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이제 커피 공화국이라 해도 좋을 만큼 커피업계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현대경제연구원의 자료(2019.07)에 따르면 2018년 국내 커피산업은 약 7조 원 규모이며, 1인당 연간 커피소비량은 353잔이다. 이 자료에서는 2023년이면 그 규모가 약 9조 원 수준으로 확대될 전망이라 분석했다.
와인처럼, 커피도 떼루아!
커피 시장이 이처럼 성장할 수 있도록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스페셜티 커피다. 특히 최근에는 블루보틀, 스타벅스 리저브, 이디야 커피랩 등과 같이 스페셜티 커피를 제공하는 매장도 증가했다. 고급커피와 특별한 맛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커피의 품질을 차별화하기 위해 생두의 선별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생두는 곧 품종과 원산지에서 온 떼루아의 정체성이며, 이는 와인과도 비교할 수 있다. 와인의 강점이 원산지와 양조방법의 다양성인 것처럼, 커피 또한 다양한 원산지와 가공방식이 있다.
커피의 발효와 와인의 발효
커피와 와인을 비교해볼 수 있는 지점이 발효다. 발효에는 젖산발효, 알코올발효, 초산발효 등 다양한 방식이 있고 그로 인해 특별한 맛과 향이 생성된다. 발효의 시간, 온도, 방법에 따라 커피의 아로마와 맛이 결정되므로, 발효는 커피가공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2019년 세계적인 바리스타 대회인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World Barista Championship)에서 우승한 전주연 바리스타는 콜롬비아 라팔마 엘 투칸 농장 ‘시드라’품종의 젖산발효 원두를 사용했다. 젖산발효는 무산소 상태에서 산소를 사용하지 않고 포도당 및 다른 6탄당들을 분해하여 젖산을 생성하는 발효 방식. 커피 가공에서는 이를 ‘무산소발효(Anaerobic fermentation)’라고 부르는데, 이는 혐기성 발효이다. 이 과정을 거친 커피는 와인처럼 산미와 과일 향을 느낄 수 있다. 최근 이 발효 방식이 커피업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무산소발효의 생두 가격은 kg당 몇 만원에서부터 수백만 원을 호가하며, 국내에서 재고가 부족할 정도로 바리스타들과 스페셜티 커피전문점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또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산소를 배출하고 무산소 상태에서 발효시키는 방법도 있는데, 이는 탄산침용법이라고도 부른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체리의 외피와 과육을 벗겨 그레인프로백(비닐봉투)에 담은 뒤 밀봉해 산소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발효한다. 콜롬비아, 코스타리카에서는 스테인리스 발효통에 넣고 이산화탄소를 가득 채우는데, 이렇게 발생된 가스는 발효탱크 내부의 압력을 높이고 생두의 내과피인 파치먼트를 산소로부터 분리시킨다. 무산소 커피체리는 발효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생성하고, 산소없이 커피의 탄수화물과 그 속의 당을 분해하면서 젖산과 다양한 향기 성분을 생성한다. 이런 발효를 거친 커피는 산뜻한 산미와 독특한 향을 갖게 되며 주로 시나몬, 베르가못, 재스민 향을 느낄 수 있다.
발효 측면에서 살펴보면 와인은 어떨까? 와인의 알코올발효는 산소 접촉으로 효모의 생장이 이루어지고 알코올이 발생되는 원리다. 그리고 산소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효소에 의해 일어나는 혐기성 발효는 와인 숙성 과정에서 산소를 차단해 와인이 산패되는 것을 막는다. 매년 11월 셋째 주 목요일에 출시되는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는 카보닉 마세라시옹(Carbonic Maceration) 또는 세미 탄산침용으로 이와 유사한 방식이다.
포도를 으깨지 않은 상태로 발효탱크에 넣으면 탱크 안에 쌓인 포도는 중력에 의해 자연적으로 주스가 생성된다. 이때 탱크에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포도 발효가 진행되는데, 일반적으로 이산화탄소는 공기보다 밀도가 높기 때문에 아래로 쌓이고 공기는 이산화탄소에 밀려 배출된다. 발효탱크가 이산화탄소로 채워지면 포도에 탄산침용이 일어난다.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으깨지 않은 포도에 알코올이 발생되는 동안 포도알 내부에서 발효가 시작되며, 이를 효소발효라 한다. 포도 자체가 가지고 있는 효소가 무산소 상태에서 화학반응을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비교적 옅은 색깔과 낮은 타닌을 가진 보졸레 누보 와인이 생산된다. 신선한 과일 아로마가 풍부한 보졸레 누보는 딸기, 버찌, 바나나, 사탕, 풍선껌 등의 향이 있고 입안에서 유연하면서 부드러운, 라이트 바디 와인이다. 신선한 풍미와 낮은 타닌으로 초보자들이 마시기에도 부담 없다.
커피와 와인 모두 원산지가 있으며 떼루아의 특성이 반영된다. 그로 인해 다양하고 차별화된 가공법이 적용될 수 있다. 공통점이라면 바쁜 현대인들에게 커피와 와인이 정서적 여유와 즐거움을 준다는 점이다. 주변 사람에게 따뜻한 커피 한잔을 건네고, 와인 한잔을 함께 즐기길 권하면서 오늘을 눈부시게 보내보는 건 어떨까. 인생이 더 즐거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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