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 재배 및 양조에 관한 연구와 발전은 그 속도와 범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고 넓다. 2018년엔 오스트리아 와인 협회가 3종의 피비(PIWI) 포도를 품질 와인에 허용했다. 그리고 2019년 프로바인에서는 피비 포도에 관한 세미나가 진행됐다. 머지않은 미래 우리가 말하게 될지 모르는 피비 포도, 과연 뭘까?
피비(PIWI)는 곰팡이에 저항성이 있는 포도(Pilzwiderstandsfähige Rebsorten, Pi=Pilz=곰팡이, widerstandsfähig=저항성)라는 독일어의 줄임말이다. 영어로는 펑거스 레지스턴트 그레이프(Fungus-Resistant Grape, FRG로 줄임)라고 한다. 피비 포도는 서로 다른 포도종끼리 교차(Crossing)한 결과이므로, 유전자조작생물(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줄여서 GMO)이 아니다. 이 피비를 찾으려면, 교차로 탄생한 수많은 종류의 포도 중 원하는 결과를 내는 교잡종을 분리해내는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이 필요하다.

[오스트리아에서 와인 양조에 허용된 피비 적포도 뢰슬러, 사진 제공@AWMB]
이런 교차 방법은 프랑스에서 1880년대 흰가룻병(Powdery Mildew)과 노균병(Downy Mildew)에 대처하고자 다소 체계 없이 시작됐다. 이때 탄생한 교잡종은 유럽 비티스 비니페라(Vitis vinifera)와 미국 비티스 라브루스카(Vitis labrusca) 혹은 비티스 리파리아(Vitis riparia)간 교차로 탄생됐다. 이사벨라(Isabella), 콩코드(Concord) 등이 대표적이다. 이 당시 교잡종은 질병에 대한 저항성에만 초점이 맞춰져 와인 품질은 형편없었다. 특히, 와인 애호가가 꺼리는 폭시(Foxy)한 냄새가 났다. <폭시하다>는 메틸 안스라닐레이트(Methyl Anthranilate)라는 에스터계 화합물을 관능적으로 나타낸 표현이다. 냄새는 농도에 따라 음료나 사탕에 첨가하는 인공 포도 향이나 털 코트 냄새로 나타난다.
와인 업계는 최근 10여 년간 유기농법으로 재배된 포도로 만든 와인과 테루아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 결과, 전 세계 소위 유기농 와인은 전체 생산량의 5%를 웃돌 정도로 성장했다. 유기농법으로 포도를 기르는 경우, 와인 생산자는 화학 비료와 제초제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지역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유럽에서 20~70%의 유기농 와인 생산자가 귀부균 혹은 흰가룻병을 경험한다고 한다. 화학 물질을 쓰지 않으니 유기농법으로 관리되는 포도원은 곰팡이를 비롯 다양한 질병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은 이에 대항하기 위해 일명 보르도 믹스쳐(Bordeaux Mixture)라 알려진 황산구리와 황 혼합물을 사용한다. 2016년처럼 춥고 습기가 많은 해엔 6~8번 정도 이 보르도 믹스쳐가 포도원에 뿌려진다고 한다.
[보르도 믹스쳐가 뿌려진 포도잎, 파란색을 내는 물질이 구리다.]
이 보르도 믹스쳐가 사용된 지 100년이 넘자 환경에 좋지 않다는 보고가 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일반 곡식을 경작하는 땅에 비해 포도원 땅에서 훨씬 높은 구리가 농축되어 있다. 특히, 춥고 서늘한 기후에 위치한 포도원은 따뜻하고 건조한 포도원보다 토양 속 구리 농도가 높다.
이에 유럽 연합은 1950년대부터 구리 사용을 대폭 줄이고자 곰팡이에 저항성이 있는 품종을 교차 방법으로 찾기 시작했다. 이번 연구는 1880년대 시작되어 1935년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된 초창기 교잡종과 달리 질병에 저항성을 지니며, 와인 품질도 좋은 교잡종을 얻는 게 목적이었다. 그 결과가 이제 서서히 수면 위로 떠 오르는 중이며, 이 품종들이 바로 피비다. 지금까지 피비 국제 협회에 등록된 품종은 적포도 58종과 백포도 62종, 총 120종이 있다. 피비는 규정상 특색있는 향과 풍미를 지녀야 함도 초창기 교잡종과의 차별점이다.

[오스트리아 와인 양조에 허용된 피비 백포도 품종 블뤼텐무스카텔러, 사진 제공@AWMB]
피비는 유럽 지중해 비티스 비니페라에 북미와 아시아 비티스 리파리아, 비티스 아무렌시스(Vitis amurensis) 그리고 비티스 루페스트리스(Vitis rupestris) 등이 교차하는데, 비티스 비니페라의 유전자 점유율이 85%이상이어야 한다. 이 피비 품종 개발은 아무래도 서늘하고 비가 많이 오는 독일, 오스트리아, 중앙 유럽, 스칸디바니아, 러시아, 체코에서 매우 활발하며, 당연히 프랑스 같은 곳에서는 관심이 적고, 그 적용이 더디다.
오스트리아 와인 협회는 이미 피비 품종 중 적포도인 라테이(Ráthay)와 뢰슬러(Rösler)를 허용한데 이어 2018년 오스트리아에서 3종의 피비 백포도를 공식 품질 와인 생산 품종에 추가했다. 바로 블뤼텐무스카텔러(Blütenmuskateller), 무스카리스(Muscaris), 수비니어 그리(Souvignier Gris)가 그 품종들이다. 오스트리아 와인 협회에 따르면, 블뤼텐무스카텔러와 무스카리스는 넛맥(육두구)과 시트러스 풍미가, 수비니어 그리는 피노 그리 풍미가 특징적이라고 한다. 라테이는 단단한 바디와 매력적인 타닌으로 적포도 품종 블렌딩에 주로 쓰이며, 뢰슬러는 스파이시함과 검은 과실 풍미가 좋아 점차 단일 품종 와인으로 생산된다고 한다.
피비는 이미 오염된 토양 문제를 해결하진 못하지만, 앞으로의 오염을 방지할 수 있고, 포도원에 뿌려지는 화합물을 줄일 수 있다는 데 존재 이유가 있다.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로 포도 재배 지역과 각 지역의 요건이 변화하는 시대, 앞으로 우리는 카베르네 소비뇽과 샤르도네 외에 무스카리스나 뢰슬러 같은 피비 품종들 이름을 익히게 될지도 모르겠다.
<자료 참고>
피비 인터내셔날: https://www.piwi-international.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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