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그 지역의 문화와 밀접히 연결돼 있다는 것, 여행을 하며 와이너리를 방문하고 현지 와인을 경험해 본 이들이라며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몬테풀치아노(Montepulciano)는 지역의 문화와 와인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훌륭한 여행지다. 다양한 축제가 열리는 그란데 광장(Piazza Grande)과 마을의 상징과도 같은 산 비아지오(San Biagio) 성당, 아름다운 정원 라 포스(La Foce) 등 역사적 명소와 함께 올드 타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여러 와이너리들도 여행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 9월 몬테풀치아노의 와이너리들을 방문해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 와인을 경험했고, 마을의 오랜 역사가 깃든 명소와 아름다운 풍경도 감상했다. 최근 몬테풀치아노는 지역을 12개의 세부 지역으로 구분하는 피에베(Pieve)가 최종 승인됐다. 현지의 생산자들은 이에 발맞춰 2025년부터 출시될 피에베를 준비하고 있었다. 생산자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우리의 와인은 이 지역과 깊이 연결돼 있고,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Vino Nobile di Montepulciano) 와인을 통해 이 지역에서 선보일 수 있는 톱 퀄리티 와인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와인에 생산지의 특징과 가치를 담아내고 미래 세대를 바라보며 준비하는 몬테풀치아노의 와이너리들을 소개한다.
데리치 De'Ricci

[데리치 와이너리의 지하 셀러]
몬테풀치아노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올드타운의 중심지, 그란데 광장(Piazza Grande)에서 도보로 방문할 수 있는 와이너리다. 수백 년의 역사가 있고 투어 프로그램도 잘 마련돼 있어 몬테풀치아노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찾는 대표적 와이너리이기도 하다. 리치(Ricci) 가문의 이름을 딴 데리치의 와인 레이블에는 고슴도치가 등장하는데 여기엔 재미있는 이야기가 얽혀 있다. 12세기에 날씨를 정확하게 예측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인물이 있었다고 한다. 사실 그는 날씨에 따라 행동이 변하는 고슴도치를 관찰한 것으로 알려져 고슴도치를 의미하는 리치오(Riccio)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온다. 1337년 설립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데리치 와이너리는 20여 년 전 리치 가문의 마지막 일원이 세상을 떠난 이후 명맥이 끊길 뻔했으나, 이후 트라발치니(Trabalzini) 패밀리가 이름과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아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 3개의 빈야드를 소유하고 있으며 총 30헥타르에서 연간 10만 병을 생산하는 규모다.

500여 년의 역사가 있는 데리치의 지하 셀러는 그 유명세만큼이나 놀랍다. 작은 우물과 오크통 외에도 종교적인 의식을 했던 흔적이 남아있는 석회 동굴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곳은 '트와일라잇' 시리즈 중 <뉴 문>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지금도 이곳에서 와인이 숙성되고 있는데, 지상에서 약 10미터 정도 아래에 위치해 와인 숙성에 적합한 온도와 습도가 자연적으로 유지되는 환경이다.

[데리치의 오너 엔리코 트라발치니(Enrico Trabalzini)와 두 아들]
현재 오너의 아들이자 와인메이커인 니콜로 트라발치니(Nicolo Trabalzini)는 산지오베제로 스파클링을 만드는 등 새로운 시도도 많이 하고 있다.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 와인은 모두 100% 산지오베제만 사용하며, 그 중에서도 좋은 해에만 생산하는 소랄도(SorAldo)는 4년간 숙성해 우아하고 섬세한 타닌과 복합미가 느껴진다. 데리치의 와인은 수입사 뱅가드와인머천트를 통해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다.
베키아 칸티나 디 몬테풀치아노 Vecchia Cantina di Montepulciano

[베키아 칸티나 디 몬테풀치아노 와이너리]
몬테풀치아노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이곳은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와이너리다. 1937년 소규모로 와인을 생산하던 농가에서 뜻을 모아 베키아 칸티나 디 몬테풀치아노를 설립하며 판매 구조를 만든 것이 그 시작이다. 지금은 400여 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으며 연간 7백 만 병의 와인을 생산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대부분 토스카나 지역의 생산자들이고 일부 움브리아의 생산자들도 있다. 규모가 큰 만큼 생산 시스템이 체계적일 뿐만 아니라, 투어 프로그램도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특히 최근 새롭게 마련한 테이스팅 공간이 훌륭하고 매주 한국인 여행자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베키아 칸티나 디 몬테풀치아노에서 생산하는 다양한 와인 중에서도 대표적인 와인은 단연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다. 회사의 이름이기도 한 베키아 칸티나(Vecchia Cantina)와 “몬테풀치아노는 모든 와인의 왕”이라는 말을 남긴 시인 프란체스코 레디(Francesco Redi)의 이름을 딴 칸티나 델 레디(Cantina del Redi)의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가 산지오베제의 클래식한 매력을 보여주며 인기를 얻고 있다.

[베키아 칸티나 디 몬테풀치아노의 와인들]
칸티나 델 레디는 미래의 피에베 스타일을 보여주는 아르고(ARGO)도 선보이고 있다. 피에베는 규정상 몬테풀치아노에서는 푸르놀로 젠틸레(Prugnolo Gentile)라 부르는 산지오베제를 85% 이상 사용하고 기타 토착품종을 블렌딩할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산지오베제를 100% 사용해 세부 지역과 품종의 스타일을 명확히 보여준다. 검은 과실 풍미와 스모키한 향, 나무, 가죽 등의 아로마가 어우러진 매력적인 와인으로 최소 20년 이상의 숙성잠재력을 기대해도 좋을 만큼 강건한 스타일이다.
이카리오 Icario

[이카리오 와이너리]
몬테풀치아노의 풍경 속에 근사한 건축물로 자리한 이카리오는 독일 출신의 사업가 로텐베르거 헬무트(Rothenberger Helmut)가 소유한 와이너리다. 그는 비행기 엔진 생산을 비롯해 하이테크 산업에서 여러 비즈니스를 운영하며, 세계 최고의 와인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몬테풀치아노에 과감한 투자를 했다. 가장 현대적인 기술력을 적용한 셀러와 생산시설 뿐만 아니라 와이너리 곳곳에 자리한 20점의 작품은 아트 컬렉터이기도 한 오너의 취향을 보여준다. 갤러리처럼 방문객들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다양한 아티스트의 작품을 전시하는 아트 프로젝트도 운영 중이며, 몇 년 전부터는 수영장을 갖춘 풀빌라도 운영하고 있어 여행지로도 손색이 없다.

[이카리오 와이너리의 셀러]
이카리오는 총 25헥타르의 빈야드를 소유하고 있다. 이카리오의 제너럴 매니저인 루이지 파고니(Luigi Pagoni)는 “빈야드의 해발고도가 최고 450미터에 이르며 높은 고도에서 우아하고 산도가 좋은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고 설명한다. 이런 빈야드의 특징으로 레드 품종 외에도 트레비아노, 샤르도네, 게뷔르츠트라미너, 리슬링 등 다양한 화이트 품종을 재배해 신선하고 산도가 뛰어나며 깨끗한 미네랄리티를 갖춘 화이트 와인도 생산하고 있다.

[이카리오에서 생산하는 와인들]
물론 이카리오를 대표하는 와인은 산지오베제를 중심으로 한 레드 와인이다.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는 90% 산지오베제와 10% 콜로리노를 사용한 와인으로 신선하면서도 균형잡힌 바디감과 복합미가 돋보인다. 비타로차(Vitaroccia)라는 이름의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 리제르바는 95% 산지오베제와 5%의 카베르네 소비뇽을 블렌딩했다. 50년 수령의 올드바인에서 수확한 포도를 사용했고 깊이감과 볼륨감, 그리고 부드러운 타닌이 매력적이다. 2017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산사시아(Sansasia)는 향후 피에베로 출시 예정이며, 피에베의 세부 지역은 르 그라치(Le Grazie)다. 엄선한 산지오베제 100%를 사용해 산지오베제의 순수한 표현력에 집중한 와인으로 2년의 배럴 숙성과 1년의 병 숙성을 거쳐 출시하며 2천 병만 생산한다.
데이 Dei

[데이 와이너리의 숙성실]
대리석 사업을 하던 집안의 알리브란도 데이(Alibrando Dei)가 설립한 데이는 3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가족 경영 와이너리다. 현재의 오너는 설립자의 손녀인 마리아 카테리나 데이(Maria Caterina Dei)로, 뮤지션으로 활동하다 1991년 본격적으로 와이너리에 합류했다. 이곳에서는 데이 패밀리와 깊은 인연이 있는 두 가지, 대리석과 예술이라는 키워드를 시설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몬테풀치아노의 풍경과 조화를 이루는 와이너리 건축물에는 고요한 사원을 연상시키는 근사한 디자인의 셀러가 자리한다. 그리고 대형 조각 작품이 설치된 야외 공간과 원형극장 같은 구조로 설계한 행사 공간도 갖추고 있다.

[데이 와이너리의 빈야드, 수확 직전의 산지오베제 포도]
데이 와이너리는 120헥타르의 소유지 중 절반인 60헥타르의 빈야드에서 연간 21만 5천 병의 와인을 생산한다. 나머지 면적에는 데이 패밀리가 생활하는 공간과 올리브 나무 재배지, 그리고 방문객들을 위한 숙소가 자리한다. 데이 와이너리에서 아이콘 와인으로 꼽는 와인은 역시 비노 노벨레 디 몬테풀치아노다. 90%의 산지오베제를 사용하고 카나이올로를 블렌딩한 와인으로 체리와 자두, 바이올렛 아로마가 매력적이고 균형미가 느껴진다. 비노 노벨레 디 몬테풀치아노 리제르바 보쏘나는 1964년 처음 포도나무를 식재해 와이너리에서 가장 오래된 빈야드인 보쏘나 빈야드(Bossona Vineyard)에서 생산한 산지오베제 100% 와인이다. 농익은 과일 풍미와 함께 토양의 영향으로 뚜렷한 미네랄리티가 느껴진다. 데이 와이너리의 와인들은 현재 루벵코리아를 통해 한국에 수입되고 있다.
르 베르네 Le Berne
이곳은 특히 소박한 농가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와이너리다. 몬테풀치아노의 중심부에 자리하며 12개의 피에베 중에서는 체르보냐노(Cervognano)에 속한다. 작품 같은 빈야드 풍경이 내려다 보이는 테이스팅 룸에서 와인과 함께 몬테풀치아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1960년대 나탈리니(Natalini) 가문의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설립한 이곳은 현재 4세대로 이어지며 소규모 가족 경영 와이너리로 운영되고 있다. 5개 빈야드에 총 13헥타르를 소유하고 있으며, 해발고도 350미터의 언덕이 많은 지형에 위치한다. 실제로 '르 베르네'라는 이름도 '언덕'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르 베르네의 빈야드 풍경]
이곳은 이탈리아의 유명 와인메이커 파올로 바가지니(Paolo Vagaggini)가 양조 컨설팅을 한 곳이기도 하다. 패밀리가 소유한 빈야드에서는 1969년 나탈리니 패밀리가 처음 식재한 포도나무가 아직 포도를 생산하고 있는데, 올드바인이라 생산량은 많지 않지만 고품질을 추구하는 와이너리의 철학에 맞는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르 베르네 와이너리의 페데리코 나탈리니]
양조학을 전공한 후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페데리코 나탈리니(Frederico Natalini)는 “할아버지 세대에는 산지오베제가 색이 진하지 않고 날카로운 느낌이 있어서 콜로리노로 색을 더하고 카나이올로와 마몰로를 블렌딩해 부드러움을 더했는데, 이제 기후 변화로 인해 산지오베제 그 자체로도 부드럽고 섬세한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르 베르네의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는 주로 산지오베제만으로 양조하거나 3%가량의 콜로리노를 블렌딩한다. 그가 추구하는 와인은 강렬함보다는 밸런스와 우아함을 갖춘 스타일로, 소유한 빈야드 중 가장 적합한 빈야드에서 피에베 와인을 선보일 것이라 한다.
빈델라 Bindella

[빈델라 와이너리]
'테누타 발로카이아(Tenuta Vallocaia)'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빈델라 와이너리는 몬테풀치아노 지역에서 과감한 투자와 함께 성장한 대표적인 와이너리로 꼽힌다.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이곳은 1983년, 이탈리아의 저명한 와이너리들과 중요한 관계를 맺고 와인 유통 사업을 하던 루디 빈델라(Rudi Bindella)가 몬테풀치아노 와인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2.5헥타르의 포도원을 인수해 와이너리를 설립한 것이 그 시작이다. 현재 175헥타르를 소유하고 있고, 54헥타르에서 포도를 재배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해발고도 260미터에서 450미터에 걸쳐 5개 빈야드가 있고, 토양과 미세기후가 각기 다른 빈야드 환경에 맞춰 산지오베제, 말바지아, 소비뇽 블랑,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 그르나슈 등 다양한 품종을 생산하고 있다. 각기 다른 빈야드에서 생산하는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 와인은 리제르바까지 총 3가지인데, 싱글 빈야드와 올드 바인의 포도로 산지오베제의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빈델라 와이너리의 레스토랑]
빈델라는 2015년부터 3년에 걸쳐 새로운 와이너리 건물을 지었고 이후 방문객들을 위한 시설도 마련했다. 현대적인 기술력을 반영한 셀러를 갖춘 것은 물론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와이너리 곳곳에 자리한 예술작품이다. 루디 빈델라의 개인 컬렉션으로,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크리스토퍼 렘풀(Christopher Lehmpfuhl)이 장기간 와이너리에 머물며 다채로운 풍경을 담아낸 대작이 걸려있고, 셀러의 복도 곳곳에는 스위스의 조각가 플로라 스타이거 크로포드(Flora Steiger-Crawford)와 롤프 브렘(Rolf Brem) 작품도 자리한다. 빈델라의 마케팅을 담당하는 엔리코 베니치(Enrico Benicchi)는 “와인이 인간과 땅의 에너지가 만나 탄생하는 만큼, 최신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아트와 함께 느껴지는 휴먼 터치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평일에는 방문객들을 위한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와이너리에 함께 자리한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눈앞에 펼쳐진 빈야드 풍경을 감상하며 식사할 수 있다는 점도 빈델라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 데리치(De'Ricci)와 데이(Dei)의 와인은 현재 한국에 수입 중이며, 나머지 4개 와이너리는 아직 한국 수입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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