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스토리

토스카나가 들려주는 최고의 교향곡, 사시까이아

와인 애호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맛보고 싶은 이탈리아 명품 와인 사시까이아(Sassicaia). 2015년산이 2018년 선정 와인 스펙테이터 Top 100 중 1위를 차지하며 국내 시장에서 순식간에 품절이 되더니, 2016년산도 로버트 파커 100점을 받았다고 한다. 워낙 접하기 쉽지 않은 와인인데 2년 연속으로 최고점을 받으니 과연 그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2019년 11월 13일 사시까이아 오너 패밀리이자 브렌드 엠배서더로 활동하고 있는 프리실라 인치사 델라 로케타(Priscilla Incisa della Rocchetta)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녀를 만나 사시까이아의 저력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한국을 방문한 프리실라 인치사 델라 로케타]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하니 수수한 옷차림에 수더분한 인상을 가진 여인이 앉아 있었다. 화려하고 귀족 같은 분위기를 띄는 여인일거라 지레짐작한 내 자신이 왠지 머쓱해졌다. 간단한 악수로 첫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 프리실라는 조용히 미소를 띄울 뿐 별달리 말이 없었다. 솔직히 말없는 상대는 기자에겐 은근한 공포다. 공격적으로 질문을 퍼부으며 적극적으로 대화를 유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의례적인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해 보았다.


Q. 2년 연속 좋은 평가를 받다니 정말 놀라운 일인데요. 과연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A. 무엇보다 특별한 테루아죠. 사시까이아 포도밭이 위치한 볼게리(Bolgheri) 지방은 바다와 무척 가깝습니다. 서늘한 바닷바람의 영향을 바로 받는 곳이죠. 포도밭은 바다를 향해 남서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구요. 땅에 돌이 아주 많습니다. 물이 잘 빠져서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를 기르기엔 최적지죠. 사시까이아라는 이름도 ‘돌이 많은 땅’이라는 뜻이거든요. 이렇게 완벽한 테루아에 양조팀의 뛰어난 실력이 더해진 결과가 사시까이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족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품질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비결 중 하나입니다.


Q. 할아버지께서 사시까이아를 만들게 되신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A. 지금 사시까이아 와이너리가 위치한 곳은 원래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땅이었습니다. 과일도 재배하고 올리브 나무도 기르고 가축도 놓아기르던 땅이었죠. 할아버지는 보르도 와인을 무척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1헥타르 정도의 작은 땅에 카베르네 소비뇽을 심으셨다고 해요.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여기서 기른 포도로 가족들이 마실 와인을 만들 생각이셨어요.


Q. 그런데 안티노리(Antinori)의 권유로 사시까이아를 출시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합니다.

A. 현재 안티노리를 경영하는 피에로 안티노리의 할머니와 저희 할머니가 서로 자매간이셨어요. 서로 친척이어서 가깝게 지냈죠. 그런데 사시까이아를 맛본 피에로 안티노리가 세상에 내놓자고 제안했어요. 사실 할아버지는 사시까이아를 밖에 내다 파는 것에는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산지오베제(Sangiovese)로 만든 정통 키안티 와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로는 가장 낮은 테이블 와인(Vino da Tabola) 등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거든요. 하지만 예상과 달리 등급이 낮아도 큰 성공을 거뒀지요. 할아버지는 그 성공을 크게 기뻐하진 않으셨어요. 할아버지가 1983년에 작고하실 때까지도 사시까이아는 테이블 와인이었요. DOC 등급을 받은 건 1994년이었지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사시까이아를 번창시킨 데에는 아버지의 노력이 컸습니다.


“사시까이아의 목표는 품질의 일관성입니다.

무리한 확장으로 수 백년간 대대로 내려온 땅을 망치고 싶지 않습니다.

매출이나 이익보다 우리 가족은 장기적인 안목을 더 중요시합니다.”


Q. 아버지께서 와이너리를 소유하시고 전적으로 운영을 다 책임지고 계시나요?

A. 아니요. 아버지 외에 삼촌과 고모가 계셔요. 삼남매가 공동 소유주입니다. 그 삼남매에게 자식이 여섯 있어요. 제가 그중 한 사람이죠. 우리 여섯 사람이 앞으로 3대 공동소유주가 될 예정입니다. 우리 여섯 사람에게 자식이 여섯 있으니 4대에도 여섯 명이 공동소유주가 될 지도 모르겠어요. 혹시 조카가 또 태어나면 공동소유주가 늘 수도 있지만요.


Q. 가족 대대로 명품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집안을 보면 사업 확장을 꾀하기도 하는데요. 사시까이아는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지는 않나요?

A.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품질의 일관성이에요. 아무리 성공가도를 달린다고 해도 추락은 한순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기적인 매출이나 이익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사시까이아를 운영하자고 뜻을 모으고 있어요.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추면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사시까이아가 생산되는 땅은 수 백년간 대대로 내려온 땅입니다. 생산을 확대하겠다고 그 땅을 망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잘 보존해서 후대에 물려줘야죠.


[귀달베르토와 레 디페제]


Q. 사시까이아 외에 현재 만들고 있는 레드 와인이 두 가지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총 생산량은 얼마나 되나요? 혹시 화이트 와인을 만들어보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A. 사시까이아는 우리 밭에서 난 가장 좋은 포도로만 만듭니다. 그래서 연간 생산량이 22만 병 정도에요. 이 이상 생산을 더 늘릴 계획은 없습니다. 대신 사시까이아에 쓰기에 품질이 좀 아쉬운 포도로 귀달베르토(Guidalberto)와 레 디페제(Le Difese)를 만들고 있습니다. 귀달베르토는 연간 약 40만 병, 레 디페제는 약 30만 병 생산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사시까이아는 공식적인 행사가 있을 때 주로 맛보는 편이에요. 평상시에는 귀달베르토와 레 디페제를 훨씬 더 자주 마십니다. 그리고 화이트 와인 생산은 지금으로서는 계획이 없습니다. 저희가 만들지 않더라도 토스카나에는 좋은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가 많습니다. 굳이 저희까지 합세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Q. 사시까이아의 명성이 워낙 높다 보니 이렇게 무례한 질문을 하게 되는 점 양해해 주십시오. 사시까이아가 워낙 유명한데 굳이 브랜드 엠베서더가 필요할까요?

A. 아닙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웃음). 사실 사시까이아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와인은 아닙니다. 그렇다 보니 과연 이 와인을 만든 사람은 누굴까 보고 싶어하시는 분이 꽤 많으세요. 사시까이아를 사랑해주시는 분들을 만나고 함께 식사도 하면서 그분들과 소중한 추억을 쌓는 것은 정말 보람된 일입니다. 저도 그분들과 함께 해서 영광이구요. 그리고 이렇게 각 나라의 와인 애호가를 만나며 의견을 듣는 것 또한 시장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입니다. 지금 당장 와인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잘 팔린다고 해서 현실에 안주하면 쇠락의 길로 접어드는 것은 자명한 일이 될 테니까요.


Q. 결혼도 하셨고 자녀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긴 출장은 힘들지 않으세요?

A. 네, 아이가 두 명 있어요. 둘 다 십대 초반이어서 오래 집을 비우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4일간 한국에서, 3일간 일본에서 출장 일정을 소화하고 바로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 정도 기간이 저에겐 최대치에요. 아이들이 아직은 엄마 손길을 필요로 해서요.


[사시까이아 2012, 2007(매그넘), 2003(매그넘)]


인터뷰가 끝나갈 때쯤 사시까이아 2003년산, 2007년산, 2012년산이 우리 앞에 놓였다. 버티컬 테이스팅까지 기대하지 못했는데 이게 왠 횡재인가 싶어 내심 기쁜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맛을 보니 2003년산에서는 달콤한 과일향과 함께 다크 초콜릿 향이 풍성하게 피어올랐다. 프리실라의 설명에 따르면 2003년은 매우 더운 해였기 때문에 포도가 충분히 익어 과일향이 풍부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2007년산은 2003년산에 비해 향신료향이 좀더 강했다. 촘촘하면서도 매끄러운 타닌이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2012년산은 여러 요소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뛰어난 밸런스를 자랑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테이스팅에 열중하는 기자 옆에서 프리실라는 2007년은 평년과 비슷한 기후였고, 2012년은 조금 더웠다고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자신의 말이 정확한지 확인해 보겠다며 휴대폰으로 테크니컬 시트를 다시 한 번 훑어보는 그녀를 보며 꽤나 꼼꼼하고 친절한 성격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세 가지 빈티지를 시음하며 받았던 느낌은 어느 것 하나에서도 영 빈티지나 올드 빈티지의 특징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03년산과 2012년산은 무려 9년이나 차이가 나지만 두 와인 모두 그 해의 특징을 보여줄 뿐이었다. 굳이 구분하자면 2003년산도 아직 어린 와인 축에 든다는 느낌이었다. 프리실라에게 ‘이 정도면 사시까이아의 숙성잠재력은 50~60년은 족히 된다고 봐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역시나 겸손했다. ‘18~20년이면 사시까이아가 피크에 도달한다고 봅니다. 이후 피크를 유지하는 기간도 약 18~20년 정도로 봐야겠지요. 물론 빈티지에 따라 다르지만요. 좋은 빈티지는 더 오래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시까이를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는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안전한 답을 드리는 것이 맞겠지요? 그렇다면 40년 정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사시까이아의 맛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 화사하게 향미를 뿜어내기보다 농밀하고 과묵한 향이 점잖게 다가온다. 와인을 이루는 어느 한 가지 요소가 결코 튀지 않고 완벽한 밸런스를 이루고 있다. 클래식 음악에 비유하자면 독주곡이나 협주곡이 아닌 교향곡이다. 모든 악기가 자기 주장을 하지 않고 서로에게 맞춰가며 완벽하게 연주해낸 교향곡이다. 2대손인 삼남매가 힘을 합쳐 명품 반열에 올린 와인, 그리고 3대손인 여섯 명의 사촌 남매가 자부심을 지키며 의견을 모아 품질을 유지하는 와인. 그것이 사시까이아의 저력이다. 겸손하고 상냥한 프리실라 인치사 델라 로케타과 대화하며 그 저력의 한 부분을 엿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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