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스토리

클래식 부르고뉴, 도멘 페블레

[도멘 페블레의 소유주이자 와인메이커 에르완 페블레]


최근 부르고뉴의 대표적인 생산자 도멘 페블레(Domaine Faiveley)의 오너 와인메이커 에르완 페블레(Erwan Faiveley)가 한국을 찾았다. 서울 반포동에 위치한 WSA아카데미에서 열린 페블레 브랜드 데이에서 그를 만나 도멘 페블레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에르완 페블레는 가문의 7대손으로 여동생 이브 페블레(Eve Faiveley)와 함께 도멘을 이끌고 있다. 1825년 설립한 페블레는 내년 200주년을 맞는다. 시작은 포도밭 하나 없이 포도나 포도주스를 구매해 와인을 만들고 판매하는 네고시앙(négociant)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60개의 아펠라시옹(Appellation)에 127 헥타르의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다. 그중 그랑 크뤼 포도밭은 12개 13 헥타르, 프르미에 크뤼 포도밭은 25개 26헥타르다. 부르고뉴의 그랑 크뤼와 프르미에 크뤼 포도밭을 세 번째로 많이 가지고 있다. 이렇게 좋은 포도밭이 많다 보니 자가 재배 포도로 생산하는 와인 비율이 80%에 이른다. 네고시앙 와인은 20%뿐이다. 그러니 페블레는 일부 네고시앙 역할을 병행하는 도멘이라고 보는 게 맞다. 참고로 레이블에 도멘 페블레라고 적혀 있으면 보유한 포도밭에서 재배한 포도만 100% 사용한 와인이다. 구매한 포도나 포도즙을 사용한 와인은 조셉 페블레(Joseph Faiveley)로 표기한다.  


[자신과 동생 이브의 사진을 보여주는 에르완 페블레]


도멘 페블레는 쥬브레 샹베르탱(Gevrey-Chambertin)에만 20 헥타르의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다. 쥬브레 샹베르탱 보유자 중 최대 규모다. 규모만 큰 게 아니라 훌륭한 테루아를 지닌 포도밭도 많이 가지고 있다. 근거지인 뉘 생 조르쥬(Nuits-Saint-Georges)에 보유한 포도밭 또한 다섯 번째로 넓은 규모다. 꼬뜨 도르 남쪽 메르퀴레(Mercurey) 지역에 보유한 포도밭 역시 50헥타르로 최대 규모다. 와인 양조장(vat house)은 뉘 생 조르쥬에 2개, 메르퀴레에 1개 있다. 뉘 생 조르쥬의 '르 38(Le 38)'은 19세기에 건립된 역사적인 양조장으로 주로 꼬트 도르의 프르미에 크뤼와 그랑 크뤼 와인들을 양조한다. 뉘 생 조르쥬의 또 다른 양조장 '조셉(Joseph)'은 꼬뜨 도르의 빌라주 등급 이하 와인들을 생산한다. 메르퀴레에 있는 양조장은 꼬뜨 샬로네즈(Côte Chalonaise) 와인들을 양조하고 숙성하는 데 사용한다.


에르완 페블레는 “피노 누아(Pinot Noir)는 레드 와인 중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품종”이라며 “특히 부르고뉴는 정말 피노 누아가 잘 자라는 선택받은 테루아”라고 강조했다. 도멘 페블레는 화이트 와인도 만들지만 강점과 정체성은 단연코 레드 와인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날 시음한 다섯 와인 모두 피노 누아로 만든 레드 와인이었다. 그는 도멘 페블레 와인의 스타일을 '클래식 부르고뉴'로 정의했다. 도멘 페블레에서 20년 동안 일하며 어떻게 하면 섬세하고 우아한 피노 누아에 부르고뉴의 테루아를 고스란히 반영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결국 고전적인 부르고뉴 스타일로 귀결되었다는 것이다.


도멘 페블레는 빈티지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냄과 동시에 매해 균일한 품질을 유지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를 위해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포도밭이다. 대부분의 포도밭은 유기농으로 경작하며, 포도 수확 및 선별은 모두 손으로 한다. 양조장은 최신식으로 단장했지만 양조할 때는 필요한 부분만 최소한으로 개입한다. 숙성은 전통적인 228리터 오크통에서 하는데, 도멘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매년 800개 정도의 새 배럴을 구매한다. 토스티 뉘앙스와 타닌은 더하되 포도의 과실 풍미는 고스란히 살릴 수 있도록 저온에서 장시간 토스팅한 배럴들을 주로 구입한다. “와인은 그의 가족이자 자신의 삶 그 자체”라는 그의 말에서 와인에 대한 진심이 느껴졌다. 



이날 시음한 와인 다섯 종은 모두 2021 빈티지다. 2021년은 3월의 심한 냉해로 수확량이 급감해 상당히 어려웠던 해였다. 하지만 에르완 페블레는 수확량이 줄어든 만큼 살아남은 포도는 훨씬 더 복합적이고 아름다운 풍미를 드러냈다고 한다. 특히 그는 포도의 생리적 완숙을 위해 수확을 9월 말에 진행했다. 최근 지구 온난화로 수확시기가 앞당겨지고 있어 8월 말에 수확하는 와이너리들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빈티지를 고려해 '클래식한 수확 시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날 시음한 와인들은 모두 신선하면서도 밀도 높은 풍미를 드러냈다. 시음을 하다 보니 15년 전쯤 마셨던 고급 부르고뉴 와인들이 떠올랐다. 시음 온도를 맞추고 풍미를 드러내기 위해 와인은 시음 1시간 전에 오픈하고 잔에 따라두었다고 한다.


에르완 페블레와 함께 시음한 다섯 와인들을 소개한다. 그중 둘은 페블레만 소유한 단독밭(Monopole)이다.



도멘 페블레, 볼네 프르미에 크뤼 프레미에  Domaine Faiveley, Volnay 1er Cru Frémiets 2021

보랏빛이 감도는 페일 루비 컬러. 향긋한 붉은 꽃향기와 딸기, 산딸기, 붉은 체리 아로마가 섬세하지만 밀도 높게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작은 붉은 베리 같은 상큼한 신맛과 가벼운 바디감이 어우러져 생동감이 느껴진다. 부드러운 질감과 정제된 밸런스를 갖추었으며 밝은 과실미가 매력적이다. 섬세하면서도 화사함이 돋보이는 볼네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와인. 도멘 페블레가 2007년 구입한 구획으로 근처에 도멘 마르퀴스 당제르빌(Domaine Marquis d'Angerville)의 구획이 있다고 한다. 에르완은 볼네의 토양이 화이트 와인과도 잘 맞을 것 같다며 “언젠가는 샤르도네(Chardonnay)를 심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 뫼르소(Meursault)와 유사한 캐릭터가 나올 것 같다”는 첨언과 함께.


도멘 페블레, 본 프르미에 크뤼 클로 데 레쿠 모노폴  Domaine Faiveley, Beaune 1er Cru Clos de l'Écu Monopole 2021 

붉은 베리, 자두 등 복합적인 과일 풍미와 함께 은근한 바닐라, 스모키한 미네랄과 토스티 오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입에 넣으면 견고한 구조감이 느껴지며 풍성한 과일 풍미가 힘 있게 드러난다. 소박하고 편안하지만 프르미에 크뤼다운 격조 또한 갖춘 리얼 클래식 부르고뉴 와인. 2003년 구입한 2헥타르 크기의 구획으로, 도멘 페블레만 보유하고 있는 단독밭이다. 매년 1만 병 정도만 소량 생산하는데 소박하면서도 품격을 갖춘 와인이 나온다.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의미에서 이날 가장 인상적이었던 와인이었다.


도멘 페블레, 뉘 생 조르쥬 “레 몽트로지에”  Domaine Faiveley, Nuits-Saint-Georges “Les Montroziers” 2021

붉은 자두, 검은 체리 풍미가 단단하게 뭉쳐 있는 듯 밀도 높게 드러나며 우아한 정향 허브와 톡 쏘는 스파이스, 스모키 힌트가 가볍게 더해진다. 입에서는 벨벳 같은 타닌의 부드러운 질감이 느껴지며, 신선한 산미가 사랑스럽게 드러난다. 견고한 뉘 생 조르주의 개성과 우아한 본 로마네(Vosne-Romanée) 스타일을 겸비한 와인. 레 몽트로지에는 포도밭 이름이 아니라 퀴베(cuvée)의 이름이다. 20세기 초반 페블레 가문에 기여한 인물을 기리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포도는 뉘 생 조르쥬 전체에 흩어진 17개의 구획에서 재배한 것을 사용하는데, 그중 본 로마네와 인접한 북쪽 2개 구획이 전체의 스타일을 좌우하는 것 같다.  


도멘 페블레, 쥬브레 샹베르탱 프르미에 크뤼 레 까제띠에  Domaine Faiveley, Gevrey-Chambertin 1er Cru Les Cazetiers 2021

영롱한 작은 붉은 베리 아로마에 토스티 오크, 버섯, 토양, 가죽 힌트가 가볍게 더해진다. 입에 넣으면 부드럽고 농밀한 질감을 타고 완숙한 붉은 과일 풍미가 드러나며, 시나몬 캔디, 초콜릿 뉘앙스가 그윽하게 어우러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블루베리, 라즈베리의 달콤한 풍미가 은은하게 느껴지며 짭조름한 미감이 피니시까지 이어진다. 촘촘한 타닌과 방순한 과일 풍미, 신선한 산미가 만드는 거대한 구조감이 장기 숙성 잠재력을 느끼게 하는 쥬브레 샹베르탱. 까제띠에는 성(château)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실제 샤토 드 쥬브레(Château de Gevrey)의 바로 위쪽에 있다. 라보 생 자크(Lavaux Saint-Jacques), 끌로 생 자크(Clos Saint-Jacques) 등과 함께 쥬브레 샹베르탱 최고의 프르미에 크뤼 중 하나로 언급되는 포도밭이다. 에르완 페블레는 '쥬브레 샹베르탱의 특징인 아름다운 바이올렛 아로마를 잘 살린 와인'이라고 설명했다.


도멘 페블레는 까제띠에 면적의 40%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지분이 높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2021년의 냉해로 까제띠에의 올드 바인들이 50% 이상 피해를 입었다. 생산량 또한 절반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새 포도나무를 심었지만, 예전의 생산량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다고. 



도멘 페블레, 꼬르똥 끌로 데 꼬르똥 페블레 그랑 크뤼 모노폴  Domaine Faiveley, Corton Clos des Corton Faiveley Grand Cru Monopole 2021 

잘 익은 라즈베리, 딸기, 자두 풍미와 신선한 허브 아로마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코에서는 살짝 수줍은 듯한 인상이었지만 입에 넣으면 벨벳 같은 타닌과 명확한 산미가 견고한 구조를 형성하며, 붉은 과일 풍미와 함께 드러나는 버섯, 토양, 견과, 다양한 스파이스 뉘앙스와 토스티 힌트가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여운을 선사한다. 시간이 필요해 보이지만 현재도 충분히 매력을 드러내는 와인으로, 그랑 크뤼다운 품격을 갖췄다. 꼬르똥은 꼬뜨 드 본(Côte de Beaune)에서 유일하게 그랑 크뤼 레드 와인을 생산한다. 그 꼬르똥에서 최고 품질의 와인을 만드는 구획 중 하나가 바로 이 '끌로 데 꼬르똥 페블레'다. 희한하게도 구획 이름에 페블레의 이름이 붙어 있는데, 이는 부르고뉴에서는 로마네 꽁띠(Romanne Conti)와 함께 유이하다. 이름도, 와인의 맛과 품질도, 가격조차 특별함으로 점철된 와인이다. 부르고뉴 와인 애호가라면 꼭 한 번 만나봐야 할 버킷 리스트 와인이 아닐까.

프로필이미지김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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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4.12.03 11:00수정 2024.12.03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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