뮈스카(Muscat)는 가장 아름다운 향을 가진 포도 중 하나다. 향긋한 오렌지 꽃과 배, 살구, 복숭아에 꿀 향까지 이 포도로 만든 와인의 향은 한번 맡으면 잊기 힘들다. 워낙 매력적이라서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재배해온 포도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동안 여러 변종이 생겼는데, 가장 인기 있는 뮈스카는 뮈스카 블랑 아 프티 그랑(Muscat blanc à petits grains)라는 품종으로, '알이 작은 하얀 뮈스카'라는 뜻이다.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모스카토(moscato)라고 불린다.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샤인 머스캣 또한 족보를 따라 올라가면 알렉산드리아의 뮈스카(Muscat of Alexandria)라는 품종이 나온다.
뮈스카 품종은 달콤한 와인으로 만들 때 가장 빛을 발한다. 모스카토 다스티도 달콤하게 만든 와인이고, 프랑스에서는 뱅 두 나렐(Vins doux naturels)이라는 주정강화 와인이 인기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는 달콤한 그리스 뮈스카 와인이 있다. 바로 사모스(Samos) 섬에서 나오는 와인이다.

[사모스 섬 곳곳에서 뮈스카 포도가 자란다. 섬 동쪽은 튀르키예(Türkiye)와 인접해 있다]
사모스 섬에서 자라는 포도 중 98%가 뮈스카일 정도로 이 섬은 뮈스카 와인 생산에 진심이다. 지난 가을 그리스의 사모스를 방문해 뮈스카 포도밭을 직접 구경하고 달콤한 뮈스카 와인과 드라이한 내추럴 뮈스카 와인을 테이스팅할 수 있었다.
사모스는 에게해(Aegean Sea) 동쪽에 위치한 섬으로, 그리스 문화 전성기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기원전 6세기 폴리크라테스가 지배하던 시기가 가장 번영했는데, 이때 피타고라스를 비롯한 유명한 인물들이 이 섬에서 태어났다. 사모스의 유적지는 1992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섬에서는 2,500년이 넘은 역사의 그리스 최고 디저트 와인이 만들어진다.

[아마존과 전투를 벌이는 디오니소스. 그리고 그는 사모스 사람들에게 와인 양조법을 가르쳐준다]
그리스 신화에는 용맹한 여전사 부족인 아마존(Amazon)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그리스의 신들과 전투를 벌였는데, 와인의 신인 디오니소스(Dionysos) 또한 아마존과 전쟁을 했다. 형세가 불리해진 아마존 부족은 사모스 섬으로 도망갔는데, 여기에서 디오니소스와 사모스 주민들이 함께 힘을 합쳐 아마존 부족을 물리쳤다. 전쟁 후 디오니소스는 고마운 마음에 사모스 섬 주민들에게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 방법을 가르쳐줬다.
사모스 와인에 대해서는 그리스 의학자인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와 갈레노스(Galenos) 저서에서도 언급되며, 사모스가 바다를 제패하던 기원전 6세기경 '사마이나(Samaina)'라는 특별한 모양의 배에는 와인이 담긴 암포라가 가득 실려 있었다.
사모스 섬 전체의 재배 면적은 1,400헥타르 정도이며 포도의 평균 수령은 30년 정도다. 하지만 워낙 역사가 오래된 지역이기 때문에 100년 넘은 수령의 뮈스카 포도도 찾아볼 수 있다.

[사모스 와인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와인 박물관에서 사모스 와인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사모스의 모든 와인은 'U.W.C. Samos'라는 협동조합에서 생산한다. 'United Winemaking Agricultural Cooperative of Samos'를 의미하는 이곳에서는 2,200명의 포도재배자들이 재배한 포도를 모아 와인을 양조하고 판매하며 마케팅을 담당한다. 전체 생산량 중 70%는 전 세계 25개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1934년 설립된 사모스 와인 협동조합은 그리스에서 가장 오래된 협동조합이자, 세계에서도 가장 큰 규모에 속한다. 워낙 오랫동안 뮈스카 양조를 해왔기 때문에 뮈스카 와인 양조에 대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사모스는 그리스에서 가장 먼저 원산지 보호 와인(PDO)에 등록됐는데, 이에 대한 관리 역시 협동조합에서 수행하고 있다.

[사모스 섬의 농부와 뮈스카 포도]
사모스의 뮈스카가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모스 와인 협동조합의 수출 매니저인 요르고(Giorgos Ftenogiannis)는 먼저 높은 고도의 포도밭을 언급했다. “사모스에는 1,000미터가 넘는 두 개의 큰 산이 있는데, 대부분의 포도밭이 높은 산 중턱에 있습니다. 바다에서는 시원한 바람도 불어오죠. 그래서 포도가 천천히 성숙하며 산도도 잘 보존되어 달콤함과 상큼함의 균형이 완벽한 와인을 만들 수 있습니다. 토양에는 자갈과 편암(schist)이 많아 배수도 잘 되죠.”
요르고와 함께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 달려 도착한 포도밭에는 테라스(Terrace) 형태로 포도밭이 조성돼 있었다. 경사가 높은 곳에서 농작물을 키우기 위해 계단 모양으로 만든 경작지로, 토양의 유실을 방지하고 배수에도 도움을 준다. 하지만 포도의 생산량은 적을 수밖에 없는데, 그만큼 고품질 포도를 생산할 수 있다.

[테라스로 조성된 포도밭. 아래 부분에서 토양도 확인할 수 있다]
사모스 와인 협동조합에서 생산하는 13종의 와인을 시음할 수 있었다. 사모스 전체 와인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4종류의 달콤한 와인을 소개한다.
뱅 두(Vin Doux)
프랑스어로 '달콤한 와인'이라는 뜻이다. 사모스 와인의 오랜 팬인 프랑스를 비롯해 세계적으로도 가장 판매가 잘 되는 와인이다. 밝은 금빛에 시트러스와 살구 등 산도 좋은 과일향이 난다. 입안에서도 신선한 산도와 달콤함이 기분 좋다. 사과 파이나 과일 타르트 등과 즐기는 디저트 와인으로 좋고, 오후에 가벼운 치즈와 함께 마시기도 좋다. 프랑스에서는 요리에도 많이 사용한다고 하며, 뱅 두를 이용한 칵테일 레시피도 여러 종류가 있다.
그랑 크뤼(Grand Cru)
프랑스 사람들이 사모스 섬이야말로 '뮈스카의 그랑 크뤼'라는 의미로 붙여준 이름이다. 더욱 신중하게 선택한 포도로 양조되며 달콤한 꿀 뉘앙스가 버터스카치와 바닐라 같은 오크 숙성 느낌과 함께 느껴진다. 노란 치즈 같은 짭조름한 음식과 주로 즐기지만 로스트 치킨 같은 음식과 함께해도 의외의 조합을 경험할 수 있다.

[왼쪽부터 뱅 두, 그랑 크뤼, 안테미스, 넥타르다. 가장 오른쪽은 1963년 빈티지였는데, 아직까지 산도가 살아 있었다]
안테미스(Anthemis)
안테미스는 사모스 섬에 있던 고대 허브의 이름이다. 5년간 오크 배럴 숙성 후 출시하는 와인으로, 색이 훨씬 진하고 코코아와 초콜릿, 캐러멜, 말린 과일 같은 아로마가 더해진다. 꿀을 마시는 듯 매우 농축된 와인인데, 여전히 포도의 신선한 산미도 살아있다. 주정강화 와인에서 종종 느껴지는 알코올 느낌도 거의 없다. 복합미가 훨씬 강하기 때문에 더욱 숙성된 치즈나, 푸아그라 등의 진한 풍미의 음식과도 좋다. 디너 후에 가벼운 시가와도 추천한다고 한다.
넥타르(Nectar)
넥타르는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이 마신 와인의 이름이다. 특별히 선택한 뮈스카 포도를 40일가량 햇볕에 말려 당도를 최대로 응축한 후 6년간 오크 배럴에 숙성시켰다. 진한 호박색의 액체에 진하게 농축된 건포도향이 넘쳐 흐른다. 아몬드와 구운 시나몬 등 스모키한 향신료 아로마가 특징이며 거의 모든 종류의 숙성 치즈나 스모키 치즈와 잘 어울린다. 강한 맛의 음식에도, 강한 풍미의 디저트에도 결코 밀리지 않을 와인이다.
달콤한 와인과 함께 드라이한 뮈스카 와인도 테이스팅 할 수 있었다. 당도가 적은 와인들이지만 재미있게도 달콤한 풍미가 느껴졌다. 뮈스카의 풍미가 그만큼 강렬하고 매력적이라는 의미다. 맛에서도 미네랄리티가 가득해 해산물 요리와도 잘 어울렸다. 바벨(Babel)이라는 이름의 로제 와인도 있었는데, 사모스 섬에서 2%가량 자라는 레드 품종을 약간 섞었다. 바벨은 성경에 나오는 탑의 이름으로 맛있는 와인은 세계 모든 사람들을 다 통하게 만든다는 의미가 담겼다.

[사모스 와인 협동조합에서 생산하는 와인들. 가운데 독특한 레이블 3종이 특별한 내추럴 와인이다]
드라이한 와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3종의 내추럴 와인이었다. 선지자(Profitis), 은둔자(Hermitis), 산에서 사는 사람(Vountis)이라는 범상치 않은 이름이었는데, 사모스에서 가장 특별한 테루아를 지닌 포도밭의 포도로 만든다. 1,000미터 높이에 있는 'Vountis' 포도밭에 가보면 그 높은 곳에서 포도를 재배하는 사람에게 경외심이 느껴진다고 한다.
이 와인들의 라벨에는 'unscathed wine'이라고 적혀 있는데, 포도에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않고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전 세계에서 사모스 섬에서만 만들 수 있는 놀라운 와인들이며 뮈스카로 만들 수 있는 극한의 복합성을 보여준다. 사모스 와인 협동조합에서는 지구 온난화로 점점 따뜻해지고 있는 이 시기에, 높은 고도에서 자라는 포도를 사용해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만드는 이 와인들이 사모스 와인의 미래이자 그리스 와인의 미래라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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