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지아 와인 6편] 조지아 와인의 10가지 비밀

조지아(Georgia)는 1991년 구 소련이 붕괴하면서 독립한 나라로 필자처럼 냉전시대를 겪은 사람들에게는 '그루지야'라는 러시아식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진 나라이다. 독립 후 자국의 이름이 러시아식으로 불리는 것에 불만이 있었는지라 조지아라는 영어식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했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2011년 정식으로 조지아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사실 '조지아'라는 이름은 나라 이름보다는 사람 이름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교 성인 중 한 명인 성 조지(St. George)의 이름을 딴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독교 신앙(동방 정교회)이 독실한 나라이기도 하고 유럽에서 가장 오랜 기간 기독교 신앙을 지켜온 나라이기도 하다. 수도는 트빌리시(Tbilisi). 수도 이름 맞추기 게임에서 상당히 높은 난이도에 등장하곤 하는 이름이다.


자, 이 정도면 웬만큼 조지아라는 나라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있을까? 아니다. 아직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바로 조지아와 와인과의 관계이다. 아니, 동유럽 국가인 조지아에서도 와인이 나온다고?


그래서 준비했다. 조지아와 와인의 관계는 적어도 10가지는 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이 10가지의 비밀에 대해서 알게 되면, 여러분은 조지아라는 나라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1. 8000년 전 그곳에는 와인이 있었다

조지아는 캅카스 산맥(Caucasus)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캅카스 산맥은 5천 미터가 넘는 산들이 수두룩 한 만년설 가득한 거대한 산맥이다. 하지만 흑해와도 인접해 있는지라 예로부터 동서양 교통의 요지로 손꼽혀왔다. 즉 서방 사람들은 이란 고원의 더위를 피해 쭉 위로 올라왔다가, 혹은 흑해를 따라 동으로 향하다가 높은 캅카스 산맥에 가로막혀 조지아가 위치한 지역을 걸어서 건너야만 했다. 이곳은 날씨도 좋고 넓은 평야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조지아는 동유럽이기도 하고 서아시아이기도 한, 딱 그 경계에 있는 나라이다. 따라서 매우 오랜 역사(및 침략의 역사)를 지닌 곳이다. 대략 2-4만 년 전부터 현생인류가 거주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가장 먼저 양조용 포도가 재배되고 와인이 양조된 지역으로도 알려져 있다. 펜실베니아 대학에 패트릭 맥거번이라는 교수님이 계신데, 일생을 와인의 역사를 밝히기 위하여 헌신하고 계신 진정한 술덕후 교수님이시다. '술의 세계사'라는 걸작도 남기신 술 좋아하게 생기신 뚱뚱한 교수님이신데, 2017년 PNAS라는 세계 최고의 저널에 '남 캅카스 산맥 신석기시대 유적지에서 BC 6000년, 지금으로부터 약 8000년 전에 와인이 생산되었다는 사실'을 발표하였다[1]. 현존하는 최고의 기록이다. 오랜 탐사 후 이 지역 고대 유적지에서 출토된 항아리에서 와인의 부산물(tartaric acid)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 이후 이 내용은 학계의 정설로 인정되어 조지아는 전 세계 와인의 요람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고대 유적지에서 발굴된 토기[1]. 현재 조지아에서 사용중인 크베브리와 비교해도 모양에서 큰 차이가 없다]



2. 모든 와인 포도는 조지아에서 나왔다

포도는 여러 종류가 있다. 그중에서 와인을 만드는 포도 종류를 특별히 비티스 비니페라(vitis vinifera)라고 부른다. 보통 유럽산 포도라고도 부르는데 상대적으로 알은 좀 작지만 당도 및 산도가 좋고 색을 내는 폴리페놀 성분도 많아 와인을 양조하기에 최적인 포도이다. 그런데 유전자분석 결과 이 비티스 비니페라의 고향이 조지아가 위치한 캅카스 산맥 남부로 밝혀졌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비티스 비니페라가 (적어도 8천 년 전에) 사람 손에서 재배가 되었고 와인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이후로는 수메르문명, 이집트문명, 그리스-로마문명 등 인류의 문명사를 따라 와인용 포도가 전파되었다. 그리고 현재에는 전 세계에서 이 포도로 만든 와인을 찾아볼 수 있다.


알아두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성경에 노아의 방주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대홍수를 피해 커다란 배를 만들어 살아남은 노아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성경뿐 아니라 길가메시 서사시를 비롯한 다양한 고대 문헌에서도 나오는 유명한 홍수신화이기도 하다. 현대에 와서 이 노아의 방주의 위치를 분석한 연구들에 따르면 노아의 방주의 위치를 대부분 캅카스 산맥 남쪽 부근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성경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고 포도주를 마시고…”[2]. 즉 캅카스 산맥 남쪽 포도와 와인에 대한 역사는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사실이다.


마지막 보너스 하나. 우리가 와인(wine)이라고 부르는 단어는 유럽 각국 언어로도 대부분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 독일어 바인(wein), 프랑스어 뱅(vin),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 비노(vino), 라틴어 비눔(vinum)등이 그러하다. 그런데 이 단어의 어원을 추적한 결과 조지아등에서 사용하는 카르트벨리어(Kartvelian)의 단어 'ghvino' 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포도나무와 와인뿐 아니라 와인을 뜻하는 단어 또한 조지아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3. 조지아 문자는 포도나무를 닮았다

조지아 언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 중 하나이다. 거의 이쪽 지역에서만 사용되는 카르트벨리어족에 속하는 언어인지라 단어들을 보면 분명 낯선 느낌이 있다. 또한 독자적인 알파벳 체계를 가지고 있다. 사실 전 세계에서 독자적인 알파벳을 가지고 있는 언어는 (자랑스러운 한국어를 비롯하여) 14개 정도밖에 없다. 현재 가장 많은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인도유럽어족 언어 또한 이 부근에서 발생했다는 것이 정설인데, 그 오랜 외세의 침략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만의 언어와 알파벳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대단하다. 이에 2016년에는 조지아 알파벳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지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므헤드룰리(მხედრული)라고 불리는 조지아 알파벳의 표준 필서법을 보면 재미있게도 모두 곡선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아래 그림은 조지아어 자판인데, 이 알파벳을 죽 이어서 글을 쓴 것을 보면 흡사 포도나무 줄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조지아에서 와인은 종교와 동등한 의미로 인식된다. 4세기경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 니노(St. Nino)는 조지아의 대표 성인인데, 일명 성 니노의 십자가로 불리는 조지아의 십자가 문양은 포도 줄기 십자가(grapevine cross)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정말 포도 줄기처럼 생긴 독특한 모양이다). 따라서 조지아의 거의 모든 성당에는 포도와 포도 줄기 모양의 장식을 찾아볼 수 있으며 이와 함께 쓰여져 있는 조지아 언어 또한 전혀 이질감이 없이 잘 어우러진다.


[조지아 문자 키보드 자판 (출처: 위키피디아)]



4. 조지아에는 525개 이상의 고유한 포도 품종이 있다

조지아는 대한민국의 2/3 정도 크기의 작은 나라이고, 국토의 80%이 험난한 캅카스 산맥 및 거대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하지만 와인의 원조국답게, 조지아 안에서는 공식적으로 525개의 고유한 포도품종이 발견되었다. 구소련 지배 시기에 고유 품종들이 생산량 높은 하이브리드 품종으로 대체되면서 많은 수가 잊혀 버릴 위험에 처하기도 했었지만, 독립 이후 연구 및 분석을 통해 다시금 많은 고유 품종들이 되살아 났다. 물론 그중에 상업적으로 주로 사용되는 종류는 30-100여 종이긴 하지만, 국토 면적에 비하면 여전히 매우 다양한 품종의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조지아 와인 품종 이름을 외우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이름들이 전부 낯설기 때문이다. 만일 조지아 와인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다면, 일단 두 가지 품종 이름은 먼저 외어 보자. 조지아에서 나오는 와인의 75%는 화이트와인(그리고 앰버와인)이다. 대표적인 화이트와인용 품종은 르카치텔리(Rkatsiteli, რქაწითელი)이다. 이 품종은 줄기가 붉은 빛을 띠는 것이 특징인데, 그래서 줄기(rkat) + 빨간(tsiteli)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레드 품종은 사페라비(Sapaeavi, საფერავი)를 기억하면 된다. 빛깔도 진하고 숙성 능력도 좋은 품종인데, 그래서 이름자체가 색(color)이라는 의미이다.


서유럽의 포도 품종, 예를 들어 네비올로, 피노누아, 시라 등은 모두 현재 조지아에서 찾아볼 수 있는 품종들과 유전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고, 공통된 계통의 조지아 포도 선조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 유전자 분석을 통해 이미 증명되었다. 이 포도들이 어떠한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생각하면서 조지아 와인을 마셔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조지아 대표 화이트 품종 르카치텔리(რქაწითელი) (출처: 조지아 와인협회)]


[조지아 대표 레드 품종 사페라비(საფერავი) (출처: 조지아 와인협회)]]



5. 조지아에서는 산양 뿔에 와인을 담아 마신다

조지아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 중 하나는 수프라(supra)라고 불리는 행사이다. 테이블에 전통문양 식탁보를 깔고 모여 앉아 오랫동안 음식과 와인을 마시는 문화인데, 여기에는 타마다(Tamada)라고 불리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일행 중 말도 잘하면서 신중하고 유머도 있는 사람 중에서 뽑히는데, 이제 이 사람이 그 모임을 이끌면서 사람들에게 건배 제의를 해야 한다. 여러 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건배 제의를 하는데, 적어도 몇 시간 혹은 하루 종일 계속 건배를 한다. 따라서 타마다는 술도 반드시 잘 마셔야 한다. 그리고 산양 혹은 소 뿔에다가 와인을 담아서 마시는 전통도 있다. 타마다가 특별한 주제(예를 들어 평화)에 대해서 건배 제의를 할 때 뿔을 사용하는데, 타마다가 먼저 한마디 하고 뿔 안에 술을 원샷하고 다음 사람이 이어받는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마시는데 뿔 안에 있는 와인을 다 마셔야지만 타마다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야생 산양 뿔의 크기가 생각보다 상당한지라 어떤 뿔에는 와인 한 병이 넘게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수프라에 대한 내용을 찾아보면 외국인들은 이 행사의 길이가 매우 길고 매우 많은 건배를 하기 때문에 자신이 마시는 술의 양을 잘 조절해야 한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한다. 전통적으로 조지아인들은 술을 잘 마시기로도 유명하다. 1820년 조지아를 방문한 프랑스 대사의 기록이 유명한데, 그는 '조지아인들은 노동자나 왕자나 할 것 없이 평균적으로 매일 와인을 5병씩 마신다'라고 적고 있다. 워낙 오랫동안 와인과 함께 살아온 민족이기 때문에 술 마시는 것으로는 전 세계 어디서도 밀리지 않을 나라이다. 하지만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는 것이 조지아인들은 외국인에게 술을 강요하는 전통은 없다. 여행객이나 손님에게 호의적으로 환대하는 것 또한  전 세계 어디에서도 밀리지 않은 나라로도 알려져 있으니 말이다.


[수프라(supra)의 모습. 안쪽에 서 계신 분이 타마다(tamada) (출처: 조지아 와인협회)]



6. 조지아에서는 여전히 크베브리를 이용하여 와인을 만든다

조지아인들은 워낙 와인을 좋아하고 많이 마시니 매우 자연스럽게 각자 집에서 자신의 와인을 만든다. 여전히 크베브리(Qvevri)라고 불리는 커다란 항아리 안에 와인을 담그고 저장하는 전통이 있는데, 현재의 모양은 와인이 처음 발견된 8천 년 전 토기의 모양과 큰 차이가 없다. 즉 조지아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토기 안에 와인을 만들어오고 있으며 여전히 많은 조지아 집 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전통 역시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크베브리를 사용한 와인 양조 기법은 와인21글 '조지아 와인이 정말로 특별한 이유'[3]에서 보다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이렇게 큰 토기에 와인을 만드는 것은 시간과 힘이 많이 드는 번거로운 방법이다. 하지만 크베브리 안 와인이 완성되어 오픈하는 날에는 중요한 손님과 가족들이 함께 모여 이를 기념하며 새로 만들어진 와인을 마시며 식사를 한다. 이런 전통을 통해 사회적으로 상호작용을 하고 문화적 정체감을 만들어가는 것은 무형문화유산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우리 문화에도 비슷한 전통이 있다. 바로 찬바람이 불때 함께 모여 김장을 하고 서로 나누며, 장을 담그고 항아리에 저장하는 전통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졌던 이러한 전통은 한국에서는 점차 사라져가는 듯하여 아쉬운 마음이 든다. 조지아에서도 와인 양조 방법으로 크베브리만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며, 오크통을 사용하는 일반적인 유럽식 방법 또한 함께 이용된다. 하지만 크베브리의 전통 또한 오랫동안 이어지기를 바라본다.


 

7. 오렌지 와인의 원조는 조지아이다

요즘 오렌지 와인은 핫하다. 오렌지 와인은 투명 혹은 연한 노란빛인 일반적인 화이트 와인에 비해 색도 더 진하고 맛 또한 제법 다르다. 내추럴 방식과도 연결되어 왠지 몸에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이다. 이탈리아나 슬로베니아의 오렌지 와인이 유명하긴 하지만 사실 이 오렌지 와인의 원조는 조지아이다. 그리고 조지아에서는 여전히 (아마도 8천 년 동안) 이렇게 와인을 만들고 있다. 사실 '오렌지 와인'이라는 이름은 영국의 한 수입상에 의해 만들어졌다. 기억하기에는 좋지만 여전히 헷갈리는(아직도 오렌지로 만드는 와인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이름이다. 보다 정확한 명칭은 '앰버(amber) 와인'이며 조지아에서도 공식적으로 앰버 와인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오렌지와인, 즉 앰버와인은 크베브리를 이용하여 화이트와인을 만들 때 포도 껍질 등을 과즙과 더 오랫동안 접촉시켜 더 진한 색과 타닌, 그리고 여러 풍미를 이끌어 내는 방식으로 만든다. 이러면 화이트와인이면서도 진한 풍미와 타닌을 지닌 와인이 되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음식과 매칭될 수 있다. 그리고 레드와인보다는 상대적으로 알코올 도수도 낮다. 앞서 소개한 하루 종일 먹고 마시는 수프라를 기억하는가? 끊임없이 음식이 나오고 건배를 하며 와인을 마셔야 하므로, 이렇게 상대적으로 낮은 도수와 여러 음식에 고루 어울리는 와인이 만들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전 세계에서 그 와인의 매력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참고로 OVI라는 국제 와인기구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특별한 와인'의 종류를 공식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스파클링, 주장강화 와인, 아이스와인등이 특별한 와인으로 정의되어 있는데, 2020년 여기에 8번째로 '포도 침전물과 함께 오랫동안 침용 및 발효한 와인' 이 추가되었다[4]. 바로 전통적인 방식으로 양조한 조지아의 화이트와인 같은 앰버 와인을 의미한다.


[땅 속에 크베브리가 가득한 조지아 와인 양조 시설 (출처: 조지아 와인협회)]



8. 조지아에는 차차라는 술도 있다

크베브리에서 와인을 발효하면 자연스럽게 포도껍질이나 씨 등은 아래로 가라앉고 위로 맑은 와인이 떠오르게 된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오목해지는 크베브리의 모양은 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오랜 시간 조금씩 발전된 모양이다. 발효가 끝나면 윗부분 맑은 와인은 다른 크베브리로 옮겨 그 안에서 숙성을 하게 된다. 이제 발효가 끝난 크베브리 안에는 포도 잔여물과 함께 진한 와인이 남게 된다. 조지아에서는 이를 증류하여 맑고 강한 도수의 술을 만드는데, 이를 차차(ch'ach'a, ჭაჭა)라고 부른다.


집에서 와인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 조지아이기 때문에 차차 또한 각자 집에서 만들어왔다. 조지아인들은 차차에 의료적인 효과가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에 소화제 혹은 여러 질병을 치료하는 치료제로도 사용되어 왔다. 따라서 차차는 조지아를 방문해야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술이었는데, 최근에 이를 상업적으로 판매하고 수출하는 곳도 생겨났다. 사실 와인 양조 시 남는 부분을 증류하여 술을 만드는 것은 조지아만의 전통은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비슷한 방법으로 만든 술을 마르(marc), 이탈리아에서는 그라파(grappa)등으로 부르고 있다. 하지만 크베브리 안에서 오랫동안 숙성된 침전물로 만드는 차차는 이들과는 또 다른 풍미가 있다. 그리고 차차에 여러 허브나 과일 풍미를 입힌 차차도 상당한 매력이 있다. 실제로 개인적으로 만난 조지아 친구는 자신은 수프라에서 와인 못지않게 차차를 즐겨 마신다며 조지아에서 매우 인기 있는 술이라고 자랑하기도 하였다.


 

9. 조지아 와인은 옛날부터 인기가 좋았다

그리스 신화에는 조지아가 위치한 콜키스(colchis) 지역이 여러 번 나온다. 프로메테우스가 벌을 받는 거대한 산으로도 나오지만 금과 광물이 많이 나오는 풍족한 땅으로 더욱 자주 나온다. 황금 양피를 구하러 떠나는 이아손과 아르고호의 모험 이야기도 유명한데, 이들은 콜키스 지역에 도착하자 광활한 포도밭 풍경에 놀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왕궁에서는 와인이 솟아 나오는 우물(아마도 크베브리?)도 있었다. 이러한 신화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콜키스 지역은 그리스인들에게도 훌륭한 와인이 나오는 지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뿐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여러 왕국에서도 위쪽 고원에서 와인을 수입하여 즐겨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발생지의 위쪽으로 지도를 따라가다 보면 조지아가 나온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에서도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가 콜키스 와인을 손님에게 대접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러모로 예로부터 조지아가 위치한 콜키스 지역은 와인과 연관된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20세기 구소련 연방에 속해 있을 때에도 조지아 와인은 소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와인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우크라니아는 소련의 빵 바구니(bread basket), 조지아는 소련의 와인 상자(wine casket) 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구소련 당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조지아를 알고 있었다고도 한다. 어디에 위치한 곳인지는 잘 모르더라도 좋은 와인이 나오는 지역인 것은 다들 알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조지아 와인은 알고보면 인기가 매우 많아요 (출처: 조지아 와인협회)]

  


10. 조지아는 소련의 토스카니라고 불렸다

구소련 시대 조지아의 또 하나의 별명은 '소련의 토스카니(Tuscany of the Soviet Union)였다. 일단 이탈리아 토스카니와 위도가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토스카니는 위와 옆으로 아펜니노 산맥(Appennini)이 지나고 왼편으로는 티레니아(Tyrrhenian)해가 펼쳐진다. 따라서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을 높은 산맥이 막아주고 바다에서는 온화한 바람이 불어 포도가 자라기에 이상적인 조건이다. 조지아 역시 위로는 높은 캅카스 산맥과 왼편으로는 흑해가 펼쳐져 유사한 환경을 지니고 있다. 산맥에서 내려오는 미네랄 풍부한 깨끗한 물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여러모로 여러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두 지역이다.


조지아 와인은 구 소련시절에도 여러 국제 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물론 그때는 소련의 와인으로 불렸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소련 공산주의가 더욱 강해지고 품질을 위한 와인보다는 많은 생산량을 위한 와인 생산이 이루어지자 조지아의 와인산업 수준도 크게 하락했던 아픈 기억 또한 있다. 독립 후 와인의 품질은 조금씩 향상되었지만 여전히 러시아는 조지아의 주된 와인 수출국이었다. 독립 후 15년이 지난 2006년에도 전체 와인의 95%가 러시아로 수출이 되었다. 하지만 이때 러시아의 대통령이었던 고르바초프가 2006년에 조지아 와인 수입을 갑자기 금지해버렸다. 조지아 와인업계에서는 가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거의 전량을 수입하던 곳에서 갑자기 수입을 금지해버렸으니 말이다.


몇 년간 커다란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조지아에서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수출로 눈을 돌리게 된다. 2013년에 러시아에서 다시 수입을 재개하긴 했지만, 이미 조지아의 와인은 전 세계로 수출이 되고 있었다. 2017년 통계에 따르면 여전히 러시아가 최대 수입국(62%) 이긴 하지만, 우크라니아, 폴란드, 벨라루스 등 다양한 동유럽 국가로도 수출하고 있다. 가장 최근 통계 따르면 조지아 와인은 전 세계 총 64개국으로 수출이 되고 있으며 국내에도 8400여 병(0.75L기준)이 수입되고 있다.


이처럼 조지아 와인은 동유럽에서만 소문난 와인에서 벗어나 점차 전 세계에서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고 있다. 또한 국가적인 차원에서 와인에 대한 연구 및 현대적인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포도의 식재부터 재배 및 양조에서 품질을 중요시하는 움직임이 크게 일어나고 있다. 또한 여러 실험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예를 들어 같은 사페라비 품종을 하나는 크베브리로, 다른 하나는 오크통에서 숙성하여 두 종류의 와인을 출시하는 곳도 있다. 이를 비교해서 마셔본다면 크베브리에서 만들어진 와인의 특성을 마음 깊이 느낄 수 있다. 또한 레드와인의 경우 크베브리에서 양조를 한 후 오크통에서 숙성을 하여 이 둘의 풍미를 함께 입힌 와인들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와인을 접해본다면 모던한 조지아 와인의 한 측면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앞으로 국내에도 더욱 다양하고 멋진 조지아 와인들을 더욱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예정이다. 포도 줄기를 닮은 조지아 언어가 쓰여 있는 이색적인 와인 한 병을 골라 친구들과 한번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수프라처럼 테이블에 다양한 음식을 가득 쌓아놓고 와인을 마셔도 좋다. 위에서 소개한 10가지 비밀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마셔본다면 분명 흥미로운 시간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가장 오랜 전통의 와인으로 가장 힙한 시간이 되기를 기대하며, 조지아어로 건배를 제의해 본다! 가오말조스(გაუმარჯოს)!


[1] Patrick McGovern, et al., Early Neolithic wine of Georgia in the South Caucasu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Vol. 114, No. 48, 2017

[2] 창세기 9장 18-21절

[3] 조지아 와인이 정말로 특별한 이유: https://www.wine21.com/11_news/news_view.html?Idx=18709

[4] OVI-ECO 647-2020


프로필이미지유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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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2.11.01 09:00수정 2022.10.24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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