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끼르야니(Kir-Yianni)포도원 전경, 사진: Studio Adapter 윤동길]
한국뿐만 아니라 대부분 국가에서 그리스 와인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그리스는 3천 년에 이르는 와인 생산 역사와 300여종에 달하는 토착 품종을 지닌 매우 흥미로운 와인 생산국이다. 최근 몇 년 그리스가 경제 위기를 겪자, 와인 생산자들은 해외시장에 노력을 기울였다. 기존 와인과는 확연히 다른 향과 맛을 내는 그리스 토착 품종 와인들은 와인 애호가들의 관심과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그리스 토착 품종인 시노마브로(Xinomavro)로 만든 레드 와인은 고품질에 독특한 정체성을 갖춰 주목할 만 하다. 한번 맛보기만 하면 그 누구도 빠져 나오기 힘든 마력을 지닌 그리스 북부 나우싸(Naoussa) 와인을 만나봤다.
포도와 와인의 신 ‘디오니소스’의 고향이자 시노마브로의 대표산지 나우싸(Naoussa)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Macedonia)에 속한 나우싸(Naoussa)는 베르미오(Vermio)산 북동쪽에 자리한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나우싸는 ‘포도와 와인의 신’ 디오니소스가 태어난 곳 이자, 그의 어머니 세멜레(Semele)의 고향이다. 또한 디오니소스의 스승인 실레노스(Silenus)가 활동한 곳으로 오늘날까지 포도와 와인의 도시로 불리는 곳이다.

[베르미오(Mt. Vermio)산이 보이는 나우싸 포도원, 사진:Studio Adapter윤동길]
나우싸의 포도원은 총 700헥타르 규모, 해발고도 100~350m사이에 자리한다. 석회가 섞인 점토 토양에 서늘한 지중해성 기후를 지닌다. 베르미오 산은 차가운 북풍을 막아주고, 포도원은 대체로 남향 혹은 남동향으로 배치된다. 주요품종으로 ‘시고 검다’는 의미의 시노마브로(Xinomavro)를 재배한다. 시노마브로 품종은 토양과 미세기후에 영향을 많이 받는 재배가 까다로운 품종이다. 나우싸에서 만든 시노마브로 와인은 ‘달콤한’느낌의 블랙커런트, 시나몬 등의 스파이스에 선드라이드 토마토와 올리브 혹은 올리브 오일 향을 지닌다. 입에서는 산미가 높고, 단단히 조이는 타닌, 무엇보다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을 거라 생각되는 감칠맛이 풍부하다. 여러 생산자의 와인을 비교 시음하니, 토마토와 올리브 향이 스친 피노누아 혹은 네비올로와 비슷하며, 다소 가볍고 섬세한 와인과 무거운 와인으로 스타일이 나뉜다. 시노마브로 와인은 산미와 타닌이 높아 수 십 년에 이르는 장기 숙성 잠재력을 지닌다. 당연히 나우싸 시노마브로는 그리스 다른 지역 와인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수 십년 장기 숙성되는 시노마브로 와인들, 사진:Studio Adapter 윤동길]
나우싸는 1950년대 필록세라(Phylloxera, 포도 나무 뿌리를 공격하는 진딧물로 치유가 어렵다.) 피해를 입었다. 1960년대 이 지역 사람들은 양조용 포도 대신 복숭아 나무를 심길 원했다. 하지만, 1897년부터 나우싸에서 와인을 생산한 부타리 가문(Boutaris)의 설득과 노력으로 사람들은 포도원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나우싸는 1971년 시노마브로 100%로 만든 레드 와인으로 그리스 원산지 통제 명칭인 피디오(PDO, Protected Designation of Origin, 프랑스의 AOC와 비슷)등급을 받았다. 시노마브로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거나, 다른 품종을 섞으면 피지아이(PGI, Protected Geographical Indication)등급을 받는다. 1970~1990년대 나우싸에서 가장 오래된 부타리와 끼르야니 와이너리는 15명의 포도 재배자와 와인 양조 전문가를 모아 시노마브로 재배 및 와인 양조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시노마브로 세부 품종 분류, 햇빛 방향, 토양, 포도 나무 수령, 미세 기후에 따른 와인의 차이를 분석하여 더 좋은 품질의 와인을 만들고 있다. 즉, 시노마브로를 가장 잘 아는 와인 생산자들이 모인 곳이 바로 나우싸라 볼 수 있다. 현재 나우싸에는 300명의 크고 작은 와인 생산자들이 활동 중이다.

[그리스 북부 와인협회 회장으로 활동 중인 끼르야니 와이너리 소유주
스텔리오스 부타리(Stellios Boutaris), 사진:Studio Adapter 윤동길]
그리스 북부 와인협회 회장이자 끼르야니(Kir-Yianni) 와이너리 소유주인 스텔리오스 부타리(Stellios Boutaris)에 따르면, 나우싸 지역의 대표품종인 시노마브로는 묵직하고, 흙 내음, 담배, 야생 검은 열매 향이 두드러지며 타닌이 많아 남성적인 와인이 된다고 한다. 1990년대 당시 그의 부친은 인기 국제 품종이었던 시라(Syrah)를 이 시노마브로와 블렌딩하여 그리스 와인을 해외에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해외 시장에서 그리스 토착 품종에 대한 반응이 좋아 본인은 점차 시노마브로 100%의 우수한 와인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는 다른 그리스 와인 산지 및 토착 품종도 앞으로는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와이너리 아르가티아(Argatia)의 오너이자 와인메이커인 하룰라 스핀씨로풀루(Dr. Haroula Spinthiropoulou) 박사는 1989년부터 지금까지 시노마브로를 연구하고 있다. 그녀는 시노마브로 가장 큰 매력을 강력한 개성으로 꼽았다. 말린 토마토, 올리브오일과 같은 풍미를 보여주는 와인은 이 세상의 다른 품종들과 매우 차별화된 개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또한 이 품종은 장기간 숙성할 수 있는 잠재력과 함께 숙성할 수록 더욱 훌륭한 와인으로 거듭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녀는 시노마브로의 연구 결과가 와인 생산자로 하여금 더욱 다양한 와인 스타일에 도전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일부 와인 생산자들이 이 품종으로 과실향이 좀 더 많고, 섬세한 스타일의 와인을 만드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을 밝혔다.
나우싸 지역의 인상 깊었던 시노마브로의 와인들 소개

[끼르야니 아카키스 로제 스파클링, 사진:Studio Adapter 윤동길]
끼르야니 아카키스 로제 스파클링(Kir-Yianni Akakies Sparkling Xinomavro) 2016
예쁜 체리 핑크 빛의 이 와인은 약간의 단맛을 남겨 와인을 처음 접하는 여성들을 유혹하기에 최적화 되어있다. 이름마저 아카시아 란 뜻을 담고 있다. 입에서는 레몬과 홍자몽 맛이 풍부해 아주 상큼하다. 더운 계절, 캠핑에 알맞다.

[아르가티아 시노마브로 와인은 IWSC 2015에서 금상을 받았다.]
아르가티아 시노마브로(Argatia Xinomavro) 2013
루비빛. 꽃과 잘 익은 붉은 과실, 감초 풍미가 농밀하고 세련된 모습이다. 선드라이드 토마토와 올리브 향은 은은하게 베어 있어 가볍게 스친다. 입에서는 즐기기 딱 좋은 산미와 감칠맛을 동반한 짭짤함을 맛볼 수 있다. 와인은 매우 부드럽고 우아하다. 순수성과 깊이가 돋보이며, 숙성 뒤 모습을 기대하게 하는 매력을 지닌 와인이다.

[씨미오풀로스 떼레 에 씨엘(왼쪽)]
씨미오풀로스 떼레 에 씨엘(Thymiopoulos Terre et Ciel) 2015
화강암 토양, 해발고도 500m에서 자라는 평균 42년 수령의 시노마브로의 포도를 수확해 자연 효모로 발효한 와인이다. 붉은 과실 풍미에 복합적인 스파이스 풍미를 담은 와인으로 구조가 좋다. 와인은 섬세함의 끝을 보여준다. 여성적인 피노누아 와인을 선호하는 와인 애호가들의 취향 저격용 와인이다.

[푼디 나우싸 나우쎄아(왼쪽)]
푼디 나우싸 나우쎄아(Foundi Naoussa Naoussea) 2011
더운 여름날 소나기 내린 흙 내음이 강렬한 첫 인상을 주며, 이어 선드라이드 토마토, 모카, 붉은 과실과 감초 향이 느껴진다. 섬세하지만 조이는 타닌, 훌륭한 구조와 골격을 즐길 수 있는 와인이다.

[끼르야니 람니스타]
끼르야니 람니스타(Kir-Yianni Ramnista) 2013
시노마브로 100%로 만들어 색이 진하고, 잘 익은 검붉은 과실, 선드라이드 토마토, 말린 쑥 향을 내며,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파이시함을 지녀 맛이 아주 좋다. 묵직하고 중후하다.
끼르야니 디아포로스(Kir-Yianni Diaporos) 2013
시노마브로에 시라 품종을 섞은 묵직한 느낌의 와인이다. 그리스에서 가장 많은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명실공히 그리스 최고 와인 중 하나다. 시라가 주는 섬세하지만 단단한 타닌에 시노마브로의 선드라이드 토마토와 흙 내음이 함께 해 시장성과 복합성을 지니고 있다.

[부타리 리가시 1897(오른쪽)]
부타리 리가시 1897(Boutari Legacy 1897) 2012
부타리 와인의 최고급 와인으로 특별히 좋은 해에만 생산되는 와인이다. 부타리 가문이 나우싸에서 시노마브로로 와인을 만들어 병입한 첫 해인 1897년을 기념하는 와인이다. 와인은 선드라이드 토마토, 두드러지는 미네랄, 복합적인 스파이스 풍미를 지니고 있으며, 농축미와 단단한 구조감이 훌륭하다.
나우싸의 시노마브로는 상상한 것 이상으로 품질이 좋았고, 다양한 스타일로 양조되고 있다. 시노마브로 와인은 감칠맛을 유난히 선호하는 한국 와인애호가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현재 끼르야니의 와인은 국내 수입 중에 있다. 국내에서도 더욱 많은 스타일의 시노마브로 와인들을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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