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해외뉴스

시몬시그 빈티지 와인 데이

남아공 와인의 빈티지
와인 맛을 결정하는 자연적 요인 중에는 포도를 수확한 해의 빈티지가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기술 발전으로 품질 조절이 가능해 빈티지의 의미도 감소 추세다. 포도의 숙성에 따라 수확 시기를 알맞게 조정해 기후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세계 와인에 비해 남아공 와인은 빈티지별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 편이다. 미국이나 호주처럼 기후변화가 거의 없고 일정하게 건조하며 더운 여름 날씨 때문이다. 그래서 대체로 장기 숙성을 하기보다는 빠른 시간 안에 소비하는 것이 좋다. 물론 장기간 보관을 하면 더 맛이 좋아지는 와인들도 있다. 근래에 두각을 나타낸 남아공의 빈티지로는 2003년 레드가 있고, 2006년은 소비뇽 블랑과 쉐닌 블랑이 최근 10년 중 가장 뛰어나며, 2009년의 레드와 화이트, 그리고 2012년 여름 유난히 건조하고 더웠던 기후에서 자란 포도로 빚은 레드와 화이트 와인을 꼽는다. 
 
남아공의 봄이 찾아오는 8월의 어느 주말, 빈티지에 관심 많은 와인 애호가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시몬시그 빈티지 와인 데이(Simonsig Vintage Wine Day)’가 스텔렌보쉬(Stellenbosh)에 있는 시몬시그 와이너리에서 있었다. 
 
[시몬시그 와이너리의 시음장]
 
프랑스 위그노를 조상으로 둔 시몬시그 와이너리
프랑스에서는 가톨릭의 부패에 실망한 이들이 1520년~1523년 사이 종교개혁을 일으켰다. 장 칼뱅을 추종하는 위그노(Huguenot)들은 구교로부터 끊임없는 개종 탄압을 받았다. 1598년 앙리 4세가 위그노의 신앙 자유를 보장하는 낭트칙령을 제정해 위그노들의 종교 자유를 보장해줬지만 1685년 루이 14세는 낭트칙령을 무효화시키며 위그노들에게 구교로 돌아오지 않을 거면 프랑스를 떠나라는 명령을 내렸다. 당시 20만명이 넘는 위그노들은 주변국 유럽과 남아공으로까지 종교의 자유를 찾아 조국을 등졌다. 
 
시몬시그 와이너리의 오너 프란스 말란(Frans Malan) 역시 1688년 프랑스에서 남아공으로 건너온 위그노였다. 남아공에 온 위그노들 중에는 프랑스의 포도 농사 기술을 가져온 이들이 많았다. 이들이 남아공에 프랑스의 전통적인 와인 기법과 문화를 전파시켰으므로 오늘날 남아공 와인의 초석을 다진 이들은 바로 위그노라고도 할 수 있다. 시몬시그 와이너리는 프란스 말란의 3대손과 4대손 가족이 조상의 정신을 이어받아 포도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업적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1971년 남아공 최초로 프랑스 샴페인의 고전적 방식에 따라 생산한 스파클링 와인 ‘Methode Cap Classique(MCC)’을 탄생시킨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텔렌보쉬 와인 루트를 공동 개발한 일이다. 현재 프란스의 셋째 아들 요한이 셀라 마스터로 있으며 생산량의 45%를 22개국에 수출한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날]
 
* 빈티지 와인 데이의 와인 리스트 
와인 셀러에 최적의 상태로 보관된 와인들을 꺼내 8개 섹션으로 나눴다. 1991년산부터 최근 2011년까지 모두 39종류의 와인이 등장해 참가자들의 미각을 즐겁게 해주었다. 
 
캅스 퐁켈(Kaapse Vonkel) 스파클링 와인 2002, 2003, 2005, 2007, 2008, 2010
시몬시그는 남아공 최초로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한 포도원으로 스파클링 와인에 남다른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주 품종은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이며 약 3~8%의 피노 뫼니에를 섞었다. 2013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60주년 기념식에 영연방 국가 대표 와인으로 서빙되었다. 
 
피노타지(Pinotage) 1994, 1996, 1998, 2007
피노타지는 남아공을 대표하는 품종이다. 시몬시그는 매년 남아공 피노타지 ‘TOP 10’에 오를 정도로 좋은 피노타지 와인을 내놓는다. 딸기 맛을 살리기 위해 오크통 숙성이 아닌 언우디드 방법을 택했다. 과일 아로마가 풍부한 미디엄 바디.
 
시라즈(Shiraz) 1991, 1992, 2002, 2003
‘미스터 보리오의 시라즈(Mr. Borio’s Shiraz)’라 부른다. 이탈리아 출신 보리오는 말란 가족의 친구로 제2차 세계대전 후 남아공에 정착해 시몬시그의 시멘트 와인 탱크를 만들었고, 이 탱크는 시라즈 생산에 사용된다. 허브 향 나는 풀 바디.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2000, 2009, 2010
멋지고 조화로운 카베르네 소비뇽의 맛을 기대했는데 숙성 세월보다는 약간 허전한 느낌이었다. 미디엄 & 풀 바디.
 
레드힐 피노타지(Redhill Pinotage) 2004, 2007, 2011
시몬시그에서 가장 파워풀한 풀 바디 아이코닉 레드 와인이다. 프랑스산 새 오크통에 숙성해 오크의 강한 향이 느껴진다. 2004년 빈티지는 ‘내가 뽑은 오늘의 와인’이다.
 
프란스 말란(Frans Malan) 2013, 2004, 2005, 2010
오늘날의 시몬시그 와이너리를 있게 한 프란스 말란의 이름을 딴 와인다. 피노타지,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를 블렌딩한 풀바디. 
 
티아라(Tiara) 1994, 1997, 1998, 1999, 2000, 2001, 2003, 2004, 2005, 2006
부담 없이 마시기 좋은 보르도 스타일 와인.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과 말벡을 블렌딩했다. 2006년 빈티지는 이 자리에 동행한 아내가 가장 후한 평가를 줬다.
 
메린돌 시라즈(Merindol Syrah) 1999, 2001, 2002, 2003, 2007
프랑스 동남쪽에 있는 메린돌은 말란 집안의 뿌리가 있는 곳이다. 시몬시그 가문의 문양에도 메린돌이 자랑스럽게 새겨져 있다. 시라즈 고유의 묵직함과 강렬함이 느껴진다.
 
[시음장 야외 분위기]
 
언제나 즐거운 와인이 있는 마당
‘빈티지 와인 데이’의 매력은 한 장소에서 수십 종의 와인을 무한정으로 맛본다는 것이다. 우리 돈 13,000원 정도의 적은 비용으로 무려 39가지의 다른 와인을 만난 것은 큰 기쁨이었다. 언제 봐도 이 사람들은 참 잘 논다. 한 잔의 와인을 들고 어찌도 저리 유쾌할 수 있을까? 와인을 마시기 전 잔을 빙빙 돌려 코를 들이대고 향을 느끼는 자, 술잔을 눈높이에 두고 회오리치는 와인을 그윽이 관찰하는 자, 스파클링 와인을 따는 경쾌한 개봉음, 그치지 않은 웃음소리,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껴안고 ‘치어스’를 외치는 이들과는 누구나 금방 친구가 될 수 있다. 나는 유난히 진지한 모습으로 와인을 음미하는 시모나(Simona)에게 다가가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시모나는 프랑스 파리 출신으로 이 지방 스텔렌보쉬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한다. 나는 와인의 나라에서 온 그녀에게 프랑스 와인과 남아공 와인의 차이점을 물었다. 그녀는 남아공 와인에 ‘더 강한 맛(intensive)’이 있는데 그게 매력이라 했다. 또한 포도밭이 아름답게 펼쳐진 스텔렌보쉬에서 공부할 수 있어 감사하다며 거침없는 하이 파이브를 청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온 시모나(가운데).
오른쪽 남자는 스텔렌보쉬 대학에서 농학을 전공해 포도 농사에 관심이 많았다.]
 
빈티지, 나만의 추억으로 
와인을 마시며 빈티지에 휘둘릴 필요는 없지만 특정한 해에 잊을 수 없는 사건이나 추억이 있다면 의미 있는 빈티지로 간직할 수 있지 않을까? ‘그해의 포도나무가 자라던 그때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이런 회상 몇 가지가 와인 맛을 넘어 또 다른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 이날 나에게 눈길을 보내온 와인은 ‘2004년 레드힐 피노타지’였다. 피노타지 품종도 좋아하지만 그해 겨울 가족과 머나먼 땅 케이프타운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나도 저 와인처럼 잘 숙성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오늘의 와인’으로 꼽았다. 
 
나에게 와인 모임은 언제나 기쁨과 비극이 교차하는 곳이다. 바로 음주운전 때문이다. 케이프타운에는 아주 소수의 대리운전 회사가 있지만 와인 농장이 있는 시골에서 한 시간 이상 걸리는 집까지 가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 그래서 아내를 옆자리에 태운다. 아내도 마음만 먹으면 술을 잘 마시지만 그날 운전은 자신에게 맡기고 맘껏 마시라 배려해줬다. 나는 가까운 옆 마을 농장에서 왔다는 치즈와 빌통(남아공 육포)을 더해 잘 익은 와인을 즐겼다. 어느덧 해가 기웃한 시간, 몇 병의 와인을 싸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섶에는 이르게 찾아온 봄꽃들이 웃음짓고 있었다.
 

프로필이미지김은영 기고가

기자 페이지 바로가기

작성 2015.10.05 00:55수정 2015.10.16 16:18

Copyrights © 와인21닷컴 & 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호주 와인 그랜드 테이스팅
  • 조지아 와인 인스타그램

이전

다음

뉴스레터
신청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