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고뉴 와인을 전문적으로 테이스팅해온 와인 평론가가 이끄는 부르고뉴 와인은 어떤 스타일일까. 본(Beaune)에 기반을 둔 흐무와스네 페레 에 피스(Remoissenet Père & Fils)는 과거 로버트 파커의 <와인 애드버킷(Wine Advocate)>에서 부르고뉴를 비롯한 프랑스 주요 산지의 비평을 주도했던 수석 평론가 출신 피에르-앙투안 로바니(Pierre-Antoine Rovani) 대표가 총괄하고 있다. 최근 그가 한국을 찾았다. 평론가 시절 하루 150여 종의 와인을 시음하며 쌓아온 통찰과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는 자신의 와이너리를 이끌고 있는 그는 이번 방문에서 흐무와스네의 와인을 소개하며 좋은 와인에 대한 관점과 생산자로서의 철학, 그리고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을 공유했다.

[흐무와스네의 피에르-앙투안 로바니 대표, 사진: 안미영]
1877년 피에르 알프레드 흐무와스네(Pierre-Alfred Remoissenet)가 본에 설립한 흐무와스네는 초창기 희귀한 올드 빈티지를 엄선해 유통하는 전문 네고시앙으로 성장했다. 이후 1936년부터는 포도밭을 매입하며 생산자로서의 역할도 본격화했다. 약 150년에 이르는 역사 속에서 중요한 전환점은 2005년에 찾아왔다. 에드워드 밀스타인(Edward L. Milstein)이 이끄는 뉴욕 금융가 컨소시엄이 와이너리를 인수한 것이다. 밀스타인 측은 단순한 자본 투입에 그치지 않고, 메종 루이 자도 출신의 베르나르 레폴(Bernard Repolt)을 중심으로 와이너리 재정비를 추진했다. 그 결과 미국 자본과 프랑스의 전문적인 경영 노하우가 결합되며 새로운 성장의 기반이 마련됐다. 피에르-앙투안 로바니 대표가 평론가 직을 내려놓고 흐무와스네의 경영을 맡은 것도 이 시점이다.
“부르고뉴는 포도 재배와 와인 생산이 까다로운 환경이지만, 그만큼 최고의 와인을 만들 수 있는 지역입니다. 와인 평론가의 가장 큰 장점은 세계 최고의 생산자들을 직접 만나 질문할 수 있다는 점이죠. 평론가 시절 쌓은 풍부한 경험을 흐무와스네의 와인 생산에 적용하고 싶었습니다. 2005년 당시 우리가 직접 소유한 포도밭은 2헥타르에 불과했지만, 저는 훌륭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포도밭을 직접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좋은 포도밭을 찾아 확장해왔고, 현재는 약 25헥타르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흐무와스네는 현재 화이트 와인의 경우 부르고뉴 알리고떼부터 샤사뉴 몽라셰, 퓔리니 몽라셰, 생토방, 르 몽라셰까지 폭넓게 생산하고 있으며, 레드 와인 역시 부르고뉴 기본급부터 그랑 크뤼급까지 아우르고 있다. 직접 소유한 빈야드로는 본 프리미에 크뤼 중 브레상드(Bressandes), 마르코네(Marconnets), 그레브(Greves) 등이 있으며, 코르통 샤를마뉴(Corton-Charlemagne), 끌로 드 부조(Clos de Vougeot) 등 그랑 크뤼 밭도 포함된다. 또한 쥬브레 샹베르탕(Gevrey-Chambertin)과 뉘 생 조르주(Nuits-Saint-Georges)에도 뛰어난 프리미에 크뤼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으며, 2016년에는 사비니 레 본(Savigny-lès-Beaune)으로 자가 소유 빈야드를 확장했다. 그동안 유기농 재배를 지향해 왔으나 별도의 인증을 받지는 않았는데, 2024년 빈티지부터는 에코서트(Ecocert) 인증을 획득했다.
그는 와인 양조에서 자연이 스스로 와인을 만들어가도록 맡겨두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인간은 종종 자만심으로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와인은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하고 포도가 스스로를 표현하도록 두어야 한다고.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을 추구해야 와인에 테루아의 순수함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수확한 포도를 선별하는 과정에는 각별한 공을 들인다.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포도를 확보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에, 최상의 포도를 가려내기 위한 엄격한 선별 과정을 거친다.
오랜 세월 수없이 많은 와인을 테이스팅해온 평론가로서의 내공도 엿보였다. “사람들은 와인을 시음할 때 아로마를 찾는 데 집중한 나머지, 중요한 두 가지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는 와인이 어떻게 느껴지는가 하는 '텍스처'이고, 다른 하나는 와인이 어떻게 마무리되는가 하는 '피니시'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저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다가 갑자기 칼을 꽂는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저는 칭찬보다 그 마지막 순간을 더 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그만큼 피니시는 중요합니다.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연에 맡길 때, 와인은 마무리까지 매끄럽게 이어지며 긴 여운을 남깁니다.”

[로바니 대표와 함께 시음한 흐무와스네 와인들, 사진: 안미영]
그가 이야기한 질감과 여운을 직접 확인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먼저 흐무와스네 부르고뉴 블랑 흐노메(Remoissenet Bourgogne Blanc Renommee) 2021. 까다로웠던 빈티지로 생산량이 적었던 해의 와인이다. 와인은 시장 수요에 맞춰 마음대로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생산자에게 2021년은 특히 어려웠던 해로 남아 있다. 부르고뉴 블랑은 여러 지역의 포도를 블렌딩해 핵심 스타일을 완성하는데, 다양한 파셀의 균형을 맞추기에는 원료 자체가 부족했던 조건이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품질로 완성할 수 있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와인”이라고 말했다. 흰 꽃과 감귤을 중심으로 산뜻한 향이 올라오며, 무겁지 않으면서 부르고뉴 샤르도네의 클래식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두 번째로 시음한 화이트 와인, 흐무와스네 사비니 레 본 블랑(Remoissenet Savigny Les Beaune Blanc) 2020은 대부분 직접 소유한 포도밭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든다. 일부는 외부에서 구입한 포도를 사용해 네고시앙 방식으로 생산하지만 해당 포도밭 역시 직접 관리하며 수확에도 참여하고 있다. 5년 이상 숙성된 빈티지로, 고도가 높은 구획에서 비롯된 산도와 낮은 고도의 클레이 토양 구획에서 오는 바디감과 농축미가 조화를 이룬다. 신선함과 아름다운 질감, 그리고 그가 강조한 긴 피니시까지, 균형 잡힌 완성도를 보여준다. 그 역시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와인이라고 밝혔다.

[흐무와스네 사비니 레 본 블랑 2020, 사진: 안미영]
첫 번째 레드로 시음한 와인은 흐무와스네 부르고뉴 루쥬 흐노메(Remoissenet Bourgogne Rouge Renommee) 2022. 이 와인에 대해 그는 기본급 부르고뉴임에도 생산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자가 재배한 포도와 외부에서 구입한 포도를 각각 구분해 양조하는데, 흐무와스네의 품질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는 병입하지 않고 재판매한다. 비용 측면에서는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와인이지만 동시에 매우 중요한 와인이라고 강조했다.
“예산이 높지 않은 젊은 소비자들은 부르고뉴 빌라주급 와인을 쉽게 접하기 어렵습니다. 흐노메는 그런 이들을 위해 만든 와인입니다.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대에서 부르고뉴의 정석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부르고뉴가 더 많은 이들과 만나기 위해서는 유명 빈야드뿐 아니라, 이렇게 입문자에게 열려 있는 와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처럼 이 와인은 기본급임에도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생동감 있는 과실 풍미에 섬세한 질감과 적절한 타닌이 조화를 이루며, 부르고뉴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발견'의 경험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흐무와스네 부르고뉴 루쥬 흐노메를 시음하는 로바니 대표, 사진: 안미영]
흐무와스네 페르낭 베르젤레스 프리미에 크뤼 앙 까하두(Remoissenet Pernand-Vergelesses Premier Cru En Caradeux Rouge) 2019는 코르통 언덕 서쪽에 위치한 페르낭 베르젤레스 마을의 고지대에 자리한 '앙 까하두(En Caradeux)' 빈야드에서 생산된 와인이다. 높은 고도에서 비롯된 서늘한 기후와 석회질 토양의 영향으로 뛰어난 산도와 미네랄리티를 보여주며, 잘 익은 과실 풍미와 은은한 흙내음이 어우러진다. 부드러운 질감 또한 매혹적이다. 그는 산도가 돋보이는 스타일인 만큼 일반적인 레드 와인보다 약간 낮은 온도에서 즐기길 추천했고, 지방 함량이 높은 돼지고기 요리와 훌륭한 페어링을 이룬다고 덧붙였다.
흐무와스네는 쥬브레 샹베르탕 전역에 여러 구획을 소유하고 있으며, 다양한 고도와 경사면에 걸쳐 포도밭이 분포해 있다. 흐무와스네 쥬브레 샹베르탕(Remoissenet Gevrey-Chambertin) 2020은 이 지역의 포도를 블렌딩해 생산한 와인이다. 구획마다 포도의 숙성 속도와 수확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발효 역시 각각 따로 진행하며, 마치 테일러링을 하듯 세심한 양조 과정을 거친다. 검은 과실 아로마와 향신료가 감각을 깨우고, 지역 특유의 힘과 구조감, 집중도가 잘 드러난다.

[흐무와스네 쥬브레 샹베르탕 2020, 사진: 안미영]
로바니 대표는 이 와인에 대해 “2070년에 마셔도 좋을 만큼 잠재력이 있는 와인”이라며 장기 숙성력을 강조했다. 좋은 포도를 사용하고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할 때, 이러한 숙성 잠재력을 지닌 와인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이 와인을 통해 느끼는 즐거움을 다음 세대가 또 다른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클래식 부르고뉴'의 가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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