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이 알고 있는 유명한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은 일반인들과 다른 혜택을 받고 살아갈 가능성이 있지만 그만큼 대를 이어서 물려받은 와이너리를 잘 운영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클 것이다. 태어나 보니 자신이 가야의 5대손이고, 아버지가 안젤로 가야인 사람을 만났다. 이름은 지오반니 기야(Giovanni Gaja). 사실 지오반니라는 이름은, 가야의 창립자인 고조할아버지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리고 안젤로 가야의 아버지, 즉 자신의 할아버지의 이름이기도 하다.

[지오반니 가야. 다음 세대의 가야를 이끄는 5대손이다]
그의 아버지 안젤로 가야는 이탈리아 와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전설적인 인물이다. 피에몬테 땅에 국제 품종을 들여와 심었으며, 현대적 양조 기법과 철학을 도입해 바르바레스코와 바롤로뿐 아니라 피에몬테 지역 전체를 현재와 같은 위상에 올려놓았다.
“아버지는 올해 83세이신데 여전히 에너지가 가득 넘칩니다. 한 20년은 젊게 사시는 듯해요. 매일 바르바레스코 한 잔씩 드시죠. 지금은 미래에 대한 비전,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고민을 하고 계세요. 저희는 여전히 꾸준히 혁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가야를 대표하는 정체성은 무엇일까? 그는 단번에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가야는 철저하게 가족 경영 와이너리예요. 현재는 5명의 가족 구성원이 가야를 이끌어 가고 있어요. 먼저 아버지와 어머니. 사실 어머니 루시아가 우리 가족의 가장 중요한 지지대로, 회사 재정도 담당하면서 아버지를 케어하시죠. 첫째 누나 가이아가 해외 수출을 맡고 있고, 둘째 누나 로산나가 이탈리아 마켓을 담당해요. 저는 가이아 누나와 함께 수출을 맡고 있습니다. 저희 와인의 85% 이상이 해외에서 판매되고 있거든요. 우리는 각자 조금씩 모든 것을 다 하고 있고, 항상 거실 테이블에 모여서 함께 결정해요. 모두 관점은 조금씩 다르지만 가족 경영 와이너리로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가는 중이죠.”

[현재 가야를 이끌어 가는 5명의 가족 (사진제공_에노테카)]
가야는 자신이 소유한 포도밭의 포도만으로 와인을 생산하고,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피에몬테 지역 최고의 기술력으로 양조한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특별한 예외가 있다. 다른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부분, 그것은 기후변화에 대한 대처다.
“기후가 점점 따뜻해지고, 극단적인 현상이 훨씬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볼로냐 근처 마을에는 3개월치 비가 하루에 다 내린 적도 있죠. 안타깝지만 이런 기후는 이제 일상이 될 것이고 점점 예측하기도 힘들어질 거예요. 우리는 포도가 회복력(resilience)을 갖도록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요. 물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지만 결국에는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요. 사람도 똑같아요. 아플 때마다 항생제 같은 약을 먹으면 금방 나을 수 있겠지만 나중에는 점점 그 약에 익숙해져 몸이 반응하지 않을 거예요. 최대한 개입 없이 독립적으로 생존하는 것이 중요해요.”
이를 위해서 가야에서 가장 집중하는 것은 포도밭의 토양이다. 토양이야말로 훌륭한 포도를 만드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가야는 토양에 생명력을 불어 넣기 위해 크게 식물학적인 접근법과 곤충학적인 접근법을 시도한다. 이를 위해 가야는 두 명의 전문가, 식물학자와 곤충학자를 고용해 함께 일하고 있다.
“토양에는 무엇보다 유기농 물질이 많아야 해요. 저희는 소의 배설물을 이용해 거의 70톤가량의 거름을 직접 만들어요. 여기에는 건강하고 좋은 영양소가 많아요. 포도 사이에 심는 다양한 피복 작물(cover crop) 또한 무척 중요해요. 빈티지에 따라서 다른 종류의 작물을 심기도 하고 때로는 트럭으로 땅을 눌러 축축하게 만들 때도 있어요. 이렇게 하면 토양을 안정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더 건강한 포도가 자라날 수 있죠. 정말 건강한 빈야드에는 곤충도 많아야 해요. 물론 해충도 있지만 이들에 대한 피해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최소화해야 하고요. 저희는 벌도 키우는데 벌은 포도밭에 항생제나 부정적인 호르몬이 없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이런 야생 생물들이야 말로 진정으로 포도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는 존재예요.”

[포도밭의 피복 작물. 이러한 작물이 토양의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사진제공_에노테카)]
그는 가야가 포도밭을 가꾸는 데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이는지 보여줬다. 거름과 지렁이 사진을 비롯해 벌들이 날아다니는 사진, 포도밭 사이에 자라는 다양한 작물들을 소개했다. 가야가 왜 여전히 이탈리아 최고의 와인을 만들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와 함께 5종의 와인을 시음했다. 청담동 로다(Roda)에서 노영희 셰프가 특별히 준비한 한식과 함께 가야 와인을 즐겼다. 참고로 가야 와인은 국내에 에노테카와 신동와인이 함께 수입하고 있다. 피에몬테 와인과 볼게리(Bolgheri) 지역의 카마르칸다(Ca'Marcanda) 와인은 두 수입사에서 함께, 몬탈치노(Montalcino)와인은 에노테카가, 시칠리아 와인은 신동와인에서 독점으로 수입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에노테카에서 주최한 자리였다.

[함께 시음한 가야 와인 5종. 왼쪽부터 가야 로씨 바쓰 2021, 카마르칸다 비스타마레 2021,
카마르칸다 마가리 2020, 가야 바르바레스코 2019, 피에베 산타 레스티투타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2018]
가야 로씨 바쓰(Gaja Rossj Bass) 2021
바르바레스코와 바롤로에 심은 샤르도네(90%)와 소비뇽 블랑(10%)을 블렌딩한 화이트 와인이다. 안젤로 가야는 1979년 바르바레스코에 국제 품종을 처음 도입했는데, 그는 이 지역의 특별함을 보여주기 위해 외부 품종을 도입했다고 한다. 테루아를 드러내는 것이 가장 중요했음을 보여주는 와인으로, 피에몬테 지역의 전형적인 특성을 담고 있다. 부르고뉴나 나파 샤르도네와는 상당히 다른 독특함이 있고 심지어 바롤로의 타닌까지 느껴진다. 물론 샤르도네의 좋은 과실 느낌에 소비뇽 블랑의 신선함이 더해졌지만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스타일임을 바로 알 수 있는 바디감과 강인함이 있다. 와인 이름에 있는 로씨는 둘째 딸 로산나의 별명이고, 바쓰(bass)는 낮은 고도의 빈야드에서 나온 와인임을 뜻한다.
카마르칸다 비스타마레(Ca'Marcanda Vistamare) 2021
바다를 볼 수 없는 피에몬테에서만 살아온 안젤로 가야는 바다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온라인으로 마음에 드는 서부 해안가 집을 찾아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방문했는데, 사진과는 달리 거실도 침실도 너무 작고 집은 어두컴컴했다고 한다. 너무 실망해 돌아가려 하는데, 중개인이 부엌 창을 열더니 "봐요, 여기 바다가 보이잖아요(Vistamare)"라고 했다. 그는 이에 마음을 바꿔 바다가 보이는 그 지역에서 와인을 만들기로 했다. 보통 볼게리 지역은 진한 레드 와인으로 유명하지만, 카마르칸다 와인이 생산되는 해안가 근처에서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와인이 나온다. 베르멘티노(40%)와 비오니에(40%)에 피아노(20%)가 더해졌다. 특히 2007년 빈티지부터 추가한 피아노 품종이 와인을 조화롭게 만들면서도 산도감을 더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쁜 꽃향기가 가득하고, 입안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과실 맛과 풍족한 미네랄리티도 매력적이다.

[피에몬테주 바르바레스코의 터줏대감 가야는 1994년 토스카니주 몬탈치노로,
1996년에는 서쪽 해안에 위치한 볼게리로 확장한다. (사진제공_에노테카)]
카마르칸다 마가리(Ca'Marcanda Magari) 2020
볼게리 지역으로 새롭게 확장하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현실은 녹녹하지 않았다. 이 지역 사람들이 포도밭을 쉽사리 판매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안젤로 가야는 무려 19번이나 이 지역 사람들과 미팅을 가진 후 포도밭을 구입했다. 카마르칸다(Ca'Marcanda)는 '끝없는 협상'이라는 뜻이다. 얼마나 고생해 얻은 포도밭인지를 보여준다. 이 와인은 카베르네 프랑(60%), 카베르네 소비뇽(20%), 쁘띠 베르도(10%)의 보르도 블렌딩 와인인데, 특히 이 지역의 카베르네 프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해안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산맥의 영향으로 탄탄한 구조감을 가지면서도 신선하고 우아한 스타일의 카베르네 프랑을 생산한다. 볼게리 지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진하고 볼드한 와인이 아닌 상당히 섬세하면서도 탄탄한, 흡사 피에몬테 와인 같은 느낌이다. 그 안에서도 스파이시함과 은은한 허브가 젠틀하게 표현됐다.
가야 바르바레스코(Gaja Barbaresco) 2019
가야의 정체성(identity)과 개성(personality)을 보여주는 와인이다. 무려 1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가야의 대표 와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바르바레스코 전역에 위치한 14개의 빈야드 포도로 만들며, 이 포도밭들은 고도, 토양 구성, 풍향, 방향 등이 모두 다르다. 이들을 모아 하나의 와인으로 만듦으로써 진정한 바르바레스코 테루아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2018년 여름에는 안타깝게도 서리 피해가 컸기 때문에 2019년에는 소리 산 로렌조 등 싱글 빈야드 와인을 만들지 않고, 모든 바르바레스코 포도를 이 와인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즉, 2019년 빈티지는 슈퍼 바르바레스코 와인이다. 약간의 흙, 가죽 위에 산딸기향과 바이올렛, 약간은 마른 꽃 류의 향이 흐른다. 젠틀한 산도와 부드러운 텍스처, 네비올로 특유의 타닌이 있지만 지금 마시기에도 맛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많은 것을 보여줄 것이다.
지오반니는 기후변화를 설명하면서 네비올로는 다행히 변화한 기후에 어느 정도 장점 있는 품종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예전보다 좀 더 빨리 숙성에 이르기 때문에, 더욱 잘 익은 타닌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과거에는 20-30년 숙성을 해야 마실 수 있는 품종이었지만 최근 빈티지는 타닌의 양이 동일하면서도 어릴 때 마셔도 부드러운 타닌을 보여준다고 한다. 네비올로에 대한 기존 선입견을 점점 벗을 수 있을 만큼,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피에베 산타 레스티투타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Pieve Santa Restituta Brunello di Montalcino) 2018
안젤로 가야는 피에몬테를 벗어나 토스카나로도 눈을 돌렸다. 가문의 160년 양조 기술을 또 다른 이탈리아 토착 품종 와인을 만드는 데에도 적용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이탈리아 토착 품종 중에서도 가장 네비올로와 유사하다고 판단한 품종이 몬탈치노에서 자라는 브루넬로였다. 물론 오랜 역사가 있는 가야지만 새로운 지역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것은 도전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수가릴레와 렌니나 등 싱글 빈야드 와인과 함께 가야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와인은 매력적인 정향 등의 스파이시에 자두류의 붉은 과실맛이 풍족하다. 전체적으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의 우아함이 가득하다.

[몬탈치노에 위치한 피에베 산타 레스티투타 와이너리의 모습.
'피에베 산타 레스티투타'는 4세기 경부터 이곳에 있던 교회의 이름이기도 하다]
지오반니는 바르바레스코 와인의 숙성에 대해서 흥미로운 내용을 언급했다. 일반적으로 바르바레스코 와인은 출시되고 5년까지는 아직은 어린 빈티지의 느낌이라고 한다. 물론 앞서 언급한 대로 요즘은 이 시기의 와인도 제법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5년에서 10년 정도까지는 미스터리한 일이 생기는데, 어떨 때는 좋고, 어떨 때는 좋지 않은 경우가 있다고 한다. 꼭 사춘기 같은 시기다. 출시한지 10년이 지나면 다시 아름다운 시기가 펼쳐지고 15년부터는 숙성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는 과실 느낌이 있으면서도 숙성미가 나타나는 15-30년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지오반니는 아직 경험을 쌓고 있는 중이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의 말에는 자신감이 있었다. 전설적인 1961년 바르바레스코가 여전히 훌륭한 것처럼 아버지는 여전히 강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사람들은 2000년대 또 다른 훌륭한 빈티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까? 앞으로의 가야를 기대한다.
Copyrights © 와인21닷컴 & 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