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트윈스가 우승했다. 담담하게 얘기하지만 솔직히 아직도 흥분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1994년 이후 무려 29년 만에 우승이다. 그 오랜 기간 LG트윈스의 팬들은 한시도 팬심을 놓지 않았다. 한결같이 야구장을 찾고 저녁마다 TV를 키며 응원했다. 마침내 우승하는 순간, 20년 넘게 숙성한 팬심을 지켜온 LG트윈스 팬들은 모두 자기가 승리한 듯 팀의 우승을 함께 기뻐했다.
와인도 병에 담겨 2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다면 그 오랜 시간의 흔적이 남는다. 벌써 21세기가 시작하고도 23년이 더 지났으니, 20세기에 태어난 와인에서는 충분히 숙성미가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주변에서 1990년대에 탄생한 와인을 만나는 것은 어렵다. 일반적인 와인숍에서도 보기 힘들고 웬만한 인내심을 가진 와인 애호가가 아니고서는 지금까지 셀러에 남겨놓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최근 멋진 1998년 빈티지 와인을 만났다. 특별히 와이너리에서 가져온 와인이 아닌, 실제 판매용 와인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5백 병 정도 수입됐는데 2주 만에 동이 났다. 그래서 곧 3천 병이 새로 들어올 예정이다. 국내에도 이런 올빈(올드 빈티지)의 매력을 아는 애호가들이 많다니 흥미롭다. 아니, 그런데 이렇게 많은 올빈을 보관하고 있는 와이너리는 어떤 와이너리일까?

[보데가 리오하나스의 에두아르도와 페데리코]
지난 11월 17일, 보데가 리오하나스(Bodegas Riojanas)의 총괄 디렉터 에두아르도 마로티아스(Eduardo Sainz Marotias)와 수출 디렉터 페데리코 아모에도(Federico Vazquez Amoedo)가 방한했다. (주)국순당이 수입하는 1998년 그랑 레제르바를 비롯한 와인 5종을 함께 테이스팅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보데가 리오하나스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스페인 리오하(Rioja)의 유서 깊은 와이너리다. 1890년 설립됐으니 올해로 133년의 세월이 흘렀다. 리오하 알타의 핵심 지역인 세니세로(Cenicero)에 직접 소유한 200헥타르의 포도밭과 오랜 기간 파트너십을 유지해온 포도 재배자들로부터 600헥타르의 포도밭에서 포도를 공급받아 매년 4천백만 병 이상의 와인을 생산한다. 생산량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전체 와인 중 리오하 DOC 규정에서 가장 높은 등급인 레제르바(Reserva)와 그랑 레제르바(Gran Reserva) 와인의 비율이 60%가 넘는다는 사실이다. 스페인 내에서 유통되는 모든 레제르바와 그랑 레제르바의 8%가 보데가 리오하나스의 와인이다. 엄청난 숫자다.
몬테 레알(Monte Real)은 보데가 리오하나스의 메인 브랜드 중 하나다. 높은 고도의 산 부근에서 자라는 고령의 포도를 이용하며 크리안자부터 그랑 레제르바까지 오직 템프라니요 100%만으로 와인을 생산한다. 핵심 포도밭인 엘 몬테(El Monte)를 비롯해 400-700미터의 높은 고도에서 자란 템프라니요는 충분한 산도를 유지한다. 또한 높은 수령의 포도가 만들어내는 집중력과 풍미 덕분에 그라시아노나 마수엘로의 도움 없이도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는 와인을 만들 수 있다.

[리오하에서도 특별히 높은 고도에 위치한 몬테 레알의 포도밭 (출처: 몬테 레알)]
직접 소유한 포도밭 중 반절이 1980년대에 식재한 포도밭이고, 가장 오래된 포도의 수령은 120년이 넘는다. 전체 포도의 평균 수령 또한 30-35년에 이른다. 레제르바와 그랑 레제르바에는 더 높은 수령의 포도를 사용한다. 실제로 그들의 와인은 등급이 올라갈수록 숙성에 따른 차이뿐 아니라 포도가 선사하는 집중력과 풍미 또한 차이가 난다.
사실 리오하의 와이너리들은 다들 레제르바와 그랑 레제르바 등급 와인을 만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첫째로 포도의 품질이 그만큼 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이며, 둘째는 비용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높은 등급의 와인을 만들려면 포도를 수확하고 적어도 3-5년간 와이너리에서 보관해야 한다. 그 기간 동안에는 수입이 없다. 또한 넓은 보관 장소도 필요하다. 그래서 보르도에서는 와인이 완성되기도 전에 미리 판매하는 전략(En Primeur)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몬테 레알은 오랜 역사의 와이너리답게 큰 저장 공간이 있다. 60년대부터 현재 빈티지까지 모든 와인이 충분히 보관돼 있으며, 총 보관량도 4백 5십만 병 이상이다. 또한 여러 곳에서 투자를 받아 그만큼 자본의 여력도 있다. 투자자들은 때로는 너무 오랜 기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에 불평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와이너리이고 그들이 만드는 와인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좋은 파트너십을 유지한다고 한다.

[몬테 레알의 와인 저장고 (출처: 몬테 레알)]
와인메이커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1933년 보데가 리오하나스에 합류한 프랑스 와인메이커 가브리엘 라랜당(Gabriel Larrendant)은 당시의 리오하 스타일과는 다른 혁신적인 와인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그 결과 몬테 레알 브랜드가 탄생했다. 1964년부터 40년간 와인 양조를 맡은 펠리페 날다(Felipe Nalda)는 리오하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와인메이커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특히 그가 만든 그랑 레제르바의 아름다움은 많은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은 바 있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와인 양조를 맡고 있는 에밀리오 소조(Emilio Sojo Nalda)는 그의 조카다. 19살부터 보데가 리오하나스에서 일하며, 오랫동안 삼촌을 옆에서 도운 그는 지난 20년 동안 보데가스 리오하나스 와인의 현대화를 시도했다. 결국 올해는 국제적인 주류 매거진 <드링크 비즈니스(The Drinks Business)>로부터 '최고의 리오하 와인메이커'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몬테 레알의 와인메이커 에밀리오 소조(출처: 몬테 레알)]
이제 그들의 와인을 테이스팅 해보자. 한 종류의 화이트, 그리고 크리안자부터 그랑 레제르바까지 다양한 레드 와인이 준비됐다.
몬테 레알 블랑코 바리카(Monte Real Blanco Barrel Fermented) 2022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살짝 토스팅한 아메리칸 오크 배럴에서 발효한 와인이다. 발효 후에는 리(효모 찌꺼기)와 함께 5개월 이상 접촉하는데, 매일 바토나쥬를 해서 리 접촉을 최대화했다. 비우라(Viura) 80%에, 향을 더하는 말바지아(Malvasia) 20%를 블렌딩했다. 노란 살구 및 복숭아와 바나나 같은 잘 익은 열대과일 향과 함께 배럴이 선사하는 하얀 후추와 정향 등의 향신료 뉘앙스를 느낄 수 있다. 리 컨택에 의한 은은한 빵의 뉘앙스도 느낄 수 있는데, 무엇보다 부드러운 텍스처가 인상적이다. 입안에서 질감이 좋아 부드럽고 마시기 편하다.
몬테 레알 크리안자(Monte Real Crianza) 2020
아메리칸 오크통과 프렌치 오크통에서 12개월간 숙성 후 병에서 최소 6개월간 숙성해 출시하는 크리안자 와인이다. 검붉은 자두와 베리에 제법 무거운 육두구와 정향, 오크 숙성으로 인한 토스트, 코코넛 등의 뉘앙스가 함께한다. 하지만 오크향은 약간만 거들 뿐, 전체적으로 향긋한 과실 향과 상쾌한 과실 맛이 가득하다. 이제 3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은은한 가죽향이 올라와 복합미도 느낄 수 있다.

[몬테 레알 블랑코 바리카, 크리안자, 레제르바, 그랑 레제르바]
몬테 레알 레제르바(Monte Real Reserva) 2019
아메리칸 오크통과 프렌치 오크통을 반반씩 사용해 2년간 숙성하고, 최소 1년 이상 병 숙성을 한 레제르바 와인이다. 모든 와인은 발효 시 특별히 고른 리오하 야생효모를 이용하는데, 이로 인해 몬테 레알만의 개성을 일관성 있게 유지할 수 있다. 오랜 오크 숙성으로 인한 바닐라의 부드러움과 허브, 삼나무, 시나몬 등의 스파이스가 더욱 잘 드러난다. 하지만 무엇보다 포도의 품질이 좋아서 와인의 바디감과 집중력, 풍미가 한결 강하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 또한 차이가 있다.
몬테 레알 그랑 레제르바(Monte Real Gran Reserva) 2016
새 오크를 포함한 아메리칸과 프렌치 오크통에서 3년, 병에서 최소 2년간 숙성한 뒤 세상에 선보이는 그랑 레제르바 와인이다. 더 오랜 숙성으로 코코아와 초콜릿, 토스트, 후추, 정향 등의 스파이스의 강도가 강해졌다. 무엇보다 딜과 로즈메리 등의 허브 향이 시원하다. 그랑 레제르바 역시 고령의 템프라니요의 매력과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집중력과 풍미의 강도에서 차이가 확연하다.

[올빈의 가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몬테 레알 그랑 레제르바 1998]
몬테 레알 그랑 레제르바(Monte Real Gran Reserva) 1998
오크통에서 40개월간 숙성 후, 2003년 병입 이후 지금껏 와이너리의 셀러에서 20년간 병 숙성을 한 뒤 선보이는 와인이다. 풍성한 복합미에 감탄이 나온다. 스파이시한 향은 팔각이 연상될 정도로 다채로워졌고 진하게 말린 자두, 검은 건포도 등 말린 과실 느낌도 더해졌다. 바닐라, 코코넛, 초콜릿, 가죽과 시가향도 한결 강하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맛은 여전히 신선하다. 맛에서 과실 풍미도 충실하고 집중력도 좋다. 여기에 단지 풍부한 숙성 향만 더해져 훨씬 다양한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는 와인으로 변모했다. 이 와인 물건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와인을 쉽게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금 놀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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