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WSET 디플로마 자격을 취득했다. WSET는 총 4가지 레벨로 나뉘며, 레벨 1과 2는 와인을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이 주로 응시하고 레벨 3와 4는 와인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주로 도전한다. 디플로마는 레벨 4로 WSET의 최고 단계이며, 레벨 3를 통과한 사람에게만 응시 자격이 주어진다. 시험은 총 6개 유닛으로 구성되는데 'D1 Wine Production(와인 생산)', 'D2 Wine Business(와인 산업)', 'D3 Wines of the World(세계의 와인)', 'D4 Sparkling Wines(스파클링 와인)', 'D5 Fortified Wines(주정강화 와인)', 'D6 Independent Research Assignment(독립 연구 과제)'로 이루어져 있고, 이 모든 시험을 통과해야 디플로마를 취득할 수 있다. WSET 본원에서 정한 주제에 대해 자료를 찾아 에세이 형식으로 작성해야 하는 D6를 제외한 모든 시험은 서술형 필기 시험으로 이루어지며, D3, D4, D5에는 테이스팅 시험도 포함된다. 한국에는 디플로마 과정이 개설돼 있지 않아 일본이나 영국, 미국 등 디플로마 과정이 개설된 해외에서 시험을 봐야 한다.
나는 2023년 5월, 뉴욕에서 첫 시험인 D1을 시작으로 같은 해 10월에 D2, D4, D5를 동시에 응시했고, 올해 1월에는 D6, 마지막으로 5월에 D3 시험을 치렀다. 그리고 얼마 전 마지막 시험의 합격 소식을 들었다. 여러 WSET 교육 기관에 따르면 디플로마 취득은 평균적으로 3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을 1년 안에 끝내기 위해 준비 기간 동안 다른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와인 공부에 집중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그야말로 치열했던 1년이었다.
디플로마를 취득하면 이름 뒤에 'DipWSET'이라는 글자를 붙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자신의 실력을 증명할 수 있고 신뢰성이 더해지기 때문에 와인업계에서 전문가 수준의 경력을 쌓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고 있다. 레벨 3를 마친 뒤 디플로마를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과 지금 시험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디플로마를 준비하며 깨달은 점과 공부할 때 도움이 되는 팁을 나누고자 한다.
1. 지도를 직접 그리며 활용하기
WSET 공부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지도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말을 계속 듣게 될 것이다. 디플로마 공부에서는 지도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 학습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시험 범위가 가장 넓은 D3을 준비할 때 커다란 스케치북에 국가나 지역의 지도를 직접 그린 후, 지도를 보며 지역별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지도를 그리며 해당 지역의 기후, 토양, 포도품종, 법규, 와인 산업의 특징 등을 되새기며 정리해 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지도의 모양이 완벽할 필요는 없다. 국가 내에서 그 지역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그리고 그 지역 안에서 호수, 산맥 등 주요 지형이 어떻게 위치하는지 숙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직접 그려 보면서 생각을 정리했던 이탈리아 지도]
2. '왜?'라는 질문
인생을 살아오며 '왜' 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던진 시기는 디플로마를 준비하는 동안이었다. 그냥 외워야 할 것 같은 와인 산지의 기후 조건도 이유를 찾아야 했다. 지역에 위치한 큰 호수는 그 지역 기후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왜 그런 영향을 주는가? 가까이에 위치한 두 지역의 기온 차이가 크게 나는 이유는 뭘까? 끊임없이 질문했다. 디플로마는 객관식이 아니라 서술형으로 답변을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인과관계를 자세하고 확실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수다.
3. 다양한 자료와 경험 활용하기
디플로마는 자신만의 공부 스타일을 찾아서 다양하게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튜브로 와인 강의를 듣거나, 플래시 카드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내 경우엔 부르고뉴의 한 와이너리에서 와인 양조에 직접 참여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휴가를 보낼 때는 그 지역의 와이너리를 방문해 테이스팅을 하고 생산자와 대화하며 지식을 습득했고, 외부 와인 수업, 와인 박람회나 시음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만약 직접 경험할 기회가 없거나 여건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신뢰할 만한 유튜브 채널이나 각종 자료를 통해 간접 경험을 많이 쌓는 것을 추천한다.
4. 테이스팅 스터디 그룹에서 함께 공부하기
D3, D4, D5에서는 필기 시험 외에도 테이스팅 시험이 포함된다. 혼자서 테이스팅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에 와인 테이스팅 스터디 그룹을 만드는 것을 추천한다. 스터디 그룹을 만들 때 중요한 점은 되도록 같은 레벨의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이다. 시험을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과 테이스팅 그룹을 만들면 비슷한 실력의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이 쉽지 않고, 시험에서 요구하는 테이스팅 기준과 방법으로 연습하기 쉽지 않다. 만약 주변에 비슷한 실력을 가진 사람이 충분치 않거나 거주하는 지역에 디플로마를 준비하는 사람이 없다면, 같은 와인을 사서 온라인상에서 함께 테이스팅하고 후에 테이스팅 노트를 비교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실제로 코로나19 시기에는 이러한 방식을 많이 활용했다.
[와인 테이스팅 그룹 스터디는 디플로마 준비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5. 영어는 필수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에게 영어는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도전과제다. 나는 미국에서 WSET 레벨 3를 응시한 경험이 있어 와인 용어들을 영어로 읽고 쓰는 것에 비교적 익숙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영어 자체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디플로마 준비를 고려하고 있다면 우선 WSET 레벨 3 영문 교재를 구해서 많이 읽어보는 방법을 추천한다. 교재를 읽으며 반복적으로 나오는 표현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응시자도 적지 않기 때문에 채점자들은 원어민 수준의 영어 표현을 기대하지 않지만, 묻는 질문에 명확히 답할 수 있는 정도의 표현 능력은 필수다. 그리고 제한된 시간에 많은 내용을 손으로 직접 서술해야 하니, 평소에 영어를 손으로 쓰는 것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6. WSET 3 교재 활용하기
지금 당신의 WSET 레벨 3 교재의 행방을 알고 있는가? 레벨 3 공부가 끝났다고 버리면 안 된다. 디플로마를 공부하는 동안 WSET 3 교재를 항상 곁에 두면 갑자기 기억이 나지 않거나 궁금한 내용이 있을 때 바로 참고할 수 있다. 나는 디플로마 교재의 양이 방대해서 따로 인쇄하지 않고 전자 파일로 공부했지만, WSET 3 교재는 비교적 간결해서 급할 때 찾아보기에 좋았다. 영어 교재로 준비해 필요할 때마다 참고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7.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하기
시험지를 받았을 때 광범위한 질문을 마주하거나 긴 답변을 쓰다가 중간에 막혀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올 수 있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정확한 내용을 기억해 내지 못하더라도, 부분 점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을 가다듬고 끝까지 완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이 시험은 분량이 방대해 벼락치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꾸준한 공부 습관이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이고 싶다. 공부를 하다 보면 야근이 생겨서, 업무량이 많아서, 약속이 생겨서, 피곤해서, 여행을 가야 해서 등의 다양한 이유로 공부할 시간이 나지 않는 날들이 많이 생긴다. 하지만 그런 날에도 자기 전 단 30분이라도 공부를 했던 꾸준함이 내가 시험에 빨리 합격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비결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올해의 가장 큰 목표였던 디플로마를 취득하고, 이제는 내년 4월 런던에서 있을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있다. 이름 뒤에 'DipWSET'라는 글자를 붙일 수 있어서 뿌듯하기도 하지만, 내가 정말 디플로마 자격을 갖추었는지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하게 되고 그 무게를 몸소 느끼는 요즘이다. 시험은 끝났지만 여전히 시음회나 세미나에 다니며 지식을 유지하고 더 발전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와인 시험의 꽃이기도 하며 아직 한국인 합격자가 한 명도 없는 마스터 오브 와인(Master of Wine, MW)에도 도전해야 할지 역시 고민 중이다. 시험만 끝나면 끝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현재 열심히 디플로마를 준비하고 있는 분들께 많은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이 글이 지금 시험을 준비하며 공부하는 분들과 레벨 3를 마치고 디플로마 준비를 고민하는 분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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