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도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지금 머릿속으로 생각해 보자. 새해 첫날 무엇을 했는지? 아마 자세히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1주일 전 점심에 먹은 메뉴를 떠올려 봐도 아마 바로 생각이 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만큼 빠르게 망각하고, 우리의 기억은 오류 투성이다. 하물며 두세 달 전에 어느 와인 모임에서 어느 와인을 마셨는지 기억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고 느끼는 이유는 과거를 빠르게 망각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우리가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이 과도하게 많다는 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지금 들어오는 정보가 너무 많으니 과거 정보는 빨리 머릿속에서 없애야 하는 이치다.
와인업계도 그만큼 빨리 변하기 때문에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는 것이 어렵다. 다만 와인 시장은 큰 흐름에서 변화가 크지 않다. 어떤 시장(내가 일하고 있는 인공지능 같은)의 경우에는 2~4개월 단위로 새 기술들이 쉴새없이 등장하고 그 변화의 속도가 상상을 초월하는데, 와인 시장은 그에 비하면 천천히 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가 빨라서 그런지, 와인 시장도 과거에 비해 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현재 내가 외부에서 주관적으로 관찰하고 있는 한국 와인 시장의 세 가지 트렌드를 간단하게 살펴본다.
빨라도 너무 빠른 화이트 와인 시장 증식
'증가'가 아니라 '증식'이라는 단어를 썼다. 스스로 늘어나고 있다. 2025년 1월 국내 과실주 통관 현황에서 레드 와인의 물량 점유율이 50%까지 떨어졌다. 지금까지 1월 통관 기준, 레드 와인 물량이 60% 이하로 내려온 것은 단 두 번인데 2023년이 처음이었고 그 다음이 올해 2025년이다. 일시적인 현상이라 하더라도 레드 와인의 점유율 하락은 눈에 띈다. 국내에서 이처럼 화이트 와인 비율이 늘어난 것은 레드 와인의 수요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하나의 원인으로 들 수 있고, 소비자들의 취향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것을 두 번째 원인으로 둘 수 있다.
얼마 전 칼럼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화이트 와인의 수입이 늘어나는 것이 수입사의 수익성에는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단가가 레드 와인에 미치지 못하고, 오래 보관하면 색상이 변하거나 상품성이 떨어질 수 있다. 따라서 빠른 상품 회전율로 승부수를 걸어야 하는데 수입사 입장에서 어려운 시장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매우 빠르게 높아지고 있으니 시장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이다. 소비뇽 블랑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소비자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소비뇽 블랑의 쉬운 접근성은 분명 시장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것이 전체 화이트 와인 시장에 좋은 영향으로 작용할지, 시간이 지나면 다른 주종이나 다른 품종으로 소비자 취향이 바뀔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물량 기준 1월 통관 비율]
논알코올 와인에 대한 탐색
얼마 전 해외에서 온 무알코올 스파클링 와인의 샘플을 시음할 기회가 있었다. 몇 년 전 내 경험으로는 “마실 수 있다/없다” 수준의 품질이었는데 이번에는 꽤나 괜찮은 품질을 보여줬다. 아무리 마셔도 알코올 기운이 오르지 않으니 나는 절대 사서 마시지 않을 것 같지만, 해외의 젊은 소비층을 포함한 많은 층에서 논알코올 와인에 대한 수요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도 다양한 마실거리를 탐구하는 등 시장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하다.
2025년은 수입 와인시장에서 논알코올 와인의 영향이 발생하는 첫 해가 될 수 있다. (물론 논알코올 와인은 과즙 음료로 분류돼 통계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시장 보고서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논알코올의 수요가 있다 하더라도 유념해야 할 부분이 있다. 논알코올 맥주와 논알코올 와인은 전혀 다른 시장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으려면 그 가격에 걸맞는 이점이 있어야 한다. 물론 주세와 교육세가 빠지니 가격은 상당히 낮아지지만, 포도 원액 음료 등 다른 음료와 비교해 확실한 강점이 필요하다. 아울러 이 시장이 커질 경우에 전체 와인 시장은 감소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주류 수입업체 입장에서는 생존을 위해 논알코올 와인도 검토해야 하겠지만, 이것이 유통채널 전체의 생존에 도움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내추럴 와인에 대한 소비자 인식
내가 여러 해에 걸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본 시장이 내추럴 와인이다. 처음 경험한 내추럴 와인이 2014년이었으니 햇수로 이미 11년이 되었다. 그동안 여러 수입사들이 내추럴 와인을 소개하려 노력했고 많은 와인과 생산자들이 국내 시장에 소개되었다. 시장 규모로 생각한다면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몇백억 수준까지 성장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2025년 지금 시점에서는 그에 많이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본다. (시장을 추정할 수 있는 유의미한 지표가 없기에 아직까지 구체적인 규모 계산은 어렵다) 물론 아니라고 주장하는 업계 종사자나 소비자도 있을 것이고, 내가 인식하지 못한 시장 영역도 존재할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몇몇 수입업체와 숍 담당자들을 인터뷰해 보면, 시장에서 의미 있는 영역을 차지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한 종류의 상품이 시장에 안착되기 위해서는 꽤나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앞서 이야기한 화이트 와인이 시장에 정착된 것도 오랜 기간 점유율 정체 이후 폭발적인 증가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내추럴 와인은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국내에 소개되었고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러한 시장을 유지하기 위한 뒷심, 그리고 소비자 관심에 있어서 일정 부분 한계점이 드러난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 중간에 많은 업계 관계자들의 노력이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지만, 투자와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내추럴 와인이 과거에 비해 약세를 보이는 원인으로는 소비자의 취향 변화가 한 축을 차지할 것으로 추정한다. 자신의 고유한 경험과 독특함을 중시하는 소비자라면 내추럴 와인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으나, 이제 충분히 알려진 상황에서 내추럴 와인을 마신다는 것으로 자신의 경험과 독특함을 드러내지는 못한다고 본다. 추가적인 소비자 유인책을 만들어 내지 않는 이상, 내추럴 와인은 일부 마니아가 즐기는 영역으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시장이 완전히 죽지는 않겠지만 예전처럼 모든 수입사들이 앞다투어 수입하는 트렌드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언급한 세 가지 트렌드의 핵심에는 소비자가 있다. 소비자들의 취향 변화가 와인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화이트, 논알코올 모두 소비자들의 취향 변화가 이끌어낸 결과다. 내추럴은 두 트렌드에 건강, 그리고 경제적 여유, 탐구에 대한 갈망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더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소비자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다만 멀리서 소비자를 바라본다면 그 변화를 조금이나마 더 읽을 수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대응할 수 있다면 그것대로 의미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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