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안이 집이죠 뭐. 워낙 많이 돌아다니니까요.” 호세 루이스 고메즈 가르시아(Jose Luis Gomez Garcia)와 라우라 무뇨즈 로호(Laura Munoz-Rojo) 부부가 밝게 웃었다. 이들은 요즘 핫하게 떠오르는 스페인 와인 까사 로호(Casa Rojo)의 오너다. 까사 로호는 스페인 전역에 와이너리를 보유하고 있다. 혹시나 이들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인가 싶었지만 그건 오해였다. 까사 로호는 토착 품종으로 만든 스페인 와인을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지난 10년간 이들 부부가 노력한 결과물이었다.

[까사 로호의 오너인 루이스와 라우라 부부]
루이스는 원래 경제학도였다. 그러다 와인이 좋아 그는 소믈리에 공부도 하고 와인양조도 배웠다. 루이스가 라우라를 만난 것은 양조학을 배울 때였다. 라우라의 가족은 스페인 남동부 후미야(Jumilla) 지방에서 까사 델 로호 와이너리를 4대째 운영하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루이스는 뉴욕에서 라우라는 영국 옥스포드에서 잠시 일할 때였다. 소비자들이 스페인 와인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것이 이들에게는 충격이자 안타까움이었다. 프랑스보다 포도가 일찍 전파됐음에도 스페인 품종은 주류가 아닐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존재였다. 그래서 둘은 스페인 토착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스페인 전역에서 지역별 특색을 살린 와인을 생산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스페인 곳곳을 여행하며 이들은 많은 것을 배웠다. 와이너리마다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이 있고, 테루아와 품종과 노하우가 빚어낸 와인은 개성도 탁월했다. 루이스와 라우는 지역별로 단일 품종 와인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스페인 전역에 와이너리를 설립하기 시작했다. 가능하면 밭을 매입했고 매입이 힘들면 장기 렌트로 밭을 빌렸다. 그렇게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낸지10년, 이제 까사 로호는 창의적인 레이블과 탁월한 품질로 신세대 스페인 와인의 대표주자로 우뚝섰다.
국내에 수입되는 까사 로호 와인은 총9종이다.그중 대표적인 몇 가지를 살펴보자.

[까사 로호의 대표 와인들]
마초맨(Machoman)
마초맨은 까사 로호를 대표하는 와인으로 스페인 남동부 발렌시아 근처 후미야에서 모나스트렐(Monstrell)로 만든다. 모나스트렐은 기원후4세기경에 스페인에 전달된 품종이다. 우리에겐 진한 색상과 강한 타닌으로 잘 알려진 포도지만, 이는 너무 오랫동안 모나스트렐이 블렌딩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후미야는 고도가 높은 곳이 많아 겨울에는 눈도 많이 온다. 마초맨에 쓰이는 모나스트렐은 산 위 높은 곳에 위치한 밭에서 자란다.이 밭은 흙 색깔이 하얄 정도로 석회질이 많다. 포도나무 수령도 높아 늙은 나무는 나이가70에 이르기도 한다.
서늘한 기후, 강렬한 햇빛,석회질 토양, 늙은 나무라는 완벽한 조건에서 생산된 모나스트렐은 산뜻하고 우아한 맛이 탁월하다. 이런 맛을 살리기 위해 까사 로호는 발효 전 포도 침용 시간을 짧게 하고, 섬세한 향이 날아가지 않도록 발효도 서늘한 온도에서 진행한다. 숙성하는 오크 배럴의 토스팅(toasting,내부 그을림)도 최소한으로만 행한다. 덕분에 마초맨은 일반적인 모나스트렐과는 달리 색다른 매력을 뽐낸다. 신선한 붉은 과일향이 많고, 로즈매리, 타임, 유칼립투스 같은 허브향도 느껴진다.발사믹 식초의 맛깔스러움도 매력적이다. 감칠맛이 많이 나는 요리나 버섯이 들어간 요리와 궁합이 잘 맞는다.
알렉산더 vs 더 햄 팩토리(Alexander vs The Ham Factory)
알렉산더 vs 더 햄 팩토리는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에서 자란 템프라니요,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로 만든 와인이다. 까사 로호 와인은 대부분 단일 품종 와인이지만 이 와인만 세 가지 품종이 섞였다. 이는 이 와인을 오랫동안 만들어온 산츠(Sanz) 가족이 리베라 델 두에로의 명품 와이너리인 베가 시실리아(Vega Sicilia)를 모델로 토착 품종과 국제 품종을 함께 기르고 섞어 만들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vs 더 햄 팩토리는 지금도 산츠 가족이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를 이끌고 있다. 산츠 가족은 루이스와 라우라의 오랜 설득 끝에 까사 로호에 합류했다고 한다.
까사 로호의 레이블이 모두 특색 있지만 이 와인 레이블은 더욱 재밌다. 자세히 보면 돼지가 도토리를 먹고 있고 뒷다리에는 의족을 하고 있다. 이 와인이 생산된 아란다 데 두에로(Aranda de Duero)가 리베라 델 두에로에서도 이베리코 돼지로 유명한 마을이어서다.이베리코 돼지가 도토리를 먹고 자라면 고기가 특히 맛있다고 한다. 알렉산더는 레이블에 그려진 돼지 이름이다. 안타깝게도 알렉산더는 햄을 만드느라 한쪽 다리를 잃었다. 그래서 의족을 하고 있다. 레이블이 말해 주는 것처럼 알렉산더 vs 더 햄 팩토리는 돼지고기와 잘 어울린다. 물론 소고기와도 즐겨도 맛있고, 파에야에 곁들여도 별미다.
엘 고르도 (El Gordo)
엘 고르도는 스페인 북부 루에다(Rueda) 지역에서 베르데호(Verdejo) 품종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이다. 베르데호는 풍부한 열대과일향, 묵직하고 부드러운 질감이 특징이다. 이 매력을 더 살리기 위해 까사 로호는 베르데호 와인을 효모 앙금과 같이 숙성한다. 레이블의 뚱뚱한 남자는 엘 고르도가 주는 풍성하고 묵직하며 부드러운 특징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화이트 와인이지만 가벼운 요리보다는 닭고기 같은 가금류와 잘 어울리고 기름을 써서 요리한 채소나 해산물에 곁들여도 좋다.
라 마리모레나(La Marimorena)
이 와인은 레이블에 그려진 물고기를 보는 순간 ‘아, 해산물과 잘 어울리는 와인이구나’하는 느낌이 바로 전달된다. 레이블 바탕에는 희미한 글씨가 빼곡하다. 이 글자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아이스 버킷에 와인을 담가 온도가 내려가면서 마시기 좋은 온도가 되면 배경의 글씨가 파란색으로 바뀐다. 라 마리모레나는 스페인 북서부 리아스 바이샤스(Rias Baixas) 지역에서 알바리뇨(Albariño)품종으로 만든다. 가볍고 섬세하며 경쾌한 매력이 돋보이는 와인이다.
몰토 네그레 (Molto Negre)
몰토 네그레는 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냐(Catalunya) 지방에서 만든 카바(Cava, 스페인에서 전통방식으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다.이 와인에서 주목할 것은 품종이다. 트레파트(Trepat)라는 카탈루냐 토착 품종인데, 이 포도로 카바를 만든 건 까사 로호가 처음이라고 한다.남들이 안하는 짓을 서슴없이 하는 것을 서양에서는 ‘흰 양들 사이에서 튀는 검은 양 같다’고 한다. 그래서 몰토 네그레 레이블에는 검은 양이 그려져 있다. 트레파트가 적포도여서 와인에서 살짝 연어색이 감돈다. 아직 포도 수확량이 많지 않아 생산량은 연간 2만 병 남짓이지만 앞날이 몹시 기대되는 와인이다.
까사 로호의 와인들은 생산량이 많지 않다. 마초맨이10만 병으로 가장 많고, 다른 것들은2~5만 병 수준이다. 이는 까사 로호가 양보다 질을 중시하기 때문이다.흠 없이 좋은 포도로만 와인을 만들기 위해 손수확은 기본이고 기계를 많이 활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수작업에는 루이스와 라우라의 손길도 한몫한다.
이들 부부는 경영과 마케팅에만 전념하는 것이 아니다. 비교적 기후가 더운 리베라 델 두에로와 후미야를 시작으로9군데 와이너리를 모두 여행하며 포도를 함께 기르고 수확하며 와인의 발효와 숙성에도 깊이 관여한다. 루이스가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불쑥 보여줬다.거기에는 와이너리마다 발효 탱크와 배럴룸 상황이 리포트 되고 있었다. 20년 전만 해도 와인을 만들며 해외에서 마케팅 활동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IT의 발달 때문에 서울에서도 모든 상황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고 한다. 루이스는 까사 로호 각 와이너리의 숙련된 실무팀도 강조했다.그들의 전문성과 효율적인 운영이 있기에 루이스와 라우라는 중요한 의사결정만 해도 된다는 것이다.
집에서 편히 쉬는 날이 없을텐데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루이스는 ‘라우라가 있는 곳이 내게는 집이죠’라며 웃었다. 물론 부인에게 점수 따는 발언이겠지만 이들 부부는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좋은 와인은 소비자에게 스토리를 전달하고 소비자를 그 지역으로 데려가주는 와인입니다.” 루이스가 덧붙인 말이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신세대 와인 까사 로호. 스페인 와인의 앞날을 이끌 행동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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