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스토리

말벡 스페셜리스트 폴 홉스의 역작, 비냐 코보스(Vina Cobos)와 크로쿠스(Crocus)

오퍼스원의 수석 와인메이커, 와인계의 스티븐 잡스 등 다양한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폴 홉스(Paul Hobbs)는 자신의 이름을 딴 나파 밸리의 폴 홉스 와이너리 외에도 아르헨티나의 비냐 코보스(Vina Cobos), 프랑스 까오르의 크로쿠스(Crocus) 등 여러 개의 와이너리를 소유하고 있다. 폴 홉스 브랜드의 홍보를 위해 방한한 총괄 사장 카를로스 데 카를로스(Carlos de Carlos)를 만나 비냐 코보스와 크로쿠스를 비교 시음하며 폴 홉스와 그의 와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한국을 찾은 폴 홉스 브랜드 총괄 사장, 카를로스 데 카를로스]


양조학 석사 학위 취득 후 로버트 몬다비에게 발탁되며 와인메이커의 길에 들어선 폴 홉스는 오퍼스원 설립 당시 초대이자 수석 와인메이커로 일하면서 명성을 떨쳤다. 폴 홉스는 미국 프리미엄 와인 시장을 개척한 오퍼스원을 필두로 여러 와이너리의 와인메이킹과 컨설팅을 도맡으면서 자신의 와이너리를 만들겠다는 꿈을 꿨고, 그렇게 자신의 첫 번째 와이너리인 폴 홉스 와이너리를 나파 밸리에 설립했다. 다양한 테루아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좋은 테루아를 찾아내 현재 4개 대륙에 7개의 와이너리를 소유하고 있다.


비냐 코보스(Vina Cobos) 와인

폴 홉스가 1988년 아르헨티나에 처음 방문했을 때 멘도사는 훌륭한 테루아에 비해 와인의 품질이 그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당시만 해도 말벡은 그저 블렌딩에 사용되는 하나의 품종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었고, 그나마 좋은 품질의 와인은 카베르네 소비뇽과 샤도네이에 국한됐다. 말벡 와인이라곤 저렴한 벌크형뿐이었다. 폴 홉스는 블렌딩이나 벌크가 아닌 본연의 개성과 특징을 드러낸 순수한 말벡 와인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본격적인 품종 연구에 들어갔다. 지역의 특성을 파악하고 테루아에 따라 말벡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실험과 연구를 거듭해 갔다.


1998년 드디어 비냐 코보스 와이너리를 설립했고 1993년 샤도네이 와인을 론칭하면서 미국의 저널리스트들을 초빙했는데, 카베르네 소비뇽 시음에 이어 말벡을 맛본 기자들이 “마셔본 카베르네 소비뇽 가운데 가장 좋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것이 카베르네 소비뇽이 아닌 말벡임을 알고 난 그들은 충격에 빠졌고, 시애틀 타임즈(Seattle Times)의 한 기자는 'Don't Cry for Me, Argentina' 라는 제목으로 비냐 코보스 말벡에 대한 극찬과 더불어 아르헨티나 말벡의 재발견에 대한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호평에도 불구하고 말벡은 여전히 비주류였고 미국 와인 시장의 진입 장벽은 높았다. 결국 폴 홉스는 미국에 직접 수입사를 차려 자신의 와인을 수입했고,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아르헨티나에서 생산되는 말벡 와인의 30% 이상이 미국 시장에서 소비될 정도로 각광받고 있다.


폴 홉스는 아르헨티나 말벡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항상 고민해 왔다. 오퍼스원이 미국 프리미엄 와인 시장의 개척자라면 비냐 코보스가 아르헨티나 프리미엄 와인 시장의 개척자인 셈이다. 아르헨티나 지역의 테루아를 반영해 와인을 만든 것도 폴 홉스가 최초였고, 자체적으로 소비되던 남아메리카 와인이 프리미엄 와인의 탄생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하게 된 데에도 그의 공이 크다. 비냐 코보스의 가장 상위 라인이자 플래그십 와인인 코보스 말벡은 첫 빈티지인 1999 빈티지로 2001년에 남미 최초 로버트 파커 96점을 받았으며, 2013 빈티지는 99점, 그리고 2011 빈티지는 아르헨티나는 물론이고 남미 최초로 제임스 서클링 100점을 획득했다. 평론가 점수뿐만 아니라 와인 애호가들의 평가를 기반으로 하는 비비노(Vivino)에서도 아르헨티나 최고 와인으로 꼽히며 비냐 코보스는 명실상부 아르헨티나의 대표 프리미엄 와인으로 굳건하게 자리매김했다.


[두 장의 포도잎이 그려진 빈큘럼 말벡]


빈큘럼 말벡(Vinculum Malbec) 2018

연대와 유대를 의미하는 '빈큘럼(Vinculum)'을 와인명으로 내건 이 와인은 아르헨티나 멘도사의 두 지역 루한 데 쿠요(Lujan de Cuyo)와 우코 밸리(Uco Vally)에서 재배한 양질의 말벡만을 선별해 블렌딩했다. 라벨에도 두 장의 포도잎이 그려져 있어 두 지역의 포도를 블렌딩한 것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빈큘럼은 테루아와 인간과의 연결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와인은 부르고뉴 와인 스타일을 참고해 양조했으며, 루한 데 쿠요의 말벡이 부드러움을 맡고 있다면 우코 밸리의 말벡은 송이째 발효해 미네랄리티를 살리고 단단한 구조감을 만들어 냈다. 코에서 검은 체리와 은은한 바닐라 향이 스친 후 입에서는 잘 익은 검은 과일과 부드러운 타닌이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한 장의 포도잎이 그려진 마르키오리 에스테이트 말벡]


마르키오리 이스테이트 말벡(Marchiori Estate Malbec) 2018

루한 데 쿠요에 위치한 마르키오리 싱글 빈야드에서 재배한 말벡으로 만든 와인이다. 이 포도밭은 와이너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며 비냐 코보스의 가장 상위 라인인 코보스에 사용되는 밭이기도 하다. 제비꽃 향이 우아하게 피어나면서 플럼 등 잘 익은 검은 과일, 무화과 향에 이어 은은하고 기분 좋은 스파이스 향이 올라온다. 둥글고 부드러운 타닌과 질감이 루한 데 쿠요 말벡의 특징을 잘 드러내며, 산미, 타닌, 바디감, 모든 밸런스가 어느 한 곳 모나지 않고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 음식과 함께일 때 말벡의 부드럽고 달콤한 뉘앙스가 부각돼 더욱 즐기기 좋다. 바로 마셔도 좋지만 2시간 정도 병 브리딩 후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크로쿠스(Crocus) 와인

아르헨티나에 비냐 코보스가 있다면 프랑스 까오르에는 크로쿠스가 있다. 크로쿠스 와인은 14세기부터 까오르 지역에서 재배되고 있는 크로쿠스 사티부스(Crocus Sativus) 꽃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이 꽃으로 향신료 사프란(Saffron)이 만들어진다.


까오르는 중세까지만 해도 보르도를 능가하는 프랑스 최대의 와인 생산지였으며 말벡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지금은 '말벡' 하면 아르헨티나가 떠오를 정도로 아르헨티나 말벡이 대세이지만 실제로 말벡의 고향은 프랑스이다. 19세기 초만 해도 보르도 포도밭의 절반 이상에서 말벡을 재배했고, 보르도 그랑 크뤼 1등급 와인의 블렌딩에도 중요하게 쓰일 정도였다. 그러나 1956년 동해(Winter Freeze)와 필록세라 등의 영향으로 인해 까오르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 그 명맥만 겨우 유지하게 됐으며, 아르헨티나 말벡과 달리 까오르 말벡은 와인 시장은 물론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크게 언급되지 않았다.


1880년부터 까오르에서 4대째 와인을 만들어오던 베르트랑(Bertrand)은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아르헨티나 말벡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 노력했고, 폴 홉스에게 자신의 와인에 대한 컨설팅을 부탁했다. 폴 홉스가 처음 까오르를 찾아갔을 때 아르헨티나와는 또 다른 테루아의 발견에 기뻐했으나 그곳의 와인은 더 이상 시장에서 찾지 않는 구시대적 와인이었다. 폴 홉스는 아르헨티나에서 말벡 와인으로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듯 까오르에서도 다시 도전을 감행했다. 말벡의 원산지인 까오르의 테루아를 반영하되 비냐 코보스를 통해 자신이 그동안 쌓은 경험을 토대로 현대적이고 혁신적인 방식을 도입했다. 기계 수확에서 손 수확으로 방식을 바꾸는 등 포도 재배부터 양조에 이르기까지 현대 방식을 통해 고품질 와인을 위한 변화를 꾀했다. 까오르의 테루아와 폴 홉스의 기술력이 만들어낸 말벡 와인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만족하지 않고 의기투합해 2011년 새로운 와이너리를 설립했다. 말벡의 고향이지만 크게 인정받지 못하는 까오르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을 목표로 설립된 와이너리가 바로 크로쿠스다.


테루아를 가장 중시하는 폴 홉스를 사로잡을 만큼 까오르의 테루아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크로쿠스 와인은 까오르 지역 가운데서도 테루아를 잘 드러내는 세 곳의 포도밭에서 재배된 말벡으로 만든다. 해발고도는 350m 정도로 멘도사의 높은 고도(430~2000m)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해저면이 융기되어 생성된 곳이라 쥐라기 시대부터 충적된 라임스톤과 자갈토, 화강암으로 이뤄져 있고 그 특징이 와인에 잘 드러난다. 또한 그 특성을 와인 이름에 담아내 와인의 스타일을 짐작하게 한다. 토양의 성질은 부르고뉴 지역과 흡사하여 석회암으로 인한 칼슘이 많아 미네랄리티가 풍부하게 느껴지며, 비냐 코보스의 말벡 와인과 비교해 보면 훨씬 단단한 구조감과 타닌을 느낄 수 있다.



르 까르시페(Le calcifere) 2015

'석회암'이라는 뜻으로 석회암질의 테루아에서 생산된 포도로 만든 와인이다. 붉은 과일부터 블루베리, 검은 과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과일 향에 오레가노와 세이지 등의 허브 향이 함께 어우러진다. 입안에서는 검은 과일의 맛이 보다 지배적이고 프랑스 말벡답게 쫀쫀하고 강한 타닌이 느껴진다. 크로쿠스는 자체적으로 병 숙성을 거친 후 출시하기 때문에 2015년이 가장 최근 출시된 빈티지다.


라 로슈 메르(La Roche Mere) 2015

'Mother Rock', 모석(어머니돌)이라는 의미의 이 와인은 크로쿠스의 포도밭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밭의 포도로 만들었다. 1억 8000만 년 전 쥐라기 시대부터 만들어진 이곳의 토양은 라임스톤이 풍부하고 바다생물 등이 퇴적돼 미네랄리티가 강하게 느껴진다. 프렌치 오크에서 과실 향이 강했던 르 까르시페와 달리 가죽과 육향, 젖은 낙엽 등의 향이 느껴지지만 팔레트에서는 느껴지지 않아 앞으로도 충분히 더 숙성이 가능하다.


여전히 까오르의 말벡은 낯설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아르헨티나 멘도사와 비교해도 면적이나 와이너리 수, 생산량 등 어느 하나 앞서는 것이 없지만 '말벡의 고향'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명성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폴 홉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아르헨티나 말벡과는 전혀 다른 까오르의 테루아, 잘 만든 프랑스 말벡의 진수를 느껴보고 싶다면 크로쿠스를 경험해 보길 추천한다.



지속가능, 그리고 지역사회와의 공생

폴 홉스는 지속가능한 와인과 더불어 지역사회와의 공생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팬데믹 기간 동안 등교를 할 수 없던 지역의 아이들은 컴퓨터가 없어 화상 수업조차 받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 그는 자신의 와인을 경매로 판매해 발생한 수익금으로 아이들에게 휴대폰을 사주는가 하면 먹을 것이 부족한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제공하기도 했다. 마약이 성행하던 슬럼가에 스포츠 센터를 건립해 건전한 곳으로 탈바꿈시키는 등 여러모로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려고 노력한다. 직원들을 위한 복지로 장학금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그저 좋은 와인을 만드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직원들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고 지역사회에 공헌함으로써 모두가 상생하는 삶을 꿈꾸는 폴 홉스. 단순히 과학적이고 현대적인 방식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이러한 인간미가 더해져 진정한 '프리미엄 와인'이 탄생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프로필이미지정선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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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4.05.25 12:00수정 2024.05.2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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