하를 긁어서 빙하수를 모아 그 병에 채워서 저한테 보내 주셨더라고요. 그런데 그다음 해에 세르쥬 아저씨가 웬 이스터 섬이나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저한테 전화를 거신 거예요. 왜 거기 계시느냐고 했더니 "남극 가는 중이다." 하시더라고요. 왜 가시느냐 했더니 "작년에 내 와인이 남극에 있지 않았니. 내 와인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가보고 싶구나." 하시는 거예요."
 
불어, 영어, 아랍어에 능통했던 세르쥬 오샤르는 끊임없이 여행을 다닌 덕에 와인 업계의 쟁쟁한 인사들과 계속 교류할 수 있었는데, 많은 이들이 그와의 만남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잰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 마스터 오브 와인은 고인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생각이 깊어져 와인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주제로 대화가 흘러가곤 했다고 회상하며 추모의 뜻을 전했다.
 
"세르쥬 씨는 단순한 와인 제조자 그 이상이었고 레바논에서 가장 유명한 와이너리인 샤토 무사르를 이끌어 온 원동력이었습니다. 정말 고상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전혀 딱딱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재미있는 장난꾸러기 같았죠. 항상 장난기가 가득하면서도 동시에 인간 본성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으며 외적인 것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는 인상을 풍겼습니다. 기회가 되어 세르쥬 씨와 만나 시간을 보내면 즐겁지 않은 순간이 없었어요."
 
디캔터의 스티븐 스퍼리어(Steven Spurrier) 편집자문위원 또한 고인이 항상 영감을 주는 인물이었다고 회상했다. "세르쥬 씨가 1980년대 초에 파리에 있는 제 가게에 방문했을 때가 첫 만남이었어요. 세르쥬 씨가 저희 가게 단골손님이 되다 보니 저도 자연스럽게 가게에서 샤토 무사르 와인을 팔게 되었죠. 그걸 계기로 서로 절친한 친구가 되었는데 이렇게 떠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세르쥬 씨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인물의 표본이었던 데다 교양이 있어서 고풍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매력도 있었죠. 일생을 와인에 바친 사람이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영감의 원천이었습니다."
 
레바논 내전이 일어나고 있을 당시 베카 계곡(Bekaa Valley)에서 와인을 만든다는 건 위험천만하고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세르쥬 오샤르는 몇 번이고 목숨을 걸면서까지 와인을 만들 만큼 이 지역의 테루아르가 값지다고 확신했다. "베카 계곡은 에덴동산에 비할 만한 곳입니다. 여기서 만들어야지만 힘이 있고 과일 향이 뛰어난 최상급 레바논 와인을 얻을 수 있어요."
 
총알과 포탄이 날아다니던 와중에도 세르쥬 오샤르는 포도를 수작업으로 수확한 다음 트럭으로 70킬로미터를 운반해 가지르(Ghazir)에 있는 와이너리로 옮겼는데, 이 운반 작업은 전쟁 통에 며칠이 걸리기도 했고 몇 주가 걸리기도 했다. 1990년에는 2백 50킬로미터나 우회해서 실어 날라야 했으며, 1984년에는 바다를 통해 운반할 수밖에 없었는데 운반 도중에 발효가 시작되어 그 해 포도 모두가 못 쓰게 되어버리기도 했다.
 
이렇게 모든 역경에 맞서 와인 제조에 쏟아부은 헌신 끝에 세르쥬 오샤르는 1984년 첫 번째 디캔터 지 선정 '올해의 인물'이 되어 이름을 빛내게 되었다.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베르 드 빌렌느(Aubert de Villaine), 피에로 안티노리 후작(Marchese Piero Antinori), 마르셀 기갈(Marcel Guigal), 크리스티앙 무엑스(Christian Moueix) 등 와인 제조업계의 거물들도 '올해의 인물' 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세르쥬 오샤르는 그중에서도 따를 자가 없을 만큼 활발히 활동해 2014년에는 런던에서 '올해의 인물' 30주년 모임을 직접 개최하기까지 했다. 
 
대담한 행보로 많은 이들의 흠모의 대상이 되어 온 장본인. 용감한 개척자이자 와인 제조업의 거물. 자국 레바논과 와인 제조가라는 자신의 직업, 또 직업 철학을 널리 알린 대담 무쌍한 대사, 세르쥬 오샤르. 그의 별세 소식에 온 와인 업계가 애도를 표하고 있다.
 
고인의 유족은 아내 타니아(Tania), 아들 가스통(Gaston)과 마크(Marc), 딸 카린(Karin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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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15.01.12 14:58수정 2015.01.1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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