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천의 얼굴을 지닌 루시용 그르나슈 와인들(Roussillon Grenache Wines)

[루시용 모리 지역 산]


스페인과 프랑스를 가르는 장엄한 피레네산맥을 넘으면, 와인 생산자의 천국으로 불리는 루시용(Roussillon)이 있다. 루시용은 달콤한 주정 강화 와인 뱅 두 나투렐(Vins Doux Naturels)로 잘 알려졌으나 이제는 드라이한 와인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스페인이 가르나차 100% 와인을 주로 생산했다면, 루시용은 그르나슈를 중심으로 한 블렌딩 와인을 만든다. 스페인 카탈루냐와는 또 다른 루시용 그르나슈 와인 이야기를 들어봤다.


루시용 와인 역사

루시용(Roussillon)은 프랑스 남부 피레네-오리엔탈레스(Pyrénées-orientales)에 있는 와인 산지다. 루시용의 루(Rou)는 붉은색을 의미하는데, 과거 루시용에 풍부한 철로 무기를 만들었던 데서 유래했다. 루시용은 2세기엔 로마 제국, 이후 아랍, 북유럽 국가 등의 지배를 받다가 8세기 후반 프랑스 카롤링거 왕조에 속하게 된다. 9세기 후반, 지금의 스페인 카탈루냐 바르셀로나인들이 번성하며 루시용은 아라곤 왕국의 일부가 됐고, 카탈루냐와 연결된 루시용은 상업이 크게 발달했다. 13세기엔 루시용이 마요르카(Majorca) 왕국의 핵심이 되었고, 14세기 또 한 번의 경제 부흥기를 보냈다. 30년 전쟁 후 1642년 페르피냥을 중심으로 한 루시용은 프랑스령으로 분리되었고, 1659년 공식적으로 프랑스 땅이 됐다. 페르피냥은 5세기부터 줄곧 루시용의 역사, 문화, 경제 중심지였다. ‘정원’이라는 별명을 지닌 페르피냥은 농업을, 그 외 루시용에선 와인을 생산해 지역 경제를 꾸릴 수 있었다.


[루시용 지형도]


와인 산지로서의 루시용

루시용은 동쪽으로는 지중해, 북쪽으로는 코르비에르 산맥, 서쪽으로는 피레네 몽 카니구(Mont Canigou), 남쪽으로는 알베르(Albères)로 둘러 쌓여 있다. 루시용에는 아글리(Agly), 테(Têt) 그리고 테크(Tech)라는 3개의 강이 교차한다. 바로 이곳에 루시용 20,656헥타르 포도원이 있다. 2,535포도 재배 농가가 있으며, 29개 와인 생산자 협동조합이 전체 와인 생산량의 75%를, 421개 가족 소유 와인 생산자가 나머지 와인을 생산한다. 협동조합은 품질 향상을 이끌고, 시장을 개척하며, 소규모 가족 와이너리는 장인 정신으로 빚어진 다양한 와인을 생산한다. 루시용에서는 2018년 기준, 전체 생산량의 60%가 드라이한 와인으로 40%가 달콤한 와인으로 생산된다. 루시용 달콤한 와인은 뱅 두 나투렐(Vins Doux Naturels)이다. 이는 알코올 발효 중인 와인에 포도로 만든 알코올을 넣어 발효를 중단 시켜 포도가 원래 지닌 단맛을 남긴 와인을 의미한다. 뱅 두 나투렐 와인은 라벨에 리브잘트(Rivesaltes), 바뉼(Banyuls), 모리(Maury), 뮈스캇 드 리브잘트(Muscat de Rivesaltes)등의 표현이 있어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루시용은 여름은 덥고, 건조하며, 온화한 가을과 겨울을 보낸다. 프랑스 와인 산지 중 일조량이 가장 많은데 연간 316일 맑은 날씨다. 연간수량은 500~600mm로 주로 가을철에 내린다. 루시용에는 그 유명한 트라몽탄(Tramontane)과 해풍인 마리나데(Marinade)를 포함 13종류의 서로 다른 바람이 이틀에 한 번꼴로 불어온다. 비는 주로 폭풍우로 오고 이 바람에 의해 포도송이는 곧 물기 없이 마른다. 따라서, 루시용은 해충 및 질병 감염으로부터 자연적으로 보호되어 유기농 및 바이오 다이내믹 와인 생산량이 가장 많은 산지가 될 수 있었다.


[루시용의 대표적인 토양 샘플들]


‘지질학자의 천국’으로 불리는 루시용은 신생대 제3기와 4기에 피레네산맥이 융기하며 형성됐다. 루시용은 지중해를 무대처럼 바라보는 원형 극장처럼 생겨 남과 북, 동과 서에 따른 경사, 고도, 햇빛 방향에 따라 굉장히 세부적인 기후로 나뉜다. 차를 타고 루시용 포도원을 지나면, 토양에 따라 회색, 붉은색, 황토색으로 그러데이션을 하듯 땅 색이 변하는 걸 볼 수 있다. 그 어떤 와인 산지보다 변화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루시용은 15~20종 토양을 지니며, 이중 대표 토양으로는 둥근 자갈 토양인 갈레 룰레(Galets roulés), 검은 점판암, 회색 혹은 적색 편암, 산화철이 풍부한 붉은 점토, 언덕에 많은 석회질 점토, 풍화된 화강암이 있다. 평지는 론 밸리 샤토네프 뒤 파프와 같은 둥근 자갈이 많아 걷기 힘든 정도다. 검은 점판암은 루시용 산봉우리마다 세워진 장벽과 망루를 만드는 데 쓰였고, 테라스가 되어 포도원이 조성되기도 했다. 와인 생산자는 아글리 강 석회와 검은 편암이 그르나슈가 부드러운 질감과 산도, 미네랄을 갖추게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루시용 포도원은 해발고도 0~700m 사이에 있는데, 모리(Maury)가 700m에 있다. 모리 지역은 잘 부서지는 편암에 망간이 풍부하다. 역시 미네랄 표현이 좋은 와인이 된다.


루시용은 그르나슈 포도에 있어 세계 최대 규모 포도원과 생산량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르나슈 단일 품종보다는 시라, 카리냥 등 품종을 블렌딩한 와인을 주로 생산하는데, 와인 생산자들에 따르면, 그르나슈 단일 품종이라면, 맛이 너무 지루하기 때문이란다. 루시용 그르나슈 누아는 붉은 열매, 탄 타이어, 스파이스, 파프리카, 흑후추 향을 지니며, 골격은 무른 대신 부드러운 질감과 미네랄 풍미를 지닌다고 한다. 이에 힘과 골격, 색을 줄 수 있는 다른 품종과의 블렌딩이 필요하다. 루시용 포도원 주변에는 야생 세이지, 로즈마리 등이 자라 그 향이 와인에 녹을 수 있고, 그르나슈 블랑은 포도원 주변에서 흔한 회향(펜넬 fennel)향을 지닌다고 한다.


이제 루시용 와인을 전반적인 내용을 정리했으니 와인 생산자 이야기를 들어보자.


루시용의 흑진주 샤토 드 루(Château de L’Ou)


[샤토 드 루 세브린과 필리프 부리에 부부]


샤토 드 루(Château de L’Ou)는 세브린(Séverine)과 필리프(Philippe) 부리에(Bourrier) 부부가 1998년 30헥타르 포도원을 사들이며 시작한 와이너리다. 포도원은 페르피냥에서 차로 15분 거리 몽테스코(Motescot)에 있다. 필리프는 현재 루시용 와인 협회장으로 활동하며, 아내는 와인 양조를 담당한다.


[포도 품종 별 다른 색 발효조를 쓰는 샤토 드 루]


루(L’ou)는 카탈루냐어로 ‘달걀’을 의미하는데 부리에 내외가 와이너리를 시작할 무렵, 신기하게 말랐던 이곳 우물이 다시 차오르기 시작해 ‘부활’의 의미로 붙였다고 한다. 포도원은 유기농법으로 관리되며, 손으로 수확해, 구획 및 품종별로 분리 양조하고 살짝 구운 새 오크 통을 사용해 숙성한다. 세브린은 수많은 발효조를 보다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알록달록 발효조를 쓰거나 색깔이 있는 철제 테두리를 둘러놓은 오크 통을 사용한다.


[다양한 형태, 크기, 소재의 통을 사용해 와인을 숙성하는 샤토 드 루]


샤토 르 루 와이너리에는 곳곳에 각종 형태와 소재로 된 달걀 모양 오브제가 놓여있을 뿐만 아니라 와인 양조장에도 달걀 모양 숙성 통들이 있다. 펄(Pearl)이라 불리는 390ℓ 숙성 통은 보르도 샤토 퐁테 카네와 샤토 드 루에서만 쓴다. 이탈리아 장인이 빚은 2가지 형태 테라코타 암포라도 190개나 보유하고 있으며, 여기에 와인을 숙성한다. 세브린에 따르면, 오크 통인 펄에서는 달콤한 과실 풍미가, 테라코타에서는 미네랄 풍미가 더욱 잘 표현된다고 한다.


[샤토 드 루 와인들]


샤토 드 루 그르나슈 랩소디(Château de Grenache Rhapsody)는 아글리 강 언덕 350m에 있는 검은 편암과 석회 토양에서 얻은 평균 80년 된 그르나슈 나무 열매로 만든 와인이다. 1천 ℓ 테라코타에서 숙성했다. 와인은 라즈베리, 블랙커런트 향이 폭발적으로 느껴지며 타임 같은 지중해 허브 풍미도 느낄 수 있다. 힘차고 풍부한 맛을 주며, 타닌이 부드러운 와인이다.


보르도와 론 와인 명가가 모리에서 만난 도멘 뚜느뱅 칼베(Domaine Thunevin Clavet)


[도멘 뚜느뱅 칼베의 주인장인 장-로제 칼베]


도멘 뚜느뱅 칼베(Domaine Thunevin Clavet)는 보르도 쌩떼밀리옹 장-뤽 뚜느뱅(Jean-Luc Thunevin)과 론 밸리 출신 장-로제 칼베(Jean-Roger Calvet)가 2001년 루시용 모리(Maury)지역에 시작한 와이너리다. 전체 포도 생산량의 70%가 그르나슈이며, 손으로 수확된다. 와인은 빈티지에 따라 시멘트 혹은 스테인리스 스틸 발효조에서 알코올 발효를 마치고 시멘트 혹은 오크 통에서 숙성된다. 단, 오크 통은 500~600ℓ 토노(Tonneau)나 1500~2000ℓ 큰 통을 쓴다.


장-로제 칼베는 1999년 장-뤽 뚜느뱅에게 그르나슈 샘플을 보냈는데 포도 농축도가 낮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다음 해 장-로제 칼베는 그린 하베스트를 충분히 하고 잘 익은 풍미 좋은 와인 배럴 2개를 싣고 뚜느뱅을 찾아가 샘플 와인을 맛보게 하고 차 안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협업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지금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얘기한다.


[도멘 뚜느뱅 칼베 와인들]


한국에서 인기 있는 도멘 뚜느뱅 칼베의 콩스탕스(Constance)는 미네랄, 잘 익은 검붉은 작은 열매, 스파이스, 허브 향이 매우 복합적이며, 입에서는 알코올에 절인 체리와 말린 블루베리 풍미가 좋다. 적당한 무게, 농축, 균형을 갖춘 와인으로 미끈한 타닌을 지녀 마시기 좋다. 이외 레 트화 마리(Les Trois Marie)는 80~100년 된 그르나슈 80%에 30년 된 시라 20%가 블렌딩 된 와인이다. 정말 다채로운 검붉은 열매와 과실 풍미를 지니며, 금방 부신 후추 향이 일품이다. 감초와 정향 느낌이 복합성을 더한다.


모리 지역 전설로 불리는 마스 아미엘(Mas Amiel)

[데미잔이라 불리는 유리병에서 햇빛과 열에 노출되며 숙성 중인 와인들]


모리에서 상당히 큰 규모 와이너리인 마스 아미엘(Mas Amiel)은 1816년 레이몽 아미엘(Raymond Amiel)이 페르피냥 주교와 카드놀이 내기에서 이기면서 시작됐다. 당시엔 포도원도 양조 시절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고, 곧 필록세라가 번져 포도원은 모두 재식재해야만 했다. 재정난을 겪던 레이몽은 1910년 포도원을 샤를 뒤피(Charles Dupuy)에게 매각한다. 1997년까지 샤를은 마스 아미엘을 물량과 품질 측면 모두를 발전시켰는데, 특히, 와인을 중고 부르고뉴 배럴에 숙성하는 방식을 도입한 거로 유명하다. 이후 지금 소유주인 올리비에 데셀르(Olivier Decelle)가 운영하고 있다. 보르도 출신 올리비에는 2001년 모리 지역 최초로 드라이한 와인(모리 섹 Maury Sec) 생산을 시작했고, 4년 전부터 유기농법으로 전환해 2018년 유기농법 인증을 받았다.


[마스 아미엘 드라이한 와인들]


알타이르(Altair)는 그르나슈 블랑, 그르나슈 그리, 마카베오가 블렌딩 된 화이트 와인이다. 포도가 석회암질 토양에서 자라 신선하고 미네랄 풍미가 두드러진다. 와인은 진한 레몬, 라임, 미네랄, 시트러스 흰 껍질, 배, 스타프룻, 스위티오 향을 지니며 입에서도 향과 같은 맛을 느낄 수 있다. 향에서 느껴지지 않던 흰 꽃 향이 와인을 마시는 순간 느껴져 무척 매력적이다. 맛이 충실하며 다양한 음식과 두루 어울릴 진정한 미식 와인이다. 레정드(Legende)는 한 구획에서 함께 자란 60~80년 수령 그르나슈와 카리냥 포도로 만든 와인이다. 그르나슈 비율은 60~80%로 수확에 따라 다르게 조정된다. 와인은 포푸리 특히, 말린 흑장미 향이 정말 멋지다. 잘 익은 혹은 말린 검붉은 열매, 체리, 체리 리큐르 향을 지녔지만, 굉장히 우아하다. 입에선 산미와 골격이 좋고, 체리 풍미가 초점을 잘 맞춘 모습이 좋다. 감칠맛이 살짝 느껴지며, 오렌지와 자두 풍미가 느껴지는 긴 여운을 지녔다.


[마스 아미엘의 129년 된 오크 통]


마스 아미엘 와이너리 마당엔 강렬한 햇빛에 늘어선 수백 개 데미장(Demijohn, 빗방울 모양 유리병)과 129년 된 푸드르에서 주정 강화 와인이 숙성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스 아미엘에서 숙성 20년은 가장 어린 와인으로 불릴 정도로 와인을 오랜 시간 숙성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숙성된 와인을 ‘푸드르의 기억’ 혹은 ‘ 오크의 기억’이라 부른다.


[마스 아미엘 달콤한 와인들]


뀌베 샤를 뒤피(Cuvée Charles Dupuy)는 100년 수령 그르나슈 누아로 만든 주정 강화 와인으로 알코올 도수 16~17%를 지닌다. 와인은 잉크 같은 진한 보라색이다. 코에서는 간장 달이는 냄새처럼 뭔가 세이보리한 느낌이 앞선다. 말린 자두, 알코올에 절인 체리, 체리 봉봉, 크리스마스 케이크, 제빵용 스파이스, 계피와 육두구 향을 느낄 수 있다. 입에선 커피 리큐르와 같은 질감에 토피, 캐러멜, 검은 체리 풍미를 준다. 산미가 워낙 좋아 신기하게도 달콤한 느낌은 없다. 다크 초콜릿과 주로 페어링하지만, 블루치즈도 정말 잘 어울린다고 한다.


루시용의 황소가 될 도멘 로리가(Domaine Lauriga)


[붉은 토양에 자갈이 많은 도멘 로리가 포도원]


도멘 로리가(Domaine Lauriga)는 2016년 ‘랑그독의 황소’로 불리는 장 끌로드 마스(Jean-Claude Mas)가 인수했다. 포도원은 튀르(Thuir)에 있는데 자갈이 많은 충적 토양을 지녔다. 로리가는 라우렐(Laurel) 즉, 월계수를 의미하는데, 로마 제국 시저 황제가 머리에 쓴 왕관이 월계수 잎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왕을 위한 로리가 포도원 옆 올리브잎을 따서 썼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장 끌로드 마스가 소유주가 되었다는 건 엄청난 생산 설비를 갖춘 것과 같다. 현재 도멘 로리가는 생산량의 60%를 수출하고 있으며, 와인의 85%는 드라이한 와인, 15%는 달콤한 뱅 두 나투렐이다.


[도멘 로리가 드라이한 와인들]


도멘 로리가 그랑 리저브(Domaine Lauriga Grand Reserve)는 그르나슈, 시라, 카리냥 블렝딩 와인으로 보랏빛이 감도는 루비색을 띤다. 초콜릿 파우더, 원두, 체리, 미네랄, 민트와 찻잎, 후추 향을 낸다. 입에서는 후추와 검은 열매 풍미가 강하며, 타임, 클로브, 올스파이스 풍미를 지닌다.


로마네 콩티 주인장이 반한 루시용 와인의 교황 도멘 퓌그(Domaine Puig)


[도멘 퓌그 19대손인 장 퓌그]


도멘 퓌그(Domaine Puig)는 13세기부터 루시용에 정착해 86헥타르 포도원에서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와인 가문으로 그 역사가 곧 루시용 와인 역사라고 봐도 좋은 와이너리다. 무려 19대손인 조지 퓌그(George Puig)가 포도원 관리, 와인 양조, 홍보, B&B를 홀로 도맡아 운영하고 있다. 포도 재배부터 와인 양조까지 퓌그는 조상 대대로 하던 방식 그대로 와인을 만든다. 그는 화학 비료, 살충제, 제초제가 유행하던 시절에도 단 한 번도 약을 쓴 적이 없다. 포도는 늘 자연 효모로 발효하고 어떤 물질도 더하거나 빼지 않고 와인이 된다. 한마디로, 도멘 퓌그는 내추럴 와인이다.


[조지 퓌그가 정리 중인 도멘 퓌그 자료들]


조지 퓌그는 ‘내 와인은 살아있어요. 어떨 때는 사랑스럽고, 다른 어떤 때는 아주 심술 맞죠. 와인이 심술을 부릴 땐 아주 미워요.’라고 얘기한다. 그는 쉴 틈 없이 와인 일을 하면서도 19대에 이어진 가문과 루시용 지역 와인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루시용 곳곳에 새겨진 선조들의 기록과 문헌을 총망라한 자료는 A4용지로 사전 두께만큼 두껍다. 퓌그는 ‘산’이라는 의미라는데, 퓌그 가문은 이름대로 루시용 와인 큰 산이 됐다.


[도멘 퓌그 드라이한 와인들]


조지 퓌그 레 포르 쌩 피에르(Geroge Puig Les Fort Saint Pierre)는 그르나슈 누아, 까리냥, 시라, 무르베드르가 블렌딩 된 와인이다. 딸기, 야생 딸기, 먹 내음, 분 내음, 말린 쑥 같은 양용 허브 향을 느낄 수 있다. 입에서는 미네랄, 짠맛, 잘 익은 자두 풍미가 나며, 산미가 높다. 와인을 삼키면 아주 무더운 날 소나기가 내릴 때 맡을 수 있는 땅 내음이 느껴지는데 그 풍미가 아주 진하다. 여운엔 야생 붉은 열매와 수풀 향이 함께 한다.


[도멘 퓌그의 리브잘트 와인들]


조지는 일행을 위해 리브잘트 퓌그 파라히(Rivesaltes Puig Parahÿ) 1982년을 준비했다. 파라히는 ‘정원’을 의미한다. 리브잘트는 주정 강화 와인으로 퓌그 가문은 1875년부터 50개 이상 빈티지를 보유하고 있다. 조지가 거주하는 집은 와인 숙성고와 바로 연결되는데, 그곳엔 1999년, 1969년 리브잘트가 마치 간식 창고처럼 탱크에 보관되고 있다. 파라히 1982년산 와인은 잘 조린 단팥, 검붉은 열매, 오렌지 필, 자두 향이 좋고 입에선 산미가 정말 대단하다. 로마네 콩티의 오베르 드 빌렌(Aubert de Villaine)이 도멘 퓌그 와인으로 파리 유명 셰프와 함께 디너를 연다고 한다. 조지는 감사의 의미로 오베르 드 빌렌의 생년인 1939년 리브잘트를 준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역 사회를 함께 성장하는 돔 브리알(Dom Brial)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돔 브리알 양조장 일부]


돔 브리알(Dom Brial)은 프랑스 포도 재배가 여러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당시 포도재배자들이 힘을 모으면, 분명 우뚝 설 수 있다는 신념으로 시작한 와인 협동조합이다. 베네딕트 수도회 수도사였던 브리알은 빈곤 학생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는 등 지역 사회에 미친 영향이 커 와이너리는 헌정의 의미로 돔 브리알 이름을 갖게 됐다. 현재 247개 포도재배자가 속해있다.


[돔 브리알 와인들]


한국에서는 돔 브리알의 샤토 레 뺑(Château les Pins) 와인이 인기 있다. 시라 60%, 그르나슈 누아 30%에 무르베드르와 카니냥이 블렌딩 됐다. 와인은 잘 익은 자두, 라즈베리, 체리, 체리 페이스트 향을 지니며, 입에선 산미가 좋고 검은 열매 풍미가 압도적이다. 짭짤함을 동반한 감칠맛이 있어 아주 맛있다.


프랑스 최대 유기농 및 바이오 다이내믹 와인 생산자 도멘 꺄즈(Domaine Cazes)


[조상 대대로 내려온 도멘 꺄즈 숙성실에 서있는 4대손 엠마누엘]


도멘 꺄즈(Domaine Cazes)는 1895년 미셸 까즈(Michel Cazes)가 리브잘트에 설립한 와이너리다. 미셸의 아들이자 2대손 애메 꺄즈(Aimé Cazes)는 산화 숙성 거친 리브잘트 와인을 만들어 크게 유명해졌다. 1997년 4대손 엠마누엘(Emmanuel) 체제로 넘어오며 도멘 꺄즈는 여러 변화를 거친다. 엠마누엘에 의해 도멘 꺄즈는 20여 년 전 루시용 최초로 포도원에 유기농 및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을 적용하기 시작했고, 2005년부터 관련 인증을 받기 시작해 현재 프랑스 최대 규모(220헥타르) 유기농 및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 와인 생산자가 됐다. 엠마누엘은 이렇게 건강하게 재배된 포도로 만든 와인이 신선함, 피네스, 우아함을 더욱 돋보이게 갖춘다고 말한다. 도멘 꺄즈는 2012년엔 콜리우(Collioure), 2013년엔 레 클로 드 폴리으(Les Clos de Paulilles), 2014년엔 모리 지역 포도원을 획득하며 확장 중이다. 도멘 꺄즈는 럭셔리 호텔과 지역 농산물로 만든 음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 라 따블르 애메(La Table d’Aimé)을 운영 중인데, 이곳은 미쉐린 가이드에 매년 이름을 올리고 있다.


리브잘트 포도원은 아글리 강 언덕에 있으며, 석회질 점토에 약간의 편암과 규소가 섞여 있다. 레 클로 드 폴리으 포도원은 해안가 가파른 언덕에 자리하며 편암을 부셔서 만든 테라스 형태다. 이곳에서는 무르베드르가 잘 자라며, 미네랄 풍미가 좋은 화이트 와인이 생산된다. 바람의 영향을 화이트, 로제, 레드 와인 모두 향수처럼 향을 낸다.


[도멘 꺄즈 드라이한 와인들]


도멘 까즈 레 클로 드 폴리으 블랑(Domaine Cazes Les Clos de Paulilles Collioure Blanc)은 거의 그르나슈 블랑으로 만든 와인이다. 배, 파인애플, 미네랄 향과 풍미를 느낄 수 있고 크림 같은 질감에 구조와 골격이 참 좋다. 레 클로 드 폴리으 루즈(Les Clos de Paulilles Collioure Rouge)는 편암 토양에서 자란 그르나슈를 주로 사용해 만든 와인으로 잘 익은 딸기와 라즈베리, 크랜베리 풍미가 좋으며 농축과 신선함을 동시에 지닌다.


[도멘 꺄즈 달콤한 와인들]


달콤한 와인인 도멘 꺄즈 리브잘트 뀌베 애메 꺄즈(Domaine Cazes Rivesaltes Cuvée Aimé Cazes) 1978년 산은 그르나슈 블렌딩의 주정 강화 와인이다. 와인은 붉은 곶감 색을 내며, 가죽, 후추, 향신료, 땅콩, 커피, 모카 등 향을 낸다. 산미가 정말 좋아서 마시기 편하다. 보통 달콤한 와인은 375mℓ나 500mℓ로 만들지만, 도멘 꺄즈에서는 750mℓ 용량으로만 출시한다.


디캔터에 가성비가 탁월한 와인이라 극찬받은 도멘 부도(Domaine Boudau)


[도멘 부도 베로니크]


도멘 부도(Domaine Boudau)는 1920년대 이포리테 부도(Hippolyte Boudau)가 리즈발트에 설립한 와이너리다. 현재는 베로니크(Véronique)와 피에르(Pierre) 부도 남매가 운영하고 있다. 뱅 두 나투렐을 주로 생산하던 도멘 부도는 1992년부터 드라이한 와인 생산으로 전환했다. 포도원은 리브잘트 내 르 클로(Le Clos)와 레 테라스(Les Terrace)로 나뉜다. 르 클로 포도원은 아글리 강 하구에 있으며, 석회 점토질 토양에 강한 바람이 불어오며, 그르나슈와 시라가 잘 된다. 레 테라스 포도원은 바익사스 고원에 있으며 역시 석회 점토질 테라스 형태로 형성됐다. 크고 둥근 자갈이 많으며, 이곳엔 50살이 넘은 그르나슈가 자라며 완숙된 포도를 얻을 수 있다. 도멘 부도는 손으로 수확한 포도를 각 구획별로 양조해 블렌딩한다.


[도멘 부도 와인들]


도멘 부도 르 클로(Domaine Boudau Le Clos)는 그르나슈 70%에 시라 30%가 섞여 있다. 체리 리큐르, 허브, 검은 열매, 후추 향을 느낄 수 있으며, 감칠맛이 난다. 도멘 부도 와인들은 디캔터에서 가성비가 지불한 가격에 비해 3~4배는 넘을 정도로 훌륭한 와인이라고 평가 받았다.


하늘이 내린 기적 같은 와이너리 도멘 가르디에(Domaine Gardies)


[도멘 가르데이 7대손 장 가르디에]


도멘 가르디에는 8대째 가족 소유 및 경영을 이어오는 와이너리로 뱅그로(Vingrau)와 또따벨(Tautavel)에 포도원이 있다.  7대손 장 가르디에는 동시에 와인 생산자와 와인 평론가로부터 '남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와인 생산자'로 지명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1990년대 초부터 포도원에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을 적용했다. 도멘 가르디에 레드 와인은 남/남동향 포도원에서 화이트 와인은 해발고도가 높은 포도원에서 얻고 있다. 8대손 빅토르가 열정적으로 와인 업무를 배우고 있다.


[에스피라 아글리 포도원, 검은 땅이 매우 독특하다]


에스피라 아글리(Espira de l’Agly)포도원은 검은 편암 토양으로 와이너리가 아닌 탄광에 온 듯한 모습이다. 장 가르디에에 따르면, 검은 편암엔 석회가 섞여 있어 와인은 피네스가 탁월하다. 뱅그로(Vingrau)는 가문이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는 산속 포도원으로 석회 점토 토양에서 그르나슈와 까리냥, 그르나슈 블랑과 마카베오가 재배된다. 뱅그로에서 자라는 80~100년된 포도나무 열매로 만든 와인은 예리하고, 정확한 풍미에 신선함이 탁월하다고 한다.


[도멘 가르디에에서 쓰는 콘크리트 발효조]


장 가르디에는 덥고 건조한 루시용에서 와인은 색이 진하고 알코올이 높은 와인이 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는 가능한 신선하고 피네스가 탁월해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테루아를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그는 수확된 포도를 항상 콘크리트 발효조를 이용해 침용, 알코올 발효, 숙성을 진행한다. 도멘 가르디에에서는 매우 희귀한 옥수수 형태 콘크리트 발효조도 실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도멘 가르디에 와인들]


주 쉐르쉐 드 씨엘 블랑(Je Cherche le Ciel Blanc)은 뱅그로에서 자란 그르나슈 그리 100%로 만든 화이트 와인이다. ‘나는 하늘을 찾고 있어요’ 즉, ‘나는 기적을 원해요’라는 이름을 지녔다. 포도를 압착해 알코올 발효하고 효모와 접촉해 8개월간 숙성한 뒤 병입했다. 이산화황을 쓰지 않았다. 와인은 완전히 투명하며, 파인애플, 레몬, 라임, 야행 서브 향을 낸다. 산미가 굉장히 높고, 골격이 잘 잡혀있으며, 은은한 허브, 특히 회향 향이 일품이다. 미네랄 풍미가 정말 훌륭하며 여운엔 자몽 풍미가 오래도록 머문다. 클로 데 비녜 루즈(Clos des Vignes Rouge) 2011년 산은 함께 자란 90년 이상 된 그르나슈 누아와 카리냥이 70%, 시라 20%, 무르베드르 10%가 블렌딩 됐다. 수확된 포도를 20~25 일간 침용하고 알코올 발효한 뒤 600리터 배럴에서 12개월간 숙성했다. 와인은 가죽, 말린 버섯, 소나기가 내릴 때 흙 내음, 말린 약재, 체리 등 붉은 과실 풍미를 지니고 있다. 감초 풍미가 아주 멋스럽고 복합성과 잔을 흔들 때마다 변화하는 모습이 인상 깊다.


[클로 데 페 주인장인 에르베 비줄]


루시용 출장은 클로 데 페(Clos des Fées)와이너리 주인장인 에르베 비줄(Hervé Bizeul)과 그의 와인으로 마무리됐다. 에르베 비줄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와인 칼럼을 쓰고, 소믈리에로 활동하다 20여 년 전 루시용 뱅그로 북부에 땅을 사고 와인을 빚기 시작해 단숨에 최고의 반열에 오른 클로 데 페 와이너리 주인장이다. 그의 와인은 페트뤼스, 볼랭져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일한 루시용 컬트 와인이다. 그는 80~100년된 올드 바인이 자라고 어떤 규정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꿋꿋이 걸어갈 수 있는 루시용을 양조자의 천국이라고 말한다.


에르베 비줄의 말을 들으니 루시용 취재를 하는 내내 왜 그렇게 루시용 와인이 복잡하고 정리가 안 되는지 이해가 됐다. 루시용은 달콤한 와인 생산에서 드라이한 와인으로 생산 방향을 바꾸는 동시에 각기 다른 테루아를 살린 와인에 집중하고 있다. 토양도 지형도 천차만별이고, 드라이한 화이트, 로제, 레드 와인이 추가되니 당연히 복잡할 수밖에 없다. 프랑스 다른 와인 산지에 비교할 때 싼 대지, 낮은 질병 위험성, 각종 규제로부터의 자유로움은 루시용 와인 생산자에게 수많은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천의 얼굴을 가졌다고 해도 될 만큼 루시용 와인은 다채로웠고 그만큼 소비자의 입맛을 골고루 만족시킬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루시용 와인이 더욱더 사랑받길 기대해본다.


프로필이미지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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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19.12.02 10:52수정 2019.12.2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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