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의 별명은 '이탈리아의 녹색 심장'이다. 많은 언덕과 숲, 호수와 크고 작은 강이 펼쳐진 자연환경 덕분에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힐링' 여행지로 손꼽힌다. 토스카나 바로 아래에 있기 때문에 중세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의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나 피에트로 페루지노(Pietro Perugino) 같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곳곳에서 볼 수 있고, 중심 도시인 페루자(Perugia)에서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재즈 페스티벌 중 하나인 움브리아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한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곳이니 당연히 포도를 비롯한 농식물도 풍부하다. 움브리아 올리브오일은 이탈리아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며, 와인도 두 개의 DOCG 지역을 비롯해 여러 DOC 지역이 있다. 첫 번째 DOCG는 토르지아노 리제르바(Torgiano Riserva)로, 토스카나와 또 다른 매력의 산지오베제 위주의 블렌딩이다. 두 번째 DOCG는 몬테팔코 사그란티노(Montefalco Sagrantino)로, 움브리아 토착 품종인 사그란티노 100%로 만드는 와인이다. 카베르네 소비뇽보다 폴리페놀 양이 2배 가까이 되는 이 강력한 품종은 30년 이상 숙성 잠재력이 있는 진한 스타일의 와인을 만든다. 이 DOCG들이 발전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든 선구자가 있다. 바로 움브리아의 와인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와이너리 가문, 룽가로티(Lungarotti)다.

[룽가로티 CEO, 키아라 룽가로티]
최근 한국에서 열린 그란디 마르키(Istituto Grandi Marchi)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룽가로티 와이너리의 CEO인 키아라 룽가로티(Chiara Lungarotti)가 한국을 찾았다. 그란디 마르키는 명실상부 이탈리아 최고의 와인을 만드는 각 지역 대표 와이너리들의 그룹으로, 룽가로티는 움브리아 대표로 그란디 마르키에 소속돼 있다. 룽가로티의 국내 수입사 신동와인이 마련한 자리에서 키아라를 직접 만나 그에게 룽가로티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700년대부터 움브리아에서 포도와 농작물을 재배해온 룽가로티 가문의 지오르지오 룽가로티(Giorgio Lungarotti)는 1950년 초반 토르지아노 부근 언덕을 새롭게 개간하고 포도밭을 조성했다. 당시까지 움브리아는 전통 방식으로 지역에서만 소비되는 와인을 만들던 시대였다. 지오르지오는 품질 좋은 움브리아 와인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최신 기술을 공부했고 특별히 좋은 클론을 골랐으며 포도 재배 또한 전통적 방식과는 달리 양보다는 품질을 우선시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그 결과, 10년 후인 1962년 첫 와인 루베스코(Rubesco)는 움브리아에서 처음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했고, 1964년 싱글 빈야드 개념으로 출시한 리제르바 와인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68년 우리의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이 움브리아 토르지아노 로쏘(Torgiano Rosso)와 토르지아노 비안코(Bianco) DOC등급을 받았는데, 이는 움브리아 최초이자 이탈리아 전체에서 5번째로 받은 DOC였습니다. 1990년에는 토르지아노 리제르바가 토르지아노 로쏘 리제르바 DOCG를 받았고 이 역시 움브리아 최초이자 이탈리아에서는 9번째 DOCG였죠. 2년 후에는 몬테팔코가 DOCG를 받았습니다. 저희 아버지 지오르지오가 이 모든 일들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셨어요.”
키아라의 어머니 마리아 그라지아(Maria Grazia) 역시 움브리아 지역 문화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예술 역사학을 공부한 그녀는 이탈리아 전역뿐 아니라, 그리스, 튀르키예 등 세계 각지에서 와인과 관련한 다양한 자료와 물품들을 모아 와인 박물관을 개관했다. 이곳은 3천 년 전 에트루스칸(Etruscan) 시대의 물품이 전시돼 있고 중세, 르네상스 및 현대 등 시대별 와인 역사를 알 수 있는 곳이다. 룽가로티 재단을 설립해 이탈리아 문화 발전에 위한 수많은 일을 한 그녀는 이탈리아 대통령에게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 훈장 대십자 기사(Cavaliere di Gran Croce dell'Ordine al merito)'를 받았는데, 이는 이탈리아 최고 등급의 문화 공로 훈장이다.

[룽가로티의 와인 박물관 MUVIT의 전시관 일부 (출처: 룽가로티)]
키아라와 함께 5종의 와인을 시음하며, 룽가로티의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더욱 자세히 들어보았다.
룽가로티 토레 디 지아노 Lungarotti Torre di Giano 2021
토레지아노 마을의 상징인 야누스 타워 '토레 디 지아노'를 이름으로 사용한 룽가로티의 대표 화이트 와인이다. 베르멘티노(Vermentino) 50%, 그레케토(Grechetto) 30%, 트레비아노(Trebbiano) 20%가 사용됐는데, 각 품종의 특성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멋진 화이트 와인이다. 기분 좋은 은은한 꽃향기에 노란 살구, 사과 등이 농축된 향과 맛을 보여준다. 와인 효모(lee)에서 수개월간 숙성해 부드러운 뉘앙스를 더했다. 와인에 사용한 베르멘티노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좋은 클론이라 평가받는 사르데냐 섬 클론을 지오르지오가 직접 움브리아로 가져와 심었다. 현재 파크 하얏트 코너스톤에서 하우스 와인으로 사용하고 있다.
룽가로티 루베스코 Lungarotti Rubesco 2020
룽가로티의 가장 대중적인 레드 와인이다. '루베스코(rubesco)'는 라틴어 'rubescere'에서 왔는데, '얼굴에 홍조를 띠다'라는 의미로 한 잔만 마셔도 기분 좋게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는 와인이다. 산지오베제 90%에 콜로리노(Colorino)가 10% 블렌딩됐다. 콜로리노는 색뿐 아니라 구조감도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처음부터 잘 익은 자두, 체리의 붉은 과실향이 좋은 강도로 올라오고, 약간의 검은 과실에 향신료 뉘앙스가 복합성을 더한다. 토마토소스 파스타나 피자 같은 음식과 함께 즐긴다면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 될 듯싶다. 이 와인 역시 파크 하얏트 코너스톤에서 하우스 와인으로 사용하고 있다.

[라벨에는 페루자를 대표하는 분수의 일부가 그려져 있는데, 와인을 양조하는 모습이다. 움브리아에서 룽가로티 가문의 업적을 인정해 특별히 사용을 허가했다]
룽가로티 루베스코 리제르바 Lungarotti Rubesco Riserva 2018
룽가로티의 '심장'이라 불리는 와인이다. 와인 라벨에는 비냐 몬티치오(Vigna Monticchio)라고 적혀있는데, 토레지아노 중에서도 핵심 언덕에 위치한 포도밭의 이름이다. 포도밭 구획별로 선별한 포도를 이용하며 좋은 빈티지에만 생산한다. 약간의 뉴오크로부터 나오는 은은한 바닐라와 연유 느낌에, 한결 강한 붉은 과실향과 향신료가 느껴진다. 맛에서도 더 능축된 강인함을 보여준다. 와이너리에서 적어도 4년 이상 병 숙성을 한 뒤 출시하며 이로 인한 말린 꽃과 발사믹 노트도 찾아볼 수 있다. 가히 움브리아에서 나올 수 있는 최고의 레드 와인이라 할 만하다. 5대 이탈리아 와인 가이드로 손꼽히는 '젠틀맨(Gentleman)'에서 매년 'TOP 10'에 단골로 선정되는 와인이기도 하다.
룽가로티 산 지오르지오 Lungarotti San Giorgio 2019
지오르지오는 움브리아에서 다양한 국제 품종을 실험하기도 했다. 메를로, 피노누아, 피노 그리지오 등 여러 품종 중 움브리아 토양과 가장 잘 맞는 품종이 카베르네 소비뇽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70년대부터 이 품종을 재배했다. 1977년 처음 출시한 '산 지오르지오(San Giorgio)'는 카베르네 소비뇽과 산지오베제를 절반씩 블렌딩했다. 이때는 토스카나에서 슈퍼 투스칸이 처음 출시됐을 때와 거의 비슷한 시기로 룽가로티는 움브리아에서 '슈퍼 움브리안'와인을 만들고 있었다. 확실히 한결 높아진 검은 과실 향과 무게감이 느껴지는데, 두 품종의 특성이 한 와인에서 절묘하게 어우러져 무척 흥미롭다. 라벨에는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라파엘로의 '용과 싸우는 산 지오르지오'의 스케치 버전이 그려져 있다.
룽가로티 모스카토 스푸만테 골드 라벨 Lungarotti Moscato Spumante Gold Label NV
룽가로티는 움브리아에서 모스카토 스푸만테도 만든다. 누구라도 좋아할 만한 청포도와 멜론 향이 기분 좋게 퍼지며, 과실 느낌이 가득한 맛에 약간의 버블이 입안을 간지럽힌다. 키아라는 아이스크림 디저트와 함께하면 궁합이 좋다고 추천했다.

키아라는 움브리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탈리아의 녹색 심장'이라는 별명처럼 모든 곳이 푸르른 지역이에요. 올리브나무, 포도나무, 울창한 숲, 나무를 비추는 호수까지 푸르른 자연이 가득하죠. 프란시스코와 발렌티노 성인의 고향이라 종교적인 곳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무엇보다 살기 좋은 곳입니다. 물론 열심히 일하죠. 일할 때는 최선을 다하지만, 저녁에는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여유로운 삶을 즐깁니다. 올바른 삶의 리듬이 있는 곳이에요.”
듣고 나니, 분명 룽가로티 와인에는 때로는 진한, 때로는 부담 없는 여유로움이 담겨 있는 듯하다. 매일 바쁜 삶을 살면서도 가끔 맛있는 와인을 나누는 여유를 부려보는 건 어떨까? 움브리아, 그리고 룽가로티 와인이라면 분명 그 여유로움에 기분 좋은 놀라움까지 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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