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스토리

새해엔 그르기치(Grgich)처럼!


[수 십년간 마이크 그르기치를 보필한 마리엔 웨드너]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한 비전, 뚜렷한 신념, 그리고 확고한 의지가 필요한 요즘이다. 정유(丁酉)년을 시작하며 그르기치 힐스 이스테이트(Grgichi Hills Estate)의 마리엔 웨드너(Maryanne Wedner)와 그르기치 가족의 일원인 마야 예라마즈(Maja Jeramaz)를 만났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이크 그르기치를 보필한 마리엔 웨드너는 그에게서 와인뿐만 아니라 인생을 배운다고 한다. 그녀는 와이너리의 철학이기도 한 그의 말을 전했다. “매일 최선을 다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새로운 걸 배우세요. 365일이면,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을 거에요.” 아직 1월, 새해를 그의 말을 가슴에 새기며 그르기치 힐스 와인으로 연다면, 그 매일의 정진에 왠지 행복이 깃들 것만 같다.

 


[마이크 그르기치- '파리의 심판'의 주역이다]

 

그르기치 힐스는 가난한 크로아티아 이민자 마이크 그르기치(Mike Grgich)가 1977년 설립한 와이너리다. 그는 1976년 ‘파리의 심판’에서 프랑스 부르고뉴 화이트 와인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샤토 몬텔레나(Chateau Montelena)’의 샤르도네를 만든 장본인이다. 그르기치는 1923년 크로아티아의 한 농가에서 11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제 중 유일하게 정규 교육을 모두 받은 그는 자그레브 대학에서 포도재배 및 양조를 전공했다. 공산 시절 크로아티에선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는데, 그는 교수가 짧게 전한 캘리포니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미국에 대한 동경을 갖게 된다. 공산주의 체제 안에서 불행했던 그에게 미국은 천국 같았다. 1954년 그르기치는 미국으로의 이민을 꿈꾸지만, 실패하고 서독으로 이주했다. 독일에서 그는 농업, 특히 토양과 씨앗에 대한 공부와 경험을 쌓았다. 이후 그는 캐나다 밴쿠버로 넘어가 허드렛일을 하며, 영어 공부를 했고, 1958년 꿈에 그리던 미국 나파 밸리에 입성한다.

 

그르기치는 나파 밸리에서 수버랭 셀러와 크리스찬 브라더스(Christian Brothers) 등에서 경력을 쌓은 뒤 보리우 와이너리(Beaulieu Vineyard)에서 미국의 전설적인 양조가인 안드레 첼리체프(Andre Tchelistcheff)에게 와인기술을 배웠다. 안드레 첼리체프는 러시아 태생으로 크로아티아어를 할 수 있었기에 그르기치는 그로부터 굉장히 많은 걸 배우게 된다. 이 두 사람은 미국에서는 최초로 레드 와인 양조에서 의도적인 젖산발효(Malolactic Fermentation, 와인의 산미를 부드럽게 해주는 과정)를 도입했다. 이후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 Winery)에서 최고 와인양조가로 활동했다. 그르기치는 1972년부터 샤토 몬텔레나(Chateau Montelena)에서 일했다. 100년 넘게 버려져 있던 몬텔레나의 잔해에서 그 원형을 찾고, 포도 재배 및 양조까지 모든 일이 그의 책임이었다. 그가 만든 1973년산 샤토 몬텔레나 샤르도네가 1976년 파리의 심판에서 우승한 일은 미국을 세계 중요 와인산지에 이름을 올리고, 그의 몸 값 또한 천정부지로 치솟게 했다.

 

하지만, 그는 정상적인 은퇴 후, 거대 커피 사업체를 접고 와이너리를 시작하고자 한 오스틴 힐스(Austin Hills)와 함께 1977년 7월 4일 미국의 독립 기념일에 자신의 와인을 만들기 위한 첫 삽을 떴다. 현재 그르기치 힐스 이스테이트는 다양한 토양과 품종을 연구하여 5개의 포도원을 조성했다. 초창기엔 계약 농가에서 포도를 구매하기도 했지만, 2000년부터는 완전히 직접 재배한 포도로만 와인을 양조한다. 자가 수확 포도만을 사용하고, 양조 및 병입까지 모든 과정이 와이너리 내에서 이루어지기에 이름 또한 그르기치 힐스 이스테이트(Grgichi Hills Estate)에 이스테이트 그로운(Estate Grown)이 붙는다. 그르기치 힐스는 부채가 전혀 없이 현금 자산으로 운용되며, 2006년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나파 밸리 가장 남쪽에 위치한 아메리칸 캐년(American Canyon)은 서늘해서 소비뇽 블랑, 샤르도네, 메를로, 카르네로스(Carneros)는 샤르도네, 메를로, 소비뇽 블랑, 카베르네 프랑, 욘트벨(Yountville)은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쁘띠 베르도, 러더포드(Rutherford)는 카베르네 소비뇽과 쁘띠 베르도, 마지막으로 북쪽 가장 더운 기후를 지닌 칼리스토가(Calistoga)에서 진판델,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쁘띠 시라를 재배한다.

 

그르기치 힐스 와이너리의 연간 생산량은 7만 케이스(약 80만병)이며, 그 중 절반이 샤르도네다. 그르기치의 생산량은 나파 밸리 부티크 와이너리의 평균 30만병을 넘어서며, 품질과 규모면 모두 미국 나파 밸리의 주류가 되는데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르기치 힐스는 레드 와인의 경우 전부 젖산발효를 시행하며, 화이트 와인은 젖산발효 대신 효모와 접촉시켜 탁월한 질감과 복합성을 얻는다.

 

 

그르기치 힐스 샤르도네 2012 Grgich Hills Chardonnay
그르기치 힐스의 대표 와인이다. 2012년은 이후 3년간 이어진 미국 나파 밸리 가뭄이 시작된 해이다. 와인은 양조 후 효모와 접촉하며, 일주일에 한번 오크 통을 돌려주는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은 마개를 열어 막대로 효모찌꺼기를 저어주는 과정과 달리 불필요한 산소 접촉을 피하게 해 안정적인 결과를 낸다. 최대 5700리터까지 넣을 수 있는 오크 통에서 숙성되며, 40%정도는 새 프랑스산 오크통을 사용한다.

 

잔에 와인이 따라지는 순간, 그 점성이 느껴지며, 와인은 볏짚 색이 섞인 14K금빛을 낸다. 브랑스 부르고뉴의 뫼르소(Meursault) 와인과 유사한 향이 난다. 말린 씨앗, 마카다미아, 시트러스, 딱딱한 흰 복숭아 향이 좋으며, 미네랄 풍미 또한 두드러진다. 입에서는 무엇보다 아름답고 오래도록 이어지는 산미가 좋다. 와인만으로도 정말 맛있고, 다양한 음식, 특히 샤브샤브나 스키야키, 나베 등의 익힌 채소가 내는 단맛과 감칠맛에 환상적인 조화를 보인다.

 

그르기치 힐스 진판델 2012 Grgich Hills Zinfandel
나파 밸리에 도착해 첫 아침을 맞이한 그는 마치 크로아티아에 있는 듯한 기분을 맛본다. 그의 눈에 띈 포도 송이의 모습이 크로아티아에서 늘 보던 포도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훗날 그는 미국 유씨데이비스(UC Davis)대학의 교수를 크로아티아로 보내 자신이 기억하는 포도 나무 분석을 의뢰했다. 그 결과, 크로아티아에서 자라는 포도는 ‘진판델의 아버지’로 여겨질 정도로 진판델과 유연관계가 가까운 품종으로 확인됐다. 그 때문일까? 마이크 그르기치는 실제로 진판델 품종을 참 좋아한다고 한다.

 

미국의 진판델은 육중하고 무겁다고 알려졌지만, 그르기치 힐스 진판델은 이 와이너리의 와인 중 가장 가벼운 와인이다. 칼리스토가는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멀어 바다과 안개의 영향을 덜 받는다. 진판델은 포도 송이의 어깨가 크고 알이 빽빽하여, 송이 전체의 포도알이 고루 익지 않는다. 따라서, 전체가 익도록 기다릴수록 포도 송이는 지나치게 높게 당도를 갖게 되며, 그 결과 고알콜 와인이 되고 만다. 이에 그르기치 힐스에서는 수확기 먼저 익는 어깨 부분을 한 송이 한 송이 직접 잘라내고 포도 송이의 아래부문만 일찍 수확한다. 이로 인해 와인은 가볍고 적당한 알코올을 갖는다. 양조 시 미국산 오크통을 쓰면 진판델의 딸기 향을 더 잘 살릴 수 있으나, 그르기치 힐스에서는 프랑스산 오크 통에 숙성하여 보다 세련된 풍미를 담는다.

 

와인은 보랏빛을 낸다. 잘 익은 딸기, 라즈베리, 라즈베리 페이스트 향이 주를 이루며, 후추와 타임 향이 변화를 준다. 입에서는 산미가 참 좋아 14.5%의 알코올을 느낄 수 없으며, 스파이시함과 짭짤함을 동반한 감칠맛이 와인을 참 맛있게 한다. 약간의 먼지 향 같은 미네랄, 흑연 느낌도 있으며, 긴 여운도 좋다. 크랜베리 소스를 곁들인 다갈색으로 구운 칠면조, 최소한 구릿빛에 윤기 잘잘 흐르는 닭 다리 요리가 마구 떠오르는 음식을 부르는 와인이다.

 

그르기치 힐스 카베르네 소비뇽 2012 Grgich Hills Cabernet Sauvignon
전형적인 보르도 블렌딩, 즉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쁘띠 베르도, 카베르네 프랑이 섞인 와인이다. 미국 와인 법규상 와인 레이블에 품종이 표기된 경우 75%이상 그 품종을 써야 하는데, 이 와인은 카베르네 소비뇽이 86%나 사용됐다. 이는 평소 그르기치 힐스 와인에 들어가는 카베르네 소비뇽 비율인 75~79%보다 무척 높은 수준이다. 이유는 가뭄으로 포도 송이와 알이 작아 농축된 풍미를 지닌 카베르네 소비뇽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2012년은 미국에서 ‘그레이트 빈티지(Great Vintage)’로 여겨지며, 와인의 잠재력은 40년이 넘는다고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와인은 짙은 보랏빛을 낸다. 카시스, 커런트 등의 풍미가 주를 이루며, 구조, 질감, 균형, 여운이 매우 좋다. 쁘띠 베르도가 아주 소량 사용되었지만, 그 익은 정도가 적당하여 와인에 서늘하고 신선한 느낌을 잘 전달하고 있다.

 

와인 기자로 마이크 그르기치의 업적을 접할 때면, 늘 경외감이 든다. 페이스북으로 그르기치 힐스 이스테이트를 팔로잉하다보니, 자주 마이크 그르기치가 포도원에서 혹은 양조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다. 영원히 젊고 활기찬 그의 눈빛은 쉽게 자신의 목표를 잊고 함부로 사는 내게 다시 고삐를 쥐게 하는 힘이 되곤 한다. 그르기치 힐스 샤르도네의 향을 맡고 와인을 넘기며, 94살의 마이크 그르기치가 그간 와인에 담아온 기운을 마음으로 삼켰다. 든든한 아군을 얻은 기분, 이대로 한 해가 무탈할 것 같은 좋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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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17.01.16 11:56수정 2017.02.02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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