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4일, 와인 수입사 비니더스코리아가 성수동의 세스크멘슬에서 오리건 내추럴 와인 시음회를 개최했다. 오리건 지역 최초의 마스터 오브 와인(Master Of Wine, 이하 MW)이자 퍼시픽 노스웨스트 지역(미국 북서부 오리건 및 워싱턴) 유일의 여성 MW인 브리 스톡(Bree Stock)이 직접 와인에 대해 소개해 더욱 뜻깊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한국의 와인 소비자들에게는 미국 오리건의 내추럴 와인이 다소 생소할지도 모르겠다. '내추럴 와인'의 모호한 정의와 더불어, 오리건 와인 생산량의 98% 이상이 미국 내에서 소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리건 와인의 매력을 아는 이들이라면 뛰어난 피노 누아를 생산하는 와인 산지일 뿐만 아니라 피노 그리와 리슬링, 시라 등 다른 품종들 역시 경쟁력 있는 품질을 선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것이다. 최근에는 점점 더 샤도네이 품종의 인기가 높아지는 등 오리건 와인의 다양한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시음회에서 만난 품격 있는 와인들이 오리건 와인의 미래를 더욱 기대하게 만들어주었다.

[와인 시음회 현장에서, MW 브리 스톡]
오리건은 캘리포니아와 워싱턴 사이, 북위 42~46도에 위치하고 있다. 태평양과 오리건의 강과 산맥은 여름에는 시원한 기류를 제공하고 봄과 가을에는 서리를 보호한다. 오리건은 비가 많이 오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가장 습한 지역에서도 강수량은 겨울에 집중돼 있고, 포도나무의 중요한 성장기에는 일반적으로 건조하다. 복합적인 와인의 아로마 풍미는 햇빛에서 기인하는데, 성장기 동안에는 하루 15시간 이상의 햇빛을 받는다. 오리건의 와인생산량은 미국 전체 와인 생산량의 1%만을 차지하지만 그마저도 대부분 내수 시장에서 소비된다. 오리건은 매우 엄격한 와인 레이블 규정을 적용하고 있어 오리건을 레이블에 표기하기 위해서는 100% 오리건에서 수확한 포도여야 하며, AVA를 표기하기 위해서는 해당 AVA에서 95% 이상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이어야 한다.
오리건 윌라메트 밸리 AVA의 매력
오리건의 하위 AVA인 윌라메트 밸리(Willamette Valley) AVA는 오리건 북부에서 남쪽으로 240km가량 길게 뻗어 있다. 브리 스톡은 “윌라메트 밸리 AVA는 오리건을 대표하는 와인 산지로, 첨가물을 넣지 않고 자연적으로 와인을 만들 수 있는 매력적인 산지”라고 설명했다. 윌라메트 밸리는 오리건 와인의 70% 이상 생산량을 차지하지만, 5천 케이스(6만 병)나 그 미만 정도만을 생산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포도나무 한 그루당 수확량을 줄여 응축된 과실 풍미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프리미엄 와인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이날 테이스팅한 리미티드 애디션, 베컴 에스테이트, 휴먼 셀라스 세 와이너리는 모두 윌라메트 밸리의 와인들로, 생동감 있고 신선한 산도가 유지된다는 점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브리 스톡이 생산한 리미티드 애디션]
부드러운 활력을 가진 와이너리, 리미티드 애디션 와인즈(Limited Addition Wines)
리미티드 애디션 와인들은 MW 브리스톡이 자신의 와이너리에서 남편과 함께 만든 와인으로, 2019년 윌라메트 밸리에서 처음으로 출시됐다. 55년 정도 수령의 올드바인으로만 만들며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내추럴 와인을 완성한다. 탁월하고 산뜻한 와인들의 퀄리티가 내추럴 와인의 새로운 비전을 보여준다.
리미티드 애디션 오렌지 크러쉬(Limited Addition Orange Crush) 2022_ 피노 그리 50%, 뮈스까 25%, 리슬링 25%가 블렌딩된 와인으로, 빈야드와 포도껍질에 존재하는 야생효모로 발효하기 때문에 스킨 컨택 발효가 중요하다. 피노 그리의 핑크색 껍질을 통해 오렌지 크러쉬 와인의 오묘한 색깔이 만들어진다. 입안에서 주시하고 살아있는 와인을 느낄 수 있다.
리미티드 애디션 에올라 스프링스 빈야드 가메(Limited Addition Eola Springs Vineyard Gamay) 2022_ 가메 누아 100%로 만든다. 앞으로 윌라메트 밸리의 트렌드는 가메 누아가 되지 않을까 기대할 만큼 매력적인 풍미를 가진 와인이다. 피노 누아 못지않게 체리향과 산딸기 등의 붉은 과실 아로마가 섬세하며, 강한 스파이시함이 뒤따라 와인의 구조감을 더해준다.
리미티드 애디션 레드 블렌드(Limited Addition Red Blend) 2022_ 트루소, 가메 누아, 피노 누아를 블렌딩한 레드 와인이다. 브리 스톡은 프랑스 쥐라 지역에서 영감을 받아 이 와인을 완성했다고 소개했다. 그녀는 2016년 쥐라에서 일하며 트루소 품종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해냈다. 피노 누아에서 느껴지는 레드 베리 과실 풍미와 가메 누아의 스파이시함과 산도, 트루소의 강인함이 어우러지는 와인이다.

[베컴 에스테이트, 휴먼 셀라스의 와인]
오리건 와인의 품격을 드러내다, 베컴 에스테이트(Beckham Estate)
베컴 에스테이트를 만든 앤드류(Andrew)와 아네드리아 베컴(Annedria Beckham)은 도예 작업 공방을 짓기 위해 2005년 윌라메트 밸리의 체할렘 마운틴(Chehalem Mountains)에 도착했다. 이때 그들은 이웃들의 열정에 영감을 받고, 고지대 표면 아래 잠재된 토양에 매료되어 와이너리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와인은 포도 껍질과 와이너리에서 자연적으로 서식하는 토종 효모만을 사용해 생산하며, 와인에 정제된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발효 및 숙성을 하기 위해 테라코타 암포라 및 대형 프렌치 배럴을 사용한다.
베컴 에스테이트 피노 누아(Beckham Estate Pinot Noir) 2017_ 오리건 피노 누아의 명성과 정석을 체감하게 해주는 와인이다. 크랜베리, 허브 계열의 향으로 시작되며 야생 체리, 붉은 건포도, 스파이시 계피의 탑 노트가 인상적이다. 고급스럽고 우아한 타닌과 일반적인 피노 누아에서는 보기 힘든 에너지, 활력,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베컴 암포라 피노 그리(Beckham Amphora Pinot Gris) 2018_ 피노 그리 100%로 생산한 와인. 뚜렷하고 아름다운 오렌지 빛깔을 자랑하며 허브 계열의 활기찬 생생함이 느껴진다. 상큼한 딸기, 살구 잼과 달콤 쌉싸름한 차, 생동감 있는 약간의 타닌이 우아한 피니시를 통해 지속된다.
자연과 사람의 균형을 추구하는 와이너리, 휴먼 셀라스(Human Cellars)
휴먼 셀라스 와이너리의 철학은 위대한 와인 한 병이 위대한 농부로부터 시작된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열정을 가진 농부들은 자연과 사람의 균형을 추구하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포도밭에서 애쓰며 보낸다. 지속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기에 화학물질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며, 바이오다이내믹과 오가닉 농법으로 만든 포도를 생산한다.
드 부이 가메(du Bouys Gamay) 2021_ 99%의 가메와 1%의 샤도네이를 블렌딩했다. 자칫 가벼운 풍미의 와인으로만 알고 있었을지도 모를 가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피노 누아보다 조금 늦게 익는 가메는 검은 과실류의 풍미가 탄탄하면서도 산도는 끝까지 잘 유지되며, 좋은 구조감을 갖고 있다.
그랑제로 샤도네이(Granjeros Chardonnay) 2021_ 샤도네이 100%로 만든다. 10년 전부터 오리건에서 샤도네이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8월 말이나 9월 초에 이른 수확을 한다. 30% 정도 뉴 프렌치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며, 젖산 발효와 리즈 컨택 숙성으로 크리미하면서도 아몬드, 견과류 등의 너티함을 느낄 수 있다. 기분 좋은 약간의 잔당감이 여운을 남긴다.
이 날 시음한 총 7종의 와인들은 오리건 와인의 품격과 개성뿐만 아니라 내추럴 와인의 매력도 여실히 보여주었다. 내추럴 와인은 특유의 향 때문에 한국의 소비자들에게 호불호가 나뉘는 것이 사실이다. MW 브리 스톡은 내추럴 와인이 제대로 유통되려면 양조 방식을 달리 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추럴 와인에 대해 완벽한 정의를 내리긴 어렵지만, 단순히 이산화황 사용을 자제하고 레이블이 '힙'한 와인인 것은 아니다. 오리건 윌라메트 밸리에서 자연 그대로의 가치를 한 병의 와인에 오롯이 담아내려는 그들의 노력이 이제 더욱 빛을 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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