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에 자신들만의 와인을 만들고 싶었던 부부가 있었다. 매우 좋은 이탈리아 와인을 만들고 싶었던 그들은 이탈리아 전역을 돌아다니다가, 카스텔누오보 델라바테(Castelnuovo dell'Abate)라는 곳에 도착했다. 동쪽에는 아미아타(Amiata)산이 있고, 아래로는 오르시아(Orcia) 강이 흐르는 이곳의 풍경을 보자마자, 그리고 온화한 날씨를 느끼자마자 그들은 여기가 자신들이 찾던 곳이라고 생각했다. 평안하게 느껴지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아, 와이너리의 이름을 '좋은 시간(Buon Tempo)'이라고 지었다. 테누타 부온 템포는 그렇게 탄생했다.

[몬탈치노 남쪽에 위치한 테누타 부온 템포 (출처: 테누타 부온 템포)]
카스텔누오보 델라바테는 몬탈치노의 최남단에 위치한다. 많은 와이너리들이 몰려있는 몬탈치노 마을 주변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최근 한국을 방문한 테누타 부온 템포의 와인메이커이자 앞서 소개한 부부의 아들, 필리포 벨리니(Filippo Bellini)와 대화를 나누었다.
“북쪽 몬탈치노 마을과 우리 와이너리가 위치한 곳은 일단 수확 시기부터 10-15일 정도 차이가 나요. 같은 몬탈치노에 속하지만 기후가 상당히 다르다는 의미죠. 북쪽은 블루베리나 블랙베리 같은 검푸른 과일 느낌이 강한데, 남쪽은 상대적으로 라즈베리나 산딸기 같은 레드 과일의 특징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확실히 남쪽에서 더 잘 익은 타닌을 가진 와인이 나옵니다. 우리 와인에서는 발사믹 노트도 특징적이에요.”
테누타 부온 템포는 2018년 몬탈치노 북쪽 몬토졸리(Montosoli)에도 2헥타르의 밭을 구입했다(와이너리 근처에는 12헥타르의 밭을 가지고 있다). 이는 빈티지별로 두 지역의 포도를 블렌딩해 더욱 일관성 있는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다. 실제로 두 지역의 와인을 비교해 마셔보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한다. 발효에서부터 차이가 확연한데 북쪽 포도는 색에서 보랏빛이 나타나지만, 남쪽은 진한 루비빛을 보인다고 한다. 확실히 남쪽은 구조감도 더 강하고 잘 익은 풍미가 특징이다.

[몬토졸리 포도밭. 테누타 부온 템포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유기농 철학을 지켜오고 있다 (출처: 테누타 부온 템포)]
테누타 부온 템포의 플래그십 와인의 이름은 P.56, 그들의 최고 포도밭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지역은 1994년까지 포도밭이 없었어요. 올리브 나무만 있었죠. 이전 소유주가 이곳에 처음 포도밭을 일구고 포도밭을 등록하러 갔는데 56번이라는 번호를 받았다고 해요. 그때부터 이곳은 56번 빈야드라고 불립니다. 당시 심은 포도는 이제 30년 정도 수령의 고목이 됐죠. 이 포도밭은 토양도 척박해서 포도 수확량이 가장 적지만 포도의 품질은 가장 좋습니다.”
P.56 포도밭은 태양이 가장 뜨겁고, 바람도 많이 분다. 그래서 수확시기를 정하는 것이 어려운데 그들은 두 번에 걸쳐 수확을 한다. 먼저 가장 알이 작은 포도를 수확해 P.56 와인을 만들고, 그다음으로 수확한 포도로는 일반적인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DM)를 만든다. 그래서 P.56의 품질은 확실히 한 단계 위다. P.56의 2013년 빈티지는 2021년 코리아 와인 챌린지(Korea Wine Challenge, KWC)에서 골드 메달을 받기도 했다.

[P.56 포도밭은 햇빛, 바람 등 모든 것이 가장 강하다 (출처: 테누타 부온 템포)]
필리포의 부모가 와이너리 시설을 구입했을 때 그곳에는 작은 프렌치 오크 배럴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브루넬로에게 프렌치 오크 배럴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브루넬로, 즉 산지오베제는 매우 섬세한 향을 지닌 품종이에요. 산지오베제 고유의 달콤한 체리 향이 강한 오크 향에 가려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2015년부터 이탈리아 알토 아디제의 장인이 제작한 커다란 슬라보니아(Slavonian) 오크 배럴을 구입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올해 1월 드디어 모든 배럴을 슬라보니아산으로 바꿀 수 있었죠. 이 배럴에서 숙성하면 산지오베제의 신선한 과일향이 훨씬 더 잘 유지됩니다. 천천히 숙성하기 때문에 색상과 안정성, 질감에서도 효과가 크죠.”
커다란 슬라보니아 오크 배럴을 사용하는 것은 사실 매우 전통적인 양조 방식이다. 하지만 그들은 전통을 중시하면서 변화에도 무척 열려 있다. 한 예로 그들은 발효 탱크로 주로 시멘트 탱크를 이용한다. 시멘트 탱크는 발효 시 산소가 적절하게 통과해 몬탈치노 와인에 적합한 타닌 구조를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작은 암포라도 사용한다. 흙으로 만든 암포라는 산소가 잘 통과하면서도 다양한 모양으로 제작할 수 있다. 그래서 포도밭의 구획을 더 잘게 나누고 각각 양조를 한 후 블렌딩해 보다 높은 품질의 와인을 만들 수 있다.

[양조에 사용하는 암포라 (출처: 테누타 부온 템포)]
그들의 도전정신과 흥미로운 와인 양조 방식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와인은 '라 푸르바(La Furba)'다. 레이블부터 여우가 새를 잡아먹는(?) 듯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와인 이름인 라 푸르바도 '교활한, 앙큼한'이라는 뜻이 있다. 추수감사절 가족 식사 때 여우 한 마리가 몰래 들어와 그들의 소중한 칠면조 요리를 훔쳐 간 일이 있었는데, 어쩌면 소중한 포도 열매를 이용해 와인을 만드는 것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름과 스토리 외에도 재미있는 요소가 많다. 먼저 양조에 산소 투과성이 다른 두 종류의 암포라를 이용한다. 포도의 10-20%를 포도송이째 넣고 발효를 시작한다. 즉, 세미-탄산침용(semi-carbonic maceration) 방식이다. 이 방식은 미묘한 과실 느낌을 더하고 텍스처를 더욱 부드럽게 한다.
필리포는 이 와인을 만들기 위해 매년 실험을 거듭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첫 빈티지는 침용을 무려 11개월간 진행했고, 현재 출시한 2021년 빈티지는 6개월, 2022년 빈티지는 4개월간 진행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래 침용을 하려면 와인의 품질이 충분히 좋아야 한다. 라 푸르바는 가장 좋은 포도로 만드는데 그래서 이 와인, 품질이 상당하다. 세미-탄산침용 방식이라고 하면 보졸레 같은 가벼운 스타일의 와인을 떠올리기가 쉬운데, 이 와인은 한결 진지하고 향도 다르다. 더 상쾌하고 산지오베제라는 포도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매년 천 병가량 밖에 생산하지 않은 희귀한 와인이지만, 국내에도 (주)와이넬이 수입하고 있으니 한번 접해본다면, 상당히 다른 느낌의 몬탈치노 와인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테누타 부온 템포의 와인 메이커, 필리포 벨리니]
테누타 부온 템포, 로쏘 디 몬탈치노(Tenuta Buon Tempo, Rosso di Montalcino) 2019
가장 놀라웠던 와인은 로쏘 디 몬탈치노(Rosso di Montalcino)였다. 보통 로쏘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DM)의 하위 버전으로 생각하곤 하지만, 이 와인은 또 다른 스타일의 BDM으로 불릴만 하다.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발효해 보다 신선하지만 달콤한 레드 베리향과 슬라보니아 오크 배럴의 은은한 나무 뉘앙스도 느낄 수 있다. 테누타 부온 템포가 소유한 포도밭의 테루아 자체가 훌륭하다는 사실을 이 와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테누타 부온 템포,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Tenuta Buon Tempo, Brunello di Montalcino) 2015
향에서 복합성이 상당히 강한데, 다시 살펴보니 2015년 빈티지였다. 10년 가까이 지난 BDM에서는 잘 익은 레드 과일 향에 더해 말린 검은 자두와 블랙베리, 가죽향도 함께 잘 드러난다. 타닌은 매우 부드러우며 바디감도 좋다. 제임스 서클링은 거의 모든 빈티지에 93-96점을 주고 있다.
테누타 부온 템포,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올리베토 P.56 (Tenuta Buon Tempo, Brunello di Montalcino Oliveto P.56) 2018
먼저 향의 강도부터 차이가 난다. 산지오베제의 특징인 레드 커런트, 레드 체리의 붉은 과실향과 함께 은은한 나무 뉘앙스가 좋다. 확실히 프렌치 오크의 바닐라향과는 다른 은은하면서도 섬세한 향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분 좋은 허브향이 시원하다. 맛에는 한결 힘이 있고 집중력이 좋다. 좋은 포도밭에서 나온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의 매력이 가득하다.
테누타 부온 템포, 브루넬로 라 푸르바 (Tenuta Buon Tempo La Furba) 2021
이 영리한 여우 와인은 과실 폭탄이다. 산지오베제가 이런 품종이구나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물론 그만큼 산도도 좋고 체리류의 빨간 과일들의 매력이 향과 맛 모두에서 느껴진다. 오크 숙성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무 뉘앙스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이 와인은 음식과 함께 즐기기에 더욱 좋다. 토마토소스 파스타부터 가금류, 붉은 육류 등 웬만한 음식들과 다 잘 어울릴 듯하다. 가장 마지막까지 즐긴 멋진 와인이었다.

[테누타 부온 템포의 와인 4종. 왼쪽의 여우 그림 레이블이 라 푸르바, 오른쪽 와인 3종이 RDM과 BDM이다]
필리포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저의 가장 큰 목표는 테누타 부온 템포의 좋은 포도, 좋은 날씨, 좋은 전망을 그대로 담은 와인을 만드는 거예요. 언제든 누구든지 테누타 부온 템포에 방문해 주세요. 정말로 '좋은 시간'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겁니다.”
그의 말처럼 언젠가 그들의 와이너리에 방문해 보고 싶다. 하지만 그들의 맛있는 와인을 맛본다면 그 누구라도 이미 '좋은 시간'을 즐기게 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좋은 시간(Buon Tempo)'은 와이너리와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테누타 부온 템포의 풍경 (출처: 테누타 부온 템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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