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부, 붉은 태양이 내리쬐는 론(Rhône) 밸리. 그곳의 가장 상징적인 이름 중 하나, 샤토네프 뒤 파프(Châteauneuf-du-Pape). 해발 120미터의 높이, 퇴적층과 석회암, 모래와 점토로 이루어진 이 테루아는 론 강이 수천 년 동안 빚어낸 작품이자, 농익은 과실과 힘 있는 구조감으로 대표되는 와인의 성지다. 이 거대한 명성의 울림 한켠에서, 전혀 다른 언어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와이너리가 있다. 바로 샤토 하야스(Château Rayas)다.

이 지역의 상징으로 알려진 둥근 자갈 갈레(Galets)는 샤토네프 뒤 파프의 테루아를 대표하지만, 사실 이 지역은 다양한 토양이 특징이다. 서쪽 지역에는 단단한 석회암, 점토 또는 몰라스 사암(molassic sandstone)으로 이루어진 토양이 분포하고 있으며, 동쪽 지역에는 론 강의 흐름으로 형성된 모래 토양이 숲과 바위 고원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와인 생산자들은 다양한 토양을 조화롭게 섞거나 또는 단일 테루아만을 선택해 하나의 독창적인 퀴베(cuvée)를 생산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생산자들이 둥글고 무거운 자갈 위에서 시라와 무르베드르, 그르나슈를 섞어 강렬하고 풍부한 블렌딩 와인을 양조하는 사이, 하야스는 고운 모래 위에서 그르나슈 단 하나의 품종으로 남다른 와인을 빚어낸다. 그들의 와인은 아주 섬세하고 투명해 과연 이 와인이 샤토네프 뒤 파프의 것인지 의심케 한다. 대지에서 피어난 섬세함, 강인함 속의 고요한 정제미다.

[4대에 걸친 샤토 하야스의 역사, 출처: 샤토 하야스 웹사이트]
4대에 걸쳐 운영되고 있는 샤토 하야스는 1880년, 청각 장애를 얻은 알베르 레이노(Albert Reynaud)가 와인 생산을 시작하며 그 역사가 시작됐다. 그는 론 밸리에서 와인의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고자 결심하고 하야스를 인수했다.
1920년, 그의 아들 루이 레이노(Louis Reynaud)가 이 유산을 물려받아 본격적인 유통의 길을 열었고, 1935년에는 사리앙(Sarrians)의 샤토 데 투르(Château des Tours)를, 1945년에는 라가르드-파레올(Lagarde-Paréol)의 샤토 드 퐁살레트(Château de Fonsalette)를 인수하며 확장했다.
하야스를 전설적인 이름으로 만든 인물은 1978년 아버지로부터 하야스와 퐁살레트의 경영권을 물려받은 루이의 막내아들 자크 레이노(Jacques Reynaud)였다. 그는 토양의 숨결, 자연의 리듬, 균형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느끼며 수많은 와인을 만들었다. 1997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와이너리의 운영은 그의 조카이자 샤토 데 투르를 운영하던 엠마누엘 레이노(Emmanuel Reynaud)의 손에 맡겨졌다. 엠마누엘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 동안 손수 포도밭을 돌보며 하야스, 퐁살레트, 데 투르 세 도멘을 관리하고 있다. 그는 말보다 행동으로 이 집안의 철학을 실천하며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엠마누엘 레이노, 출처: 샤토 하야스 웹사이트]
샤토 하야스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들
샤토네프 뒤 파프에서는 그르나슈, 시라, 무르베드르 등 최대 13가지 품종이 허용되고 블렌딩이 일반적이지만, 하야스는 그르나슈만으로 레드 와인을 만든다. 화이트 와인은 그르나슈 블랑과 클레레트(Clairette)를 사용한다. 하야스의 포도밭에서 구획별로 수확한 포도는 오래된 배럴에서 따로 양조하고 숙성시킨 후, 엠마누엘의 미묘한 감각으로 조합한다. 그 결과물은 투명하고 섬세하며, 풍부하지만 결코 무겁지 않다.
샤토 하야스의 포도밭은 자갈이 덮인 다른 샤토네프 뒤 파프의 토양과 달리 모래 기반 토양이다. 이 모래 토양은 자갈보다 열을 덜 머금고, 토양에 포함된 점토는 습기를 가둬 서늘하게 온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포도밭 주변을 둘러싼 소나무 숲이다. 이는 포도밭의 온도 조절과 독특한 미기후 제공에 큰 역할을 한다. 이 지역 특유의 서늘한 미기후 덕분에 상대적으로 낮은 알코올 도수, 신선함, 강렬한 과일의 순도, 우아하고 부드러운 스타일을 얻을 수 있다.

[샤토 하야스의 모래 기반 토양, 출처: 샤토 하야스 웹사이트]
하야스는 철저히 전통적이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와인을 만든다.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하야스를 방문하는 것은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야생 효모 발효, 오크향이 없는 대용량의 푸드르(Foudre) 숙성, 비개입 지향 농법 등 철저히 전통에 기반한 방식을 사용한다. 마스터 오브 와인 벤자민 르윈(Benjamin Lewin MW)이 샤토 하야스를 방문했을 때, 그는 레이노에게 뉴 오크 사용 여부를 물었다. 그러자 레이노는 놀란 표정으로 “내가 왜 그래야 하죠? 뉴 오크는 미국인들을 위한 거예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들의 생산량은 매우 한정적이다. 샤토 하야스 샤토네프 뒤 파프의 경우 빈티지에 따라 연간 약 1,200~1,500케이스만 생산되며, 진정한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10~20년의 숙성이 필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고유성과 희소성을 높이는 동시에 마니아들에게 수집욕을 자극하는 요소기도 하다. 레이노 가문이 다른 대규모 와이너리와 달리 지금도 가족이 손으로 농사를 짓고 와인을 만드는 소규모 도멘이라는 점도 샤토 하야스를 특별하게 만든다. 이런 철학으로 샤토 하야스는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에게 꾸준히 찬사를 받고 있다.

[샤토 하야스의 포도밭, 빨강 구역-르 쾨르, 파랑 구역-르 쿠샹, 녹색 구역-르 르방, 노랑 구역-피냥, 출처:Wineberserkers]
샤토 하야스의 포도밭은 '르 쾨르(Le Coeur)'의 8개 구획, '르 쿠샹(Le Couchant)'의 2개 구획, '르 르방(Le Levant)'의 3개 구획, 그리고 '피냥(Pignan)'의 2개 구획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샤토네프 뒤 파프 레드 와인 두 종류와 화이트 와인 한 종류를 생산한다.

샤토 하야스 샤토네프 뒤 파프 루즈 Château Rayas Châteauneuf-du-Pape Rouge
샤토 하야스를 대표하는 이 레드 와인은 100% 그르나슈 품종으로 만든다. 포도는 구획별로 따로 양조 및 숙성하며, 이후 블렌딩 과정을 거친다. 와인은 평균 16개월 동안 450~600리터 크기의 드미-뮈(Demi-muid)와 다양한 크기의 오래된 푸드르에서 숙성 후 병입한다.

피냥 Pignan
피냥은 샤토 하야스의 세컨드 와인이며, 마찬가지로 100% 그르나슈로 만든다. 샤토 하야스의 시그니처 와인과 유사한 스타일이지만, 주로 북쪽 구획의 포도나무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차별화한다. 이 와인도 병입 전에 드미-뮈와 푸드르에서 16개월 동안 숙성되며, 매년 약 650케이스만 생산된다.

샤토 하야스 블랑 Château Rayas Châteauneuf-du-Pape Blanc
50% 그르나슈 블랑과 50% 클레레트를 균일하게 블렌딩한 이 섬세한 화이트 와인은 연간 약 425 케이스만 생산되는 희귀 와인이다.
이외에도 샤토 하야스는 자매 와이너리인 샤토 드 퐁살레트와 샤토 데 투르를 통해 다양한 와인을 선보인다.

[샤토 하야스 샤토네프 뒤 파프 루즈, 출처: 샤토 하야스 페이스북]
시간과 함께 완성되는 예술
와인평론지 <비노스(Vinous)>의 니콜라스 그라이나커(Nicolas Greinacher)는 샤토 하야스의 샤토네프 뒤 파프 리저브 2022 빈티지를 이렇게 평한다.
“키르시(Kirsch), 산딸기, 라즈베리 콩포트, 라벤더, 녹은 감초, 으깬 바이올렛, 흰 후추의 향이 폭발한다. 놀라울 정도로 깊은 밀도감과 내면의 에너지를 지닌 매혹적인 와인이다. 부드러운 타닌으로 감싸 있으며 여운은 거의 끝이 없을 정도로 길게 이어진다. 완벽함은 지금 이 순간 눈앞에 펼쳐져 있다”라고 극찬하며, 2032년부터 2052년까지를 시음 적기로 제시했다.
또한 2012 빈티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잔을 들자마자 터져 나오는 향은 키르시, 이끼 낀 흙내음, 딸기 콩포트, 건조 육류, 로즈마리, 으깬 바이올렛, 세이지… 향을 나열하기 숨가쁠 정도로 다채롭다. 마치 운동선수 같은 집중력과 긴장감, 그리고 높은 알코올 도수를 완벽하게 통합하는 구조감을 자랑한다. 더욱 익은 해인 2009나 2010 빈티지처럼 강렬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대신 강도와 섬세함의 수준은 놀라울 만큼 인상적이다.”
샤토 하야스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이며, 하나의 세계다. 그들의 와인은 트렌드와 상업성, 현대 와인 양조기법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지만 진정한 테루아와 철학을 담아내는 힘으로 전 세계 마니아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론 계곡의 중심에서 하야스는 조용히, 그러나 확고히 자신만의 언어로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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