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10일, 카스텔로 디 아마(Castello di Ama)의 와인메이커 마르코 팔란티(Marco Pallanti)가 한국에 왔다고 해서 한달음에 달려갔다. 지난 4월 키안티 클라시코 프레스 투어 때 만난 적이 있어 무척이나 반가운 마음이었다. 방문했던 여러 와이너리 중에서도 카스텔로 디 아마는 가장 기억에 남는 곳 중 하나다. 18세기의 고풍스러운 마을이 예술과 와인으로 가득해 인상적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와인 맛이 탁월했다. 조만간 한국에 갈 계획이니 그때 또 보자며 헤어졌는데 푸른 에코백을 메고 밝은 미소와 함께 등장한 팔란티에게서는 은발의 장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한국을 방문한 카스텔로 디 아마의 와인메이커 마르코 팔란티]
“키안티 클라시코라는 남다른 테루아에서 와인을 만드니 저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죠.” 카스텔로 디 아마를 소개하며 팔란티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이다. 아마의 뛰어난 품질은 역사적으로도 유명하다. 18세기 후반 토스카나의 대공이 “키안티 안에서도 카스텔로 디 아마의 포도 품질이 가장 우수하다. 계곡과 구릉의 잘 가꾼 포도밭은 아름답기 그지없다.”라고 말한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카스텔로 디 아마는 쇠락했고 이를 1976년 로마의 네 개 가문이 함께 사들여 예전의 영광을 되살렸다.
현재 카스텔로 디 아마는 총 200헥타르 중 76헥타르를 포도밭으로 경작하고 있다. 지난 40여 년간 이들은 키안티 클라시코에 혁신의 바람을 불어 넣었다. 그리고 그 혁신의 중심에는 팔란티가 있었다. 1982년 카스텔로 디 아마에 합류한 그는 키안티 클라시코에 최초로 메를로를 도입했고 벨라비스타(Bellavista), 산 로렌조(San Lorenzo), 라 카수치아(La Casuccia) 등 싱글 빈야드 와인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반면 아마에서 40년 넘게 와인을 만들면서 그가 절대 바꾸지 않는 것도 있다. 포도는 반드시 손 수확하며, 수확한 포도는 사람이 직접 손으로 고르고, 야생 효모로 발효하며, 최신 설비의 와이너리에서 인내심과 사랑으로 와인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그의 신념은 곧 카스텔로 디 아마의 뛰어난 품질로 이어졌고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사랑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팔란티는 카스텔로 디 아마의 우수한 맛과 풍미의 핵심이 가이올레(Gaiole) 지방의 테루아에 있음을 강조했다. 카스텔로 디 아마는 가이올레 안에서도 해발 고도가 가장 높은 곳(500~550미터)에 위치하고 알베레제(Alberese, 석회질) 토양에는 마치뇨(Macigno, 사암)와 갈레스트로(Galestro, 모래와 점토가 굳어진 돌)가 다수 섞여 있다. 이런 환경에서 포도가 자라기 때문에 카스텔로 디 아마의 와인에서 부드럽고 우아한 풍미와 고운 타닌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팔란티는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와인을 마셔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첫 번째 와인으로 알 포지오(Al Poggio)를 권했다.

[세 가지 샐러드와 카스텔로 디 아마의 알 포지오]
알 포지오는 카스텔로 디 아마의 유일한 화이트 와인이다. 샤르도네 100%로 만든 이 와인은 1988년 첫 출시됐다. 팔란티에 따르면 1980~90년대에는 카스텔로 디 아마에서 화이트 와인을 5종이나 생산했다고 한다. 토스카나 토착 품종과 국제 품종 등 다양한 포도로 만들었는데 팔란티는 그 시절을 '다양한 실험을 했던 시기'로 기억했다. 실험을 통해 카스텔로 디 아마의 테루아에서는 샤르도네가 가장 좋은 품질의 와인을 생산한다는 결론을 얻고 이후부터는 알 포지오 한 가지만 생산한다는 것이다.
알 포지오의 맛을 보면 노란 사과, 흰 복숭아, 멜론 등 과일향이 싱싱하고 경쾌한 산미가 입맛을 돋운다. 높은 고도와 석회질 토양 그리고 토스카나의 강렬한 햇빛이 만들어낸 산뜻함이다. 팔란티는 와인의 신선함을 살리기 위해 포도의 10%는 일찍 수확하고 발효도 오크(40%, 새 오크와 중고 오크 비율 5:5)와 스테인리스 스틸(60%)에 나눠서 시행하며 젖산 전환도 와인의 일부에서만 행한다고 설명했다. 8개월간 앙금과 함께 숙성되며 간간히 앙금 젓기를 해줘서인지 와인의 질감이 매끈한 것도 매력적이었다. 마침 알 포지오를 시음하며 이탈리아식 샐러드 3종을 함께 즐겼는데, 토마토, 시저, 해산물 샐러드와 모두 잘 어울렸다. 와인의 풍미가 은은하고 산미가 좋아 굳이 샐러드나 해산물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음식과 두루 잘 어울릴 스타일이었다.

[카스텔로 디 아마의 산 로렌조 2013과 2018]
이어서 시음한 와인은 카스텔로 디 아마의 플래그십이라 할 수 있는 산 로렌조(San Lorenzo)였다. 2014년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 톱 100 와인 중, 2010년산이 6위를 차지해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은 와인이다. 2018년 빈티지와 2013년 빈티지를 함께 테이스팅했는데 산 로렌조가 얼마나 근사하게 익어가는지를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 와인은 산 로렌조 계곡에 위치한 벨라비스타, 카수치아, 산 로렌조, 몬테부오니(Montebuoni) 밭에서 수확한 최상급 포도로만 만드는 그란 셀레지오네(Gran Selezione) 등급이다. 그란 셀레지오네는 키안티 클라시코 전체 생산량의 5% 밖에 되지 않는 최상위 등급으로 총 30개월 이상 숙성을 거쳐 출시된다.
카스텔로 디 아마는 산지오베제 80%에 메를로와 말바지아 네라(Malvasia Nera)를 블렌드해 산 로렌조를 만든다. 2018년산에서는 검게 익은 체리와 자두 등 잘 익은 과일향이 풍성하고 계피와 후추 등 은은한 향신료 향이 풍미를 다채롭게 장식하고 있었다. 2013년산은 마른 과일향의 달콤함과 함께 가죽, 초콜릿, 정향, 에스프레소 등 탁월한 복합미를 보여 주었다. 두 와인 모두 잘 숙성된 매끈한 질감에서 뿜어져 나오는 풍부한 아로마가 우아한 매력을 뽐냈다. 리가토니 파스타와 함께 즐기니 2018년산은 음식에 풍부한 과즙이 더해져 파스타가 한결 맛있었고 음식의 느끼함을 와인의 상큼한 산미가 개운하게 잡아주는 느낌이었다. 2013년산의 경우 음식의 풍미와 와인의 복합미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음식 덕분에 와인 속 과즙이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한국에 올 때마다 한식을 꼭 먹어 본다는 팔란티는 한식 중에서도 양념 갈비살을 특히 좋아하는데 산 로렌조를 양념 갈비살과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으로 꼽았다.

[카스텔로 디 아마의 벨라비스타 2007]
마지막으로 시음한 와인은 벨라비스타 2007년산이었다. 1982년 싱글 빈야드급으로 첫 출시됐으며 카스텔로 디 아마의 아이콘급 와인 중 하나다. 산지오베제에 말바지아 네라를 약간 섞어 만든 이 와인은 잘 만든 키안티 클라시코가 나이를 먹을수록 드러내는 복합미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감미로운 마른 과일향과 함께 홍시, 곶감, 캐러멜, 후추, 초콜릿, 커피, 정향, 계피, 가죽, 담배 등 시간이 지나면서 피어 오르는 아로마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스테이크와 함께 즐기니 여운에서 길게 이어지는 달콤한 과일향이 음식에 과즙을 더해 고기 맛이 한층 좋아지고 상큼한 산미는 음식의 뒷맛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었다. 매끈한 질감이 탄탄한 근육 같고 화사한 풍미가 우아함을 보태는 벨라비스타야말로 와인계의 빼어난 미인이라 칭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카스텔로 디 아마의 와인들을 맛보다 보니 지난 4월 방문했을 때 감상한 작품들이 떠올랐다. 우리나라의 이우환 화백을 비롯 세계 정상급 작가들의 미술 작품이 18점이나 마을 곳곳을 장식하고 있었는데 모두 그곳의 풍광이나 건물과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예술품과 마을이 위화감 없이 어울리는 까닭에 대해 팔란티는 “작가가 선정되면 그를 초대해 카스텔로 디 아마의 자연과 분위기에 흠뻑 젖을 수 있도록 합니다. 그래야 아마만의 독창적인 예술이 만들어질 수 있으니까요.”라고 설명했다. 새 작품에 대한 계획을 묻자 현재 젊은 이탈리아 작가가 열심히 작업 중이라고 한다. 다음에 토스카나에 갈 기회가 있다면 예술과 와인이 가득한 아마의 새 빈티지도 맛보고 새 작품도 보러 꼭 들르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다. 와인 만드는 것도 버거울 텐데 예술까지 신경을 쓰면 너무 바쁘지 않을까? “예술을 만드는 것과 와인을 만드는 것은 같은 일입니다. 나는 예술을 만드는 마음으로 와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팔란티의 답을 들으니 그가 만든 와인들이 전부 이해되는 듯했다. 카스텔로 디 아마의 와인들은 단순히 기술적으로만 잘 만든 와인이 아니었다. 와인메이커의 영혼이 담긴 예술이었다. 우리가 카스텔로 디 아마를 마시며 느끼는 즐거움과 감동이 바로 그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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