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한 해가 저물어간다. 송년회를 구실로 지인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일 계획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는 시기다. 그런데 와인애호가라면 또 하나 할 일이 남아 있다. 각국의 양조용 포도는 어떤 한 해를 보냈는지, 곧 만나게 될 2015년 빈티지의 와인은 우리에게 어떤 맛을 선물해줄지 알아보는 일이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2015년도 와인 스펙테이터의 빈티지 리포트(Wine Harvest 2015)를 통해 지난 1년간 각국의 포도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어쩌면 한 해 동안 이들은 우리와 비슷한 삶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먼저 첫 번째로 이미 와인이 익어가고 있는 남반구의 여러 와인 생산국들, 그리고 북반구인 미국의 빈티지 리포트다.
I. 호주
1) 남호주(South Australia): 클레어 밸리(Clare Valley), 바로사 밸리(Barossa Valley), 맥라렌 베일(McLaren Vale), 에덴 밸리(Eden Valley), 라임스톤 코스트(Limestone Coast)
바로사 밸리 북쪽에서는 서리 피해가, 아델레이드 힐스(Adelaide Hills)에서는 산불 피해가 있었다. 하지만 그 외 지역에서는 이상적인 기후 속에 별다른 일 없이 평탄한 1년을 보냈다. 특히 따뜻한 기후 덕분에 포도 성숙이 잘 진행돼, 최근 몇 년간 가장 빠른 수확을 했다. 충분히 잘 익은 상태에서 빠른 수확을 하면 그만큼 자연적인 산도가 살아있어 맛의 균형이 좋은 포도를 수확할 수 있다. 그래서 남호주의 생산자들은 올해 대부분 불만이 없다. (추천 품종: 쉬라즈, 까베르네 소비뇽, 화이트 품종들)
2) 빅토리아(Victoria): 야라 밸리(Yarra Valley), 모닝턴 페닌슐라(Mornington Peninsula), 질롱(Geelong), 히스코트(Heathcote), 그램피언스(Grampians), 스트라스보기 레인지(Strathbogie Ranges)
이 지역 역시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길고 선선한 여름 뒤에 건조하고 따뜻한 가을까지, 이상적인 시즌이 이어졌고 평소보다 3주 정도는 더 빠르게 수확할 수 있었다. 올해는 최근 몇 년 중에서 최고의 해로 기억될 만하다. (추천 품종: 샤도네이, 피노 누아, 쉬라즈)
3) 서호주(Western Australia): 마가렛 리버(Margaret River), 펨버턴(Pemberton), 그레이트 서던(Great Southern)
서호주는 상황이 약간 다르다. 개화 시기에 습하고 바람이 많이 불어 꽃이 제대로 피지 못했고 전체적인 수확량은 20-30% 가량 감소했다. 어떤 지역에서는 까베르네 소비뇽의 수확량이 평균보다 50%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다행히 그 이후 여름 기후는 무난했고 수확도 평균보다 2주 정도 빨리 이뤄졌다. 전체적으로 도전적인 요소가 많은 한 해였지만 그만큼 신중하게 포도를 관리한 곳에서는 좋은 품질의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해로 평가된다. (추천 품종: 리즐링, 쉬라즈)
II. 뉴질랜드
1) 북섬(North Island): 기스번(Gisborne), 혹스베이(Hawkes Bay), 마틴버러(Martinborough)
봄에 서리가 내렸고 꽃이 피는 동안 기후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수확량이 많지 않으며 2014년에 비해 전체 생산량이 27% 정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혹스베이와 와이라라파(Wairarapa)가 그 중에서 가장 피해가 크다. 하지만 살아남은 포도는 그 이후의 좋은 기후 덕분에 끝까지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따라서 전체적인 품질은 좋을 것으로 기대된다. (추천 품종: 까베르네 소비뇽, 피노 누아, 시라)
2) 남섬(South Island): 말보로(Marlborough), 캔터베리(Canterbury)/와이파라(Waipara), 센트럴 오타고(Central Otago), 넬슨(Nelson)
봄 서리는 북섬뿐 아니라 남섬에도 영향을 주었고, 봄에 온도가 낮아서 대부분 와이너리의 포도 수확량이 20-30% 감소했다. 특히 넬슨과 와이파라의 피해가 심한데, 와이파라는 예년에 비해 수확량이 53%까지 감소했다. 하지만 그 이후 상황은 북섬과 비슷하다. 매우 건조한 여름과 뜨겁지 않은 기후 덕분에 살아남은 포도는 이상적인 조건에서 자랐다. 따라서 뉴질랜드의 양조자들은 전체적으로 2015년의 품질에 대해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추천 품종: 소비뇽 블랑, 피노 누아, 리즐링, 샤도네이)
III. 남아프리카 공화국(South Africa)
한 해 동안 온 나라가 매우 건조했다. 하지만 온도는 상대적으로 높지 않아 시원했다. 이는 뜨거운 여름이 일반적인 이 나라에서 이례적인 일로, 포도가 자라는 데 이상적으로 작용했다. 2015년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꿈같은 한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매우 신이 나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양조자들의 말을 들어보자. “내가 100살까지 산다 해도 올해 같은 해는 다시는 못 볼 것 같아요”, “엄청난 한 해에요”, ”포도가 건강하고 껍질도 단단해서 2013년과 2014년보다 더욱 집중되고 진한 풀바디 와인이 나올 것으로 기대됩니다”
단 한 가지 부정적인 요소는 늦가을에 산불이 났다는 것인데, 좋은 기후 덕분에 다들 2주는 먼저 수확을 했기 때문에 이에 따른 문제도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런 좋은 기후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모든 와인 산지에서 공통적이므로 이 나라의 모든 양조자들에게 2015년은 축복의 한 해라 할 수 있다.
[와이너리는 다양하지만, 양조자들의 관심은 똑같다.
“올해 기후는 어떨까?” “올해는 어떻게 해야 맛있는 와인을 만들 수 있을까?” @소노마 카운티]
IV. 미국
1) 나파 밸리(Napa Valley)
지난 3년간 나파 밸리는 풍성한 수확을 했다. 하지만 올해는 나파 밸리의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캘리포니아의 가뭄 때문에 나파 밸리의 수확량이 감소할 거라는 사실. 정확했다. 포도나무에는 지난 해보다 포도가 훨씬 적게 열렸다. 포도나무마다 균일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개화 시기의 추운 날씨는 이런 상황을 악화시켰다. 어떤 지역에서는 작년보다 50%에서 90%까지 생산량이 감소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살아남은 포도의 품질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훌륭했다. 2013년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2014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좋은 품질의 와인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와이너리마다 품질의 차이는 분명히 있어 보인다. 뜨거운 여름 때문에 포도의 당도를 잘 다스리는 것이 하나의 도전 과제가 됐던 해다. (추천 품종: 까베르네 소비뇽, 샤도네이, 멜롯, 시라, 진판델 모두 잠재력이 있다. 하지만 품질과 수확량은 포도밭마다 다르다.)
2) 소노마 카운티(Sonoma County)
소노마 카운티의 모든 생산자들 역시 한 해의 시작부터 캘리포니아의 가뭄 때문에 걱정이 가득했다. 하지만 2월과 4월에 내린 비는 포도나무에 힘이 됐다. 그런데 이 비와 추운 봄 온도 때문에 소노마 코스트(Sonoma Coast)의 몇몇 지역의 수확량은 크게 감소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소노마 카운티의 수확량은 지난 해에 비해 30% 가량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여름부터 10월까지 따뜻하고 햇볕 가득한 날이 계속됐다는 것이다. 덕분에 피노 누아와 샤도네이의 품질은 인상적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까베르네 소비뇽과 멜롯, 진판델 같은 레드 품종들도 잘 익은 풍미를 보여준다. (추천 품종: 러시안 리버 밸리의 피노누아와 샤도네이, 알렉산더 밸리의 까베르네 소비뇽)
3) 파소 로블스(Paso Robles)
파소 로블스도 올해 캘리포니아의 가뭄에 직격을 맞아 평균보다 수확량이 50%가 감소했다. 하지만 이곳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포도알의 작은 크기 덕분에 집중도는 매우 높아졌다. 포도알의 색도 이례적으로 진한 색을 보인다. 초여름에는 선선한 기후가 이어졌는데, 론 지역 품종을 많이 재배하는 이 지역의 특성상 이러한 기후는 와인에 멋진 스파이시함을 더한다. 늦여름의 뜨거운 기후로 포도는 충분히 잘 익었고 풍부한 탄닌이 생성됐다. 7월에 내린 비도 큰 도움이 됐다. 전체적인 레드 품종의 품질이 좋지만 특히 무드베드르가 올해의 스타가 될 것이란 의견이 많다. (추천 품종: 무드베드르와 그르나슈 같은 론 지역 품종들, 까베르네 소비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