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갓 출시된 빈티지조차 거의 2만 달러에 거래되는 스위트 와인이 있다. 프랑스의 소테른도, 헝가리의 토카이 에센시아도 아니다. 바로 독일 모젤 리슬링의 왕이라 불리는 에곤 뮐러(Egon Müller)의 샤르츠호프베르거 리슬링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Scharzhofberger Riesling Trockenbeerenauslese)다. 7대에 걸쳐 가족 경영을 이어온 에곤 뮐러는 모젤 지역의 상징적인 와이너리로, 세계적인 럭셔리 와이너리 협회인 프리뭄 파밀리에 비니(Primum Familiae Vini)의 유일한 독일 멤버이기도 하다. 이 협회에는 스페인의 베가 시실리아(Vega Sicilia), 보르도의 샤토 무통 로칠드(Château Mouton Rothschild)와 같은 세계적인 와이너리들이 속해 있다. 그 가운에에서도 에곤 뮐러는 최고로 손꼽히는 드라이 화이트와 레드를 제치고, 전 세계 와인 컬렉터들이 가장 열망하는 와인을 생산하는 현세대 최고의 아이콘 와이너리로 찬사를 받고 있다.
에곤 뮐러의 역사
에곤 뮐러의 공식 웹사이트를 방문하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문구가 있다. 'Since 1797, one family'. 1797년부터 하나의 가문이 이 와이너리를 이어왔다는 자부심이 묻어나는 문장이다. 그 역사는 1797년, 장 자크 코흐(Jean-Jacques Koch)가 샤르츠호프베르크(Scharzhofberg) 포도밭을 인수하면서 시작된다. 이곳은 로마 시대에 처음 포도나무가 식재된 곳으로, 중세에는 성 마리엔 수도원(St. Marien Monastery)에서 경작하던 유서 깊은 땅이다. 이후 코흐의 딸과 결혼한 뮐러가 소유권을 갖게 되면서 현재 6대손인 에곤 뮐러 4세에 이르기까지 뮐러 가문의 이름 아래 경영이 이어지고 있다.
1959년에 태어난 에곤 뮐러 4세는 태어나자마자 그의 운명이 결정된 듯 보인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그가 어머니의 모유를 처음 먹기 전 아버지가 그의 입술에 1949년산 샤르츠호프베르거 아우슬레제(Scharzhofberger Auslese)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각각 에곤 뮐러 2세와 에곤 뮐러 3세였듯, 에곤 뮐러라는 이름은 단순한 가문의 이름이 아니라 전통과 책임을 상징하는 운명을 의미했다.
그는 프랑스의 샤토 피숑 라랑드(Château Pichon Lalande)와 샤토 디켐(Château Yquem)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와인에 대한 실무 경험을 쌓았고, 이후 독일의 가이젠하임 전문대학(Fachhochschule Geisenheim)에서 양조학을 전공했다. 학업을 마친 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Robert Mondavi Winery)와 샤토 앤드 에스테이트 와인스(Château and Estate Wines)에서 각각 1년간 근무했다. 이후 일본 야마나시(Yamanashi) 와인 재배 지역에서 6개월간 머물며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의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가문의 와이너리로 돌아와 아버지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으며, 1991년 와이너리를 물려받아 경영을 이어갔다.
전통에 따라 2000년 태어난 그의 아들 역시 에곤 뮐러 5세라는 이름을 물려받았다. 에곤 뮐러 5세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와이너리를 아들에게 온전히 물려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에곤 뮐러 5세는 자신의 운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훌륭한 농부이자 와인메이커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고 있다. 한 가문의 이름으로 이어져 온 에곤 뮐러 와이너리는 단순한 와이너리를 넘어 시간과 전통,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살아 있는 역사라 할 수 있다.

[(왼쪽부터) 에곤 뮐러 4세와 에곤 뮐러 5세, 사진 출처: 에곤 뮐러 웹사이트]
샤르츠호프베르크, 모젤 테루아의 정수
모젤은 독일 최북단 와인 산지 중 하나로, 강 주변 남향의 가파른 경사면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리슬링을 생산하는 지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의 모젤 강에는 자르(Saar)와 루버(Ruwer)라는 두개의 위대한 지류가 있다. 특히 자르 강은 높은 고도, 차가운 바람을 잘 통과하는 좁은 계곡 지형과 가파른 경사면의 영향으로 더욱 서늘한 미세기후가 특징이다. 역사적으로 이곳의 계곡은 기온이 낮아 열 번 중 서너 번은 포도가 제대로 익지 못했다. 그러나 선택받은 훌륭한 부지에서 자란 리슬링은 더욱 엄격한 산도와 금속성이 느껴지는 현세기 최고의 리슬링으로 손꼽히고 있다.
에곤 뮐러 와이너리의 명성이 시작되는 '샤르츠호프베르크' 포도밭은 자르 강 유역에 위치한 빌팅겐(Wiltingen)과 오베레멜(Oberemmel) 마을 사이 해발 190~310미터에 자리잡고 있다. 모젤 최고의 포도밭으로 꼽히는 이곳은 가파른 경사면에 약 58에이커의 면적으로 이 중 에곤 뮐러는 약 21에이커를 소유하고 있다. 이 포도밭은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두운 회색 슬레이트 토양이다. 배수가 잘 되며, 뿌리를 쉽게 내리고, 오후 동안 햇빛을 흡수하고 밤에 열을 방출해 온기를 유지할 수 있는 모젤의 일등공신 토양이다. 에곤 뮐러는 와인의 품질은 100% 포도밭에서 시작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는 특히 샤르츠호프베르크의 슬레이트가 매우 풍화되어 포도나무가 뿌리를 더욱 잘 내릴 수 있으며, 석영 함량이 높아 와인에 추가적인 풍미 프로파일을 더해 준다고 말한다.

[샤르츠호프베르크(Scharzhofberg) 포도밭, 사진 출처: www.vdp.de]
에곤 뮐러의 포도재배와 양조 철학
에곤 뮐러의 포도밭은 접목되지 않은 오래된 포도나무로도 유명하다. 20세기 초반에 심어져 1년에 단 1~2%만 재식재를 거치는 이러한 고목은 극한 기후에서도 적응력을 발휘하며 적은 소출량이지만 높은 농축미의 열매를 생산한다. 에곤 뮐러의 포도밭은 고밀도 재배 방식으로도 알려져 있다. 1미터X1미터 간격으로 식재된 포도나무는 토양의 영양분을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해 더 적은 열매를 맺게 한다. 그래서 이곳의 수확량은 현저히 낮으며, 평균 헥타르당 수확량이 고작 20-30헥토리터에 이를 정도다. 한 그루의 나무가 얻을 수 있는 제한된 광합성 능력 안에서 각 나무가 매우 소량의 포도에만 집중해 성숙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자르 강 지역의 극한 기후와도 완벽히 맞아 떨어진다. 이러한 방식은 열악한 시즌에도 열매를 충분히 익힐 가능성을 높여주고, 개별 포도나무에 대한 부담을 줄여준다.
경사가 가파르다는 것도 이곳의 특징이다. 최대 60도에 이르는 남향의 가파른 경사는 햇빛을 고르게, 그리고 최대치로 흡수할 수 있게 도와준다. 물론 모젤의 경사진 밭 대부분이 그렇듯 모든 작업은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또한 에곤 뮐러는 자연주의 생산자이자 와인메이커로 알려져 있다. 토양의 유기물을 자연적으로 형성시키는 데 온 정성을 쏟으며 화학 비료, 제초제, 살충제는 사용하지 않는다. 오직 짚이나 자연 비료만 이용해 질소와 다른 영양분을 토양에 결합시키고 연간 최대 6회에 이르는 집중적인 쟁기질로 토양이 신선하게 통기되도록 유지한다. 양조에도 자연 효모를 사용해 발효하고 이산화황 외에 그 어떠한 첨가물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에곤 뮐러는 '바이오' 와인에 대한 홍보를 하지 않는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와이너리로서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한 행보다.
에곤 뮐러는 샤르츠호프베르크 외에도 자르 강 북쪽에 위치한 철분 함량이 높은 갈색 슬레이트 토양의 브라우네 쿠프(Braune Kupp)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다. 이곳에서도 매우 뛰어난 리슬링이 생산되고 있으며, 각기 다른 테루아의 개성을 담아내고 있다.
세계 최고가의 럭셔리 와인이 되기까지
에곤 뮐러는 “성공적으로 발전하려면 가격 인상에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생산량이 적었던 2001년 빈티지의 경우 가격을 25% 인상하며 그의 신념을 실행에 옮겼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이러한 가격 조정이 이뤄졌으며, 그의 와인은 약 20년 전부터 높은 수익성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2015년에 2003년산 샤르츠호프베르거 트로켄베렌아우슬레제 한 병이 12,000유로에 낙찰된 이후, 에곤 뮐러의 와인은 꾸준히 가격이 치솟고 있다. 그는 “최고의 와인을 원하는 고객층은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말하며, 소유욕을 자극하는 와인을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라고 밝힌다. 에곤 뮐러는 자신의 와인이 높은 가격을 형성하는 데 대해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낸다. 하지만 동시에 명성이 높아진 만큼 그 품질과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감당해야 한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전통을 지키는 와인메이커
에곤 뮐러는 어떻게 보면 뛰어난 전통주의자다. 현대 와인 시장에서 드라이한 와인이 점점 더 선호되는 추세에 따라, 모젤과 자르-루버 지역에서도 잔당이 거의 없는 드라이 리슬링을 빚는 생산자가 늘고 있다. 그러나 에곤 뮐러는 모젤의 명성이 잔당이 있는 저도수의 리슬링, 특히 카비넷(Kabinett), 슈페트레제(Spätlese), 아우슬레제(Auslese) 스타일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믿는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 와인을 단순히 스위트 와인이나 드라이 와인으로 분류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1971, 1975, 1976년의 뛰어난 빈티지에서 생산된 자신의 리슬링 와인을 경험한다면 이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래서 에곤 뮐러는 여전히 모젤만의 특징인 날카로운 산미와 잔당을 유지하며 시대와 유행을 초월한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그의 리슬링 와인은 꽃과 과일, 흙내음이 조화를 이루며 전기처럼 생동감 넘치는 산미와 미네랄리티를 자랑한다. 극도로 섬세하면서도 풍성한 맛을 선사해, 일부 와인 애호가들은 그의 와인 한 병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리슬링 품종의 마법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현재 샤르초프베르크에서 생산된 베렌아우슬레제(Beerenauslese)와 트로켄베렌아우슬레제(Trockenbeerenauslese)는 1971, 1975, 1976, 1989, 1990, 1994, 1995, 1999, 2001, 2003, 2005, 2015 빈티지에서 구할 수 있다. 베렌아우슬레제만 생산된 빈티지는 1979, 1983, 1986, 1988, 1991, 1993이며, 트로켄베렌아우슬레제만 생산된 빈티지는 1997, 2000, 2006, 2007, 2009, 2010, 2011, 2017, 2018, 2019, 2021, 2023이다.

[(왼쪽부터) 샤르초프, 카비넷, 슈페트레제, 아우스레제, 베렌아우스레제,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 사진 출처: 에곤 뮐러 웹사이트]
에곤 뮐러 샤르초프 (Egon Müller Scharzhof)
에곤 뮐러 샤르초프는 와이너리의 가장 기본급 와인으로, 비교적 접근성 있는 가격이지만 품질면에서는 기본급의 한계를 넘어선다. 이 와인은 에곤 뮐러의 포도밭에서 재배된 포도를 블렌딩해 생산하며, 약간의 단맛이 있는 오프 드라이 스타일의 카비넷급 와인이다.
알코올 도수는 약 10도이며, 감귤류, 사과, 복숭아, 흰 꽃 등 순수하고 화려한 풍미를 지닌다. 강렬한 미네랄리티와 특유의 짠맛과 감칠맛이 입안을 가득 채우며, 여운이 길고 깊다. 특히 균형 잡힌 밝은 산미와 섬세한 허브, 스모크 같은 복합적인 풍미는 이 와인을 특별하게 만든다. 기본급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숙성 잠재력을 자랑하며,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생동감 넘치는 맛을 제공한다.
[당도 스타일에 따른 포도알의 상태, (왼쪽부터) Scharzhof, Kabinett, Spätlese, Auslese, Beerenauslese와 Trockenbeerenauslese, 사진 출처: 에곤 뮐러 웹사이트]
에곤 뮐러 샤르츠호프베르거 리슬링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
'트로켄(Trocken)'은 '말린', '베렌(Beeren)'은 '포도알', '아우스레제(Auslese)'는 '선별'이다.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TBA)는 귀부병(Botrytis cinerea)에 감염돼 자연적으로 말라 농축된 포도 알갱이를 하나씩 손으로 선별해 만든 와인으로, 프라디카츠바인(Prädikatswein) 카테고리에서 가장 당분 함량이 높다. 까다로운 기후조건과 엄격한 수확 선별, 그리고 극도록 낮은 소출량으로 높은 가격이 형성돼 있다. 높은 잔당으로 끝까지 발효가 어려워 알코올 도수는 약 6-10% 정도이며 잔당은 리터당 230g에서 335g 정도다. 모젤 지역의 리슬링으로 만드는 이러한 TBA 와인은 높은 잔당과 눅진한 풍미에 특유의 날카로운 산도가 상쾌한 엣지를 선사하는 최고급 귀부와인으로 손꼽힌다. 그중에서도 에곤 뮐러 샤르츠호프베르거 TBA는 전 세계에서 현존하는 최고급 귀부 와인으로 인정받는다. 매 빈티지마다 생산량이 30~40리터에 불과하며, 이로 인해 희소성과 놀라운 품질이 더해져 로마네 콩티(Romanée-Conti)와 견줄 만큼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세계적인 와인 전문가 안토니오 갈로니(Antonio Galloni)는 2019년 1975년 빈티지를 시음한 후 “내가 마셔본 가장 위대한 리슬링”이라고 평가하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렇게 오래된 리슬링에서 이토록 반짝이는 투명함을 본 적이 없다. 와인의 부케는 감각을 감싸며 압도적인 매력으로 온몸을 무장 해제시킨다. 입안에서의 밸런스와 정밀성은 그 개념을 새롭게 정의한다. 달콤한 풍미는 날카로운 산미에 의해 역설적이지만 놀랍도록 가벼운 무게감을 선사한다. 피니시는 비범하게 길며, 60초가 넘게 지속된다. 음용 시기는 2019-2100년. 100점.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이 와인은 이미 그 가격이 가치를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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