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햇살을 머금고 포도가 익어가는 늦여름, 이탈리아 스파클링 와인의 정수를 만난다는 설렘을 안고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지방의 이세오 호수(Lago d'Iseo)로 향했다. 이곳은 프란치아코르타(Franciacorta)의 심장부로, 브레시아(Brescia) 인근 알프스 산기슭과 이세오 호수 사이에 자리한다. 호수와 알프스, 그리고 대륙성 기후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온화한 기후를 만들어낸다. 여름이면 북쪽 알프스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공기가 더위를 식혀주고, 이세오 호수가 온도를 완만하게 조절해 포도밭에 안정적인 생육 환경을 만든다. 오랜 빙하 작용으로 형성된 프란치아코르타의 토양은 지역마다 서로 다른 성분이 뒤섞여 있다. 토양의 다양성은 베이스 와인에 각기 다른 개성과 복합성을 더한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포도는 이탈리아 최고급 스파클링 와인의 원천이 되는 여정을 시작한다.

[출처: https://franciacorta.wine/]
프란치아코르타, 이탈리아 스파클링의 새로운 서막
많은 사람들이 '프란치아코르타'라는 이름을 처음 들으면 프랑스(France)와 비슷한 철자 때문에 프랑스의 스파클링 와인을 떠올린다. 철자가 비슷하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프랑스와 아무런 관련이 없고, 라틴어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11세기부터 13세기 사이, 이 지역에는 수도원과 수도사들이 관리하는 작은 농장 단위의 영토 '쿠르테스(Curtes)'가 있었다. 당시 교회와 수도원은 세금이 면제되는 특권을 누렸고, '면세 농장(Francae Curtes)'이라는 이름에서 오늘날의 '프란치아코르타'가 탄생했다. 물론 지금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세금을 내지만, 이름은 여전히 옛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곳은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이곳에 살던 귀족이자 농장주 귀도 베를루끼(Guido Berlucchi)는 젊고 야심찬 와인메이커 프랑코 질리아니(Franco Ziliani)에게 와인에 대한 조언을 구했고, 그는 샴페인처럼 병 안에서 2차 발효를 하는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해보자고 제안했다. 기술도, 설비도, 전례도 없던 당시로서는 대담한 발상이었다.
1961년, 마침내 '피노 디 프란치아코르타(Pinot di Franciacorta)'라는 최초의 전통방식 스파클링 와인이 탄생했다. 이 한 병은 위대한 이탈리아 스파클링의 새로운 역사를 여는 서막이 됐고, 프란치아코르타는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 이름은 이탈리아 스파클링 와인의 우아함과 섬세함을 상징하는 명칭이 됐다.
프란치아코르타는 1967년 DOC로 지정됐고, 1995년에는 전통방식 스파클링 와인으로는 이탈리아 최초로 DOCG 지위를 획득했다. 이는 단순한 원산지 보호를 넘어, 고품질 스파클링 와인 생산지로서의 위상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이세오 호수와 알프스 산기슭이 보이는 빈야드 풍경]
프란치아코르타의 생산방식
이 지역은 오직 손 수확만 허용된다. 이는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포도송이 하나하나의 상태를 세심하게 살피며 수확하는, 전통과 품질 중심 철학을 잘 보여준다.
프란치아코르타 생산에 사용되는 품종은 샤르도네, 피노 누아, 피노 블랑, 그리고 최근 허용된 토착 품종인 에르바마트(Erbamat)까지 총 네 가지다. 이 중 샤르도네는 전체 포도밭 면적의 약 75%를 차지하는 프란치아코르타의 핵심 품종이다. 우아한 산도와 섬세한 구조감으로 이 지역 스파클링 와인의 품격을 결정짓는다. 그 뒤를 잇는 피노 누아는 전체 면적의 약 17%를 차지하며, 주로 프란치아코르타의 바디감과 숙성 잠재력을 더해준다. 특히 로제 스타일에서 주요 품종으로 활용된다. 최근 주목받는 품종은 이 지역의 오래된 토착 화이트 품종인 에르바마트다. 프란치아코르타 협회는 지역 정체성을 강화하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높은 산도가 특징인 이 품종을 허용 품종에 포함시켰다. 현재 바로네 피찌니(Barone Pizzini) 등 일부 와이너리에서 에르바마트를 블렌딩해 프란치아코르타를 생산하고 있다.
수확한 포도는 가능한 한 부드럽게 압착된다. 섬세한 풍미와 순수한 과즙을 얻기 위해 첫 단계부터 세심한 손길이 더해지는 것이다. 이후 포도즙은 탱크에서 첫 번째 발효를 거친다. 이렇게 만들어진 베이스 와인은 포도 품종, 빈야드 위치, 빈티지에 따라 각기 다른 개성을 보인다. 생산자들은 이 와인들을 블렌딩해 프란치아코르타 특유의 균형 잡힌 구조와 복합적인 향을 완성한다.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는 듯 치밀한 작업이다. 다음으로 병에 설탕과 이스트를 넣고 병마개를 닫아 두 번째 발효가 병 안에서 천천히 진행되도록 한다. 발효가 끝나면 병 속에는 역할을 마친 이스트 찌꺼기, 즉 '리(lees)'가 남는다. 리와 오랜 시간 접촉하며 숙성되는 동안, 고소하고 복합적인 향, 전통 방식 스파클링 와인의 시그니처 노트가 만들어진다.

[프란치아코르타가 숙성 중인 벨라비스타의 셀러]
숙성이 끝나갈 무렵, 병들은 '푸피트르(pupitre)'라 불리는 A자 형태의 나무판에 거꾸로 꽂아, 매일 조금씩 사람이 손으로 돌려가며 8주 정도에 거쳐 병목 쪽으로 침전물을 모은다. 전통적인 '르뮈아주(Remuage)' 과정이다. 이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작업이기에 기로팔레트(gyropalette)라는 기계를 이용해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도 있지만, 까델 보스코(Ca'del Bosco)와 벨라비스타(Bellavista) 같은 많은 생산자들은 여전히 수작업으로 이 과정을 수행하며 프란치아코르타의 전통과 정체성을 지켜가고 있다. 침전물이 병목에 모이면 적정 온도와 타이밍에 맞춰 이를 제거하는 '데고르주망(dégorgement)' 과정을 거친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생산자가 의도한 스타일에 따라 베이스 와인에 소량의 설탕 혼합물을 첨가한다. 첨가되는 설탕의 양에 따라 와인의 당도 등급이 결정되며, 브뤼 나뚜르(Brut Nature)부터 드미섹(Demi-Sec)까지 다양하다.

[르뮈아주의 과정을 시각화한 까델 보스코의 설치물]
프란티아코르타 당도 기준
Pas Dosé / Brut Nature: 0~3g/L
Extra Brut: 0~6g/L
Brut: 0~12g/L
Extra Dry: 12~17g/L
Sec / Dry: 17~32g/L
Demi-Sec: 32~50g/L
프란치아코르타의 다양한 스타일
프란치아코르타의 라벨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당도 정보뿐 아니라 DOCG에서 규정하는 다섯 가지 스타일 분류도 함께 알아둘 필요가 있다. 논빈티지(Non-vintage), 밀레지마토(Millesimato), 리제르바(Riserva), 사텐(Satèn), 로제(Rosé)가 그것이다. 각각은 포도 품종, 숙성 기간, 생산 방식에서 차이를 보이며 와인의 개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논빈티지_ 일반적으로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를 블렌딩하며, 최대 50%까지 피노 블랑을 포함할 수 있다. 최소 18개월 이상 이스트 침전물(lees)과 함께 숙성한다. 여러 빈티지 와인을 조화롭게 블렌딩해 일관된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사텐_ 프란치아코르타에서만 볼 수 있는 용어다. 오직 화이트 품종만 사용하고 와인은 최소 24개월 이상 리 숙성을 거치며, 티라주 때 설탕 함량을 줄여 병 내 압력을 5기압 이하로 낮춘다. 사텐은 브뤼 스타일로만 생산된다.
로제_ 최소 35% 이상 피노 누아를 포함해야 하며, 주로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를 블렌딩해 만든다. 컬러를 내기 위해 포도를 바로 압착하는 다이렉트 프레싱(direct pressing), 짧은 시간 껍질과 접촉하는 방식, 완성된 와인을 블렌딩하는 세 가지 방식이 모두 허용된다.
밀레지마토_ 라벨에 빈티지가 명시된 와인으로, 해당 연도의 포도를 최소 85% 사용해야 한다. 또한 최소 30개월 이상의 리 숙성을 거친다.
리제르바_ 프란치아코르타 스타일 중 가장 오랜 숙성을 거친 와인이다. 밀레지마토 와인 중에서도 최소 60개월간 리와 함께 숙성된 와인에만 리제르바 명칭이 부여된다. 시간의 깊이가 만든 농밀한 풍미와 복합성이 특징이다.

[늦여름 햇살을 머금고 익어가는 프란치아코르타의 포도]
프란치아코르타의 역사는 프랑스 샴페인이나 스페인 까바에 비해 길지는 않지만, 그 시작은 분명 열정으로 가득했다. 이탈리아에서도 훌륭한 전통방식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이세오 호숫가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현실이 되었다. 현재도 프란치아코르타 생산자들은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더 시원한 지역과 독특한 토양을 찾아 영토를 확장하며, 고품질 프란치아코르타 생산에 힘쓰고 있다. 특히 까델 보스코는 차별화된 품질 관리를 위해, 코르크를 막기 전 병 내부에 소량의 질소(Nitrogen)를 주입해 와인의 신선도 유지와 보존성을 높이는 독자적인 방식을 도입했다. 또한, 포도 수확부터 세척까지 체계적인 시스템을 유일하게 적용해 샴페인과 차별화한 방법으로 프란치아코르타의 가치를 끌어올리고 있다.
조금 아쉬운 점은 아직까지 프란치아코르타가 해외 시장에서 자주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생산량 자체가 많지 않을 뿐 아니라, 대부분 이탈리아 내수 시장에서 소비되기 때문에 해외에서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이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특별한 스파클링 와인이 더 많은 한국 소비자의 테이블 위에 오르고 축하의 순간에 함께하길 기대한다. 프란치아코르타는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 현재 한국에 수입되고 있는 프란치아코르타 와인들 중 주목할 만한 와인들을 소개한다.

벨라비스타, 떼아뜨로 라 스칼라 브뤼 Bellavista, Teatro La Scala Brut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 헌정된 와인이다.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를 정교하게 블렌딩해 예술과 와인의 우아한 조화를 담아냈다. 흰 꽃, 월계수, 감귤류, 견과류, 브리오슈의 향이 어우러져 벨라비스타만의 품격 있는 풍미를 잘 보여준다. 입안에서는 부드럽고 밀도 있는 질감, 세련된 산도, 복합적인 구조가 균형을 이루며 긴 여운을 남긴다. 이 와인은 라 스칼라 시즌 오프닝 갈라의 공식 와인으로 사용되며, 이탈리아 문화와 와인의 품격을 함께 기리는 특별한 프란치아코르타로 자리매김했다.

까델보스코 안나마리아 클레멘티 Ca'del Bosco Cuvee Annamaria Clementi
까델보스코의 설립자 마우리치오 자넬라(Maurizio Zanella)가 어머니에게 헌정한 와인으로, 브랜드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샤르도네, 피노 누아, 피노 블랑으로 구성된 뛰어난 빈티지 포도만 엄선해 만들며, 평균 8년 이상의 긴 숙성 기간을 거친다. 제로 도사주 스타일로 고급스러운 구조감과 깊이, 크리미한 질감, 긴 여운, 그리고 뛰어난 숙성 잠재력을 두루 갖춘 프란치아코르타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꼰타디 까스탈디, 사텐 Contadi Castaldi Satèn
꼰타디 까스탈디는 프란치아코르타에서 처음으로 '사텐(Satèn)'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와이너리다. 샤르도네 단일 품종으로 만들어지며, 병 내 압력을 낮춰 더욱 부드럽고 섬세한 버블을 구현한 스타일이다. 흰 꽃, 갓 구운 빵, 사과, 무화과 향이 어우러진 아로마가 인상적이며, 입안에서는 부드럽고 우아한 질감이 느껴진다. 긴 여운으로 마무리되며, 복합성과 우아함을 동시에 갖춘 와인으로 프란치아코르타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귀도 베를루끼 '61 네이처 브뤼 Guido Berlucchi '61 Nature Brut
1961년 귀도 베를루끼와 프랑코 질리아니가 전통방식으로 처음 만든 스파클링 와인으로, 프란치아코르타 역사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를 블렌딩한 제로 도사주 와인으로, 파스타, 생선 요리, 숙성 치즈와 잘 어울린다. 프란치아코르타의 기원을 탐구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는 상징적인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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