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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멘 드 라 로마네 꽁띠 1편 - 포도밭과 와이너리의 역사

[로마네-꽁띠 나무 상자 (출처: 로마네 꽁띠 홈페이지)]


부르고뉴, 꼬뜨 드 뉘 지역, 본-로마네 마을에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Domaine de la Romanée-Conti)가 있다. 890년 생-비방 수도원이 설립되며 역사를 함께 해 온 로마네-꽁띠 밭과 다른 7개 그랑 크뤼만을 생산하는 와이너리이다. 한 동안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이라는 명성을 보유한 곳으로 역사와 와인, 밭에 대한 내용과 재배 양조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1.포도밭의 역사

10세기에 쓰여진 기록에 의하면 고대 스칸디나비아의 부르고뉴 침공 당시, 생-비방(Saint-Vivant) 수도사는 성물을 가지고 끌레르몽(Clermont) 주교가 있는 오베르뉴(Auvergne) 지방으로 피난을 갔다. 이후 손(Saône) 평야로 몸을 피했지만 9세기 말에도 위험이 지속되자 그는 더 높고 방어에 유리한 베르지로 옮겨갔다.


샬롱(Chalon)과 랑그르(Langres), 본(Beaune) 지역의 백작이자 베르지 성의 영주였던 마나쎄(Manassès)가 수도사를 반갑게 맞았다. 그의 삶을 돌아봤을 때 자신이 저지른 수많은 죄악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자 그의 아내인 에르멍제아르(Ermengeard)와 그의 형제이자 오떵(Autun)의 주교인 갈르(Gales)의 조언을 따라 오떵 교구에 베르지 성이 보이며 산으로 둘러쌓여 매우 안전한 곳에 새로운 수도원을 지었다(890). 그 곳에 몇 가지 성물을 모셨고 생-비방 수도사에게 이 수도원을 기증했다. 수도원은 기원후 1000년에 처음 보수를 거쳤고 1095년 11월, 위르방(Urban) 교황에 의해 클뤼니 수도회 소속이 되었다.


끌레르몽 주교에게 이미 모든 영토를 하사받은 수도사는 위그(Hugh) 2세 부르고뉴 공작으로부터 1131년 11월 13일에 그가 소유한 플라제와 본의 미경작 토지를 받았다. 1241년, 시몽 끌레르(Simon Clerc)는 생-비방 수도원에 ‘끌로 데 모안 드 베르지(Clos des Moines de Vergy)에 인접한’ 포도밭을 기증했다. 13세기 전반기에 본에는 처음으로 베르지 수도원장의 영토내에 건물이 생겼고 1270년에 멕스(Meix)를 획득했다. 멕스는 집과 정원, 농지를 포함한 곳이었다.


프랑스 왕 루이 2세가 부르고뉴 공국을 흡수한 지 35년 뒤인 1512년에 생-비방 수도원은 그들의 보유 자산을 공표하도록 강요받았다. 이 공표에서 레 클루(Les Cloux) 포도밭이 언급되었고 구체적으로는 “레 클루 드 생-비방(Les Cloux de Saint-Vivant)”, “클루 드 모이땅(Cloux de Moytan)”, “끌루 데 쌩 주르노(Cloux des Cinq Journaux” 그리고 이 3개와 동떨어져있는 3 파셀의 밭이었다. 1512년에서 1584년까지 “끌루 데 쌩 주르노”는 “크로 데 끌루(Cros des Cloux; 미래의 로마네-꽁띠 밭)”로 바뀌었다. 1584년 2월 19일에 생-비방 수도원은 크로 드 끌루를 끌로드 꾸장(Claude Cousin)에 매각(영구 리스)한다. 이 당시 프랑스는 발로아 왕조가 막을 내리고 부르봉 왕조가 들어섰다. 1603년, 끌로드 꾸장의 조카 제르망 다농(Germain Danon)이 크로 끌루를 상속받는다. 1621년, 제르망 다농은 쟈크 브노(Jacques Venot)에게 크로 끌루 밭을 매각한다.


1651년에 생-비방 기록에 적힌 글 ‘본 지역의 리유-디 라 로메네에 포도가 심긴 두 부분의 밭’에서 로마네 이름이 최초로 표기된다. 고대 로마의 영향으로 지명이 로마네로 지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밭이 바로 맞닿아 있는 길의 이름은 라지노(Raginots)라고 한다. 그 전에는 ‘성직자의 길(le sentier des Prêtres)’라고 불렀고 본에서 뀌르띨-베르지(Curtil-Vergy)를 이었다. 오늘날 이 길은 로마네-꽁띠 밭과 리쉬부르를 구분짓는 역할을 한다. 이 길은 로마인들이 건설한 길이고 그 때문에 ‘로마네’ 라는 이름이 붙었다.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의 역사 (출처: danielohwine.com)]


1760년 7월 18일에 꽁띠 왕자인 프랑소아 루이 드 부르봉(François Louis de Bourbon)이 앙드레 드 크루넝부르(André de Croonembourg)로부터 로마네 밭을 매입한다. 그는 1744년에 이탈리아 군대를 지휘했고 1747년부터 1757년까지 루이 15세의 첩보 기관의 수장으로 활동했다. 로마네 밭 매입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호화로운 시기에 이뤄졌다. 꽁띠가 접미사로 붙은 “라 로마네-꽁띠” 이름은 1794년에 처음 등장한다. 1763년 꽁띠 왕자는 2파셀의 “멕스 끌로(Meix Clot)” 밭(현재의 고이요뜨(Goillotte))을 추가로 획득하며 로마네 와인 양조와 숙성을 위한 건물을 건설한다.


꽁띠 왕자의 밭 매입 5년 뒤인 1765년 생-비방 수도원에 의해 쓰여진 임대 계약서를 통해 “라 로마네 드 생-비방”이라는 이름이 처음 언급된다. 계약서에는 꽁띠 왕자에게 18개 주르노(Journaux) 밭을 임대한다고 표기되어있다. 이 밭에는 1512년에 언급 된 “르 끌루 데 네프 주르노(Le Cloux des Neuf Journaux), 르 끌루 드 모이땅(쌩 주르노), 르 끌루 데 꺄트르 주르노”를 포함한다. 이 때 언급 된 “라 로마네 드 생-비방” 밭은 오늘 날 로마네 생-비방 이라고 불리운다.


1776년 루이 프랑소아 드 부르봉이 세상을 떠나며 그의 마지막 아들인 조셉 드 부르봉(Joseph de Bourbon), 꽁띠 왕자가 자산을 계승한다. 1789년, 로마네-꽁띠와 로마네-생-비방 밭이 몰수당하고, 7월 14일 바스티유 혁명으로 교회 보유 자산들이 세속화된다. 꽁띠 왕자는 1793년에 마르세이유 생-쟝(Saint-Jean) 요새에 수감되고 1월 21일에는 루이 16세가, 10월 16일에는 마리-앙또아네뜨가 축출된다. 1794년 2월 13일에 로마네 밭에서 생산 된 와인이 처음 선보여지고 7월 6일 처음으로 “로마네-꽁띠” 이름을 사용해 두번째 출시에 성공했다. 12월 24일 로마네 와인은 니꼴라 드페 드 라 누에르(Nicolas Defer de la Nouerre)에게 경매 최고가에 낙찰된다.


1797년 9월 5일, 법률 19조에 의해 부르봉 왕가 가문은 추방당하고 마지막 꽁띠 왕자는 바르셀로나에서 1814년 생을 마감한다. 1819년 쥘리앙-쥘 우브라르(Julien-Jules Ouvrard)가 로마네-꽁띠 밭을 매입한다. 1828년 5월 19일 쥘리앙-쥘 우르바르는 질리(Gilly) 성으로 거처를 옮겼고 1830년 로마네 꽁띠는 끌로 드 부조에 의해 생산되기 시작한다. 1861년6월 22일 쥘리앙-쥘 우브라르가 세상을 떠나고 조카 딸과 아들 호슈슈아르(Rochechouart)가 로마네-꽁띠를 물려받는다. 1869년 8월 7일, 호슈슈아르는 폴 귀예모(Paul Guillemot)에게 로마네-꽁띠 밭을 매각하고 11월 25일에 에셰조와 그랑-에셰조 밭을 가진 자크-마리 뒤보 블로셰(Jaques-Marie Duvault Blochet)가 로마네-꽁띠 밭을 매입하며 지금까지 로마네-꽁띠를 소유한 가문의 역사가 시작된다.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 가문의 역사 (출처: danielohwine.com)]


2.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의 역사

쟈크-마리 뒤보(Jacques-Marie Duvault, 1789-1874)는 소피 블로셰(Sophie Blochet)와 결혼했다. 상트네 출신인 그는 와이너리와 네고시앙의 오너이자 꼬뜨 도르 지역의 컨설턴트였다. 그는 자신의 양조학 업적 덕분에 부르고뉴에서 가장 유명했다. 그의 나이 79세가 되는 1869년에 그는 드디어 로마네-꽁띠를 손에 넣었다. 그가 죽은 뒤 포도밭은 다른 많은 유산들과 마찬가지로 가족의 품에 남아있게 되었고 두 딸인 끌로딘-꽁스땅스 마쌍(Claudine-Constance Massin)과 엉리에뜨 뒤쀠(Henriette Dupuis)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끌로딘-꽁스땅스가 과부가 된 뒤 1883년 그의 딸 가브리예 샹봉(Gabrielle Chambon)에게 그녀의 몫을 물려줬고 가브리예는 이를 1885년 이모인 엉리에뜨 뒤쀠에게 양도했다. 1887년 엉리에뜨가 죽은 뒤 직계 상속인이 없자 포도밭은 그녀의 여자형제와 조카들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곧 두명의 후손이자 가브리엘 샹봉(1857-1903)의 자식과 쟈크-파리 뒤보-블로셰의 증손주인 쟈크 샹봉(Jacques Chambon, 1889-1969)과 여자형제인 샹봉가문 출신의 마리-도미니끄 고당 드 빌랜(Marie-Dominique Gaudin de Villaine, 1883-1915)에게 돌아갔다. 고당 드 빌랜(Gaudin de Villanine) 가문은 현재의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의 절반을 차지하며 유지되고 있다. 에드몽(Edmond, 1881-1950), 엉리(Henri, 1909-1998), 오베르(Aubert)가 가문의 후손이자 공동 상속인으로 남게되며 성공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엉리는 엘렌 지노비에브(Hélène Zinoviev)와 결혼해 오베르가 태어났고 쟝은 시몬-마리 드 프랑스(Simone-Marie de France)와 결혼해 슬하에 엉리(그의 형제와 이름이 같은)를 얻었다.


1933년에 리제르-벨레르(Liger-Belair) 가문으로부터 따슈 졸리 드 베비(Tâche Joly de Bevy) 밭을 획득한다.(이 밭은 루이 리제르-벨레르(Louis Liger-Belair)가 1815년에 매입한 밭).

1942년에 쟈크 샹봉은 엉리 르로아(Henri Leroy, 1894-1980)에게 그의 지분을 양도했고 그 해 로마네-꽁띠 신탁이 설립되었다.. 엉리는 옥세-뒤레스의 와이너리와 네고시앙 오너로 그의 두 딸인 폴린 로슈(Pauline Roch, 1929-2009)와 랄루 비즈-르로아(Lalou Bize-Leroy)에게 물려줬다. 폴린은  샤를(Charles, 1957-1992), 이사벨(Isabelle) 그리고 엉리-프레데릭(Henry-Frédéric) 세 자녀를 얻었고 마르셀은 한 명의 딸, 프린 프날(Perrine Fenal)을 가졌다.

1950년 11월 24일 에드몽이 죽고 엉리 드 빌랜(Henri de Villaine)이 뒤를 이어받아 엉리 르후아와 함께 파트너로 로마네-꽁띠를 관리한다. 1963년에는 몽라쉐 밭을 매입하여 화이트 와인 생산을 시작한다. 1966년, 마레-몽주(Marey-Monge)가 로마네-생-비방 밭을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에 임대해준다. 1974년, 신탁의 조건이 변경되어 랄루 비즈-르로아와 오베르 드 빌랜이 매니저로, 엉리 드 빌랜과 엉리 르후아는 감독 이사회에 등록된다.

1979년 고이요뜨 집(꽁띠 왕자가 건립했던 건물)을 매입, 이듬해에 엉리 르후아가 죽고 가장 어린 딸인 폴린(Pauline)이 감독 이사회에 오른다. 1985년에 제라르 마를로(Gérard Marlot)가 포도밭 책임자에 오른다. 1986년 앙드루 노블레(Andrew Noblet)가 셀러 책임자에서 물러나고 그의 아들 베르나르 노블레(Bernard Noblet)가 뒤를 잇는다. 1988년 9월, 로마네-생-비방 밭의 마레-몽주 가문과의 임대 계약이 끝나고 매입절차에 들어간다. 같은 해 포도밭 전체에 유기농법을 도입한다. 1991년 1월, 랄루 비즈 르로아를 대신해 샤를 로슈가 파트너가 된다. 3월 10일 사고로 인해 샤를 로슈가 죽고 형제인 엉리-프레데릭 로슈가 파트너와 매니저 역할을 한다. 1993년 엉리 드 빌랜은 같은 이름의 조카에게 감독 이사회 자리를 내어준다. 1996년 순수한 떼루아의 표현을 위해 7헥타르에서 비오디나미 방식을 시험적으로 도입한다. 1998년, 1954년부터 1970년까지 도멘의 매니저 역할을 한 엉리 드 빌랜이 세상을 떠난다. 2005년 랄루 비즈-르후아의 딸인 프린 프날이 폴린 로슈를 대신해 감독 이사회에 오른다. 2007년 제라르 마를로를 뒤이어 니꼴라 야꼬브(Nicolas Jacob)가 포도밭 총책임자로 임명된다. 2008년에는 전 포도밭에서 100% 비오디나미 농법을 도입하고 같은 해 11월 11일 메로드(Merode) 도멘으로부터 꼬르똥 끌로 뒤 호아(Corton Clos du Roi), 브레쌍드(Bressandes), 르나르드(Renardes) 밭을 매입한다. 2010년 100년만에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의 사무실과 양조장이 이전한다. 2018년 1월, 베르나르 노블레가 물러나고 알렉상드르 베르니에가 새로운 셀러 책임자로 임명된다. 현재 오베르는 조카인 베르트랑 드 빌랜(Bertrand de Villaine)에게 승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알려져있다.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의 8가지 AOP 와인들]


도멘 드 라 로마네 꽁띠의 와인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는 공식적으로 8개의 그랑 크뤼 와인(7개의 레드, 1개의 화이트)을 생산한다. 로마네-꽁띠 그랑 크뤼, 라 타슈 그랑 크뤼, 로마네-생-비방 그랑 크뤼, 리쉬부르 그랑 크뤼, 에셰조 그랑 크뤼, 그랑-에셰조 그랑 크뤼, 꼬르똥 그랑 크뤼 그리고 유일한 화이트 와인인 몽라쉐 그랑 크뤼이다. 하지만 이외에도 몇 가지 와인을 더 생산한다. 가족들끼리 마시기 위해, 그리고 특별한 시음을 위해 바따르-몽라쉐(Bâtard-Montrachet) 그랑 크뤼 와인을, 7개 레드 그랑 크뤼 와인 밭에서 품질이 떨어지거나 어린 나무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드는 ‘본-로마네 프르미에 크뤼 뀌베 뒤보-블로셰(Vosne-Romanée Premier Cru Cuvée Duvault-Blochet)’를 생산한다. 마지막으로 일부 채널을 위해 만드는 화이트 와인 ‘부르고뉴 오-꼬뜨 드 뉘 블랑(Bourgogne Haut-Côtes de Nuits Blanc)’을 만드는데 라벨에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에 의해 병입되었다는 표기(Mis en bouteille par DRC)가 되어있다.


[역대 연간 생산량 (출처: 로마네 꽁띠 홈페이지)]


*꼬르똥(Corton)
2008년 11월 11일부터 도멘 프랭스 플로랑 드 므로드(Domaine Prince Florent de Merode)의 꼬르똥 그랑 크뤼 AOC를 획득했으며 2.28헥타르의 끌로 뒤 로아(Clos du Roi), 브레상드(Bressandes) 그리고 르냐르드(Renardes) 끌리마를 포함하고 있다. 2009년 첫 빈티지를 생산해낼 수 있었다.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가 소유한 총 면적은 2,2746ha(끌로 뒤 로아(Clos du Roi) 0.5721ha, 브레상드(Bressandes) 1.1944h, 르냐르드(Renardes) 0.5081ha)이다.

*에셰조(Echézeaux)
도멘의 모든 와인 중 가장 일찍 제 모습을 보이며 가장 복합적이지 않은 와인이다. 다른 와인보다 더 빨리 꽃피우는 화사한 와인이다. 부드러우면서도 철과 같은 골격을 가졌고 우아하게 발전해가는 와인이다. 그랑 에셰죠의 동생격 와인이다.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가 소유한 총 면적은 4.6737ha이다.

*그랑-에셰조(Grands-Echézeaux)
에셰조에 앞서 “훌륭한” 와인이다. 자신의 말과 함께 이끼와 떨어진 꽃잎, 부식토와 사냥한 고기 냄새로 가득찬 숲을 천천히 그리고 기쁘게 산책하는 변방의 귀족과 몽상가와 같은 와인이다. 이 모든 표현들은 정제되고 음악적이며 간결하면서도 순수한 모차르트의 4중주와 같은 느낌이다.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가 소유한 총 면적은 3.5263ha이다.

*라 따슈(La Tâche)
라 따슈는 우아하면서도 힘찬 와인이다. 주로 단단한 탄닌감을 가지며 불타오르는 열정, 존귀한 아름다움에 예속되는 느낌의 와인이다.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가 소유한 총 면적은 6.0620ha이다.

*몽라쉐(Montrachet)
몽라쉐 와인의 복합미는 필적할 상대가 없고, 그 우아함과 힘은 이 와인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가 소유한 총 면적은 0.6759ha이다.

*리쉬부르(Richebourg)
이웃한 로마네 꽁띠의 비단같이 부드러움과 라 따슈의 단단한 특징을 모두 갖고 있는 와인이 바로 리쉬부르이다. 근엄한 왕의 근위기병 같은 힘과 행복한 웃음과 노래 즐거움이 같이 공존하는 그런 와인이다.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가 소유한 총 면적은 3.5110ha이다.

*로마네-꽁띠(Romanée-Conti)
비단과 같이 부드럽고 매혹적이면서도 미스테리한 왕자의 와인이다. 가장 프루스트 풍에 가까운 뛰어난 와인이다. 1956년 로마네-꽁띠의 마른 비애에서 느껴지는 장미 꽃잎의 비밀스러운 향을 지니고 있다.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가 소유한 총 면적은 1.8140ha이다.

*로마네-생-비방(Romanée-Saint-Vivant)
로마네-생-비방은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는 매혹적인 와인이다. 우아함을 느낄 수 있는 동시에 힘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가 소유한 총 면적은 5.2858ha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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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부르고뉴 와인협회(BIVB) https://www.bourgogne-wines.com/
* 로마네 꽁띠 공식 홈페이지http://romanee-conti.fr
* Gert Crum(2005), LE DOMAINE DE LA ROMANÉE-CONTI, HACHETTE Pratique, ISBN 2-01-23- 6839-5
* Clive Coates(1997), Côte D'Or: A Celebration of the Great Wines of Burgund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ISBN 978-0520212510
* Marie-Hélène Landrieu-Lussigny, Sylvain Pitiot(2014), The Climats and Lieux-Dits of the Great Vineyards of Burgundy, Meurger, ISBN 979-1093608006
* Remington Norman(2011), GRAND CRU The great wines of Burgundy through the perspective of its finest vineyards, Sterling Epicure, ISBN 978-1402785481
* https://en.wikipedia.org/wiki/Domaine_de_la_Roman%C3%A9e-Conti
* http://www.saveursetanthocyanes.com/en/savoir-faire/romanee-conti
* http://www.terredevins.com/actualites/divin-aubert-de-villaine/
* https://www.telegraph.co.uk “10 of the world's most expensive bottles of wine”
* https://www.vitisphere.com “Alexandre Bernier becomes the new cellar master at Romanée-Conti”
* https://www.thedrinksbusiness.com “FINE WINE IN FOCUS: ‘OVERLOOKED’ DRC”

프로필이미지오동환 객원기자

작성 2018.05.16 18:29수정 2018.05.23 11:23

오동환 기자는 2014년 와인21닷컴 미디어 와인전문 기자로 합류했고 현재 와인 수입사 비노쿠스에서 마케터로 근무하고 있다. 2018년 보르도 지방의 마고 지역에 위치한 샤또 라베고스(Château Labégorce)와 그랑 크뤼 클라쎄 3등급의 샤또 마르키 달렘(Château Marquis d'Alesme)에서 포도밭과 와인 양조 근무를 한 경험을 바탕으로 양조와 프랑스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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