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 깨어있는 와인 애호가로 남으려면


나는 소위 '덕후'라는 범주에 맞는 사람이다. 이 단어의 출발은 일본의 '오타쿠'다. 나쁜 의미가 더 많은 단어였으나 지금은 '특정 분야에 대해 깊이 이해하려고 하고, 그 분야에서 전문가 이상의 지식을 쌓으려 노력하고 탐구하는 사람' 정도로 해석하면 어떨까 싶다. 내가 와인 분야에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도 약간은 편집광적인 집착이 빚어낸 덕후 기질이 있어서였라고 생각한다. 2000년대 초반 즈음, 와인을 처음 마시기 시작할 때 정보 탐색 열정에 불을 지피는 일이 한 번 있었고 나는 그 이후로 와인 정보를 미친 듯이 탐색했다. 그리고 마신 것은 기록으로 남겼다. 집착일 수 있으나, 그 결과는 기록한 시음노트, 해마다 발간하는 시장 보고서로 수렴되는 것 같다.


살펴보면 와인업계에 종사할수록 오히려 와인 산업의 변화나 시장의 특징에 대해 정보가 느린 경우가 많다. 지금 내 영업과 판매, 우리 회사나 내 숍에서 다루는 와인 외에 다른 곳에 관심을 가지기에는 내 업무가 바쁘고, 성과 압박이 있기에 여유가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와인업계에는 '와인이 너무 좋아서' 와인업계로 들어온 뒤 '덕후'까지가 가장 좋았다고 내게 이야기하는 종사자들을 간혹 만나볼 수 있다. 좋고 싫고를 떠나 무엇이든 밥벌이는 가장 고달픈 법이다. 그렇다면 애호가로 남은 상태에서 와인을 멋있게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신 정보에 목말라 하라

간혹 온라인 정보들을 보면 20년 전 초기 와인 애호가 시절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러나 와인 시장은 생각보다 빠르게 변한다. 10년 전, 20년 전의 양조 기법은 과학의 발달로 놀랍게 발전하고 있다. 토양에 대한 분석도 과거에 비해 더 높은 수준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세부 지역의 정밀한 기후 분석에 이르기까지, 데이터는 정말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시대, 빅데이터의 시대이니 이에 대한 분석과 기술 발전은 과거에 비해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이다. 이에 맞춰 제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런 정보에 귀기울이지 않으면 내 머릿속 생각은 과거에 머무르게 된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이탈리아 프리울리 베네치아 줄리아(Friuli Venezia Giulia) 지역에 DOCG가 없다는 것이 사실이었으나 지금은 2개가 있다. 처음에는 열정적으로 와인 정보를 살펴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관심이 사라지고 찾아보지 않는 순간이 생기지만 새로운 정보는 질주하듯 계속된다. 최신 정보를 찾지 않으면 생각은 과거에 머문다. 약간의 관심으로 과거에 머물 것인지, 현재에 머물 것인지가 결정된다.


과거의 명성이 지금의 명성은 아니며, 과거의 불행이 지금의 불행도 아니다

와인은 사람이 만든다. 포도는 땅과 하늘, 기후가 주는 것이다. 이중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람이다. 와인을 만드는 것은 포도가 99%, 사람이 1%라고 이야기하는 생산자들이 많은데, 사실 1%도 엄청난 비율이다. 우리 몸 속에 알코올이 1% 들어왔다고 생각해 보자. 바로 죽을 것이다. 만취 기준은 0.08% 이상이다. 1%가 아니다. 그만큼 사람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그런데 사람은 늙고 병들며 죽는다. 은퇴하고, 사라져 간다. 특정 전문가가 참여해 와인을 만들었던 시기는 찬란한 시기일 수 있으나 그가 은퇴하고 새로운 담당자가 만들었을 때 그만큼의 맛이 안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과거에 소유권이 넘어가서 엉망이 되었다가 가족들이 뭉쳐 포도원을 되찾고, 그 이후 새로운 스타일을 반영해 복원되는 경우도 있다. 자식이 타계한 부모의 영광을 잇기 위해 처음에는 약간 부족하더라도 점차 스타일을 만들어서 부모보다 더 멋진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는 경우도 많다. 어떤 포도원은 후계자가 없어 사라지기도 한다. 이런 정보들을 늘 눈여겨 보아야 한다. 매일은 아니라도 정기적으로 와인 분야 뉴스를 살펴보자. 첫 번째 언급한 내용과 결이 약간 다르지만, 와인21과 같은 뉴스를 계속 보라는 결론에 귀결된다.


와인 브랜드는 주식과 같다

2055년이 되면 보르도 크랑 크뤼가 200주년을 맞는다. 아마 보르도에서는 큰 행사가 열리지 않을까? 엄청나게 먼 미래 같지만 겨우 30년 남았다. 1년이 길 것 같지만 의외로 빨리 흐르며, 10년도 길 것 같지만 세월은 빠르게 흘러간다.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랑 크뤼 와인들도 가치가 많이 바뀌었다. 당시의 2등급이 지금 2등급 수준의 품질을 못하는 경우도 있으며, 지금의 2등급이 1등급 수준의 가치를 인정 받거나 5등급이 2등급 수준의 가치를 인정받는 경우도 많다(어느 와인인지는 명시하지 않아도 이해할 것이다). 와인의 가치는 파도와 같이 오르고 내린다. 주식시장과 같다. 그 가치를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와인 숍이며, 가격 정보다. 자주 와인 숍을 들러 가격을 살피고 주인이나 판매 담당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머릿속에 언제나 최신 정보가 남을 것이다.


셀러에 둔 와인은 당신이 평생 다 못 마신다, 열어라!

와인을 왜 사는가? 내 자랑인가? 내 만족인가? 아니다. 마시기 위해서다. 마시지 않은 와인은 그냥 병 속에 든 포도즙과 알코올일 뿐이다. 애호가라면 타인의 말만 듣고, 멋진 와인이라 생각해서 열어봤는데 내 기대와 다른 경험을 한두 번 정도 했을 것이다. 이유는 왜일까? 외부 정보를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 생각에 머물러 그 와인의 맛이 어떨지 상상하고, 가격이 얼마인지 상상만 하게 된다. 그러나 와인을 열어 마셔보면 깨닫게 된다. '큰 감동이 있기는 하나, 하늘과 땅 같은 차이는 없다'. 오히려 그 때 그 와인의 느낌보다 와인을 마실 때의 분위기, 사람, 시간, 이야기가 더 많이 떠오를 것이다. 셀러를 열면 내가 가진 와인 10병, 20병, 100병이 아니라, 내가 앞으로 만들어낼 추억이 10개, 20개, 100개라 생각해 보자. 저 와인을 그냥 모셔만 둘 것인가? 아니다. 열고 마셔라, 그리고 추억을 만들라.


종교에서 집착이란 것은 좋은 것이 아니라 한다. 특히 불교에서 집착은 괴로움의 원인이라 한다. 인간이 집착을 버리지 못해 우리는 괴로움과 고통에서 살게 된다고 한다. 모든 인생이 고통이기에 불가에서는 '일체개고(모든 것은 변화하고 괴로움)'를 설파한다. 그런데 괴로움이 사라지는가? 우리는 늘 집착을 데리고 사는 셈이다. 집착이 과하면 고통이 커지고, 덜하면 줄어들 것이다. 다시 글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야기하자면, 나는 와인에 대한 집착이 좀 심해서 시장 보고서도 내고, 시음노트도 쓴다. 칼럼도 한 달에 두 편을 쓴다고 마음에 새겨두었더니, 지금은 반드시 그렇게 쓰게 된다. 이 역시 어쩌면 집착이다. 집착하지 말라 해놓고도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앞서 말한 덕후의 그늘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나 보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렇게 되지 말고 적당히 와인을 즐기며 적당히 깨어있는, 기분 좋은 와인 애호가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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