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벤베누토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에서 새로 출시된 와인들을 시음하는 전 세계 기자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인 가운데 하나다. 몬탈치노 지방에서 브루넬로라는 포도로 만들었다고 해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라고 부른다. 브루넬로는 키안티의 주품종인 산지오베제(Sangiovese) 중에서도 산지오베제 그로쏘(Sangiovese Grosso)라는 클론을 말한다. 와인 이름이 길면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마케팅에 어려움을 겪음에도 불구하고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와인 좀 마셔본 사람이면 누구나 앞다퉈 찾는 와인이다. 그만큼 맛이 좋다는 의미다.
지난 2월 14일부터 열흘간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에서는 새로 출시된 와인을 맛보는 안테프리메 토스카나(Anteprime Toscana) 2020이 열렸다. 이 행사의 시작은 키안티 클라시코가, 그리고 마지막은 '벤베누토(Benvenuto, 환영이라는 뜻) 브루넬로'가 화려하게 장식했다. 새로 출시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의 빈티지는 토스카나 최고의 빈티지라는 2015였다. 과연 그 맛은 어땠을까?
몬탈치노의 자연환경

[몬탈치노 마을과 주변의 포도밭 전경 (사진 출처: consorziobrunellodimontalcino.it)]
몬탈치노는 시에나에서 남쪽으로 약 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역이다. 우뚝 선 언덕 위에 자리한 고전적인 작은 마을과 주변의 구릉이 빚어내는 경관이 아름다워 2004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몬탈치노의 전체 면적 24,000헥타르는 대부분 숲이고 15%만이 포도밭으로 조성되어 있다. 인구도 많지 않아 약 5000명 수준이다.
지대가 낮은 곳은 부드러운 흙이 주를 이루고 높은 곳은 풍화된 이회토와 석회암으로 구성된 돌이 많은 토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중해성 기후지만 바다에서 약 40km 떨어져 있어 대륙성 기후의 특징도 보인다. 연 강우량은 약 700mm 정도로 주로 봄과 늦가을에 내린다. 바람이 자주 불어 안개나 서리는 적은 편이다. 포도 생장 기간 동안 맑은 날이 많고 온화해 포도가 충분히 익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구릉이 많은 지형이어서 경사지가 많고 해발 고도 또한 120~650m로 고르지 않아 비탈의 방향과 고도에 따라 다양한 미기후(microclimate)가 존재한다. 덕분에 같은 품종으로 만들어도 다양한 맛과 향을 표현하는 와인이 생산된다.
몬탈치노의 와인 역사
로마 패망 이후 이탈리아는 도시국가로 쪼개져 충돌과 연합이 끊이질 않았다. 몬탈치노도 예외는 아니어서 시에나와 잦은 전쟁을 벌이다 13~15세기에는 시에나와 연합해 피렌체의 메디치 세력에 저항하기도 했다. 마을을 둘러싼 튼튼한 성곽과 요새 덕분에 몬탈치노는 1559년 메디치에 의해 정복될 때까지 토스카나에서 마지막으로 항전한 곳이기도 하다.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몬탈치노의 와인 역사는 2000년이 넘는다고 한다. 중세시대에 이미 와인에 대한 규정이 만들어진 바 있고, 메디치와 전쟁이 한창이던 1553년에도 와인 생산이 중단된 적이 없다. 그만큼 몬탈치노와 와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브루넬로라는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이다. 당시 시에나의 포도 분류 위원회(Grapevine Classification Board)가 제출한 보고서에는 32년 숙성된 1843년산 브루넬로 와인이 월등한 품질을 보인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오늘날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를 있게 한 주역은 클레멘테 산티(Clemente Santi)다. 그가 만든 1865년산 브루넬로 와인이 국내외 상을 휩쓸면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브루넬로는 소수의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고급 와인으로 사랑받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프리미엄 와인으로 올라섰다. 1966년 DOC 등급을 받았고, 1980년에는 이탈리아에서 첫번째로 DOCG 등급을 받았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지금, 작은 몬탈치노 마을에는 연간 수천 명에 달하는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와 로쏘 디 몬탈치노
몬탈치노에서 생산하는 와인은 크게 브루넬로와 로쏘로 나뉜다. 두 와인의 차이를 표로 정리해 보았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vs 로쏘 디 몬탈치노]
브루넬로(산지오베제 그로쏘)는 품종 특성상 긴 숙성을 요한다. 최소 10년은 묵혀야 제맛을 낸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대신 숙성잠재력이 길다. 빈티지마다 다르지만 최적의 조건에서 보관할 경우 빈티지로부터 30년은 너끈하고 그 이상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점은 장점이자 약점이기도 하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적어도 5년은 묵혀야 출시가 가능하다. 법적으로 정해진 최소 숙성 기간이다. 와이너리로서는 이 기간이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많은 재고를 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로쏘 디 몬탈치노다. 로쏘 디 몬탈치노는 1984년에 DOC 등급을 인정받았다. 로쏘는 1년 숙성시킨 뒤 바로 출시할 수 있어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생산자들이 보다 빨리 매출을 일으킬 수 있는 수단이다. 하지만 로쏘를 단순히 수입 창출용 와인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묵직하고 복합미를 자랑하는 브루넬로 대비 로쏘는 가볍고 과일향이 풍부해 완전히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격도 브루넬로 대비 훨씬 저렴하고 다양한 음식과 두루 잘 어울려 부담없이 즐기기에는 로쏘 디 몬탈치노가 제격이다.
몬탈치노의 최신 빈티지
물부족이 없었던 2019, 습도가 비교적 높았던 2018, 서리와 이상 고온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2017, 베스트 빈티지로로 꼽히는 2016과 2015, 그리고 서늘하고 습도가 높았던 2014 등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협회는 각 빈티지를 아래와 같이 그림과 함께 별점으로 평가하고 있다. (토스카나의 빈티지별 기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안테프리메 토스카나 2020 취재기 1편 참조)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의 빈티지 (출처: consorziobrunellodimontalcino.it)]
금번 벤베누토 브루넬로에서 선보인 와인들을 살펴 보면, 로쏘의 경우 2018 빈티지도 있었으나 더 오래 숙성시켜 내놓은 2017 빈티지가 주를 이뤘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대부분이 2015빈티지였다. 리제르바는 2014가 어려웠던 빈티지였기 때문인지 단 한 건도 시음리스트에 올라와 있지 않았다. 한 해 더 숙성시키고 출시된 리제르바 2013 와인 세 가지만이 시음 리스트에 포함돼 있었다.
주요 와인 시음 기록
카스텔로 로미토리오, 로쏘 디 몬탈치노 2018
신선하고 달콤한 과일향이 풍부하게 피어오른다. 입안에서는 와인이 섬세하고 가볍게 다가온다. 마시기 편하며 다양한 음식과 두루 잘 어울릴 스타일이다.
일 마로네토, 로쏘 디 몬탈치노 2017
잘 익은 신선한 붉은 베리류의 향미가 가득하다. 풍부한 과일향과 탄탄한 구조감이 이루는 밸런스가 훌륭하다. 제법 우아함을 갖추고 있다.
산 폴로, 로쏘 디 몬탈치노 2017
딸기, 라즈베리, 자두, 체리 등 농익은 과일향이 풍부하다. 매끄럽고 부드러운 질감이 매력적이다. 여운에서는 담배, 카카오 등 숙성된 향미가 과일향과 어울려 세련된 복합미를 보여준다.

[파토리아 데이 바르비,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2015]
파토리아 데이 바르비,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2015
달콤한 과일향과 연기, 마른 허브, 검은 후추 등 복합미의 어울림이 고급스럽다. 바디감이 경쾌하고 매콤한 향신료와 과일향의 조화가 입맛을 돋운다.
까르피네토,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2015
잘 익은 붉은 과일향이 은은하게 올라온다. 입안에서는 신선한 베리향과 탄탄한 구조감의 조화가 경쾌하고 정교하다. 여운에서 길게 이어지는 과일의 달콤함이 세련미를 더한다.
루피노, 그레뽀네 마찌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2015
싱싱한 과일향과 은은한 향신료의 조화가 훌륭하다. 묵직하면서도 매끈한 질감이 아주 매력적이다. 과일향이 세련되고 힘있는 스타일이다. 우아함과 힘을 모두 갖추고 있다.
알테시노,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몬토솔리 2015
몬탈치노 북부에 위치한 몬토솔리 언덕에서 생산된 와인이다. 몬토솔리는 테루아가 뛰어나고 우아한 와인이 생산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알테시노의 이 와인은 농익은 과일향이 우아하고 커피, 계피, 후추 등 복합미가 탁월하다. 묵직한 바디감과 함께 달콤한 과일향이 입안을 기분 좋게 채운다. 조화와 밸런스가 뛰어난 와인이다.
까스텔로 반피,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포지오 알레 무라 2015
자두, 라즈베리 등 잘 익은 과일향이 풍부하고 후추, 계피 등 향신료의 어울림이 매력적이다. 질감이 탄탄하면서도 밀도감이 느껴진다. 힘과 우아함을 모두 겸비했다.
까사노바 디 네리,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테누타 누오바 2015
선명한 루비빛이 매혹적이다. 달콤한 과일향과 함께 후추, 홍차 등 복합미가 우아하다. 질감은 부드럽고 매끈하며 묵직하다. 타닌은 아직은 좀 뻑뻑한 느낌이다. 조금 더 병숙성이 필요한 듯하다. 풍부한 과일향이 입맛을 돋우며 바디감, 산도 등 밸런스도 뛰어나다.

[까스텔로 반피,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리제르바 포지오 알 오로 2013]
까스텔로 반피,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리제르바 포지오 알 오로 2013
자두, 라즈베리, 딸기, 체리 등 과일향이 농밀하다. 대추, 계피, 커피 등 다양한 향미가 우아한 복합미를 뽐낸다. 매끄럽고 탄탄한 타닌과 풍부한 과일향이 훌륭한 밸런스를 이루고 있다. 지금 마셔도 좋지만 3-4년 더 병숙성을 한다면 한층 훌륭한 맛을 보여줄 듯하다. 여운에서는 과일의 달콤함이 끝없이 이어진다.
2015가 뛰어난 빈티지이긴 하나 몬탈치노가 토스카나의 남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포도가 과숙해 와인에서 농익은 과일향과 묵직한 바디감이 느껴지지 않을까 짐작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신선하고 달콤한 과일향을 화려하게 펼쳐냈고 바디감 또한 경쾌하고 탄탄했다. 농밀함과 묵직함보다는 우아함과 정교함이 더 느껴졌다. 곧 우리나라에도 2015 빈티지가 상륙할 것이다. 반드시 맛보길 바란다. 가능하다면 사서 묵히는 것도 추천한다. 맘껏 기대해도 좋은 빈티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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