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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카이아 2020은 어떤 맛일까?

프리실라 인치자 델라 로케타(Priscilla Incisa della Rocchetta)를 오랜만에 만났다. 프리실라는 현재 사씨카이아(Sassicaia)를 이끄는 오너 패밀리의 일원이다. 2019년 이맘때 그는 사씨카이아 2016 빈티지 홍보차 방한했다. 코로나19로 인해 한동안 한국에 오지 못하다 오랜만에 방한한 그는 4년 전의 조용하고 단아한 모습 그대로였다. 언제나 일관된 품질로 우리에게 만족감을 주는 사씨카이아와 참 많이 닮았다. 


[한국을 방문한 프리실라 인치자 델라 로케타]


수퍼 투스칸 탄생의 주역인 사씨카이아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해안 지방인 볼게리(Bolgheri)에 위치한 테누타 산 귀도(Tenuta San Guido)가 만든다. 이 와이너리는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에서 와인 사업을 하던 마리오 인치자(Mario Incisa, 프리실라의 할아버지)가 1940년대에 볼게리로 이주해 설립한 곳이다. 볼게리에는 프리실라의 할머니가 유산으로 받은 땅이 있었는데 휴가 때마다 가족들과 자주 오다 보니 그곳의 잠재력이 마리오의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테누타 산 귀도는 예나 지금이나 와인만 생산하는 곳은 아니다. 총 2500헥타르 중에 포도밭은 100헥타르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숲, 말 목장, 농장, 올리브 나무 등이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생물이 사는 환경은 건강하고 맛있는 포도가 생산되는 조건이기도 하다.


마리오는 새 농장 한편에 해발고도 400미터의 돌이 많은 땅에 평소 좋아하던 카베르네 소비뇽을 심었다. 시장에 내놓을 생각은 없었고 맛있는 와인을 만들어 가족과 나누기 위해서였다. 와인 이름도 '돌이 많은 땅'이라는 뜻의 '사씨카이아'라고 지었다. 그렇게 탄생한 와인이 세상에 나오게 된 데에는 마리오의 아들 니콜로와 토스카나의 전설적인 와인메이커 자코모 타키스(Giocomo Tachis)의 영향이 컸다. 와인의 품질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아본 이들은 당시 등급 규정으로는 가장 하위인 'Vino da Tavola'가 될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리오를 설득해 사씨카이아를 출시했고, 기대 이상의 성공은 토스카나의 위대한 와인 '수퍼 투스칸'의 시작을 알렸다.


테누타 산 귀도는 현재 3대손 5명이 공동 운영 중이다. 니콜로의 딸인 프리실라도 그중 한 명으로 사씨카이아를 비롯, 레 디페제와 귀달베르토 등 테누타 산 귀도가 만드는 와인들의 대외 홍보와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있다. 모처럼 방한한 그녀가 선보인 이 와인들의 새 빈티지는 과연 어떤 맛일까? 하나씩 알아보자.


[좌로부터 라 디페제, 귀달베르토, 사씨카이아]


레 디페제 (Le Difese) 2021

레 디페제는 이탈리아어로 '방어(defense)'를 의미하지만 '멧돼지의 이빨'이라는 뜻도 있다. 멧돼지는 토스카나에서 흔한 야생동물이다. 이름에 걸맞게 레이블에도 사냥개에게 쫓기는 맷돼지가 그려져 있다. 2002년에 첫 출시됐으며, 사씨카이아의 막내 동생 같은 와인이다. 카베르네 소비뇽과 산지오베제를 블렌드했기 때문에 맛이 신선하고 부드러워 영 빈티지로 마시기 좋고 다양한 음식과 두루 잘 어울린다. 그래서 전 세계 고급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식사와 함께 글라스 와인으로 자주 서빙되기도 한다.


레 디페제에 들어가는 포도는 테누타 산 귀도 부지 안의 여러 밭에서 생산된 것들이다. 밭의 해발고도는 100~300미터 사이이며 남향이나 남서향이 대부분이다. 토질은 다양하지만 석회암이 많고 이회토(석회+점토)와 자갈이 많은 곳도 있으며 일부 밭에는 점토 성분이 많다. 수확한 포도는 줄기를 제거한 뒤 열매만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27~28°C의 온도를 유지하며 발효된다. 껍질 침용 시간을 포함해 발효 기간은 카베르네 소비뇽이 13~15일, 산지오베제가 14~18일이다. 젖산 전환을 마친 뒤에도 와인은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10°C의 온도를 유지하며 보관된다. 이때 정기적으로 새 통으로 와인을 옮기며 가라앉은 찌꺼기를 제거해준다. 이후 프랑스산 바리크로 옮겨 6~8개월간 숙성시키는데, 여기에 사용하는 바리크는 사씨카이아와 귀달베르토를 숙성할 때 썼던 것들이다. 숙성이 끝나면 와인은 모두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로 옮겨 지고 20일간 4~5°C를 유지해 주석산염을 제거한 뒤 병입된다.


2021년 빈티지에는 카베르네 소비뇽 55%와 산지오베제 45%가 블렌드 됐다. 신선함이 가득한 아로마에는 레드 체리, 산딸기, 붉은 자두 등 다양한 붉은 베리의 달콤함이 가득했고 시나몬, 흰 후추, 은은한 오크향이 와인에 풍성함을 더했다. 중간 바디감의 적당한 무게감이 매끄러운 타닌과 어울려 입안에서도 기분 좋은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매일 마셔도 좋을 만큼 상큼하고 주시한 스타일이다.


귀달베르토 (Guidalberto) 2021

2000년에 첫 출시된 사시싸이아의 큰 동생이다. 테누타 산 귀도의 테루아가 가진 또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와인으로 사씨카이아보다 일찍 마실 수 있지만 숙성잠재력도 좋다. 레이블에 그려진 작은 건물은 볼게리의 사이프러스 길 끝에 위치한 산 귀도 예배당이다. 귀발베르토라는 이름은 프리실라의 외가 쪽 조상인 귀달베르토 델라 게라르데사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귀달베르토는 19세기에 볼게리 지역의 농업을 이끈 인물로 이곳에 처음 공장과 교회를 지었고 볼게리의 상징과도 같은 사이프러스 길인 비알레 데이 치프레시(Viale dei Cipressi)도 만들었다. 귀달베르토 와인은 카베르네 소비뇽에 메를로를 블렌드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영 빈티지로 마셔도 충분히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포도밭은 앞서 설명한 레 디페제와 동일한데, 메를로는 그중에서도 점토가 많은 땅에서 재배했다. 빨리 익는 메를로를 먼저 수확했고 9월 말부터 10월 초 사이에 카베르네 소비뇽을 수확했다. 2021년에는 수확시기에 기후가 온화해 포도의 풍미와 타닌이 충분히 완숙될 수 있었다. 손수확한 포도는 좋은 것만 추려 송이째 착즙함으로써 최대한 부드러운 즙만 추출했다.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27~28°C의 온도로 발효를 진행했는데 배양 효모가 아닌 포도 껍질에 붙어 있는 야생 효모만을 이용했다. 발효 기간은 메를로가 14~16일, 카베르네 소비뇽이 16~18일 소요됐다. 젖산 전환도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진행했다. 숙성에 사용된 바리크는 95%가 프랑스산이고 5%는 미국산 오크이며, 40%가 새 오크, 40%가 두 번째, 10%가 세 번째, 마지막 10%는 네 번째 사용하는 오크로 구성했다. 병입 후 3개월간 추가 숙성을 거친 뒤 출시됐다.


2021년산은 카베르네 소비뇽 60%와 메를로 40%를 블렌드해 만들었다. 맛이 경쾌한 레 디페제와 달리 귀달베르토는 입에 머금는 순간 무게감이 느껴졌다. 카베르네 소비뇽 특유의 단단함을 메를로가 부드럽게 감싼 느낌이었다. 아로마에도 붉은 과일과 함께 달콤하게 익은 검은 베리류의 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졌고, 약간의 민트 향이 와인에 신선함을, 다크초콜릿 향이 와인에 깊이를 더했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벨벳처럼 포근하고 부드러운 타닌이었다. 육즙이 가득한 스테이크나 갈비찜처럼 양념에 푹 익은 부드러운 고기와 즐기고 싶은 와인이다.



사씨카이아(Sassicaia) 2020

사씨카이아의 재료가 되는 포도는 2500 헥타르 부지 안에서도 가장 우수한 밭에서 생산된다. 해발고도 100~400미터 사이에 위치한 밭은 남서향 또는 서향을 향하고 있으며 이회토가 대부분인 토양에는 석회암과 자갈이 많고 일부 점토가 섞여 있기도 하다. 2020년 3월에는 바닷바람이 거세고 비가 많이 왔지만 기온이 온화해 카베르네 프랑은 제때 싹이 텄다. 하지만 3월 말에 갑자기 닥친 추위 때문에 먼저 튼 싹이 죽어 카베르네 프랑은 두번째 싹이 트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고, 카베르네 소비뇽은 싹이 늦게 터 피해가 적었다. 대체로 평년 기온을 유지한 봄이었지만 비 오는 날과 맑은 날이 교차하면서 포도의 생장이 너무 활발해 지나치게 많이 자란 순을 제거해줘야만 했다. 다행히 6월 중순 이후부터 맑고 온화한 날이 지속돼 포도가 완숙될 수 있었지만 9월에 갑자기 더워져 수확 시기가 짧았다. 결과적으로 2020년은 포도의 품질은 좋았지만 수확량은 평년보다 적어 와인 생산량이 줄어든 해였다.


손수확한 뒤 열매만 부드럽게 착즙해서 포도즙을 얻은 뒤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최대 27~28°C의 온도로 발효를 거쳤다. 젖산 전환도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시행했고 찌꺼기를 제거한 뒤 바리크에 담아 숙성을 시작했다. 바리크는 45%를 새 오크로, 45%를 두 번째, 10%를 세 번째 사용하는 오크로 구성했다. 총 25개월간 숙성을 거친 와인을 모두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로 옮겨 블렌드한 뒤 찌꺼기를 한 번 더 제거하고 병입했으며, 병입된 상태로 안정기를 거친 뒤 출시됐다.


2020년이 덥지 않은 해였기 때문에 사씨카이아 2020은 알코올 도수가 예년에 비해 낮고 타닌의 강도도 덜해 우아하고 세련된 느낌이다. 프리실라에 따르면 2020 빈티지야말로 사씨카이아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스타일이라고 한다. 적당한 바디감에서 느껴지는 타닌은 탄탄하면서도 부드러웠고 그 안에서 펼쳐진 블랙체리, 블랙베리, 블랙커런트 등 검은 과일향과 감초, 후추, 가죽, 커피 등 2차향의 조화도 훌륭했다. 와인의 어떤 요소도 튀지 않는 완벽한 밸런스 그 자체였다. 신선함을 즐기며 지금 마셔도 좋지만 묵힐수록 복합미가 한층 우아해질 것이 기대되는 와인이다. 


사실 사씨카이아 2020년의 매력을 말로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백 마디 말보다 맛 한 번 보면 모든 것이 설명되니 말이다. 문제는 사씨카이아를 사더라도 숙성시키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너무 마시고 싶어질 것이 뻔해서다. 그럴 땐 귀달베르토나 레 디페제로 마음을 달래 보면 어떨까? 사씨카이아는 해마다 조금씩 다른 스타일을 보여준다. 파워풀할 때도 있고 섬세할 때도 있다. 우아한 사씨카이아를 좋아한다면 2020 빈티지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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