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이 가진 ‘힘’에 대해 생각한다. 흔히 ‘파워풀’하다고 묘사하기도 하는 와인의 맛에 대한 이야기 아니다. 미각으로 느끼는 그 이상의 힘, 와인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무형의 오라에 대한 이야기다. 혹자는 “와인은 사진과도 같다”라고 하고 또 다른 이는 “와인이야말로 하나의 기억 그 자체다”라는 말을 한다. 지난 1월 22일, 부산에 내려가 참석한 보데가 노통(Bodega Norton)의 디너는 이런 말들의 의미를 정확하게 느끼도록 해주는 자리였다. 디너가 진행된 파크 하얏트 부산 31층 ‘리빙룸’의 분위기는 도시적이면서 이국적인 정취를 풍기는 해운대의 환상적인 야경이 디너를 더욱 특별하게 연출해주었다. 그리고 이날 여러 가지의 뜻깊은 만남들이 있었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노통의 프리미엄 와인과의 만남, 각 와인과 훌륭한 조화를 보여준 파크 하얏트 부산의 음식과의 만남, 그리고 보데가 노통의 수출 매니저 디에고 수라스키(Diego Surazsky)와 부산 와인업계 관계자들 및 애호가들의 만남까지. 매서운 겨울바람이 기세를 부리던 날들은 이미 다 지나간 듯, 소중한 만남의 자리는 그야말로 훈훈하기만 했다.

[보데가 노통의 디너가 진행된 파크 하얏트 부산]
잠시, 멘도사의 태양 아래로
“아르헨티나는 무엇으로 유명할까요?” 리셉션 자리에서 참석자들 앞에 선 디에고 수라스키 씨가 간단한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탱고, 축구, 육류요리 그리고 와인. 그가 답한 요소들은 하나같이 흥미롭다. 다시 말하면 춤과 스포츠와 미식의 나라라는 말이 아닌가. 노통에 대한 소개부터 시작할 줄 알았건만 그는 아르헨티나가 얼마나 매력적인 곳인지부터 먼저 이야기하길 원했다. 그리고 3분 가량의 짧은 비디오 한 편을 상영했다. 아르헨티나에 펼쳐진 빈야드 풍경과 자연 속에서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 멘도사(Mendoza)에 자리한 와이너리와 와인메이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은 참석자들을 잠시나마 아르헨티나의 햇살 아래로 안내했다. 아르헨티나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와인생산국이다. 하지만 국내 소비량이 많은 까닭에 해외 인지도는 다른 주요 와인생산국들에 비해 낮은 편. 실제로 디에고 수라스키 씨가 소개한 자료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1인당 평균 와인소비량은 연간 40리터 정도라고 하는데, 이는 매일 한 잔씩 와인을 마시는 셈이다. 그는 말벡의 매력에 대해서도 잊지 않고 언급했다. 보데가 노통의 말벡이 지닌 지닌 선명한 컬러와 깨끗한 아로마, 바디감과 라운디한 느낌은 또 얼마나 근사하게 드러날 것인가. 곧 이어질 노통 디너는 사실 ‘말벡 비교 테이스팅’이기도 했다.
보데가 노통, 120년의 결실에 대하여
이번 행사에 한 가지 더 의미부여를 하자면 올해는 보데가 노통이 설립 120주년을 맞는 해라는 사실이다. 영국에서 아르헨티나로 건너온 에드먼드 제임스 팔머 노통(Edmund James Palmer Norton)이 1895년 멘도사 강의 남쪽에 와이너리를 설립한 것이 노통 와이너리의 출발이었다. 멘도사 땅의 가능성을 알아차리고 아르헨티나에 정착한 그는 아르헨티나 와인의 개척자로 꼽힌다. 그런데 이후 이 땅에 매료된 사람이 또 있다. 오스트리아의 사업가 제르놋 랑게스 스와로브스키(Gernot Langes-Swarovski). 크리스털의 생동감과 노통 와이너리의 그것이 흡사하다고 느낀 걸까. 그가 1989년 와이너리를 인수함으로써 보데가 노통은 크리스털 브랜드 스와로브스키의 소유가 된다. 현재 노통 와인은 생산량의 60%가 아르헨티나 내에서 소비되며 나머지가 세계 60여 개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아시아보다는 유럽과 미국의 수출 비중이 높은 편이지만 일본에서는 일찌감치 가장 인기 있는 아르헨티나 와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기도 하다. 가격대비 품질 좋은 와인으로 정평이 나 있는 만큼, 주요 와인 매체로부터도 인정받고 있는데 최근 10년 사이의 기록만 보더라도 이들이 다져온 퀄리티와 영향력을 알 수 있다. 2006년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 선정 ‘세계 톱 20 와이너리(One of the top 20 wineries in the world)’에 올랐고, 2011년 와인 엔수지애스트(Wine Enthusiast)의 ‘올해의 베스트 뉴월드 와이너리(Best New World Winery of the Year)’로 꼽혔으며 2013년에는 리제르바 말벡 2011 빈티지가 와인 스펙테이터 100대 와인 중 36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노통의 자랑은 수석 와인메이커 조지 리키텔리(Jorge Riccitelli)가 2012년 와인 엔수지애스트가 뽑은 ‘올해의 와인메이커(Winemaker of the year 2012)’상을 수상했다는 것이다. 이는 아르헨티나 와인메이커로서는 처음 이룬 성과다.

[로떼의 세 가지 싱글빈야드 와인]
새로운 도전, 프리미엄 와인 로떼(Lote) 이야기
와인을 테이스팅하고 나누는 시간. 2년 전 서울에서 개최된 노통의 디너에서는 만나지 못했던 와인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는 조지 리키텔리가 주축이 되어 최근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로, 말벡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끌어낸 하이 엔드 와인 로떼(Lote)이다. 스파클링 와인부터 디저트 와인까지 와인 포트폴리오가 다양한 것이 노통의 특징이라지만 그들의 상징과도 같은 말벡 품종을 이용해 프리미엄 와인에 도전했다니 시음 전부터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로떼의 첫 빈티지는 2009년으로, 2013년 시장에 출시했으나 현재 완전히 품절된 상태이고 디너에 등장한 것은 2010년 빈티지였다. 행사를 주최한 에노테카 코리아 측은 아직 국내에 수입되고 있지 않은 와인이지만 업계 관계자들과 애호가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이번 디너에서 특별히 소개한다는 설명을 했다.

[디너에 소개된 노통의 와인들]
익숙한 노통의 대표 와인들뿐만 아니라 국내 미수입 와인 등 이날 서빙된 모든 와인들은 파크 하얏트 부산의 숀 키난(Shaun Keenan) 셰프가 준비한 음식과 뛰어난 매칭을 보여주었다. 아니, 단순히 뛰어난 매칭이라고는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예상 밖의 감각적인 만남이 플레이트 위에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날 디너의 주인공들을 소개한다.
보데가 노통, 코세차 에스페시알 엑스트라 브륏 NV (Bodega Norton, Cosecha Especial Extra Brut NV) - 미수입
리셉션에서 소개된 스파클링 와인. 100% 샤르도네로 생산된 이 와인은 연두색이 감도는 황금빛 컬러에 이스트와 바닐라의 뉘앙스와 함께 신선한 아로마를 뽐내며 행사의 시작을 여는 스파클링 와인으로 손색이 없었다. 마치 파티에서 깜짝 등장한 게스트처럼 의외의 매력으로 관심을 받았던 와인이다.
보데가 노통, 꼴렉시온 버라이어탈 쇼비뇽블랑 2013 (Bodega Norton, Coleccion Varietal Sauvignon Blanc 2013)
“아르헨티나 스타일의 소비뇽 블랑이 어떤지 느껴보라”는 디에고 씨의 말은 차별화된 소비뇽 블랑에 대한 자신감이 담긴 것이었다. 소비뇽 블랑 특유의 찌르는 듯한 산도 대신, 복숭아, 파인애플, 감귤류의 과실 풍미를 풍부하게 갖추고 있으면서도 마시기 쉬운 편안한 스타일로 균형감이 돋보였다. 16~18도로 온도가 조절되는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약 14일간 발효를 거쳤다.
보데가 노통, 배럴 셀렉트 말벡 2012 (Bodega Norton, Barrel Select Malbec 2012)
흔히 말하는 ‘가성비’를 따질 때 빼놓을 수 없는 와인. 체리와 자두의 아로마와 향신료의 스파이시한 아로마가 조화롭다. 특히 이 와인은 여러 가지 음식과의 매칭이 가능할 법한데, 함께 서빙된 오리가슴살 토르텔리니와 잘 어울렸을 뿐만 아니라 훈제한 농어 필레와도 기대 이상의 마리아주를 보여주었다. 생선임에도 레드 와인과의 조합이 더없이 완벽했던 것은 농어에 배인 스모키한 풍미가 와인의 스모키함과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50% 오크, 50% 스테인리스 통에서 12개월 숙성시키고 6개월 병 숙성 후 출시되었다.
보데가 노통, 리제르바 말벡 2011 (Bodega Norton, Reserva Malbec 2011)
노통 와이너리의 베스트셀링 와인을 꼽으라면 앞서 등장한 배럴 셀렉트 말벡과 바로 이 리제르바 말벡이다. 블랙체리와 블랙커런트 등 검은 과실의 아로마가 느껴지고 약간의 스모키한 타바코 향이 따라온다. 입 안 가득 풍부한 과실 풍미를 즐길 수 있는 와인으로 2010년 빈티지가 와인 엔수지애스트 92점, 2011년 빈티지가 와인 스펙테이터 92점을 받았다. 100% 프렌치 오크 배럴에서 12개월 숙성시킨 뒤 10개월 병 숙성 후 출시되었다.
보데가 노통, 프리바다 2010 (Bodega Norton, Privada 2010)
말벡 40%, 메를로 30%, 까베르네 소비뇽 30%
‘프리바다(privada)’는 스페인어로 ‘사적인(private)’이란 뜻이다. 애초에 오너, 즉 스와로브스키 가문과 지인들이 소비하기 위해 생산을 시작한 프라이빗한 와인이었으나 뛰어난 퀄리티를 보여주자 생산량을 늘렸고 10년 전부터 수출을 하기 시작했다. 프리바다는 이날 서빙된 와인 중 유일하게 세 가지 포도가 블렌딩 된 와인으로 붉은 과일 아로마와 커피, 향신료 등의 스파이시한 아로마가 조화로우며 섬세한 오크 풍미와 뛰어난 집중도가 인상적이었다. 16개월간 새 프렌치 오크 배럴에서 숙성한 뒤 12개월의 병 숙성을 거쳐 출시된다. 2006년부터 최근 빈티지인 2012년까지 7년 연속 와인 스펙테이터로부터 91~93점 사이의 점수를 받았다.
보데가 노통, 로떼 L-110 2010 (Bodega Norton, LOTE L-110 2010) – 미수입
말벡 싱글빈야드 와인으로, 앞서 언급했듯 노통 와이너리의 자부심이 담긴 와인이다. 로떼는 세 가지 와인이 시리즈로 출시되는데 빈야드에 따라 L(Lunlunta), LC(La Colonia), A(Agrelo)로 나뉘며 뒤에 붙은 숫자는 1이 말벡을, 10이 2010년 빈티지를 의미한다. 같은 조건 하에서 생산되지만 단 한가지 다른 점이 바로 떼루아라는 점에서 로떼 시리즈는 신세계 와이너리답지 않은 도전을 한 셈이다. 83년 된 빈야드에서 선별된 포도로만 만들어지며 포도나무의 수령은 50~80년 정도이다. 디너에 소개된 와인은 L-110으로, 이 와인의 2009년 빈티지인 L-109가 제임스 서클링(James Suckling)으로부터 97점을 받으며 첫 등장부터 화제가 되었다. 2010년 빈티지 또한 입안을 가득 채우는 검은 과실의 풍미와 강렬하고도 우아한 느낌이 긴 여운을 남겼다. 14.8%의 높은 알코올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밸런스가 잘 잡혀있어 와인메이커의 테크닉이 돋보이는 와인이다.
보데가 노통, 코세차 타르디아 샤도네 2013 (Bodega Norton, Cosecha Tardia Chardonnay 2013)
디너가 시작될 때 시음한 소비뇽 블랑이 색다른 느낌의 소비뇽 블랑을 제시해줬다면 코세차 타르디아는 예상을 살짝 비껴간 디저트 와인의 모습이었다. ‘늦수확(late harvest)’을 의미하는 ‘코세차 타르디아(Cosecha Tardia)’라는 이름에서부터 농축된 당분의 달디단 스위트 와인을 예상할 만한데, 의외로 많이 달지 않고 적당한 달콤함과 산도를 갖춘 와인이다. 열대과일과 감귤류의 아로마와 꿀, 아카시아꽃 향기가 느껴지며 복숭아와 멜론 등의 과일 풍미가 풍부하게 전해진다. 기분 좋게 이어지는 피니시가 입안을 산뜻하게 마무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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