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 한자로는 청금석이라고 불리는 파란색 보석이다. 매혹적인 푸른색 바탕에 약간의 하얀 빛 혹은 금빛을 담고 있어, 가끔은 구름이 흐르고 있는 푸르른 맑은 날, 혹은 노을이 지는 개와 늑대의 시간의 하늘을 닮아 있기도 하다. 그래서 이름도 '하늘의 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라피스(lapis)는 라틴어로 '돌', 라줄리(Lazuli)는 '하늘' 혹은 '천국'을 의미한다.

[라피스 라줄리. 하늘의 돌, 혹은 천국의 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Oliver Mohr, Shutterstock)]
워낙 아름다운 보석인지라, 인류 역사에서 적어도 신석기 시대 인더스 문명 때부터 고귀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보석으로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그만큼 희귀성도 높아 극소수의 지배층만이 소유할 수 있었다. 이집트에서 특히 이 보석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 유명한 투탕카문의 가면을 비롯해 많은 무덤에서 이 보석이 사용된 장신구들이 발견되었다. 라줄리가 뿜어내는 푸른빛이 사자를 지켜주는 주술적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유럽으로 이 보석이 전해진 후에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한 청색을 나타내기 위한 매우 값비싼 안료 및 색소로도 사용되었다. 아시아에서 바다를 넘어왔다는 의미에서 '울트라마린(ultramarine)' 이라고 불리는 그 짙은 청색이 바로 라피스 라줄리가 만드는 색이다. 티치아노(Titian)나 베르메르(Vermeer)의 미술 작품에서 실제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베르메르의 유명한 그림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 소녀가 쓰고 있는 진한 파란색 두건의 색이 실제 울트라마린을 사용하여 만든 색이다. 엄청나게 고가의 색소를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는 점에서도 베르메르의 작품들은 여전히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인류 기록으로 가장 먼저 라피스 라줄리가 발견된 곳은 아프가니스탄의 북부 지역으로 현재에도 대표적인 생산지역으로 뽑히고 있다(탈레반이 가장 먼저 점령한 곳이기도 하다). 그 외 북미나 몽골 등에서도 소수 발견되기도 했지만, 19세기 중반 칠레 중부 코큄보(Coquimbo) 지역에서 라줄리가 발견된 이후로, 칠레는 아프가니스탄과 쌍벽을 이룰 만큼 고품질의 라줄리를 생산하는 국가가 되었다. 안데스산맥 상부 적어도 3,500m 이상 고도에서 발견되는데, 워낙 지형도 험하고 기후도 추워서, 일 년 중 여름 한때에만 채굴이 가능할 정도이다. 하지만 이 푸른 보석은 금세 칠레를 대표하게 되었으며, 1984년에는 칠레에서 국가의 보석(national stone)으로 라줄리를 선정하기에 이른다.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The Girl With The Pearl Earring) (1665) (출처: 위키피디아)]
II
샤토 마고(Chateau Margaux)의 1970년대는 암울했다.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이 거대한 샤토를 갑자기 소유하게 된 코린 망즐로풀로스(Corinne Mentzelopoulos)는 아직 30대 초반이었고 이 시기 보르도의 경제 위기 역시 심각했다. 그러던 중 한 와인메이커를 채용하게 되었는데, 그의 이름은 폴 퐁타이예(Paul Pontailler), 양조학을 공부한 보르도 출신의 27살 젊은 와인메이커였다. 그리고 그는 2016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33년간 샤토 마고의 와인 생산을 전담하면서 보르도 1등급 그랑크뤼의 위상을 드높인, 프랑스를 대표하는 와인메이커가 된다.
그는 뛰어난 양조 능력 못지않게 인격적으로도 매우 훌륭한 인물이었다. 우아하면서도(elegant) 잘 정제된(refined) 성격과 부드러운 말투를 지닌 남자였는데, 이는 정확히 샤토 마고의 캐릭터와 일치한다. 와인메이커의 성격은 그가 만드는 와인에 그대로 투영된다는 말이 있는데, 퐁타이예는 정확히 샤토 마고의 특성과 동일시되는 인물이었다.
그는 33년간 마고에 재직하는 동안 몇 가지 모험적인 일을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특히 오랜 친구였던 브루노 프랏(Bruno Prats)(코스데스투르넬의 이전 소유자)과 1990년부터 칠레에서 '비냐 아퀴타니아(Viña Aquitania)'를 설립하고 칠레의 뛰어난 땅들을 찾아다녔다. 남반구에 위치한 칠레는 프랑스와 계절이 반대이기 때문에, 일 년간 끊임없이 와인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기에는 칠레와 같은 계절과 자연환경을 가진 국가가 최선의 선택이었다. 와이너리의 이름인 '아퀴타니아(Aquitania)'는 라틴어로 '아키텐(Aquitaine)' 즉 보르도가 위치한 지방의 이름을 뜻한다. 칠레 땅 위에서 샤토 마고 같은 보르도 그랑크뤼와 같은 와인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었으리라.
레드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 최종적으로 선택한 지역은 산티아고에서 멀지 않은 마이포 밸리, 그중에서 안데스산맥과 가장 가까운 높은 고도의 페냐놀렌(Peñalolén)이었다. 이 지역은 현재까지도 칠레 최고의 까베르네 소비뇽이 생산되는 지역이다. 안데스산맥으로부터 내려오는 선선한 바람은 까베르네 소비뇽에 은은한 민트향과 스파이시한 뉘앙스를 선사하고 뛰어난 복잡성을 부여한다. 특히 마이포 밸리의 다른 저고도 지역과 달리 페냐놀렌에서는 비티스피레인(vitispirane)라고 불리는 성분이 많이 생성되는데, 이로 인해 다른 칠레 와인과는 차별화되는 매력적인 특성을 갖게 된다. 칠레의 특정 지역에서만 생산할 수 있는 뛰어난 와인, 퐁타이예는 그 와인 이름에 칠레의 보석 이름인 '라줄리' 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다.

[안데스 산맥 아래 페냐놀렌에 위치한 포도밭에서. 오른쪽에서 두번째분이 폴 퐁타이예(Paul Pontailler).]
III
다음으로 퐁타이예는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기 위한 지역을 찾게 된다. 여러 후보지 중 최종 선택한 지역은 칠레 중부 말레코 밸리(Malleco Valley)에 위치한 트라이구엔(Traiguén)이다. 칠레의 일반적인 와인 생산지역보다 훨씬 남쪽에 위치한 곳으로, 처음 이 지역을 찾았던 1993년에는 어느 누구도 와인을 생산하지 않는 지역이었다. 따라서 칠레 농업부를 설득해 이 지역에 양조용 포도 재배 허가를 받아내고 포도를 심어 2000년에 처음으로 샤도네이 와인을 출시하게 된다.
차가운 태평양 바람과 함께 칠레 중부의 서늘한 기온은 샤도네이 같은 품종의 산미를 보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 지역에 가득한 붉은색 화산토는 와인에 미묘한 복잡성 및 미네랄러티를 표현한다. 화산토의 깊이도 깊기 때문에 포도 뿌리 또한 깊게 내릴 수 있고 수분을 보존하는 능력도 좋다. 12월에서 3월 사이에 이 지역에는 비가 거의 오지 않고 바람도 많이 불기 때문에 이러한 수분 보존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추운 지역이라 수확량도 많지 않아 더욱 집중된 풍미의 와인을 얻을 수도 있다. 새로운 땅에 대한 도전정신은 결국 말레코 밸리라는 고품질 샤도네이 와인을 위한 새로운 지역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이는 다른 칠레 와인 생산자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말레코 밸리는 추운 지역이지만 여름 햇볕의 양은 칠레의 다른 와인 생산지역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남반구에서는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여름에는 더 오랫동안 햇볕을 쬘 수 있기 때문이다. 말레코 밸리가 와인이 생산 가능한 위도의 거의 끝부분에 위치한 덕분에 이 지역에서 자라는 포도는 여름에 충분한 햇볕을 보며 성장할 수 있다. 따라서 '태양에서 태양으로' 라는 뜻의 솔데솔(Sol de Sol)이라는 이름을, 이 말레코 밸리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와인의 이름으로 선정하였다.

[말레코밸리 트라이구엔의 지형. 깊은 화산토는 포도 생육에 필요한 다양한 영양분과 수분을 공급한다]
IV
처음으로 이 두 와인을 접한 것은 수입사에서 진행한 블라인드 테이스팅 자리였다. 유명한 소믈리에 분들과 함께 라줄리와 솔데솔을 비롯하여 총 3종의 화이트 와인, 그리고 3종의 레드 와인을 블라인드로 테이스팅하였다.
먼저 솔데솔 샤도네이는 피터 마이클(Perter Michael) 샤도네이, 그리고 풀리니-몽라셰(Puligny-Montrachet)와 함께 서빙되었다. 솔데솔의 첫 향은 화산 토양에서 만들어지는 오묘한 미네랄러티가 인상적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과실의 향과 맛의 집중도가 좋아지는데, 리(lee) 위에서의 숙성으로 얻어지는 부드러움으로 인해 확실히 부르고뉴 스타일의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약간의 오크 터치도 느껴졌는데 미국 와인 정도의 강한 터치는 아니었지만 기저에서 와인을 잘 뒷받침하고 있었다.
전체적인 산도도 생각보다 날카롭지 않아 마시기에도 편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6% 정도의 약한 유산발효를 진행하였다. 또한 10% 정도의 뉴 프렌치 오크를 사용했다. 결론적으로 신대륙적인 느낌이 오묘하게 깔려 있으면서도 상당히 프랑스 스타일의 정교하게 짜인 와인으로 평가할 수 있다. 블라인드로 테이스팅을 하니 피터 마이클보다는 풀리니-몽라셰에 훨씬 가까운 캐릭터를 보여주었다. 아키텐 지방 출신의 와인 메이커의 손길이 강하게 느껴지는 와인이다.

[라줄리와 솔데솔은 여러 소믈리에 분들과 함께 블라인드로 테이스팅하였다]
다음 리줄리는 알터 에고 드 팔머(Alter Ego de Palmer)와 보리우 빈야드(Beaulieu Vineyard) 까베르네 소비뇽와 함께 테이스팅하였다. 먼저 리줄리는 페냐놀렌이라는 지역의 특성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어쩌면 보르도스럽다고 생각될 만큼 어두운 가죽 뉘앙스 뒤에는 정향 계통의 상당한 양의 스파이시가 느껴졌다. 잘 익은 검은 과실이 지배하지만 그 사이로 약간의 레드 계열의 과실향도 새어 나와 보다 높은 고도의 선선한 기후의 지역 특성이 잘 드러났다.
그리고 시음한 와인이 2014빈티지였는데 이미 숙성된 느낌까지 받을 수 있었다. 와이너리에서 충분히 숙성을 시킨 후에 출시를 한다고 하는데 텍스쳐도 벌써 부드럽게 풀려 있고 참 마시기 좋은 맛있는 밸런스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 점에서는 알터 에고와 비교가 되었는데, 알터 에고는 예상과 부합하는 보르도의 가죽 향과 좋은 집중도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너무나 어린지라 밸런스가 잡히려면 아직 긴 세월이 필요한 와인이었다. 보리우 빈야드는 나파밸리 고유의 달콤한 과실에 따뜻한 기후에서 잘 자란 포도의 느낌이 가득했다. 리줄리 또한 잘 익은 달콤한 뉘앙스도 충분히 가지고 있지만 오히려 미국보다는 프랑스에 더 가까운 캐릭터를 지닌 와인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마시기에 참 좋게 숙성되고 있는지라 2014년 빈티지를 구할 수 있다면 바로 마셔도 기분 좋은 숙성된 까베르네 소비뇽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와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론적으로 리줄리, 그리고 솔데솔은 신중히 고른 칠레의 이상적인 땅에서 자라난 포도를 보르도인의 손길로 양조한 하나의 보석 같은 와인이었다. 퐁타이예의 풍부한 경험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정을 통해 일반적인 칠레 와인과는 상당히 다른 아이덴티티의 와인이 탄생하였으며, 그의 젠틀한 손길은 여전히 정교하게 와인의 향과 맛 안에서 숨 쉬고 있었다. 무엇보다 비슷한 품질의 보르도나 부르고뉴 와인보다 훨씬 좋은 가격까지 가지고 있으니, 그가 만든 와인은 분명히 접해볼 가치가 있다. 달콤한 보석과 같은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비냐 아퀴타니아의 두 가지 보물같은 와인 솔데솔 샤도네이와 라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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