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책갈피 속 와인 아로마]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수도원의 유산을 잇는 와인

2월의 끄트머리, 입춘이 지났음에도 창가에는 여전히 날 선 냉기가 서린다. 이맘때면 책장 구석에서 벽돌처럼 묵직한 책 한 권을 꺼내 들게 된다. “그가 죽자 세계의 도서관 하나가 불타 사라졌다.” 20세기 최고의 지성으로 칭송받았던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장미의 이름(Il nome della rosa)>이다.



1327년 11월 말 황제와 교황의 권력 다툼 속에서 영국의 수사 윌리엄과 그의 어린 제자 아드소가 베네딕트회 수도원을 찾는다. 그러나 정작 그들을 맞이한 것은 고요한 기도가 아니라 묵시록의 예언처럼 7일간 이어지는 기괴한 연쇄 살인이었다. 모든 죽음의 단서는 그 누구의 출입도 허락되지 않는 거대한 미궁인 장서관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미궁의 중심에는 눈먼 노수사 호르헤가 서 있다. 그는 '웃음은 두려움을 없애고, 두려움이 없는 신앙은 존재할 수 없다'고 믿으며 수도원의 엄격한 질서를 수호하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지식과 신앙, 웃음과 공포, 그리고 실체와 그림자가 뒤엉킨 이 치밀한 중세의 미궁. 에코가 설계한 이 거대한 기호의 숲을 우리는 무엇을 나침반 삼아 헤쳐 나가야 할까.


에코와 동시대를 살며 기호의 이면을 탐미했던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일찍이 '와인은 흙의 깊이를 인간의 즐거움으로 환원시키는 변환 물질'이라 정의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딱딱하게 굳은 텍스트의 껍질을 깨고 그 안의 본질을 맛보는 데 있어 와인보다 더 적절한 도구는 없어 보인다. 오늘은 불타 사라진 수도원의 폐허 위에서 4병의 와인을 등불 삼아 그 진실을 다시 맛보려 한다.


소설의 무대가 되는 수도원은 이탈리아 북부의 험준한 산맥 속 깎아지르는 절벽 위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윌리엄 수사와 아드소가 헐떡이는 노새를 이끌고 도착했을 때 그들을 맞이한 것은 따뜻한 환대가 아니라 회색빛 하늘과 살인을 예고하는 침묵이었다. 그곳의 첨탑은 신에게 더 가까이 가기 위한 듯 구름 뚫고 지어졌으나 그만큼 인간의 온기와는 철저히 단절된 폐쇄적인 요새였다.



이 압도적인 공간의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 첫 번째 잔으로 프리오랏(Priorat)의 '스칼라 데이, 프리오르(Scala Dei, Prior)'를 제안한다. 프리오랏 와인의 역사는 1194년,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이 지역을 수복한 아라곤 왕의 초청으로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에서 온 카르투시오 수도회가 정착하면서 시작되었다. 와이너리의 이름 '스칼라 데이'는 라틴어로 '신의 계단'을 뜻한다. 수도사들이 꿈에서 천사가 계단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것을 목격하고 그 자리에 터를 잡았다는 전설이 담겨있다. 프리오랏 최초의 와이너리라는 뜻의 '프리오르'는 당시 이 척박한 땅을 다스렸던 수도원장에게 헌정된 명칭이다. 하지만 이러한 창건 설화 속 낭만과 달리 현실의 땅은 가혹했다. 수도사들의 엄격한 관리 아래 평신도들이 돌산을 개간하며 와이너리를 일궈냈다. 이 와인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묵묵히 포도나무를 심으며 흘렸던 그들의 땀과 고독한 노동의 시간이 고스란히 층을 이루고 있다.


19세기 스페인 정부의 교회 재산 몰수 정책과 필록세라의 창궐로 수도원은 방화와 파괴의 수난을 겪었으나, 이 땅을 낙찰받은 가문들이 와이너리를 재설립하며 포도밭을 재생시켰다. 스칼라 데이는 2007년 수석 와인메이커 리카르드 로페스(Ricard Rofes)를 영입하고 고대 포도밭과 양조 방식을 복원하며 세계 100대 와이너리에 이름을 올리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가르나차와 까리냥을 블렌딩한 이 검붉은 액체에서는 블랙베리와 제비꽃, 그리고 잘 익은 자두의 농축된 풍미가 느껴지지만, 그 향기가 화려하게 치솟지는 않는다. 대신 뜨겁게 달궈진 돌을 연상시키는 미네랄과 입안을 단단히 움켜쥐는 엄숙한 구조감이 혀를 지배한다. 타협을 허용하지 않는 맛과 향이다. 마치 소설 속 거대한 장서관을 지키는 호르헤의 철통 같은 규율을 액체로 들이키는 듯하다. 준엄한 질서가 지배하는 중세의 겨울밤이 이 한 잔에 담겨 있다.



냉철한 논리주의자 윌리엄 수사와 그의 뒤를 따르는 독일인 제자 아드소, 두 사람은 거대한 미궁 같은 수도원을 탐색한다. 윌리엄이 날카로운 이성으로 사건을 해부하려 했다면 아드소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의 면면을 묵묵히 기록했다. 그는 기만과 침묵 뒤에 숨은 수도사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때 묻지 않은 독일 멜크 수도원 출신의 수련사다. 아드소의 고향에도 같은 종단의 유서 깊은 수도원이 자리잡고 있다. 그곳으로 시선을 옮겨 라인가우의 슐로스 요하니스베르그(Schloss Johannisberg)로 향한다. 이곳은 와인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실수가 빚어낸 기적의 현장이다. 1775년, 수확 허가권을 쥔 풀다(Fulda) 주교의 전령이 늦게 도착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기다림에 지친 포도밭은 이미 곰팡이균에 뒤덮여 썩어가고 있었다. 철두철미한 수도원의 계획이 어그러진 순간이었다. 수도사들은 망연자실하며 그 망친 포도로 와인을 빚었으나 결과는 경이로웠다. 응축된 풍미의 늦수확 와인, 슈페트레제(Spätlese)가 탄생한 것이다.


이 역사적 아이러니는 윌리엄 수사의 수사 과정과 절묘하게 포개진다. 그는 묵시록의 패턴을 따라 단서를 쫓았으나 훗날 살인의 진범과 마주한 순간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실수를 통해 자네를 찾아냈네. 내가 세운 가설은 틀렸어.” 때로 진실은 완벽한 논리가 아닌 우연한 틈새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슐로스 요하니스베르그, 그륜락 슈페트레제(Grunlack Spatlese)'의 당도에 기대지 않는 리슬링 특유의 생생한 미네랄과 핵과류 아로마는 인간의 치명적인 실수조차 껴안으며 끝내 걸작으로 승화시킨 수도사들의 지혜를 보여준다. 우리가 저지른 수많은 착오들 역시 실패가 아니라 더 정제된 진실로 가기 위한 늦수확이었을지 모른다. 칠흑 같은 미궁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 줄기 등불 같은 와인이다.


수도원 안에서는 연쇄 살인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 뒤편으로는 황제와 교황청의 거대한 권력 다툼이 도사리고 있었다. 소설을 관통하는 신학적 논쟁의 핵심은 '과연 예수는 가난했는가?'였다. 옷 한 벌조차 소유하지 않았다는 청빈을 주장하는 프란치스코회와, 부와 권력을 통해 신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교회의 대립. 이 성스러움과 세속적 욕망이 뒤엉킨 아이러니를 세 번째 와인이 비춘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심장 본에서도 자갈과 점토가 섞인 최상의 밭 그레브(Grèves) 내에 위치한 '부샤르 뻬레 에 피스, 비뉴 드 랑팡 제쥐(Vigne de L'Enfant Jésus)'다.



'아기 예수의 포도원'이라는 뜻의 이름에는 기적과 권력이 묘하게 공존한다. 17세기 카르멜회 수녀원장이었던 마거릿은 오랫동안 후사가 없던 왕비의 임신을 점쳤는데, 그 예언대로 훗날 '태양왕'이 될 루이 14세가 태어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를 기리기 위해 포도밭에는 아기 예수라는 명칭이 붙었으며 이후 왕실의 비호 아래 본 지역의 가장 성스러운 밭으로 자리 잡았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절대 왕정의 입김에서 탄생했지만, 부르고뉴 피노 누아의 정석과도 같은 이 와인은 강렬함보다는 우아함과 섬세함의 극치를 선보인다. 웃음을 신에 대한 두려움을 갉아먹는 독으로 여겼던 호르헤가 세상을 공포로 통제하려 했다면, 이 와인은 가장 순수하고 연약한 아기의 살결 같은 부드러움으로 우리를 구원한다. 노즈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과실의 향은 어느새 비단결 같은 텍스처가 되어 입안을 감싼다. 진정한 구원은 호르헤의 공포에서 오는가, 아니면 아기 예수의 미소에서 오는가. 이 와인은 권력의 암투와 살육의 역사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은 것은 억압이 아닌 사랑의 질감임을 방증한다.


결국 도서관은 불탔다. 호르헤가 던진 등불에 의해 수천 년의 지혜가 담긴 장서관은 3일 밤낮으로 타올랐고, 웅장했던 수도원은 한 줌의 재로 변했다. 노인이 된 아드소는 폐허 위에서 이 긴 이야기의 끝을 맺는 그 유명한 라틴어 문장을 남긴다.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들뿐(Stat rosa pristina nomine, nomina nuda tenemus).”

 

보편적 본질은 사라지고 낱낱의 이름만 남는다는 유명론적 사유는 중세 유명론(Nominalism)의 핵심이자, 작가 에코가 던진 뼈 있는 철학적 농담이다. 하지만 와인을 사랑하는 이의 감각으로 이 문장을 다시 읽는다면 이야기는 조금 다른 결을 띤다. 마지막 와인 '테누타 몬테마뇨, 노빌리스 루케 디 카스타뇰 몬페라토(Tenuta Montemagno, Nobilis Ruché di Castagnole Monferrato)'가 바로 그 새로운 결말로 안내한다.



에코의 고향이자 소설의 배경인 피에몬테의 토착 품종 루케(Ruché)로 만든 이 와인의 별명은 '피에몬테의 장미'다. 루케 품종의 전성기는 1960년대 품종학 지식이 해박했던 돈 자코모 카우다 수도사(Don Giacomo Cauda)가 카스타뇰 몬페라토 성당에 부임하며 시작됐다. 전멸 위기의 루케를 종교 축일과 미사주로 사용하며 보존한 그의 노력 덕분에 루케는 오늘날 DOCG 등급으로 승격됐다. 연간 소량만 한정 생산되는 노빌리스의 코르크를 여는 순간, 믿을 수 없을 만큼 선명한 장미의 향기가 후추의 스파이시함과 함께 폭발하듯 피어오른다. 눈앞에 보이지 않지만 이미 공간을 가득 채운 장미의 아로마는 형체가 소멸되어도 여전히 실존하는 본질을 내포하는 듯하다. 에코는 “이름만 남았다!”고 탄식했지만, 와인은 “향기가 남았다”고 속삭인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700년 전의 수도원이, 그리고 사라진 장미가 우리에게 보내는 가장 강렬한 신호다.


책을 덮는다. 종이 냄새와 루케 와인의 붉은 꽃내음이 섞여 묘한 여운을 남긴다. 도입부에서 우리를 안내했던 롤랑 바르트는 “저자의 죽음은 독자의 탄생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고 했다. 와인을 빚은 수도사는 사라졌고, 거대한 도서관은 불탔다. 그럼에도 슬퍼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그 와인을 마시고 이야기를 완성하는 우리가 존재하는 한, 텍스트는 매 순간 새롭게 부활하기 때문이다.


병 속에 갇혀 있던 이름뿐인 장미는 코르크가 열리는 순간, 나의 감각 속에서 살아있는 장미가 된다. 그러니 잔을 들어 이미 아스라져 버린 자들을 위해, 그리고 지금 살아있는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 건배할 뿐이다. 움베르토 에코가 설계한 이 거대한 미궁 속에서, 와인이 당신과 소설을 연결하는 아리아드네의 실이 되어주길 바란다.

프로필이미지김태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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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02.16 09:00수정 2026.02.14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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