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신우 셰프의 생각의 발견] 신김치와 묵은지

“나이 드니까 신맛이 싫어지더라”
‘겉절이의 여왕’이란 칭호를 40년 내내 지켜오신 나여사님(나는 어머니를 대외적으로 나여사님이라 부른다)의 말씀이다. 어머니의 나물 겉절이 비법은 식초와 참기름의 적절한 비율이였다. 적당히 고소하고, 적당히 새콤한 비법 양념장이 제철 나물과 만나면 산뜻하면서 입안에 침을 고이게 했다. 
 
봄빛이 완연한 계절이면 엄나무순이나 참두릅을 소금물에 살짝 데쳐, 비법 초고추장과 함께 밥상에 차려 내셨는데 의례 아버지는 찬장에 고이 모셔두었던 약주를 꺼내 반주로 즐기시는 것이 일상의 모습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 모습을 보고 자랐으니 내게 술은 음식을 더 맛있게 하는 또 다른 의미의 음식이었다. 
 
그런데 환갑을 훌쩍 넘기신 나여사님이 유달리 신맛을 싫어하시며 우리 집 밥상에 새콤한 맛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묵은 김치보다는 햇김치를, 동동주보다는 막걸리를, 양념갈비보다는 생갈비를 선호하셨다. 내겐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사실 이젠 거의 부엌일에서 손을 놓으셨기 때문에 어머니의 손맛은 멀리 전래동화 속 이야기처럼 아련해졌다. 어느 해인가 김장을 담그는데 김치에 들어갈 양념의 간을 맞추시면서 그러셨다.
 
“이게 짠 거니, 싱거운 거니?”
 
그 순간 깨달았다. 이제 더 이상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밥맛은 추억 속에나 있는 것이구나. 해마다 어머니의 김치는 점점 더 간이 세진다. 맛을 느끼는 미각이 떨어지니 자꾸 맛이 부족한 듯 느껴지고, 무언가 추가하는 재료가 늘어간다. 어떤 음식이든 필요 이상으로 많은 재료가 들어가면 그 본연의 맛을 감추는 경우가 많다. 정말 좋은 음식이라면 좋은 재료와 균형, 보관 능력만 갖춰도 충분하다. 
 
어머니의 미각이 흐릿해지며 우리 집에서 사라진 음식 중 가장 아까운 것이 바로 묵은지다. 어머니는 묵은지와 신김치를 구분하지 못하신다. 아니, 보통 사람들 중에서도 이 둘을 구분 못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신김치는 숙성이 빨리 되면서 빨리 익어 신맛이 나는 김치다. 일반 김치도 실온에 하루만 내놓으면 익어버린다. 냉장고에 보관해도 김치 뚜껑 열기를 수없이 반복하면 금세 익은 김치가 된다. 신김치는 공기와 접촉하면 호기성 세균이 증식되고, 산막이 형성되면 새콤한 맛이 절정을 이룬다. 그때가 딱 좋고 그 이상 두면 곤란하다. 이 수준을 넘어서면 연부현상으로 인해 부패가 시작된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암처럼 기분 나쁜 기포가 발생하며, 군덕내가 나기 시작한다. 이때는 버려야 한다. 씻어먹어도 안 된다. 그냥 버려야 한다.
 
세상에 정말 불쌍한 친구들을 많이 봐왔지만 그 중 기억나는 한 친구는 혼자 자취생활을 오래하던 K군이다. 그의 원룸 한 켠에는 중고 직거래 장터에서 구입한 냉장고 하나가 있었고 그 안에는 아주 오래 전 구입해 먹다 남은 김치가 사망한 채로 잠들어 있었다. 어느 날 해장을 하자며 그가 끓여낸 찌개가 그 김치를 넣은 ‘캔 참치 김치찌개’였다. 
 
“형, 이거 묵은지인데 맛이 왜 이렇죠? 이상하다. 묵은지 김치찌개 집 김치찌개는 맛있던데...” 
 
순간 나는 배트맨처럼 벌떡 일어나 이단 옆차기로 후배를 쓰러뜨렸다. 신김치는 찌개용으로 그만이다. 특유의 새콤한 맛이 매콤한 맛과 어울리며 두부와 고기 같은 단백질과 함께 고소하면서도 감칠맛을 낸다. 하지만 너무 익어 상한 김치는 아무리 씻어 고춧가루 한 통을 들이부어 끓여도 맛이 나지 않는다. 군내 나는 쓰레기통 음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먼저 ‘묵은지’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묵은지는 장기간 서서히 숙성되어 신맛이 적고, 특유의 쩡하고 시원한 맛이 여운으로 남는다. 그래서 묵은지는 일반 김장 김치와는 다르게 소금간을 조금 더 세게 잡아 재우고, 젓갈이나 속 재료를 가능한 줄여 이취를 줄이며 김치 고유의 식감이 오래 유지되도록 한다. 묵은지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과정은 밀봉해 공기를 차단하고 온도를 유지하는 일이다. 덕분에 묵은지는 씻어서 돼지고기나 등갈비, 참치 등을 곁들여 찌개를 끓이거나 찜이나 쌈 요리 등에 이용하면 특유의 향과 식감으로 식도락가들의 별미로 인정받는다. 다만 묵은지는 그 자체의 변형된 풍미를 즐기는 것이지 그 안에 잘 익은 신김치가 지닌 영양소를 기대할 수는 없다. 김치 먹고 건강해졌다는 건 잘 익은 김치로나 가능한 일이다. 신김치처럼 유산균이 살아 있는 김치여야 한다. 묵은지는 더 이상 건강식품이 아니다.
 
나는 나여사님께 당신이 싫어하시는 음식은 신김치이고, 아버지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묵은지라고 수도 없이 말씀드렸지만 여전히 어머니의 김치 냉장고 속 김치는 모두 묵은지로 통한다. 어머니는 저 김치가 스스로 죽어 묵은지가 되길 기다리고 있다. 애도의 기간을 끝낸 김치는 여전히 어머니가 싫어하시는 사망한 묵은지 김치찌개로 밥상에 오를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해마다 묵은지용 김치를 별도로 담는다. 물론 아버님께 분양도 한다.)
 
나 여사님의 애지중지하는 전시용 술 찬장에는 묵은지 같은 와인이 한 병 들어있다. 내 기억에 아마 그 와인은 5년은 족히 넘은 듯하다. 추석 즈음해 선물용으로 2병이 세트로 들어온 와인인데 전형적인 뱅 드 따블(vin de table)인 테이블 와인이다. 한 병은 이모부께서 드셨고 남은 한 병은 아직 보관 중이다. 아시다시피 이 등급의 와인은 단순히 포도즙을 발효시켜 얻은 알코올이 함유된 와인이다. 다시 말하자면 가볍게 반주용으로 식사와 즐길 수 있는 와인이다.
 
주워들으신 게 많은, 귀여우신 나여사님은 와인을 오래 두면 가격이 올라간다고 생각하신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중간 과정은 모두 생략하셨다. 어떤 품종을, 어떤 재배 방법으로, 어떻게 수확하고 제조하며 병입해, 언제 마시면 좋은 와인으로 당신 곁에 찾아 왔는지는 전혀 궁금해 하시지 않는다. 그냥 오래 두면 묵은지가 되는 줄 아신다.
 
덕분에 테이블 와인은 신김치를 넘어서서 묵은지도 아닌, 부쇼네(Bouchonne)가 확실한 와인이 되어있다. 내 기필코 언젠가 저 와인을 장기보관 가능한 2016년산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몰래 바꿔치기하고 말 것이다. 
 
[생각의 발견]
생활 속 음식을 통해서 발견하는 생각의 차이, 그리고 그 차이가 만들어 내는 맛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맛있는 순간을 놓치고 있진 않나요? 와인과 함께 한다면 더욱 맛있어지는 삶의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프로필이미지정신우 셰프

기자 페이지 바로가기

작성 2016.04.26 18:20수정 2016.05.13 10:10

Copyrights © 와인21닷컴 & 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 이벤트 전체보기

최신 뉴스 전체보기

  • 와인업계종사자

이전

다음

뉴스레터
신청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