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패트릭 패럴 MW에게 듣는 블라인드 테이스팅 비법

국내에 많은 유튜브 팬을 보유한 패트릭 패럴(Patrick Farrell) MW가 한국을 방문해 신동 와인이 수입하는 와인 9종으로 블라인드 시음 행사를 진행했다. 그에게 배운 블라인드 테이스팅 방법과 성공 요령을 정리한다.


[마스터 오브 와인 패트릭 패럴(Patrick Farrell MW)]


패트릭 패럴 MW

1998년 마스터 오브 와인(Masters of Wine, 이하 MW)을 취득한 패트릭 패럴 MW는 뛰어난 시음 실력과 깊은 와인 지식을 인정받고 있다. 그는 와인 교육, 저술 활동, MW 시험 감독, 와인 심사 위원으로서 세계 각국의 와인 품평 대회에서 활동 중이다. 특히 지니 조 리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MW가 되는 과정에 도움을 줬다. 미국 출신 의사인 만큼 그는 과학적 접근 방식으로 와인을 분석하는 독특한 시각을 갖추고 있다.


패트릭 패럴이 한국의 와인 애호가와 업계 종사자에게 전하는 블라인드 테이스팅 방법을 공유한다.



블라인드 테이스팅 접근법

세계 최고 수준의 MW에게도 블라인드 시음은 때때로 어렵고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하지만 몇 가지 노력을 기울이면 조금 더 편안하고 성공적인 블라인드 시음을 할 수 있다.


첫째, 시음 시간은 (될 수 있으면) 이른 오전이 좋다.

시음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오전이다. 마스터 오브 와인 시험 시음도 아침 8시 30분에 시작한다. MW가 된 이후 종종 새벽 6시 45분에 시음하기도 하는데 이 시간은 시음 감각이 다르고 꽤 해볼 만하다.


둘째, 자신에게 최적화된 시음 방법을 개발하라.

블라인드 시음에는 제한 시간이 있으므로 외관, 향, 풍미, 향과 풍미가 다르게 느껴지는 시점, 당도와 당도의 원인, 산도, 타닌, 타닌의 성격, 균형, 품질 등 필수 시음 사항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도록 규칙적인 순서를 잡는 게 좋다. 블라인드 시음에서는 어떤 하나의 요소를 다른 요소보다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여기엔 와인 평가 요소를 판단하는 규칙적인 순서도 포함된다. 특히 수준 높은 와인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기술, 방법, 순서를 제대로 정하는 게 필수다. 그래야 제한 시간 안에 와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답안지를 쓸 시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꼭 맞는 시음 방법을 개발하고 천천히 하나씩 해보면 익숙해질 수 있다. 몸에 익히는 게 정말 중요하다.


셋째, 레드 와인 시음 시 미각을 유지하라.

시음 방법과 순서가 몸에 익으면 과정 자체는 조금 쉬워지지만, 복합적인 레드 와인을 지속해서 시음하면 미각이 쉽게 피로해진다. 레드 와인 시음을 할 때 미각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이론을 탄탄히 하고 서두르지 말라.

와인에서 느껴지는 특징별로 그 이유에 대해 모두 떠올려보고, 여러 다른 특징과 함께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가장 가능성이 낮은 원인과 관련 사항을 지워나가는 게 좋다. 그러기 위해서는 품종별 주요 특징, 산지별 품종 차이, 양조 기법이 줄 수 있는 변화 등 이론이 필요하다.


다섯째, 틀렸을 때 더 많이 배워라.

맞으면 기분이 좋겠지만 틀리면 더 많이 배울 수 있다. 내가 생각한 답이 정답과 어느 부분에서 어긋났는지 기억하면 블라인드 테이스팅 능력이 크게 향상된다.


여섯째, 비슷한 와인들을 모아 비교 시음하라.

스위트 와인을 예로 들어보자. 레이트 하베스트, 아이스바인, 귀부균의 영향을 받은 와인, 란시오 스타일 와인은 모두 산도와 당도가 높아 시음하기 힘들다. 한 자리에 모아놓고 하나씩 시음하면 아이스바인은 순수한 품종 특성이 잘 살아있고, 귀부균의 영향을 받은 경우 꿀과 버섯 향이 공통으로 느껴지는 등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일곱째, 즐겁게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라.



블라인드 테이스팅 실전

블라인드 시음은 참가자들이 하나씩 와인을 시음해 나름대로 답을 낸 뒤 정답을 알아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패트릭 패럴 MW가 정답을 찾아간 과정을 공유한다.


스파클링 와인 1번

'연한 분홍색'을 띠는 기포가 작은 스파클링 와인이다. 분홍색을 띠는 로제 스파클링 와인은 전통 방식으로 생산해 오래 숙성하면 연어색이나 보라색으로 변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와인은 효모 숙성 기간이 다소 짧은 와인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통 방식을 쓰면서 효모 숙성 기간이 다소 짧아도 되는 국가는 어디인가? 구대륙보다는 신대륙 가능성이 크다.

미구엘 토레스 산타 디그나 에스텔라도 브뤼 로제(Miguel Torres, Santa Digna Estelado Brut Rose) NV, 칠레 최초로 파이스 품종으로 만든 스파클링 로제 와인이다. 파이스는 멸종 위기에 처했다가 기후 변화에 적합하다는 장점이 발견되며 부흥기를 맞고 있다. 산뜻하고 활기찬 와인으로 역사적인 품종으로 빚은 현대적인 맛과 매력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스파클링 와인 2번

진한 금색의 스파클링 와인으로 음영 때문에 우선 블랑 드 블랑으로 짐작할 수 있다. 오크 풍미를 느낄 수 있는데 기본 와인(뱅 클레어)에 오크를 썼다는 건 와인 생산에 정성을 다한다는 의미이며, 오크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샴페인 생산자로 범위를 줄여볼 수 있다. 와인에서 강한 토스트 향이 나는데, 토스트 향의 원인은 3가지다. 빈티지 샴페인이거나, 최근 데고르주망을 했거나, 리저브 와인의 비율이 높을 가능성이다. 풀바디에 크림 같은 질감을 지녔기에 비로소 빈티지 샴페인으로 특정할 수 있다.

샴페인 볼랭저 라 그랑 아네(Champagne Bollinger La Grande Année) 2015는 작은 부분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는 볼랭저 정신이 빚은 프레스티지 퀴베다. 이전 빈티지와 비교하면 조금 더 풍성하고 바디가 묵직하며 브리오슈와 구운 빵의 향과 풍미도 한층 더 진하다.



화이트 와인 1번

색이 연하다. 차, 건초, 미네랄, 시트러스, 오크 향이 나는데 시트러스 껍질이 아주 중요한 특징이다. 오크 향도 있는 이런 와인은 미국 샤르도네로 추측하기 쉽지만 주의해야 한다. 바삭한 산미에 크림 같은 질감을 지녀서 미국 샤르도네로 생각할 수 있지만 진짜 미국 샤르도네에서 느껴지는 버터 느낌은 없다. 그러니 미국이 아닌 국가를 떠올려야 한다. 젖산 전환도 느껴지는데 이론에 근거해 신중하게 정답을 찾아야 한다. 젖산 전환은 기후와 포도 숙성도에 따라 효과가 다르다. 서늘한 기후에서 자란 포도는 젖산 전환을 해도 진한 버터 풍미가 없지만, 잘 익은 포도로 젖산 발효하면 산도가 내려가면서 풍부하고 진득한 버터 향을 낸다. 이를 반영하면 이 와인은 확실히 서늘한 지역에서 왔음을 알 수 있다.

가야 이다 시칠리아 비앙코(Gaja Idda Sicilia Bianco) 2021은 가야가 시칠리아 에트나 화산 토양의 포도밭에서 만든 세련된 화이트 와인이다. 시칠리아만이 줄 수 있는 독특한 미네랄, 생기 있는 산미, 시트러스, 시트러스 껍질, 흰 복숭아와 꽃 향이 돋보인다.


화이트 와인 2번

다양한 꽃 향을 지녀 여러 품종이 섞였음을 짐작할 수 있고 아주 잘 만든 블렌딩 와인으로 추측 가능하다. 꽃 향이 특징인 품종과 관련 산지는 어딜까? 우선 비오니에로 만든 콩드리유를 생각할 수 있지만, 다양한 꽃 향이라서 콩드리유처럼 단일 품종 산지는 아니다. 또한 요즘 콩드리유는 너무 더워서 이런 산미를 기대할 수 없다. 다양한 꽃 향으로 그르나슈 블랑과 이를 포함한 블렌딩 와인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산지로 론 밸리나 남프랑스를 추측할 수 있는데, 산도가 그 지역과 다르다. 이 와인에서 느껴지는 산미는 오직 서늘한 지역에서만 얻을 수 있는 수준이라서 론이나 남프랑스가 제외된다. 이 두 지역 외 그르나슈 블랑을 주로 사용한 블렌딩 와인은  미국 파소 로블스에서 만날 수 있다.

타블라스 크릭 파틀렌 드 타블라스 블랑(Tablas Creek Patelin De Tablas Blanc) 2021은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된 론 스타일의 화이트 와인으로 배, 멜론, 다채로운 흰꽃 향을 지녔다. 신선한 산미가 반전이며 부드러운 질감과 조화를 이룬다. 언제 마셔도 좋은 다재다능한 와인이다. 타블라스 크릭은 캘리포니아에서 론 밸리 스타일 블렌드와 단일 품종 와인 생산 선두 주자다.


화이트 와인 3번

시음하자마자 오크 풍미와 질감으로 배럴 발효한 샤르도네임을 알 수 있다. 배럴 발효한 샤르도네라면 부르고뉴를 떠올리겠지만 요즘은 20년 전처럼 부르고뉴인지 아닌지, 부르고뉴에서 더운 빈티지인지 서늘한 빈티지인지 쉽게 답할 수 없다. 이 와인은 처음엔 달콤한 느낌이 마치 잔당처럼 느껴지고 관대한 오크 사용으로 버터 향이 나지만 캘리포니아만큼 강하지 않고 산도가 여전히 좋다. 이런 샤르도네는 장기 숙성이 가능한 데 주로 호주나 뉴질랜드 샤르도네 스타일이다. 산도 면에서 호주보다는 뉴질랜드로 추측 가능하다.

빌라 마리아 맥더미드 힐 샤르도네(Villa Maria McDiarmid Hill Chardonnay) 2020은 뉴질랜드의 대표 와인인 빌라 마리아의 단일 포도밭 와인으로 꽤 강한 오크 풍미와 이에 합을 맞춘 과실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운다. 뉴질랜드 북섬 혹스 베이의 서늘한 기후가 잘 반영되어 산미가 아주 좋다.


레드 와인 1번

부분적으로 투명하고 벽돌색 느낌이 있다. 색으로는 리오하 가르나차로 볼 수 있지만, 쓴 체리 맛이 나서 산지오베제로 추측할 수 있다. 이제 지역을 좁혀 보면 키안티는 오크 숙성을 잘 하지 않고, 키안티 클라시코는 더 잘 익은 체리 향에 오크를 쓰며,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로 보기엔 다소 둥근 느낌이 있다. 따라서 이 와인은 산지오베제가 아닌 매우 유사한 산지오베토(Sangioveto)로 추정할 수 있다.

카스텔라레, 이 소디 산 니콜로(Castellare I Sodi S'Niccolo) 2018은 산지오베토 품종으로 만든 와인으로 체리, 자두, 담배 향과 탄탄한 구조를 자랑한다. 장기 숙성에 적합한 클래식한 토스카나 와인이다.


레드 와인 2번

베이지색 림이 있는 가넷 레드 색. 체리, 연필, 카시스, 블랙 올리브, 프랑스산 오크 향을 느낄 수 있다. 풍성하며 풀바디에 아주 오래 숙성할 수 있는 카베르네 소비뇽이다. 나파 밸리보다 훨씬 강한 블랙 올리브 풍미가 이 와인의 정체를 잘 드러낸다. 칠레에서 느껴지는 민트와 줄기 향이 없다. 캘리포니아 나파, 아르헨티나 등을 떠올려볼 수 있다.

토레스 마스 라 플라나(Torres Mas La Plana) 2018은 스페인 카베르네 소비뇽의 대표 와인으로 블랙커런트, 삼나무, 향신료 향이 깊게 전해진다. 섬세한 타닌, 긴 여운이 장점이며 지금 마시기에도 충분히 좋지만 긴 숙성도 견딜 수 있는 복합적인 와인이다.


레드 와인 3번

레드 와인 2번을 시음할 때, 패트릭 패럴 MW가 잔 순서를 헷갈려 나파 밸리 와인인 레드 와인 3번을 시음해 정답이 미리 공개되었다. 그는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접근하는 대신 이 빈티지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줬다. 2020년 캘리포니아 중북부에는 산불 피해가 대단했다. 특히 나파 동쪽이 큰 피해를 입었는데 더 마스코트 포도밭은 다행히 나파 서쪽에 있어 피해가 적었다. 산불이 나면 포도 껍질에 왁스처럼 화재로 인한 물질이 씌워져 레드 와인처럼 껍질 침용하는 경우 스모크 테인트가 발생한다. 더 마스코트는 장기 숙성 가능한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지금 마시고 싶다면 오전에 열어서 맛보고 열어두었다가 저녁에 마시면 좋다.

더 마스코트(The Mascot) 2020은 도멘 H.W.H(Domain H. William Harlan) 소유의 어린 포도나무로 만든 와인이다. 검은 과실, 흙내음, 잘 어우러진 타닌의 질감이 훌륭한 나파 밸리 프리미엄 카베르네 소비뇽이다. 대담하면서 세련됐고 오래 숙성할 수 있는 걸작이다.


스위트 와인

시트러스 껍질 풍미가 힌트가 되며 소테른에서는 내기 힘든 품질 수준이다. 여기에 꿀과 버섯 향은 이 와인에 사용된 포도가 귀부균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보통 블라인드 시음엔 5가 아닌 6푸토뇨스가 출제된다. 

로얄 토카이 골드 라벨 아수 6 푸토뇨스(Royal Tokaji Gold Label Aszú 6 Puttonyos) 2017은 전설적인 헝가리 디저트 와인으로 살구, 꿀, 오렌지 껍질에서 느껴지는 풍부한 단맛과 함께 산뜻한 산미가 놀라운 균형을 이루고 있다. 6푸토뇨스답게 뛰어난 농축미와 복합성을 자랑한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은 3시간 동안 매우 강도 높고 집중적으로 진행됐다. 와인의 정답이 공개될 때마다 참석자들 사이엔 여러 번 웅성거림이 있었다. 그런데도 하나같이 지치지 않고 즐거울 수 있었던 건 오롯이 감각에 의존하고, 그동안 쌓은 이론을 대입하며 보물찾기를 하듯 블라인드 테이스팅 방법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었지만 이번 기회로 나름대로 익힌 규칙적인 순서와 방법이 크게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고, 느려도 하나씩 제대로 해본다면 실력이 늘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하지 않는가! 더욱 재미있는 와인 생활을 위해 블라인드 테이스팅도 종종 해보길 추천한다.


프로필이미지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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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4.10.09 08:00수정 2024.10.09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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