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로 드 로스 씨에떼(Clos de los Siete).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양조자 미셸 롤랑(Michele Rolland)이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와인 산지 멘도사(Mendoza)에서 만드는 와인이다. 빼어난 품질을 지닌 데다 가격까지 리즈너블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을 방문한 끌로 드 로스 씨에떼의 매니징 디렉터 라미로 바리오스(Ramiro Barrios)를 이태원동에 위치한 레스토랑 비스테까에서 만나 끌로 드 로스 씨에떼의 2006년 빈티지부터 2021년 빈티지 사이의 여섯 빈티지를 함께 시음했다. 끌로 드 로스 시에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가늠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끌로 드 로스 씨에떼의 매니징 디렉터 라미로 바리오스]
보르도의 와인 가문에서 태어난 미셸 롤랑은 자연스럽게 와인과 친해졌고 가업을 이어받았다. 대학 시절 양조학에 빼어난 재능을 보였던 그는 역시 양조학을 공부한 아내와 함께 양조 연구소를 인수했다. 이후 보르도 최고의 양조 컨설턴트이자 전 세계 와인에 영향을 미치는 플라잉 와인메이커(flying winemaker)로서 명성을 쌓게 된다.

[끌로 드 로스 씨에떼의 설립자 미셸 롤랑 (출처:www.rollandcollection.com)]
라미로 바리오스 매니징 디렉터는 미셸 롤랑을 '아르헨티나에서는 록스타(rockstar)와 같은 존재'로 정의했다. 록스타는 록 음악을 하는 유명 뮤지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서양에서는 특히 어떤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 모두가 경외하는 존재를 록스타라고 표현한다. 현재 미셸 롤랑은 아르헨티나 사람 대부분이 알 정도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만큼 미셸 롤랑이 아르헨티나 와인 업계에 끼친 영향이 막강했다고 할 수 있다.
미셸 롤랑은 아르헨티나의 대표 품종 말벡(Malbec)의 명성을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한 사람 중 하나다. 그가 처음 아르헨티나에 방문한 1988년 당시만 해도 아르헨티나는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등 국제적으로 많이 팔리는 품종들을 주로 재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셸 롤랑은 그런 품종들은 경쟁이 너무 치열해 승산이 적다고 여겼다. 대신 높은 고도에 척박한 토양, 충분한 일조량과 건조한 기후를 지닌 멘도사의 테루아에 적합한 품종을 발굴했는데 그게 바로 말벡이었다.

[끌로 드 로스 씨에떼 포도밭 (제공:하이트진로)]
다양한 아르헨티나 와이너리에 도움을 주던 그는 자연스럽게 아르헨티나에서 직접 와인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와인을 생산할 곳을 찾던 그의 눈에 들어온 지역은 아르헨티나 멘도사 남쪽의 우코 밸리(Uco Valley). 당시까지만 해도 황무지에 가까운 땅이었지만, 그는 한눈에 잠재력을 알아보았다. 토지를 구매해 포도밭을 조성하려 했으나 생각지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850헥타르에 이르는 거대한 토지를 통째로 구매해야 했던 것이다. 미셸 롤랑 자신만의 자본력으로는 무리였다. 하지만 우코 밸리의 성공 가능성을 확신한 그는 고향인 보르도에서 함께 할 동료들을 모았고, 결국 일곱 가문이 함께 토지를 구입하고 포도원을 조성해 끌로 드 로스 씨에떼를 탄생시켰다. 끌로는 프랑스어로 (돌담으로 둘러싸인) 고품질 포도밭을 의미한다. 씨에떼는 스페인어로 7이다. 일곱 가문의 연합으로 완성된 와인과 와이너리의 이름으로 이만한 것이 있을까.
여전히 일곱 가문이 연계돼 있지만, 와인 생산은 현재 네 가문이 설립한 몬테비에호(Monteviejo), 쿠벨리에 로스 안데스(Cuvelier los Andes), 디암안데스(DiamAndes), 보데가 롤랑(Bodega Rolland) 등 네 와이너리에서 만든다. 설립에 참여한 일곱 가문 중 하나는 처음부터 생산에는 참여하지 않았고, 두 가문은 2011 빈티지까지만 참여했다. 네 와이너리에서 만들지만 와인은 미셸 롤랑의 관리 아래 균일한 맛과 품질을 유지한다. 미셸 롤랑은 각 포도밭과 와이너리를 주기적으로 방문해 품질을 체크한다. 블렌딩 또한 그가 각 와이너리를 방문해 직접 지휘한다. 와이너리별로 1차 블렌딩을 완성한 후 네 개 와이너리의 블렌딩을 다시 섞어 최종 블렌딩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최종 블렌딩 비율이 결정되면 네 개 와이너리가 각자 동일한 비율로 나누어 갖고 각자의 와이너리에서 완성한다. 위대한 마에스트로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처럼 네 개의 와이너리가 미셸 롤랑의 관리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여섯 빈티지의 끌로 드 로스 씨에떼]
먼저 가장 어린 2021 빈티지부터 맛을 보았다. 아직 한국 출시 전 신규 빈티지다. 향긋한 바이올렛 아로마와 함께 블루베리, 블랙베리, 라즈베리, 블랙 체리, 프룬 등 검붉은 과일 풍미가 밀도 높게 드러난다. 아직 어린데도 탄닌은 부드러우며 신선한 신맛이 좋은 균형을 이룬다. 베스트 빈티지로 꼽히는 2021년의 매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와인. 블렌딩 비율은 말벡 59%, 메를로(Merlot) 15%, 시라(Syrah) 13%,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6%, 카베르네 소비뇽 4%, 쁘띠 베르도(Petit Verdot) 3%. 손 수확한 포도를 엄격히 선별해 양조한 후 프렌치 오크 배럴(30% new) 70%와 커다란 숙성 탱크(vat) 30%에서 11개월 숙성했다. 청징과 여과는 하지 않았다. 이날 시음한 모든 와인은 기본적인 양조 방식이 동일하다. 차이는 온전히 그 해의 빈티지 특성과 그에 기반한 블렌딩 비율에서 온 것이다.
2019년은 현재 한국에서 팔리고 있는 빈티지다. 비교적 따뜻하고 건조한 해였기에 완숙한 과일 풍미가 일품이다. 그런데 라미로 바리오스 매니징 디렉터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건조한 멘도사에서는 온도가 33°C 이상 치솟으면 포도나무가 과일의 성숙을 멈춘다는 것이다. 대신 뿌리가 왕성히 성장해 물을 찾아 지하로 내려간다고 한다. 2019년이 바로 그런 해였다. 덕분인지 2019 빈티지는 의외로 신맛이 잘 살아있으며, 밀도 높은 과일 풍미에 스파이스와 허브 힌트, 영롱한 미네랄이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와인이다. 5년 동안 적당히 숙성돼 바로 마시기에도 아주 좋다. 물론 추가 숙성 잠재력도 충분하다. 블렌딩 비율은 말벡 50%, 메를로 24%, 시라 11%, 카베르네 소비뇽 7%, 카베르네 프랑 5%, 쁘띠 베르도 3%.
2017년 빈티지는 온화한 겨울 이후 개화기인 봄에 서리가 내려 수확량이 감소했다고 한다. 특히 봄 서리에 취약한 말벡이 타격을 입었는데, 수확량이 줄어든 대신 풍미가 좋고 집중력이 뛰어난 포도를 얻을 수 있었다. 코를 대면 향긋한 꽃 향기와 잘 익은 베리 풍미에 특징적인 스파이스 뉘앙스가 감돈다. 신선한 신맛이 피니시까지 이어지는 생기 넘치는 와인이다. 블렌딩 비율은 말벡 52%, 메를로 21%, 시라 15%, 카베르네 소비뇽 7%, 쁘띠 베르도 3%, 카베르네 프랑 2%.
2016년 빈티지는 근래 가장 서늘한 해였다. 게다가 지나치게 건조했고 수확시기까지 서늘한 날씨가 이어졌다. 공식적으로도 끌로 드 로스 씨에떼 설립 이후로 가장 어려운 빈티지로 꼽을 정도. 하지만 수확한 포도는 비교적 건강했고 꼼꼼히 선별한 포도만 사용해 퀄리티를 높였다. 무엇보다 끌로 드 로스 씨에떼에는 블렌딩의 미학을 보여주는 보르도 출신 최고의 와인메이커 미셸 롤랑이 있지 않은가. 2016 빈티지는 집중도는 살짝 낮지만 향긋한 꽃향기와 온화한 풍미, 부드러운 질감이 매력적인 친근한 와인이 되었다. 전형적으로 한 모금이 다음 모금을 부르는 스타일이다. 블렌딩 비율은 말벡 54%, 메를로 18%, 시라 12%, 카베르네 소비뇽 12%, 쁘띠 베르도 3%, 카베르네 프랑 1%.
2015년 빈티지는 2016년에 비해 탄탄한 구조와 풍성한 바디감이 돋보였다. 온화한 해였고, 여름에 다소 비가 많이 왔지만 배수가 좋은 끌로 드 로스 씨에떼의 포도밭에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아직도 향긋한 바이올렛 향기가 살아 있으며, 잘 익은 과일 풍미와 함께 숙성에서 유래한 가죽이나 담배 같은 뉘앙스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숙성 후의 복합미를 예상해 볼 수 있는 와인. 블렌딩 비율은 말벡 58%, 메를로 23%, 카베르네 소비뇽 10%, 시라 8%, 쁘띠 베르도 1%. 카베르네 프랑은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10년을 뛰어넘어 2006년 빈티지. 끌로 드 로스 씨에떼의 첫 빈티지가 2002년이니 비교적 출시 초기 빈티지다. 2006년은 늦겨울에 내린 눈으로 개화는 조금 늦었지만, 더운 여름이 이어진 덕분에 양질의 포도를 얻을 수 있었다. 그 때문인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 와인임에도 싱그러운 과일 풍미가 명확히 드러난다. 거기에 더해지는 잔잔한 스파이스와 허브, 부엽토 힌트가 복합적인 부케를 만든다. 진정한 웰 메이드 와인. 블렌딩 비율은 말벡 45%, 메를로 35%, 카베르네 소비뇽 10%, 시라 10%. 특히 메를로의 비중이 높아 부드럽고 풍만한 느낌을 준다.

점심 식사와 함께 2006년 빈티지까지 시음을 마친 후 디저트로 나온 비스테까의 티라미수와 함께 2021년 빈티지를 다시 마셨는데 깜짝 놀랄 정도로 잘 어울렸다. 끌로 드 로스 씨에떼의 농밀한 검은 과일 풍미와 티라미수의 코코아와 커피 풍미, 크리미 한 질감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달까. 육류 요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식과 함께 마실 수 있는 끌로 드 로스 씨에떼의 매력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자리를 마무리하며 라미로 바리오스 매니징 디렉터는 “끌로 드 로스 씨에떼를 블라인드 테이스팅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3~4배 가격의 와인과 견줄 정도로 높은 평가를 준다”고 덧붙였다. 과연, 이렇게 빼어난 맛과 품격을 지닌 다재다능한 와인을 합리적인 가격에 즐길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하게 느껴졌다. 2021년 빈티지가 출시된다면 몇 병 셀러에 넣어 두고 천천히 즐겨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Copyrights © 와인21닷컴 & 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