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본업이 인공지능 분야다 보니 매일 최신 소식을 접하고 있다. 힘든 부분은 관련 글을 쓰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내일 아침 발표할 자료를 작성하고 잠들면 밤사이 새로운 시스템이나 기술 관련 뉴스가 뜬다. 아침이면 내가 쓴 자료는 구식이 된다. 이런 시간의 간격이 몇 주 혹은 며칠 단위로 이뤄지니, 기술의 진보가 얼마나 빠른지 체감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최근에는 인공지능이 알아서 어떤 일들을 척척 해주는 인공지능 에이전트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개념이 있는데, 에이젠틱 인공지능(Agentic AI)과 인공지능 에이전트(AI Agent)다. 전자는 좀 더 넓은 의미와 복잡한 임무를 수행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고, 후자는 인공지능이 하나의 제한적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번 일요일에 제주도로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적절한 숙소를 검색하고 예약해줘” 같은 것은 에이전트, “1주일 동안 미국 여행을 할 텐데, 지금 내 재무 상황을 고려해서 코스를 짜고 여행경비 마련 방법도 제안해줘” 같은 것은 에이전틱 인공지능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지 완벽하게 개념이 분리된 것은 아니므로 두 개념을 유사하게 생각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출처: 챗GPT 생성 이미지]
와인업계에서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것은 소비자들의 취향을 기반으로 블렌딩을 실험하고, 각 요소별로 원가나 포도 상태를 검증하는 실험을 자동화하는 것이다. 와인 생산자 입장에서 소비자 취향에 맞게, 그리고 테루아의 상태에 맞춰 적절한 블렌딩 비율을 정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실험실 수치로 찾을 수 있는 정보들은 잔당(남은 설탕의 수준), 산도, 알코올 도수 정도 등이지만 이 정보로도 와인 전문가들은 맛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포도 품종의 기본적인 특징이 있고 향에 대한 정보도 정형화되어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여러 실험을 자동으로 수행하고 이에 대한 결과값을 유추해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생산 현장에서 인공지능이 전문가들의 블렌딩 전문 지식을 학습한 뒤 다른 포도원에도 적용하는 날이 머지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다음으로는 포도밭 관리를 로봇과 인공지능이 대신하는 것이다. 포도나무의 가지치기는 한 해의 농사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다. 이미지 인식과 기존 학습된 기후·토양 정보, 그리고 숙련된 전문가의 포도나무 가지치기 기술을 학습한 뒤, 로봇이나 농업 자동화 기기들이 이를 가지치기에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포도가 성장하는 시기에는 로봇이 포도밭을 돌며, 포도잎에 가려 햇빛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포도송이가 충분히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다. 기요(Guyot) 방식의 포도 재배에서도 로봇은 포도 넝쿨 관리, 불필요한 잎 제거, 성장이 더딘 송이에 대한 그린 하베스트 등을 학습 정보를 바탕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수확기에는 새벽 시간, 로봇이 적외선 카메라와 열화상 정보를 활용해 수확 적기를 판별한 포도를 선별하고 수확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할 것이다. 이는 인간이 가진 테루아에 대한 지식을 인공지능이 학습하여, 생산 과정 전반에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통과 물류 과정은 앞으로 더욱 자동화될 수 있다. 수입 단계에서는 인공지능이 필요 서류와 생산국 행정 정보를 자동으로 판독한 뒤, 관세사 신고용 데이터를 생성하여 통관 과정에서 예상되는 행정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다. 식품검사 단계에서는 로봇이 검체를 자동으로 채취하고 실험 과정을 자동화한 뒤, 결과를 관세사에 자동으로 전달하는 것도 가능하다. 채취된 와인은 이동형 로봇(드론이나 자율주행 로봇 등)을 통해 수입사나 검사 기관에 자동 반납될 수 있으며, 기존 업계에서 문제로 지적되던 무작위 샘플 제출 부담 등도 크게 줄일 수 있다.
또한 주문이 들어오면 이동형 로봇을 활용해 고객이 원하는 위치까지 자율 배송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이때 중앙 인공지능 에이전트(앞서 언급한 에이젠틱 수준)가 전체 배송 로봇의 스케줄을 관리하고 다양한 업무를 통합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내용들은 현재로서는 상상 속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과 로봇 기술의 발전 속도를 고려하면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인공지능의 세계는 상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는 업무 범위도 과거의 제한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이제는 전방위로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인공지능이 내 와인을 탐내는 일은 절대 없으며,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걱정도 과도하다. 인간은 여전히 인공지능의 수행 내역을 모니터링하고, 오류가 발생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 번거롭고 스트레스를 유발하던 업무를 인공지능과 로봇이 대신할 뿐, 인간의 책임과 의무는 오히려 늘어나므로 인류의 업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한국의 인구는 점차 감소하고 있지 않은가?
우울한 미래를 예상할 수도 있지만, 인공지능 덕분에 더 멋지고 편안한 삶이 펼쳐질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인공지능은 결코 내 와인을 탐하지 않는다. 결국 와인을 즐기는 주체는 인간이라는 점을 기억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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