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Beaune)의 한 와인 매장에서 운명처럼 우리는 만났다. 화려하진 않지만 왠지 기품 있는 모습, 볼륨이 있는 몸매. 첫눈에 반해 눈을 도저히 뗄 수가 없었다.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던 나에게 옆에 있던 아내가 말했다.
“저거 사줄까?”
“정말? 저거 비쌀 텐데…”
결국 마음씨 착한 와이프는 내가 첫눈에 반했던, 그 매장에서 손꼽힐 정도로 비싸던 소믈리에 나이프를 구입하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와이프는 조금 더 비싼 다른 나이프를 샀던 건 비밀).
너무 신난 나는, 그날 저녁 이동하는 기차 안에서 참지 못하고 86년도산 샤토 지스쿠르를 꺼내 새로 산 소믈리에 나이프를 처음으로 사용해 보았다.
하지만.. 처음 사용하는 뻑뻑한 나이프와 30년 전부터 와인병 입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던 코르크가 만나자, 이내 코르크는 힘없이 부서져 버렸다… 건너 자리에서 가만히 보고 있던 한 프랑스인이 ‘모든 프랑스인은 와인 오픈 전문가’라면서 호의를 베풀려 했지만, 코르크 상태를 보아하니 이건 프랑스인 할아버지가 오셔도 처치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결국 와인 위에 동동 떠다니는 코르크 조각을 입술로 밀어내며 홀짝거리며 마실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그때 구입한 소믈리에 나이프는 여전히 가장 아끼는 와인 용품 중 하나로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본에서 파리로 가는 기차 안에서. 코르크는 부서졌지만 와인은 맛있었고 기분은 무척 좋았다.]
1. 코르크의 장대한 역사
와인 구력이 되시는 분들은 부서진 코르크에 대한 기억을 하나쯤은 가지고 계실 듯하다. 혹은 오래된 샴페인을 오픈할 때 코르크가 갑자기 미사일로 변신한 기억이 있으실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코르크와 와인은 떼어낼 수 없는 친구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코르크는 언제부터 와인병 마개로 사용되었을까?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증거로는 기원전(B.C.) 5세기 초 아테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고라의 오래된 우물 안에 와인을 보관하기 위해 암포라를 단단히 밀봉할 필요가 있었고, 이때 모서리를 깎아낸 둥근 모양의 코르크(오늘날 코르크와 매우 비슷하다)가 사용되었다. 그 이후 로마 시대(A.D. 4세기)까지 코르크는 암포라 마개로 꾸준히 사용되다가, 천년에 가까운 중세 시대에 코르크는 그만 오랫동안 잊혀졌다. 국제 무역 자체가 거의 없는 시기이기도 하였고, 와인 저장과 운반에는 주로 나무 배럴이 사용되었다. 결국 17세기 중반 딕비경(Sir Kenelm Digby)에 의해 유리병을 만드는 기술이 크게 발전된 후에야 와인을 유리병에 담게 되고, 이를 밀봉하는 용도로 다시금 코르크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돔 페리뇽(Dom Perignon) 수도사(샴페인의 그분)의 전설 중에, 이 분께서 샴페인 병을 막는데 코르크를 처음으로 사용하셨다는 이야기도 내려오고 있다. 기존 일반 나무 마개는 샴페인의 높은 압력을 견디지 못하였지만, 스페인에서 온 동료가 가지고 온 코르크를 이용하니 높은 압력에도 잘 견뎌냈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와인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신 한 분이시니 이 정도 대접은 충분히 받으실 만하다.
1795년에는 스크류 형태로 된 코르크 와인 오프너가 특허로 나오기도 하였고, 19세기 이후에는 거의 모든 와인병에 코르크 마개가 사용된다. 사실 그제야 비로소 (로마시대 이후로 처음으로) 숙성된 와인을 다시금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유명한 와인 저술가 휴 존슨(Hugh Johnsons)은 코르크의 발견이 고급 와인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2. 신비로운 코르크나무
코르크나무는 지중해를 둘러싸고 있는 서부 유럽과 북부 아프리카에서 자생하는 오크나무(Quercus Suber)의 일종이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전 세계 코르크나무의 80% 이상이 서식하고 있으며, 그중 포르투갈은 가장 고품질의 코르크를 생산하는 나라로 오래전부터 명성이 높다. 그 외 모로코나 프랑스에서도 코르크를 생산하고 있다.
더욱 정확히 말하면 코르크는 코르크 오크 나무의 두꺼운 껍질을 벗겨 가공하여 만든다. 흥미롭게도 코르크나무의 껍질은 벗겨진 후 9년 정도면 다시 회복하여 코르크를 만드는 데 이용된다. 보통 코르크나무가 성숙하는데 25년 정도가 걸리고 200년 넘게 살 수 있는 나무이기 때문에, 적어도 한 나무에서 12-15번의 코르크를 생산할 수 있다.
코르크 껍질을 벗겨내는 작업은 숙련된 전문가 두 명이 도끼를 가지고 수행해야 하는 매우 기술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보통 15-30분 동안 15-30kg의 껍질을 벗겨내는데 이 정도면 25유로 정도의 값어치이다. 그 후 몇 달동안 벗겨낸 껍질을 실외에서 말리고 물에 끓이고 소독하는 등 다양한 처리를 하여 부드럽고 깨끗하게 만든다.
그 후 껍질에서 질이 좋은 부분만 둥그런 모양으로 만들어내는 ‘펀칭’ 작업을 하여 와인 코르크를 만든다. 이 역시 매우 숙련된 전문가들의 몫이다. 생산된 코르크는 품질에 따라 여러 등급으로 나뉘며, 높은 등급의 코르크일수록 고가의 와인에 사용된다. 가장 좋은 등급(superior)의 코르크는 개당 1유로가 넘기도 한다.
[껍질이 벗겨진 코르크나무. 나무가 좀 추워 보이지만 9년 후에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사진출처:게티이미지.]
3. 알고보면 더욱 신비로운 코르크
17세기 영국의 생물학자 로버트 훅(Robert Hooke)은 현미경으로 세포를 처음 발견하고, 셀(cell)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실 셀이라는 단어는 ‘작은 방’이라는 의미인데, 로버트 훅이 현미경으로 어떤 나무를 관찰하다가 속이 빈 세포들이 꼭 작은 방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 바로 그때 그가 관찰했던 나무가 코르크나무였다. 세포의 발견이 그 이후 생물학의 발전에 얼마나 지대한 공헌을 했는지 생각을 해보면 코르크나무로부터 그러한 발견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사실 코르크나무가 지니고 있는 독특한 특성은 로버트 훅이 발견했던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세포 구조로부터 나온다.
자 당신 앞에 부드러운 찹쌀떡이 하나 있다. 출출한 당신은 찹쌀떡을 손으로 잡아 들어 올렸다. 하지만 너무 세게 잡으면 안 된다. 너무 세게 눌러버리면 금세 납작해져버린다. 만약 찹쌀떡을 위아래로 세게 잡으면 옆으로 늘어날 것이다. 사실 어떠한 물체든지 한 방향으로 힘을 가하면 그 방향의 직각 방향으로 물체가 늘어나게 된다. 물체마다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돈가스 고기가 A4 용지 크기만큼 커질 수 있는 것도 고기 위로 망치를 열심히 때리기 때문이다.
물체가 얼마나 잘 늘어나는지를 숫자로 나타내는 방법 중에 하나는 푸아송 비율(Poisson’s ratio)을 이용하는 것이다[1]. 힘을 가하지 않은 방향이 늘어난 정도(돈가스 고기가 늘어난 옆 방향)를 힘을 가한 방향(돈가스 고기를 망치로 때리는 방향)의 변화량으로 나눈 값이다. 그냥 쉽게 생각하면 숫자가 클수록 잘 늘어나는 물질인 셈이다. 고무 같은 물질은 푸아송 비율이 0.5 정도 되고, 딱딱해 보이는 강철도 0.3 정도 된다. 코르크의 푸아송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놀랍게도 거의 0에 가깝다. 즉 코르크 옆면을 아무리 세게 눌러도 코르크는 위아래로 거의 늘어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옆면은 상대적으로 쉽게 힘을 가해 모양을 변화시킬 수 있다. 코르크 안 빈 방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탄성이 좋아 금방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바로 이러한 특성 때문에 그토록 오랫동안 코르크가 병의 입구를 막는데 사용되어 왔다. 그리고 빈 방이 많기 때문에 그 사이의 자그마한 틈을 통해 아주 적은 양의 산소가 통과될 수 있다. 숙성하는데 약간의 산소가 필요한 와인 같은 음료를 보관하는데도 최적인 셈이다.
말이 나온 김에 코르크의 장점에 대해서 정리해 보자. 먼저 (1) 높은 탄성과 구조 덕분에 외부의 충격이나 압력 등에 의해서 모양이 거의 변하지 않아 안전하게 병의 입구를 막을 수 있다. (2) 미세하게 산소가 통과할 수 있기 때문에 병안 내용물이 숙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코르크는 (3) 가볍다. 안이 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4) 방수 재질이다. 즉 액체에 젖지 않아 내용물이 흐르지 않게 할 수 있다. 사실 코르크는 가볍고 물에 뜨기 때문에 인류 역사에서 낚시찌(낚시하시는 분은 바로 이해가 되실 듯)로 이용되어 오기도 했다. 와인 마개로 이만한 재질이 없다는 사실이 이해가 된다. 사실 와인병은 규격화가 많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워낙 많은 종류가 있고 다양한 곳에서 생산하기 때문에 병 입구의 크기가 미세하게 다를 수도 있다. 만일 코르크를 마개로 사용한다면 이러한 미세한 차이는 코르크의 특성으로 인해 가려질 수도 있다.
다음으로 환경에 대한 장점을 살펴보자. 일단 코르크는 (5) 자연분해되는 천연물질이다. 또한 (6) 재활용이 가능하다. 장식 목적으로만 재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와인 마개로 다시 사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건물 내장재나 신발 밑창을 만들 때도 사용될 수 있다. 최근에는 우주선 내부 내장재로 코르크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실제로 코르크 재활용을 위한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2]. 그리고 (7) 코르크는 종이와 달리 나무를 베지 않고 만들 수 있는 물질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코르크나무는 9년마다 코르크를 다시 생산할 수 있다. 또한 코르크나무는 껍질을 생산하기 위하여 (8) 다량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즉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측면에서도 코르크나무는 무척 의미가 크다.
[코르크 마개는 코르크 나무 껍질에서 원통형으로 펀칭되어 만들어진다. 사진출처: corklink.com]
4. 하지만 용서할 수 없는 너
자, 여태껏 이렇게 많은 장점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 단점 이야기를 해보자. 일단 코르크는 자연에서 얻어지는 재료이기 때문에 코르크나무의 종류, 수령, 그리고 무엇보다 나무의 어느 부분에서 추출되었는지에 따라서 품질 차이가 크다. 따라서 코르크는 여러 등급으로 나뉘며, (1) 코르크의 등급이 낮을 경우 조직이 균질하지 못하여 산소투과율(OTR)이 높다. 이러면 코르크를 사용하더라도 숙성을 오래 시키면 과도하게 산화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2) 등급에 따라서 코르크의 수명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가장 높은 등급이어도 20년 이상 사용하면 코르크의 조직이 물러지고 분해된다. 따라서 산소의 투과율이 높아지며 와인을 오픈할 때도 코르크가 쉽게 깨지게 된다(프랑스 기차안에서처럼;). 또한 코르크나무 껍질에서 코르크 마개로 탄생하기까지 상당히 다양한 과정이 요구되며 전문가를 포함한 인력도 많이 필요하다. 그리고 껍질 중 가장 품질이 좋은 부분이 코르크 마개를 만들 때 사용된다. 따라서 (3) 가격도 낮지 않다.
하지만, 진정한 단점은 따로 있다. 그것은 (4) 코르크가 와인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름도 외우기 힘든 2,4,6-트리클로로아니솔(trichloroanisole)이라는 성분이 코르크 안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 사실 저 이름을 제대로 외우는 일반 와인 애호가는 거의 없다(있더라도 친구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다들 TCA라고 부른다.
하지만, 와인 애호가라면 TCA의 생성 원리 정도는 알고 있을 필요는 있다. 간단하게 설명해 보자. 산업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물질 중에 클로로페놀(chlorophenol)이라는 성분이 있다. 강력한 성분인지라 살균제나 살충제, 나무 보존제 등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나무를 표백할 때 염소를 사용하는 경우 생성되기도 한다. 코르크를 만드는 여러 과정 중 살균 및 표백을 위해서 만약에 클로로페놀이 포함된 화합물을 사용했다면, 최종 코르크에도 이 물질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공기 중에 날아다니던 몇 종류의 균류(곰팡이 혹은 박테리아)가 우연히 와인 코르크 안으로 들어갔는데, 만일 코르크 안에 클로로페놀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균류는 깜짝 놀라면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클로로페놀을 클로로아니솔(chloroanisole)이라고 불리는 물질로 바꾼다. 그 중에 염소 원자가 3개 달린 형태를 트리클로로아니솔(trichloroanisole)라고 부르고 이것이 TCA이다.
[TCA의 구조: 중간에 있는 아니솔(Anisole)에 염소 분자(Chloro)가 3개(Tri)달려 있다. 그래서 TCA라는 약자로 부른다. 출처: 위키피디아]
TCA 자체는 유독한 클로로페놀과는 달리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는 물질이다. 하지만 매우 독특한 성질이 있는데, 이 화합물은 사람의 후각 신경을 교란시켜 일반적인 향을 잘 못 느끼게 하고, 특정 종류의 향에 더욱 민감하게 만든다. 이러한 특정 종류의 향은 보통 지하실의 퀴퀴한 냄새, 젖은 신문지 냄새, 곰팡이 냄새 등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TCA에 오염된 와인의 향을 맡으면 와인이 자체적으로 지닌 과실 향 등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TCA 양이 많은 경우 와인에서 그리 즐겁지 않은 퀴퀴한 냄새가 난다(개인적으로는 젖은 신문지 냄새가 제일 먼저 연상된다). 이런 냄새가 심하면 와인 자체를 마시기가 힘들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 와인에 대해서 실망하게 되고, 와인 마시는 자리의 분위기를 망쳐버릴 수도 있다.
따라서 소믈리에가 와인을 오픈한 후, 코르크가 와인과 접촉하고 있던 부분의 냄새를 먼저 맡으면서 TCA 여부와 같은 와인의 상태를 체크하는 장면을 매우 일반적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TCA 오염이 된 와인을 보통 코르키(corky)한 와인, 혹은 코르크된(corked) 와인이라고 표현한다. 만약 레스토랑에서 주문한 와인이 TCA에 오염되었다면 당연히 교환을 요청해야 하며, 코르크된 와인으로 인한 와인산업 전반에 대한 피해 양도 엄청나다.
인간의 후각은 신기하게도 TCA에 대해 매우 매우 민감하다. 아마도 TCA가 곰팡이로 인해 생성되는 물질이기 때문에, 사람이 이에 특별히 민감하도록 진화가 되어온 듯싶다. 화이트 와인의 경우 종종 TCA의 농도가 2ppt만 되어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ppt라는 단위는 part per trillion, 즉 1000톤에 1밀리그램이 들어 있다는 의미이다. 와인을 예로 들면 1리터당 0.0000000000002 그램만 들어있어도 느낄 수 있는 양이다. 다른 예로 올림픽 경기에서 사용되는 크기의 수영장에 가득 차 있는 물 중에서 티스푼으로 한번 뜬 정도의 양에 해당한다.
다만 TCA에 민감한 정도는 개인차가 매우 커서, 수십수백배가 넘는 양에도 못 느끼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와인 애호가로서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경험이 쌓일수록 점점 민감해지는 경향도 있다. 따라서 어느 정도 이상이 되어야 TCA 오염인지에 대한 공식적인 기준은 없다. 화이트 와인이나 피노 누아 같은 와인에서 더욱 민감하게 느껴지며, 까베르네 소비뇽 같은 강한 과실향을 지닌 와인에서는 상대적으로 더욱 많은 양의 TCA이 있어야지 감지된다.
따라서 현재 얼마나 많은 와인이 코르크 되어 있는지 조사한 자료들도 각자의 기준에 따라 전부 다를 수밖에 없다. 과거의 자료들에 따르면 1~15%까지 매우 다양한데, 보다 공신력 있는 자료를 살펴보자면, 2005년 와인스펙테이터의 짐 라우비가 캘리포니아 와인 2,800종을 테스트한 결과 7% 정도의 와인이 TCA에 오염되었다는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이 정도면 한 케이스(12병)에 한 병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더욱 최근(2020년)에는 와인 엔수지애스트(Wine Enthusiast)가 3.5~6%의 비율을 발표하였다. 낮은 등급의 코르크를 사용하는 와인에만 있는 현상도 아니다. 미국 워싱턴주 와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코르크된 와인의 평균 가격이 $43에 달했다.
즉 코르크 마개에 의한 TCA 오염은 생각보다 매우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현상이다. 따라서 많은 와인 생산자들과 애호가들은 코르크에 대한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다양한 대체 와인 마개(스크류캡, 인공 마개 등)가 탄생하게 된 가장 직접적인 이유도 바로 TCA 때문이다[3].
5. 코르크의 변명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자. TCA는 클로로페놀과 곰팡이(혹은 박테리아)가 만나서 만들어내는 물질이라고 했다. 그런데 꼭 코르크 와인 마개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일까? 그렇지는 않다. 만일 와인을 양조하는 와이너리의 설비 등에서 TCA가 이미 생성되었다면 그것은 고스란히 와인에 담기게 될 것이다. 와이너리에서 설비를 청소할 때 염소를 사용했거나, 양조할 때 사용했던 나무 배럴에서 생성될 수도 있다. 실제로 1990년대 많은 프랑스 와이너리에서 화학적으로 살균 처리한 나무로 와이너리 시설을 지었는데, 그만 이 나무에서 TCA가 발생되어버렸다. 그래서 이 나무들을 다 뜯어내고 공사를 다시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와이너리 자체 때문에 생기는 TCA를 시스템 TCA라고 부른다.
만일 한 와이너리의 와인들이 지속적으로 (심지어 다른 빈티지일지라도) 코르크된 상태로 발견된다면, 이는 코르크 마개의 문제가 아닌 그 와이너리 자체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이러면 ‘코르크된’이라는 말이 억울하다). 와인 마개로 코르크가 아닌 스크류캡을 사용했다고 하도 이 와이너리에서 만든 와인에서는 코르크된 향이 나타나게 된다. 와인스펙테이터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의 유명한 와이너리 몇 곳이 시스템 TCA로 고통받고 있다고 한다.
다른 측면도 생각해 보자. TCA는 일단 클로로페놀이 문제이다. 작은 균류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 그러면 이 물질을 사용하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실제로 와인 역사에서 코르크된 와인이 처음 언급된 것은 1933-1956년 쌍파뉴에서 수행된 연구이긴 하지만, 이 정도로 심각하게 문제가 된 것은 1980년대 이후이다. 갑자기 너무 많은 와인들이 TCA에 오염된 것이었다. 실제로 클로로페놀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상업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이에 대해서 신빙성 있는 주장도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전 세계에서 가장 코르크를 많이 생산하는 나라는 포르투갈이다. 1974년 포르투갈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나 파시스트 정권이 전복되었다. 그 후 2년간은 매우 혼란스러웠던 시기로,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코르크나무 숲을 “소유주로부터 해방시키자”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토지와 코르크나무에 대한 지식이 있던 소유주들은 해외로 도피하고, 코르크 산업의 많은 부분이 아마추어들에 의해 운영되었다. 이들은 품질보다는 생산량을 원했기 때문에, 비료와 살충제들이 이해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사용되기도 했다.
1976년 선거를 통해 포르투갈은 다시 안정화에 천천히 들어서긴 했지만, 산업이 회복되는데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82년 기록에는 코르크를 닦기 위해 염소가 여전히 사용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나무껍질들은 수주 동안 실외에서 방치되다 싶이 놓여있었고 그 사이에 곰팡이가 자유롭게 자라나고 있었다.
코르크 품질에 대한 심각한 의심이 있는 시기였지만, 역설적으로 코르크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크게 성장하고 있었다. 호주와 뉴질랜드가 새로운 와인지역으로 성장하면서 코르크 마개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난 것이었다. 이 당시 포르투갈에서 호주로 선적했던 배 한 척에 담겨 있던 코르크 전체가 오염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배 데크용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페인트에 염소가 포함이 되었었는데, 코르크에 있던 곰팡이 때문에 모든 코르크에 TCA가 형성이 되었던 것이었다[4]. 실제로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TCA 오염에 대한 피해를 심하게 보았고, 이는 스크류캡등 대체 마개 개발에 매진하게 된 하나의 계기가 된다.
6. 코르크가 바라는 미래
이제 코르크나무를 표백할 때 염소를 쓰는 생산자는 없다. 하지만 매우 안정적인 화합물인 TCA가 완전히 사라지기는 힘들다. 클로로페놀 또한 완전히 제거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이제 생산자들은 이를 최대한 막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은 고안하고 있다. 일단 나무의 불필요한 사용을 줄이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와인 양조에서 오크 배럴을 사용하는 것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그 외 나무 선반이나 나무 기둥 등의 시설들은 다른 재료로 바꾸는 것이다.
[알리온(Alion) 와이너리 시설 중 일부. 나무 배럴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타일이나 철로 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코르크 마개를 생성하는 기술 또한 크게 발전하고 있다. 디암(Diam)으로 대표되는 대표적인 테크니컬 코르크(Technical Cork) 생산자들은 코르크나무에서 문제가 되는 성분을 제거하기 위해 오랫동안 기술을 개발해왔다. 주목할 만한 기술로 초임계 이산화탄소(supercritical CO2) 공법이 있는데, 이산화탄소를 초임계 상태(액체와 기체의 중간단계)로 만들어 코르크 안에 있는 TCA 성분을 모두 제거하는 방법이다. 사실 이 방법은 디카페인 커피를 만드는 데 먼저 사용되어 왔지만, 실제로 와인에 적용하는 데는 7년이라는 개발 기간이 필요하였다. 2017년에는 또 다른 커다란 코르크 마개 회사인 아모림(Amorim)에서 TCA-프리 코르크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TCA와의 싸움은 현재에도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그 결과 이전에 비하여 TCA 문제가 많이 줄어들고 있다. 코르크의 품질을 평가하는 Cork Quality Council의 2013년 리포트에 따르면 2만 5천 병의 와인을 조사한 결과, 8년 전보다 오염된 코르크가 81%가 감소했다고 한다. 여러 유명 와이너리들도 전통적인 코르크에서 벗어나, 더욱 기술적으로 진화된 형태의 코르크를 고급 와인의 마개로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모습은 분명 여전히 와인 마개로서 코르크가 충분히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코르크나무가 갖는 환경적인 영향을 한 번 더 언급해 보고자 한다. 앞서 코르크나무는 껍질을 다시 생산하기 위하여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고 했다. 그 흡수하는 양이 매년 천만 톤에 이른다고 한다. WWF(World Wildlife Fund)에 따르면 코르크나무가 살고 있는 포르투갈 숲은 세계에서 가장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숲 중에 하나이다. 1제곱미터당 135종의 생물이 살고 있다니 가히 엄청난 생물들이 이 숲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WWF는 실제로 이 숲을 포함한 지중해 코르크나무 숲을 보호하기 위한 프로젝트(2004-2009)를 수행하기도 했다. 환경을 위해서도 코르크는 여전히 계속 사용되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사실 코르크는 와인 마개 산업에서 이천오백 년간 독과점이었다. 경쟁자가 나타난지 이제 삼십여 년이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기간동안 무척 다양한 대체 마개들이 개발되었고 꾸준히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젊은 와인 애호가들은 코르크에 대한 충성심도 크지 않다. 더 쿨하고 모던한 모양의 마개들은 꾸준히 우리를 유혹할 것이다. 하지만 코르크도 한편에서 발전 중이다. 코르크가 그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았던 이유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단점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여전히 사람들은 코르크 마개를 그 마개와 함께 있었던 와인을 추억하고자 모을 것이다. 치열한 도전, 그리고 변화와 발전은, 와인 뿐 아니라 와인 마개에서도 이렇게 현재 진행중이다.
[1] 와인에 담긴 과학, 강호정 저. 사이언스북스.
[2] French cork trade federation (FFSL)에서는 프랑스 많은 도시에 코르크를 모으는 곳(collection points)을 설치해 코르크 재활용 운동을 이끌고 있다.
[3] ‘세상에 나쁜 마개는 없다’에서는 14 종류의 다양한 와인 마개를 소개하고 있다.
[4] 호주와 뉴질랜드라는 새로운 와인 생산국에 위협을 느껴 유럽에서 의도적으로 오염된 코르크를 보냈다는 음모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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